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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 9-26절.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다
9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considerable time had passed and the voyage was now dangerous, since even the fast was already over, Paul began to admonish them,
여러 날이 걸려
Ἱκανοῦ δὲ χρόνου διαγενομένου,
much now time having passed,
직역하면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라는 뜻입니다.
‘지나가고’(διαγενομένου)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assed) 많은 시간이 확실히 지나간 것을 가리킵니다.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καὶ ὄντος ἤδη ἐπισφαλοῦς τοῦ πλοὸς
and being already dangerous the voyage,
‘위태한지라’에서 동사(ὄντος)는 현재분사입니다(being).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διὰ τὸ καὶ τὴν Νηστείαν ἤδη παρεληλυθέναι,
because of the even Fast already to have been over,
직역하면 ‘금식절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란 뜻입니다.
‘지났으므로’에서 동사(παρεληλυθέναι)는 완료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been over) 이미 지나간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παρῄνει ὁ Παῦλος
was admonishing the Paul
‘권하여’(παρῄνει)는 미완료과거로서(was admonishing) 바울이 계속 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금식하는 절기란 유대인의 달력으로 7월 10일(대속죄일, 현재의 9월 25일경)에 지키는 금식 절기를 가리킵니다(레 16:29).
이때는 우리나라 추분에 해당하는데, 이때부터 춘분(3월 중순)까지는 북서풍이 불어서 지중해에 진공현상으로 인한 ‘푄현상’(높새바람)이 생겨서 지중해의 물이 공중으로 뛰어오르기 때문에 항해하기가 위태롭습니다.
지금이야 기관선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당시에는 바람에 돛을 맞추어 가는 범선이었므로 항해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10절.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said to them, "Men, I perceive that the voyage will certainly be with damage and great loss, not only of the cargo and the ship, but also of our lives.“
말하되
λέγων αὐτοῖς
saying to them
직역하면 ‘그들에게 말하되’란 뜻입니다.
‘말하되’(λέγων)는 현재 분사로서(saying)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Ἄνδρες, θεωρῶ ὅτι
men, I perceive that
‘내가 보니’(θεωρῶ)는 현재형입니다. (I perceive)
타격과 많은 손해를
μετὰ ὕβρεως καὶ πολλῆς ζημίας
with disaster and much loss
하물과 배만 아니라
οὐ μόνον τοῦ φορτίου καὶ τοῦ πλοίου
not only of the cargo and of the ship
우리 생명에도
ἀλλὰ καὶ τῶν ψυχῶν ἡμῶν
but also of the lives of us
이번 항해가--- 끼치리라 하되
μέλλειν ἔσεσθαι τὸν πλοῦν.
to be about to be the voyage
직역하면 ‘이 항해가--(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내가 본다)’는 뜻입니다.
‘있을 것이라’(μέλλειν ἔσεσθ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about), 뒤의 동사는 미래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be).
1. 바울은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와 모든 여행객들에게 말하기를 <이번 항해가 매우 위험해서 하물을 잃게 되고, 배도 파선하고, 여행객들의 생명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I perceive).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5절에서 말한 대로 이미 세 번의 파선 경험이 있는 경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라서 영적인 직감과 신앙적 통찰력을 가지고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이처럼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은 인간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신 계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늘 하나님께 기도하여 전쟁의 방법을 늘 선택했고, 김하중 대사는 외교관의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아서 성공적으로 성취해갔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도 선택에 있어서 이런 하나님의 감동과 계시가 중요합니다.
11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 centurion was more persuaded by the pilot and the captain of the ship than by what was being said by Paul.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더 믿더라
ὁ δὲ ἑκατοντάρχης τῷ κυβερνήτῃ καὶ τῷ ναυκλήρῳ μᾶλλον ἐπείθετο
the but centurion by the pilot and the ship owner rather was persuaded
직역하면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이 말한 것 보다) 선장과 선주에게 설득되었다’
‘설득되었다’(ἐπείθε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was persuaded) 선장과 선주가 계속 말해서 백부장이 설득된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의 말보다
ἢ τοῖς ὑπὸ Παύλου λεγομένοις.
than by the things by Paul spoken
직역하면 ‘바울에 의해서 말해진 것들 보다’란 뜻입니다.
