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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권 물산지(物産志) 화류(花類)
국화[菊]
○ 신라의 국화는 해외에서 들어왔다. 신라국 안에 있는 꽃은 꽃잎이 많고 순백색이며, 길고 짧음에 따라 가지런하게
핀다. 꽃잎은 뾰족하고 얇으며 선명하고 투명하여, 마치 아름다운 옥과 같다. 꽃이 처음 필 때에는 가운데에 푸르고
노란 빛깔의 가느다란 잎이 꽃술과 같은 모양으로 돋아나며, 만개한 뒤에는 가느다란 잎이 서서히 펴지면서 비로소
그 꽃술이 드러난다. 가지는 자색(紫色)이며, 잎은 청색이고, 가지는 갈래가 졌는데 작다. 《범씨국보(范氏菊譜)》
○ 유몽(劉蒙)이 말하기를, “신라의 국화는 일명 옥매(玉梅)라고도 하고, 일명 능국(陵菊)이라고도 한다.” 하였다.
《유씨국보(劉氏菊譜)》
○ 고려의 국화는 초부용(草芙蓉)과 같이 생겼는데 작으며, 꽃은 황적색이다. 《성경통지(盛京通志)》
연꽃[荷花], 모란(牡丹)
○ 고려에서는 연근(蓮根)과 화방(花房)을 감히 따지 않는데, 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것은 불족(佛足)이 탔던 것
이기 때문이다.” 한다. 《고려도경》
○ 조선은 그 나라 안에 역시 모란과 연꽃이 있다. 《언폭담여(偃曝談餘)》
하포모란(荷包牡丹)
○ 하포모란은 본디 조선의 모란꽃으로, 승혜국(僧鞵菊)과 비슷한데, 짙은 자색(紫色)이 난다. 모란이라고 이름한 것은
그 잎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경사(京師)의 괴수사가(槐樹斜街), 자인사(慈仁寺), 약왕묘(藥王廟), 화시(花市)에는
항상 이 꽃이 있다. 《육가화사(六街花事)》 ○ 살펴보건대, 이것은 모란과는 다르므로 마땅히 일종(一種)으로 구별해야
한다.
해석류(海石榴)
○ 신라국에는 해석류가 많다.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주(注)》
○ 해석류는 신라국에서 종자가 들어올 때에 오직 홍색(紅色) 한 종류 뿐이었으므로, 또 목약(木若)이라고도 이름한다.
《유서찬요(類書纂要)》
척촉화(躑躅花)
○ 조선의 철쭉은 높이가 5, 6척가량 되며, 3, 4월에 꽃이 피는데, 옅은 쥐색이 도는 흰색[淡鼠白色]이며 윤택하다.
《화한삼재도회》
해홍화(海紅花)
○ 해홍화는 신라국에서 나왔는데, 아주 드물다. 《이태백시집 주》
○ 신라국의 해홍화는 바로 천홍산다(淺紅山茶)인데, 조금 작다. 12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2월에 이르러서 매화와 동시
에 핀다. 일명 다매(茶梅)라고도 한다. 유사형(劉士亨)의 시에, “작은 집에 추위 남아 따뜻하지 않은 때에, 해홍화꽃 피어
나서 해가 길구나.[小院猶寒未暖時 海紅花發晝遲遲]”라고 읊은 구절이 있다. 《유서찬요(類書纂要)》
당리화(棠梨花)
○ 내가 3월 18일에 조선국으로부터 길을 떠나 중국으로 올 때에 당리화가 거의 다 졌었다.
그런데 또 며칠을 걸어서 압록강을 지난 뒤에 비로소 처음 피는 것을 보았다. 이는 대개 그 나라가 동남쪽 지역에 가까
울수록 따뜻하기 때문이다. 《조선부 주》
관동화(款冬花)
○ 관동화는 고려와 백제에서 나는데, 꽃은 큰 국화와 비슷하고, 뿌리는 자색이며, 줄기는 청자색(靑紫色)이고, 잎은
비해(萆薢)와 비슷하다. 《명의별록 주》
○ 허준(許浚)이 말하기를, “본경(本經)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난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없다.” 하였다.
만다라화(曼陀羅花)
○ 만다라화는 근래에 조선에서 들어왔다. 지금은 민가에서 많이 심는다. 꽃은 대견우화(大牽牛花)나 백합화(百合花)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속칭 조선견우화(朝鮮牽牛花)라고 한다. 그 열매는 빈랑(檳榔)나무 열매와 비슷한데, 가느다랗게
갈라진 무늬가 있다. 《화한삼재도회》
[주D-001]당리화(棠梨花) : 원문에는 ‘裳梨花’로 되어 있는데, 《조선부》 주에 의거하여 ‘棠梨花’로 바로잡아 번역하
였다.
