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 불러일으킨 참극, 삼배구 고두례(三拜九叩頭禮)
홍타이지는 성대한 즉위식을 거행했는데 청나라의 문무백관들과 각국의 사신들 등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홍타이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할 때 유일하게 조선 사신으로 간 나덕헌과 이확만이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없고 명나라 황제 외에 다른 황제를 섬길 수 없다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냥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홍타이지는 조선 사신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두둘겨 패버린 뒤 스스로 죄를 깨우쳤다면 왕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내용의 국서를 사신들에게 준 뒤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국서를 인조에게 전달하기 두려웠던 사신들은 국서를 그냥 버렸다.
그러자 결국 그해 11월 홍타이지는 12만 8천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저선을 침공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청군은 전쟁이 일어나고 5일 만에 한양을 점령해 버렸고 인조와 대신들은 남한산성에 고립되고 말았다.
그리고 홍타이지는 인조의 동생과 대신 중 한명을 인질로 요구했지만 여전히 분위기 ㅍㅏ악이 안된 인조와 조선대신들은 정묘호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가짜동생과 가짜대신을 보냈다.
하지만 곧 들통나고 말았고 이에 분노한 홍타이지는 왕이 직접 나오라고 요구했다.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 문을 열고 나와 홍타이지 앞에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의 삼배구 고두례를 해 신하의 예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홍타이지는 오래전부터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큰 나무를 베는 것과 같아서 먼저 양쪽을 도끼로 패고 나면 큰 나무는 스스로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나무의 양쪽은 몽골과 조선이었으니 명나라의 공격만 남은 셈이었다.
1641년에 명나라 결정인 송산전투에서 홍승주의 14만명을 전멸시켜버렸다.
현재의 우리나라 사정도 분위기 파악을 못한 정권에 의해 어떤 비참한 일이벌어질지 21세기 삼배구 고두례를 행할 일이 생길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