‘말해진’(λεγομένοις)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spoken) ‘말해진’이란 뜻입니다.
1. 선장은 선원들의 지휘자였고, 선주는 배의 소유주였고, 백부장은 군사력을 가지고 선장과 선주와 모든 항해자들을 지휘하는 항해의 결정권자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바울이 이번 항해가 위태하다고 권면했으나, 바울의 말 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이처럼 경험이 많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 보다 더 믿는 백부장의 태도는 영적인 세계를 모르는 백부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때 선장은 항해 경험에 의지해서, 선주는 이해 타산에 의해서, 바울은 신앙에 입각해서 각각 의견을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지식과 재물이 중시되고, 신앙이 무시되면 큰 역경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 항로에서 지식과 재물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앞서 있지는 않는가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의 예언대로 큰 풍랑을 만난 후에야 선장이나 선주의 말 보다 바울의 말을 더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떡을 먹으라고 하면 먹었고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란 말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이 죄수를 모두 죽이자고 제안했을 때,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서 죄수들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12절.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cause the harbor was not suitable for wintering, the majority reached a decision to put out to sea from there, if somehow they could reach Phoenix, a harbor of Crete, facing southwest and northwest, and spend the winter there.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ἀνευθέτου δὲ τοῦ λιμένος ὑπάρχοντος πρὸς παραχειμασίαν
unsuitable now the harbor being to winter in
‘불편하므로’에서 동사(ὑπάρχοντος)는 현재분사입니다(being).
거기서 떠나-- 하는 자가 더 많으니
οἱ πλείονες ἔθεντο βουλὴν ἀναχθῆναι ἐκεῖθεν,
the majority reached decision to set sail from there
직역하면 ‘대다수는 거기서 떠나 항해하고자 하는 결정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항해하고자 하는’(ἀναχ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et sail) 단호하게 떠나서 항해하는 것을 가리키고, ‘도달했다’(ἔθεντο)는 부정과거로서(reached) 그 결정에 확실히 도달한 것을 가리킵니다.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εἴ πως δύναιντο, καταντήσαντες εἰς Φοίνικα, παραχειμάσαι,
if somehow they might be able, having arrived at Phoenix, to winter
직역하면 ‘아무쪼록 뵈닉스에 도착해서 겨울을 보내는 것을 그들이 좋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가서’(καταντή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arrived) 확실히 뵈닉스에 도착한 것을 가리킵니다.
‘겨울을 지내자’(δύναιντο---παραχειμάσαι)는 직역하면 ‘겨울을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앞의 동사는 현재 기원격(opative) 동사이고,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winter) 겨울을 확실히 보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λιμένα τῆς Κρήτης, βλέποντα κατὰ λίβα καὶ κατὰ χῶρον.
habor of the Crete, looking toward southwest and toward northwest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는 문맥으로 옳은 번역입니다.
‘향하였더라’(βλέποντα)는 현재분사로서(looking) ‘향하고 있더라’는 뜻입니다.
1.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미항은 자연적으로는 아름다운 항구였지만, 작은 항구였고, 숙박시설이 빈약했습니다.
반면에 그레데 섬 서쪽 끝에 있는 뵈닉스(불사조의 뜻) 항구는 더 큰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호가 정박하기가 좋았고, 또 숙박시설이 많아서 겨울을 지내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선장이나 선주나 많은 여행자들은 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유흥업소가 없는 미항보다는 유흥업소가 많은 뵈닉스에서 겨울을 나자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2.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뵈닉스는 한쪽은 서남을 향해 있어서 북서풍을 막아주고, 한쪽은 서북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외적인 조건만 생각하고 바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인생 항로에서 지식이나 재산이나 다수의 의견보다도 영적인 권위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잠1:7, 9:10, 시 111:10).
13절.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a moderate south wind came up, supposing that they had attained their purpose, they weighed anchor and began sailing along Crete, close inshore.