[주D-002]3월 18일 : 원문에는 ‘三月中八日’로 되어 있는데, 《조선부》 주에 의거하여 ‘三月十八日’로 바로잡아 번역
하였다.
[주D-003]관동화(款冬花) : 머위의 꽃을 말한다. 머위는 엉거시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잎을 식용한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는, “뿌리는 자색이고, 납월(臘月) 사이에 황색의 꽃이 핀다.
백초 가운데 이것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였다.
[주D-004]비해(萆薢) : 며래를 말하는데, 나도물퉁이, 산귀래(山歸來)라고도 한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 “우리말
로는 흰며래라고 한다.” 하였다.
[주D-005]만다라화(曼陀羅花) : 자주괴불주머니를 말한다. 산이나 들의 음습한 곳에서 자라며, 5월에 홍자색의 꽃이
피고 삭과(蒴果)가 달린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는, “독초(毒草)로, 이것을 먹으면 사람이 미쳐서 웃거나 노래하고
춤추게 된다. 채취할 때 노래하면서 채취하면, 중독된 자는 끊임없이 노래하고, 채취할 때 춤을 추면서 채취한 자는,
중독된 자는 끊임없이 춤을 춘다.” 하였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채류(菜類)
상치[萵苣]
○ 고려국의 사신이 오면 수(隋)나라 사람들이 채소의 종자를 구하면서 대가를 몹시 후하게 주었으므로, 인하여 이름을 천금채(千金菜)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치이다. 《천록지여(天祿識餘)》 ○ 살펴보건대, 와거는 지금 속명이 ‘부로’이다.
더덕[沙葠]
○ 고려의 더덕은 관(館) 안에서 날마다 올리는 나물 가운데 있는데, 형체가 크고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약용(藥用)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고려도경》
가지[茄子]
○ 신라국에서 한 종류의 가지[茄]가 나는데, 형체가 계란[鷄子] 같이 생겼다. 광택이 있으면서 엷은 자색(紫色)을 띠고 있으며, 꼭지가 길고 맛이 달다. 지금은 그 씨앗이 중국에 널리 퍼져 있어서,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이 양지 쪽에다 심고는 두엄을 많이 주며, 소만(小滿)을 전후해서 비싼 값을 받고 판다. 《본초연의(本草衍義)》 ○ 살펴보건대, 가지의 속명은 ‘가자’이다.
○ 가지에는 신라국의 종자가 있는데, 형체가 계란같이 생겼으며, 색깔이 조금 희다. 서명사(西明寺)의 현조원(玄造院) 안에 그 종자가 있다. 《유양잡조(酉陽雜俎)》
고사리[蕨]
○ 조선의 고사리에는 푸른색과 자주색 두 가지 색이 있는데, 중국에서 나는 것과 같다. 그 지방 사람들은 잘 캘 줄을 모른다. 무릇 그것을 캘 때에는 반드시 송곳으로 땅을 파서 흙을 제거하고 뿌리를 베어야 한다. 내가 허 이조(許吏曹)에게 그것을 캐는 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몹시 기뻐하였다. 《조선부 주》
오이[黃瓜]
○ 고려의 오이는 형체가 둥글면서 맛이 있어서, 중국에서 나는 것과 같다. 《성경통지(盛京通志)》
미나리[芹]
○ 조선의 왕도(王都) 및 개성(開城)의 민가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모두 미나리를 심는다. 《조선부 주》
파[蔥]
○ 금(金)나라 대정(大定) 27년(1187, 명종17) 5월에 조서를 내려 갈라로(曷懶路)에서 올리는 해총(海蔥)을 올리지 말게 하였다. 《금사(金史)》
조(藻)
○ 대엽조(大葉藻)는 신라국의 깊은 바다 속에서 난다. 잎이 마치 수조(水藻)와 같이 생겼는데 크다. 바다에 사는 사람들이 새끼줄을 허리에 묶고서 물속으로 들어가서 채취한다. 5월 이후에는 큰 물고기가 사람을 해치므로 채취할 수가 없다. 《본초습유(本草拾遺)》
해의(海衣)
○ 조선의 해의는 자채(紫菜)와 같은데 크다. 《조선부 주》
석발(石髮)
