초(楚)나라 소왕(昭王)이 병이 나자, 점쟁이에게 점을 쳤는데 이렇게 말하였다.
“하신(河神)의 빌미가 되었군요. 대부들이 삼생(三牲)으로 하신에게 제사를 드리기를 청합니다.”
이에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선왕들께서는 토지를 떼어 봉해 줄때도 겨우 자기 경내에서 망제(望祭)만을 지냈을 뿐이었다.
우리 땅에 있는 장강(長江), 한수(漢水), 수수(睢水), 장수(漳水)도 망제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이로써도 충분히 화나 복이나 다 이룰 수 있으며 지나친 것이 아니다.
불곡(不穀)이 비록 덕이 없으나 나라밖의 하신이 내게 죄를 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는 드디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평하였다.
“소왕은 가히 천도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나라를 잃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 초(楚)소왕(昭王): 춘추시대 초나라의 임금. 재위 27년(BC. 515∼489).
✼ 하신(河神): 황하의 신.
✼ 삼생(三牲): 제사를 지낼 때 가장 큰 희생. 세 가지 가축으로 제사지낸다.
✼ 망제(望祭): 자기 경내의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나라의 안녕과 복을 비는 일.
✼ 불곡(不穀): 임금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설원(說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