남풍이 순하게 불매
Ὑποπνεύσαντος δὲ νότου
having blown gently now south wind
‘순하게 불매’(Ὑποπνεύσαντ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lown gently) 아주 순하게 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δόξαντες τῆς προθέσεως κεκρατηκέναι,
having thought the purpose to have obtained
직역하면 ‘목적을 달성한 줄 생각하고’란 뜻입니다.
‘이룬 줄’(κεκρατηκέναι)은 완료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obtained) 이미 목적을 달성한 줄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알고’(δόξ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hought)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ἄραντες, ἆσσον παρελέγοντο τὴν Κρήτην.
having weighed (anchor), very near they began coasting along the Crete
‘닻을 감아’(ἄρ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weighed) 닻을 완전히 감아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에서 동사(παρελέγο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began coasting along) 계속 해안길로 항해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는 바울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항에서 뵈닉스 항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항을 출발하자마자 지금까지 불던 북서풍이 그치고 남풍이 순하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미항을 출발하기를 잘했다고 기뻐하고, 경험이 없는 바울의 말을 무시한 것이 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배를 고정시킬 수 있는 닻을 아예 필요 없다고 감아 올려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남풍은 태풍 전야의 일시적인 고요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앗수르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를 ‘순적히’ 만난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여정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성공이 있으므로, 바울은 역풍을 만났어도 오히려 복음 전도에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과 재물과 향략을 목적 삼는 인생은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 같아도 영원히 실패하고 맙니다.
14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before very long there rushed down from the land a violent wind, called Euraquilo;
얼마 안 되어
μετ’ οὐ πολὺ δὲ
after not long however
직역하면 ‘그러나 머지않아서’란 뜻입니다.
섬 가운데로부터--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ἔβαλεν κατ’ αὐτῆς ἄνεμος τυφωνικὸς
there came down from it wind tempestuous
직역하면 ‘거기로부터 광풍이 내리쳤다’는 뜻입니다.
‘내리쳤다’(ἔβαλεν)는 부정과거로서(there came down) 엄청나게 내리친 것을 가리킵니다.
유라굴로라는
ὁ καλούμενος Εὐρακύλων·
the being called Euraquilo
동사(καλούμενος)는 현재 사 수동태로서(being called) ‘(유라굴로라고) 불리어지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유라굴로’란 북동풍(Northeaster)이란 뜻을 가진 광풍이었습니다.
1. 그레데 섬에는 해발 2,100미터의 이다(Ida) 산이 있어서 남풍이 갑자기 급한 북풍으로 바뀌는 경우가 흔히 있었습니다(Ramsay).
이처럼 이다 산에서 대해(지중해)로 내리치는 광풍이 알렉산드리아 배를 지중해로 몰아붙여서, 아프리카 방면의 암초(스르디스)에 부딪히게 하여 파선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불어 닥친 광풍은 ‘유라굴로’라는 유명한 광풍이었습니다.
요즘에도 가끔 무서운 태풍이 불면 그 태풍의 이름이 거론되곤 하는데, 그레데 섬에서 불어닥친 이 유라굴로 광풍도 유명한 광풍이었습니다.
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배는 거의 대부분 파선하고 모든 항해자가 죽었습니다.
단지 이 유라굴로 광풍에서 알렉산드리아 배와 항해자들이 살아남은 것은 바울 덕분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와 함께 인생 항로를 항해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일심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역경 중에서도 나도 살고, 내 주위 가족들이나 동행자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4절에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너와 함께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5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the ship was caught in it and could not face the wind, we gave way to it and let ourselves be driven along.
