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죄의 결말을 느낄 때
마가복음 9:43~50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제 어머니는 유난스럽게 결벽증이 강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시장에 가실 때는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나가셨습니다. 그러다 보면 질척거리는 땅에 가축의 분뇨가 있을 수 있었고, 자기도 모르는 새 그런 것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 고무신에 묻으면 가차 없이 버리셨고, 치마 끝에 묻히면 가위로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버린 옷과 고무신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럽고 쓸모없는 것이라도 물로 씻어 신으면 되고 옷도 빨아서 입으면 되었건만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말씀에는 죄를 범한 손과 발을 찍어버리고 눈이 죄를 짓게 되면 빼버리라고 하십니다. 적당하게 마무리 지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버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세상에 온전한 손과 발 그리고 눈을 지닌 사람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여인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참 예쁘게 생겼네! 나도 저런 여자와 함께 살고 싶어”라고 하는 순간에 간음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비록 행위로 짓지 않았더라도 마음에 지은 죄는 어쩔 수 없이 남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인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기에 이런 눈을 빼어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지옥’은 헬라어로 ‘게엔나’라고 하며 히브리어로는 ‘게 힌놈’이라고 하는데 이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합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쪽 벽 밑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그 골짜기는 아하스 왕 때 몰록이라는 우상에게 자식을 번제로 드렸던 장소로써 우상숭배가 극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훗날 요시아 왕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나라의 우상들을 모조리 쓸어다 부서트려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 불살랐습니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의 모든 쓰레기를 갖다 불태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힌놈의 골짜기’를 세상의 쓸모없는 영혼들이 들어가게 될 지옥으로 연관하여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죄에 대하여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결말은 지옥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영원히 존재하시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죄를 범한 영혼은 어김없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죄란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지옥의 실상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으로 어떻게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이뤄지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 죄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이라는 말씀의 의도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그분이 만들어 놓으신 피조물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사용한 단어가 ‘토브’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창조의 목적대로 되는 것을 보시고 좋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헬라어로 하말티아(ἁμαρτία)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과녁을 맞히지 못하다’ 의 의미를 가진 하말타노(ἁμαρτάνω)의 명사형으로 ‘과녁을 맞히지 못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철저하게 사랑하는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최후 만찬을 마치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에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남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행한 업적을 자랑하며 교만하여 남을 지배하려고 한다면 손으로 죄를 범함을 말합니다.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엡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하였습니다. 사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하였습니다. 발은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사용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범죄한 발이라고 합니다. 남을 해하려고 달려가는 발이라든가 세상의 쾌락을 좇기 위하여 달려갈 때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됩니다.
막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죄에 해당하는 악을 히브리어로 ‘라아’라고 합니다. ‘라아’(רע) 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두 가지의 철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머리'와 '눈'이라는 철자입니다. 이 말은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생각이 들어오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게 눈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사랑에 반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모든 선한 것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 2: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에게 주어진 지혜와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눈이 즐거워하는 일에 온통 마음을 쏟았습니다. 웅장한 집을 짓고 금은보화로 가득 채웠으며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노래하는 남녀들을 두었습니다. 그런 결과에 대하여 전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고 실토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썩어질 세상의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산다면 눈으로 죄를 범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관심은 없고 세상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에 속한 것을 취하고 그것을 누리고 싶어 마음을 빼앗긴다면 눈으로 죄를 짓는 결과를 얻게 되고 죄로 오염된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전혀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에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로 얼룩진 영혼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두 번째는 지옥의 실상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의 랍 벨 (Rob Bell)이란 목사는 <사랑이 이긴다>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하나님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천국에 보내고 나머지 모든 사람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게 하려고 수십억의 사람들을 창조하셨는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지옥을 만들어 놓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지옥은 애초에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을 타락시키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마귀와 그 거짓말을 믿고 따르다가 함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마 25:41절에서 예수님은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분명하게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이란 표현으로 지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때가 되면 공의의 심판을 행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촌에서 농부들이 이른 봄이 되면 밭에 씨를 뿌리고 여름내내 거름을 주며 정성껏 가꿔줍니다. 그러다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모아다가 불에 태웁니다. 어떤 농부도 쭉정이를 곡간에 쌓아놓지는 않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곳입니다.
48절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더기는 지옥에 빠진 영혼을 괴롭히게 하는 더럽고 추한 존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이 아닙니다. 막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히 괴롭히는 것이 지옥이며 불에 소금 치듯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이 이뤄지지 않은 쓸모없는 인생이 가는 곳이 지옥이며 그곳을 소망이 전혀 없이 어두움에 묻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억울합니다. 내가 와야 할 곳이 아니라고 억울하고 분하여 이를 부드득 갈아대는 곳입니다. 영원토록 억울합니다. 주위에 지옥의 영향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자기는 의로운데 다른 사람에 의하여 피해를 보고 있다면 끝없이 남을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무식한 말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기 어렵다고 하여 죽음을 택하지만,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 있음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지옥에서 아무라 발버둥을 치고 하소연하더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세상 어느 사람도 행위로 옳다 인정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죄악 중에 태어났고 죄의 속성이 뿌리 깊게 드리워 있는 사람이 아무리 애를 쓰고 수고한다고 하더라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렘 13: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스인은 아프리카의 흑인을 말합니다. 검은 피부를 희게할 수 없고, 표범의 반점을 없이 할 수 없는 이치로 우리의 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렘 2:2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에 지나간 모든 사람과 오는 세대의 모든 존재는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를 깊게 인식한 사람인 사도 바울 롬 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깊은 탄식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하나님께서 찾아내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만이 길이요 생명이며 진리이십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대하 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변함없는 소금 언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내 손으로 범죄한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양손에 대못에 찔리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내 눈을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나의 발로 범한 죄를 씻어 주시려고 예수님이 양발에 커다란 못이 박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과 더불어 거룩한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의 무한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지옥의 저주에서 벗어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죄악으로 어두워졌고, 주님의 재림의 때는 너무나 가까이 왔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죄의 결말을 깊이 깨닫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화목하며 이웃과 화목하게 지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 눈으로 범한 죄 내 두 손으로 지은 죄, 내 두 발로 지은 죄를 회개합시다. 죄를 안고 사는 영혼은 가치가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지옥의 무서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쓸모없고 아무 가치 없는 영혼이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때가 너무 가까이 다가온 이때는 죄의 결말을 깨닫고 더욱 힘써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 회개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