배가 밀려
συναρπασθέντος δὲ τοῦ πλοίου
having been caught then the ship
‘밀려’(συναρπασθέντο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caught) 확실히 바람에 밀려서 끌려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καὶ μὴ δυναμένου ἀντοφθαλμεῖν τῷ ἀνέμῳ
and not being able to face to the wind
‘맞추어 갈 수 없어’(μὴ δυναμένου ἀντοφθαλμεῖν)에서 앞의 동사(δυναμένου)는 현재분사이고(being able), 뒤의 동사(ἀντοφθαλμ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face) ‘직면해 갈 수 없어서’란 뜻입니다.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ἐπιδόντες, ἐφερόμεθα.
having given away, we were being driven along
직역하면 ‘맡겨두고, 우리가 쫓겨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가는 대로 두고’(ἐπιδ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iven away) ‘완전히 내버려두고’란 뜻이고, ‘쫓겨가다가’(ἐφερόμεθα)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e were being driven along)는 계속 쫓겨 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1. 당시 최대의 배 알렉산드리아 호는 선장과 선주와 백부장의 기술로써도 자기들의 뜻대로 운행할 수 없어서 유라굴로 광풍에 밀려가는 대로 쫓겨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인생 항로에서도 질병이나 경제적 타격이나 가정 파괴나 직장 실업이나 국가적인 전쟁 등의 광풍을 만나면, 백부장 같은 권력가의 명령도 소용없고, 선장과 같은 전문가의 기술도 소용없고, 선주와 같은 재력가의 재물도 소용없이 그저 하나님의 섭리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인생은 이런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16절.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unning under the shelter of a small island called Clauda, we were scarcely able to get the ship's boat under control.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νησίον δέ τι ὑποδραμόντες, καλούμενον Κλαῦδα
island then certain having run under, being called Cauda
직역하면 ‘가우다라고 불리고 있는 어떤 섬 아래로 지나서’란 뜻입니다.
‘불리고 있는’(καλούμενον)은 현재분사 수동태이고(being called), ‘아래로 지나’(ὑποδραμ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un under) 확실히 아래로 지나간 것을 가리킵니다.
간신히 거루를 잡아
ἰσχύσαμεν μόλις περικρατεῖς γενέσθαι τῆς σκάφης,
we were able with difficulty control to gain of the life boat
직역하면 ‘우리가 어렵게 거루에 대한 통제를 얻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은 좋은 번역입니다.
‘얻을 수 있었다’( ἰσχύσαμεν---γενέσθαι)에서 앞의 동사는 부정과거로서(we were able) ‘할 수 있었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ain) 확실히 (통제)를 얻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1. 가우다 섬은 그레데 서쪽 35킬로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그런데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불행 중 다행으로 가우다 섬 아래서 잠시 광풍을 피해서 거루를 잡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거루’란 본선이 파선될 경우를 대비해서 작은 배로 목숨을 건지려고 본선 곁에 달고 다니는 작은 구명선(lifeboat)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푹풍이 심하므로 이 거루가 본선과 부딪혀서 본선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거루를 본선으로 잡아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루를 본선에 잡아 올리는 것은 간신히 이루어졌습니다.
17절.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fter they had hoisted it up, they used supporting cables in undergirding the ship; and fearing that they might run aground on the shallows of Syrtis, they let down the sea anchor and in this way let themselves be driven along.
끌어 올리고
ἣν ἄραντες
which having taken up
직역하면 ‘그것(거루)을 끌어 올리고’란 뜻입니다.
‘끌어 올리고’(ἄρ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up) 확실하게 끌어 올린 것을 가리킵니다.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βοηθείαις ἐχρῶντο, ὑποζωννύντες τὸ πλοῖον·
supports they were using, undergirding the ship
직역하면 ‘도구들을 사용해서, 배를 둘러 감고’란 뜻입니다.
‘줄’로 번역된 단어(βοηθείαις)는 줄이나 철사 같은 도구를 가리키고, ‘가지고’(ἐχρῶ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using) 줄이나 철사 같은 것들을 계속 사용해서 배를 둘러 감는 것을 가리킵니다.
‘둘러 감고’(ὑποζωννύ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undergirding) 계속 둘러 감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φοβούμενοί τε μὴ εἰς τὴν Σύρτιν ἐκπέσωσιν,
fearing then lest into the sandbars of Syrtis they should fall
‘걸릴까’(ἐκπέσω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they should fall) 스르디스 모래톱에 갑자기 탁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두려워하여’(φοβούμενοί)는 현재분사로서(fearing)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연장을 내리고
χαλάσαντες τὸ σκεῦος,
having lowered the gear
‘연장’(σκεῦος)이란 배에서 사용하는 ‘돛이나 닻이나 돛대나 밧줄’(gear anchor sail rigging cable) 같은 도구들(gears)을 가리킵니다.
‘내리고’(χαλά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owered) 돛을 내리는 것 만 아니라 도구들을 다 단호하게 내려놓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냥 쫓겨가더니
οὕτως ἐφέροντο.
thus they were driven along
‘쫓겨가더니’(ἐφέρον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they were driven along) 계속 쫓겨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폭풍 속에서도 거루를 끌어올리고 선체를 줄로 감는 것은 역경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스르디스>란 모래로 이루어진 암초(sandbars)를 가리키는데, 지중해에는 두 개의 스르디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스르디스’는 아프리카 북쪽 지중해에 있는 ‘큰 스르디스’를 가리킵니다.
이 스르디스에 걸리면, 요즘 같은 통신시설이나 기계가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모든 사람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원들은 배가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서 스스로 배의 연장들을 바다에 버리고, 배를 가볍게 했습니다.
이처럼 연장을 버렸다는 것은 기술자들의 인간적인 <기술>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18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next day as we were being violently storm-tossed, they began to jettison the cargo;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σφοδρῶς δὲ χειμαζομένων ἡμῶν
violently then being storm-tossed of us
‘풍랑으로 애쓰다가’(χειμαζομένων)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χειμαζομένων), 배가 위아래로 심히 요동을 쳐서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τῇ ἑξῆς, ἐκβολὴν ἐποιοῦντο,
on the next, jettison of cargo they began to make
직역하면 ‘이튿날 그들이 짐의 투하를 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ποιοῦν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they began to make) ‘기동의 미완료’(inceptive impf)이고, 짐의 투하를 그들이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은 잘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1.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썼다는 것은 바울 일행도 풍랑을 극복해보려고 힘을 다해서 수고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렸다는 것은 이 배가 곡물 수송선이기 때문에, 곡물을 모두 바다에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위해서 <재물>을 다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부자 청년에게 천국에 들어가려면 낙타가 짐을 다 버리고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재물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7).
19절.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on the third day they threw the ship's tackle overboard with their own hands.
사흘째 되는 날에
καὶ τῇ τρίτῃ
and on the third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αὐτόχειρες τὴν σκευὴν τοῦ πλοίου ἔριψαν.
with own hands the tackle of the ship they cast away
‘내버리니라’(ἔριψ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cast away) 단호하게 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기구조차 다 내버렸습니다.
17절에서 말하는 연장은 기계를 고치는 철연장을 버렸는데, 20절에서 기구란 가정으로 말하자면 식사 도구나 청소 도구나 책상 같은 가구들까지 다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오직 목숨만을 건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직장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집도 버리고, 오직 목숨을 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20절.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ince neither sun nor stars appeared for many days, and no small storm was assailing us, from then on all hope of our being saved was gradually abandoned.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μήτε δὲ ἡλίου μήτε ἄστρων ἐπιφαινόντων ἐπὶ πλείονας ἡμέρας,
neither now sun nor stars appearing for many days
‘보이지 아니하고’에서 동사(ἐπιφαινό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appearing) 나타나지 않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χειμῶνός τε οὐκ ὀλίγου ἐπικειμένου,
tempest then no small lying on
직역하면 ‘적지 않은 광풍이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대로 있으매’(ἐπικειμένου)는 현재분사로서(lying on) 계속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λοιπὸν περιῃρεῖτο ἐλπὶς πᾶσα τοῦ σῴζεσθαι ἡμᾶς.
from then on was abandoned hope all of the to be saved of us
직역하면 ‘그때부터 우리가 구원받을 희망이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을’(σῴζεσθαι)은 현재 부정사형 수동태이고(to be saved), ‘사라지고 있었다’(περιῃρεῖ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as abandoned) 점점 계속 사라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the situation was continually getting worse).
1. 3일 동안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연장도 버리고, 곡식도 버리고, 가재도구도 버리고, 다 버렸는데, 그 후로도 여러 날 동안 해도 달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만 있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구원의 희망이 다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항해에 있어서 해와 별은 방향을 알고 항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표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와 별이 보이지 않으니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도무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삶의 지침을 포기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닥에 처했을 때가 오히려 하나님의 지침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마 5: 3-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벧전 5:5, 약 4:6, 잠 3:34).
또한 누가복음 18장의 세리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랑하는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큰아들보다 더 사랑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오셨고,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마 9:12-13).
21절.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had gone a long time without food, then Paul stood up in their midst and said, "Men, you ought to have followed my advice and not to have set sail from Crete and incurred this damage and loss.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Πολλῆς τε ἀσιτίας ὑπαρχούσης
much also time without food there being
직역하면 ‘많은 시간 동안 음식 없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동사(ὑπαρχούσης)는 현재분사입니다(there being)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τότε σταθεὶς ὁ Παῦλος ἐν μέσῳ αὐτῶν, εἶπεν
at that time having stood up the Paul in midst of them, he said
직역하면 ‘그 때 바울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했다’는 뜻입니다.
‘서서’(στα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tood up) 벌떡 일어선 것을 가리키고, ‘말하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단호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좋을 뻔하였느니라
Ἔδει μέν, ὦ ἄνδρες, πειθαρχήσαντάς μοι
it behooved indeed, O men, having been obedient to me
직역하면 ‘여러분이여 내 말에 순종한 것이 마땅했습니다’란 뜻입니다.
‘순종한 것이’(πειθαρχήσαντά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en obedient) 확실하게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고, ‘마땅했습니다’(Ἔδει)는 미완료과거로서(it behooved) 계속 마땅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μὴ ἀνάγεσθαι ἀπὸ τῆς Κρήτης
not to have set sail from the Crete
직역하면 ‘그레데를 떠나지 않은 것이 (마땅했다)’는 뜻입니다.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κερδῆσαί τε τὴν ὕβριν ταύτην καὶ τὴν ζημίαν.
to have avoided loss then the damage this and the loss
직역하면 ‘이 타격과 손실을 피한 것이 (마땅했습니다)’는 뜻입니다.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면하였더라면’(κερδῆσαί)이란 단어는 원래 ‘손실을 피했다면’이란 뜻인데,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avoided loss) 확실히 피했어야 마땅했다는 뜻이고, ‘손실을 면한 것이 마땅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to obtain avoiding what would be detrimental).
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여러 날 먹지 못했다는 말은 처음 3일 동안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배를 가볍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일주일간은 아무것도 못 먹고 해와 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냥 풍랑에 쫓겨 다녔습니다.
그리고 27절 말씀처럼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바울이 육지가 가까와 온다고 하면서 음식을 먹으라고 해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여러 날이란 일주일간 여러 사람이 아무 도 먹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바울도 이때 금식하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구원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바울은 선장과 선주와 백부장에 대해서 자기 말을 불신하여 이런 풍랑을 만났고 큰 손실을 만났다고 부드럽게 책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의 말이 인간의 경험에 의한 추측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시받아서 말한 예언이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4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간밤에 구원의 말씀을 주셨음을 다시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은 인간의 경험과 현실적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권위적으로 전도하고 목회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뿐만 아니라 김하중 대사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덕분에 성공했고, 다윗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있었기에 블레셋 전투에서 성공했던 것입니다.
22절.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et now I urge you to keep up your courage, for there will be no loss of life among you, but only of the ship.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καὶ τὰ νῦν παραινῶ ὑμᾶς εὐθυμεῖν·
and the now I exhort you to keep up your courage
직역하면 ‘이제 너희가 용기를 갖도록 내가 권한다’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은 좋은 번역입니다.
‘용기를 갖도록’(εὐθυμεῖ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keep up your courage), ‘권한다’(παραινῶ)는 현재형입니다(I exhort).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ἀποβολὴ γὰρ ψυχῆς οὐδεμία ἔσται ἐξ ὑμῶν
loss for of life none there will be from among you
직역하면 ‘왜냐하면 너희 중에 아무의 생명도 손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없겠고’에서 동사(ἔσται)는 미래형입니다(there will be).
오직 배뿐이리라.
πλὴν τοῦ πλοίου.
only of the ship
직역하면 ‘오직 배의 (손실)뿐이리다’는 뜻입니다.
1.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권한다’(παραινῶ)는 단어나 ‘안심하라’(εὐθυμεῖν)는 단어는 의사가 환자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말로서 의학용어입니다.
이런 용어를 보아서 사도행전은 의사인 누가가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은 본 절의 말씀처럼 항상 위로와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위협하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비목회적 언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목회자의 기본 소양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2.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의 두 번째 예언입니다.
첫 번째는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라는 권면이었고, 두 번째는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만 손상을 입는다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첫 번째 예언은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가 듣지 않았지만, 두 번째 예언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백부장 등은 바울의 첫 번째 예언을 불순종함으로써 죽을 위험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보다 배에 탄 사람들이 소중하듯이, 집보다 가족이 소중하고, 예배당보다 교인들이 더 소중합니다.
23절.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very night an angel of the God to whom I belong and whom I serve stood before me,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παρέστη γάρ μοι ταύτῃ τῇ νυκτὶ
stood by for me this the night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가) 이 밤에 내 곁에 섰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곁에 서서’(παρέστη)는 부정과거로서(stood by) 확실히 곁에 선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τοῦ Θεοῦ, οὗ εἰμι, ᾧ καὶ λατρεύω, ἄγγελος
of the God, of whom I am, whom and I serve, angel
‘내가 속한 바’에서 동사(εἰμι) 현재형이고(I am), ‘내가 섬기는’(λατρεύω)도 현재형으로서(I serve), 지금 내가 속해있고,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1.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
바울은 하나님께 속해 있었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는 참된 보호자가 되지 못하고, 부모조차도 능력이 부족하여 참된 보호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에겐가 혹은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 의지의 대상이 친구도 될 수 있고, 권력자가 될 수도 있고,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체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돈의 노예가 되는 수전노가 될 수 있고, 권력자의 노예가 될 수 있고, 마약과 노름과 술과 향락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7: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런데 바울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위험 속에서도 보호해주시고, 예언의 말씀으로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극단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환상을 보여주셔서 위로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본 절의 환상은 바울이 극단적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본 네 번째 환상입니다.
첫 번째 환상은 사도행전 16장에서 어디로 가서 전도해야 할지 막연하고 길이 막혔을 때, 마게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보여주셔서 전도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두 번째 환상은 사도행전 18장에 고린도에서 전도하는데,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위협했을 때,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고 전도하면 바울을 해칠 사람이 없다고 위로와 소망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환상은 사도행전 23장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니까 바울이 두려워서 ‘나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그 밤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서 전도해야 한다고 위로와 소망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 환상은 본 절에서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10여 일간 살 소망을 잃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환상 중에 나타나서 죽지 않고, 배만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위로와 소망을 주신 경우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환상은 아무 때나 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때 하나님의 특별 간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도 바울이 일생에 환상을 많이 본 것이 아니고, ‘셋째 하늘 환상’(고린도후서 12:2)과 더불어 5회 정도 본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비주의자가 늘 환상을 보았다고 하면서, 성도들의 삶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주신 환상은 늘 격려와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것인데, 신비주의자들은 환상으로 위협하고 돈을 내라고 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바울 사도는 비록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영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열흘 동안 해와 별을 보지 못했으나,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신령한 세계가 활짝 열렸고, 하늘의 빛과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창조 때도 같은 원리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환경의 인도를 구하기 이전에 먼저 기도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을 받아서 그 말씀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24절.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aying, 'Do not be afraid, Paul; you must stand before Caesar; and behold, God has granted you all those who are sailing with you.‘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λέγων, Μὴ φοβοῦ, Παῦλε·
saying, not fear, Paul
직역하면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는 뜻입니다.
‘말하되’(λέγων)는 현재분사이고(saying), ‘두려워 말라’에서 동사(φοβοῦ)는 현재 명령형입니다(not fear).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Καίσαρί σε δεῖ παραστῆναι,
Caesar you it behooves to stand before
직역하면 ‘네가 가이사 앞에 서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네가’(σε,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앞에 서는 것이’(παραστ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tand before) 담대하게 서는 것을 가리키고, ‘마땅하다’(δεῖ)는 현재형입니다(it behooves).
또 하나님께서--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καὶ ἰδοὺ κεχάρισταί σοι ὁ Θεὸς
and behold has granted to you the God
직역하면 ‘보라, 하나님께서 ---네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뜻이고, 중요한 말을 앞두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주셨다’(κεχάρισταί)는 완료형으로서(has granted) 이미 주셨다는 뜻입니다.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πάντας τοὺς πλέοντας μετὰ σοῦ.
all those sailing with you
‘항해하는’(πλέ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sailing) 지금 너와 함께 항해하고 있는 (모든) 자를 가리킵니다.
1.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의 자녀에게는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주시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두렵게 하거나 협박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늘 위로와 소망과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주님은 바울에게 사도행전 23장 11절에서 이미 약속하신 내용을 다시 확인시켜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으시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번 약속한 것도 환경이 변하면,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말씀을 식언치 않으십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히브리서 13장 5절에는 <돈을 사랑치 말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들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고, 로마서 8장에는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성도를 끊을 수 없다>고 했고, 요한일서 5장 18절에는 <악한 자가 성도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6절, 19절).
마태복음 10장에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신다>고 했고, 마태복음 18장 10절에는 <그 성도들의 천사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다>고 했습니다.
3.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지금까지 배의 지휘권은 백부장이 가지고 있었고, 선장과 선주가 상당한 지도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바울이 아무리 말을 해도 바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유라굴로 광풍을 통해서 배의 주도권이 바울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이제 알렉산드리아 배의 주인은 선장도 선주도 아니고 백부장도 아니고, 하나님의 종 바울이 주인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 바울은 배에 함께 탄 276명의 생명을 맡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276명이면 우리나라에서 중형급 교회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바울 한 사람 덕분에 276명이 생명의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는 <예루살렘에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8장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성이 멸망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덕분에 롯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25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keep up your courage, men, for I believe God that it will turn out exactly as I have been told.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διὸ εὐθυμεῖτε, ἄνδρες·
therefore take courage, men
‘안심하라’(εὐθυμεῖτ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take courage).
하나님을 믿노라.
πιστεύω γὰρ τῷ Θεῷ
I believe for the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믿노라’(πιστεύω)는 현재형입니다(I believe).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ὅτι οὕτως ἔσται καθ’ ὃν τρόπον λελάληταί μοι.
that thus it will be according to the way it has been said to me
‘말씀하신’(λελάληταί)은 완료수동태로서(it has been said) 직역하면 ‘말씀되어진’이란 뜻입니다.
‘되리라고’(ἔσται)는 미래형입니다( it will be).
1. 바울은 풍랑으로 인해서 초죽음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근거는 환경이나 기술이나 재물이나 권력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데 있고, 사람을 믿거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환경이나 돈이나 의학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고 했습니다(롬 10:1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도 믿음을 부합치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히 4:2).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26절.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e must run aground on a certain island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εἰς νῆσον δέ τινα δεῖ ἡμᾶς ἐκπεσεῖν.
upon island then certain it behooves us to fall off
‘반드시--하리라’(δεῖ)는 현재형이고(it behooves), 뒤의 동사(ἐκπεσ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fall off) 확실히 도착해서 상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의 예언이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임을 증거 하는 증표로 배가 한 섬에 걸릴 것이란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표증이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 예언대로 표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로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신명기 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그런데 바울의 경우에 이튿날 바울의 예언대로 섬에 도착하게 되니까, 배에 탄 사람들이 바울의 말대로 바울의 축복 기도 후에 떡을 바울에게서 받아먹었습니다(35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권력과 지식과 돈과 주먹보다 하나님을 믿고, 성령님의 감동과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변의 가족과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와 축복을 받으시는 가정과 자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