○ 석발은 신라에서 나는 것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신라에서는 이를 금모채(金毛菜)라고 부른다. 《유서전요(類書篆要)》
곤포(昆布)
○ 곤포는 지금 오로지 고려에서만 난다. 삼[麻]을 꼬듯이 새끼줄을 꼬고, 황흑색이며, 부드럽고 졸깃해서 먹을 수가 있다. 《명의별록 주》
○ 곤포는 신라에서 나는 것은 황흑색으로, 잎이 가늘다. 신라 사람들은 이것을 채취하여 꼬아서 새끼줄을 만든 다음, 배 위의 그늘에서 말려 중국으로 가지고 온다. 《남해약보(南海藥譜)》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남해(南海)의 곤포이다. 《신당서》
○ 고려의 곤포로 국을 끓이는 법은 다음과 같다. 곤포 1근을 쌀뜨물[白米泔]에 담가서 하루 저녁을 묵혀 신맛을 씻어 내고, 물 1두(斗)를 넣어 끓여서 익힌다. 그런 다음 곤포를 3촌(寸)쯤 되는 길이로 잘라서 4, 5분(分)가량 걸쭉하게 하고, 이어 파[蔥白] 한 줌을 2촌(寸) 길이로 썰어 넣고서 다시 끓이되, 곤포가 문드러질 때까지 끓인다. 이어 소금, 초(酢), 된장[豉], 쌀가루[糝]를 넣고서 간을 맞춘 다음, 다시 국을 끓이는 법과 같이 끓여서 떫거나 시지 않게 한다. 여기에다가 생강, 귤피(橘皮), 후춧가루[椒末] 등을 넣어 간을 맞추면, 조밥이나 쌀밥과 먹기에 좋다. 《본초도경(本草圖經)》
○ 조선의 곤포는 종려나무 잎처럼 생겼으며, 자줏빛이 난다. 《조선부 주》
[주D-001]파람(巴欖) : 과일 이름으로, 파단행(巴旦杏)이라고도 한다. 중앙아시아 원산으로, 복숭아와 비슷하게 생겼다. 일본에서는 편도(扁桃)라고 한다.
[주D-002]허 이조(許吏曹) : 허종(許琮)을 가리킨다. 《조선부 주》의 저자인 동월(董越)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나온 것은 성종 18년(1487)으로, 이때 이조 판서 허종이 원접사(遠接使)로 나갔었다.
[주D-003]갈라로(曷懶路) : 갈라전(曷懶甸)을 말한다. 갈라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함흥평야(咸興平野) 일대라는 설이 있으나, 대체로 길주(吉州) 이북(以北)에서 두만강 일대를 포괄하는 지역이었으며, 치소(治所)는 경성(鏡城)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D-004]해의(海衣) : 김이다. 《조선부》 자주에, “해의는 자채(紫菜) 즉 김과 같은데, 크다.” 하였다. 《재물보》 권7 물보 2를 보면 “해의는 자채(紫菜)의 속명(俗名)이며, 우리말로는 ‘짐’이라 한다.”고 하였다.
[주D-005]자채(紫菜) : 김을 말한다.
[주D-006]곤포(昆布) : 해대(海帶)를 말한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는, “동해에서 나는데, 잎의 크기가 손만 하며, 황흑색이다. 우리말로 ‘곤포’라 한다.” 하였다. 《조선부》 자주에, “곤포는 종려나무 잎과 같이 생겼는데, 녹색이다.” 하였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과류(果類)
밤[栗]
○ 마한에는 큰 밤이 많은데, 배[梨]만 하다. 《후한서》
○ 백제는 토지가 낮고 습하며, 큰 밤이 난다. 《수서》
○ 왜(倭)와 한국(韓國)의 토종밤은 크기가 계란만 하며, 맛이 좋지 않다. 《모시의소(毛詩義疏)》
○ 고려의 밤은 크기가 복숭아만 하며, 단맛이 있어서 먹기에 좋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여름에도 밤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까닭을 물어보니, “질그릇에 담아서 흙 속에 묻어 두므로 해를 넘겨도 썩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해송자(海松子)
○ 해송자는 신라에서 나는 것이 살이 아주 향기롭고 맛있다. 《일용본초(日用本草)》
○ 신라의 오립송(五粒松)은 한 떨기에 다섯 개의 잎이 돋아나는데, 비녀[釵]와 같이 생겼다. 도가(道家)에서 곡기(穀氣)를 끊고 이것을 먹는다. 씨앗은 파두(巴豆)와 같이 생겼다. 신라에서 가끔씩 진상한다. 《사성본초(四聲本草)》 ○ 《통아(通雅)》에, “소병(蕭炳)이 말하기를, ‘오립송은 한 떨기에 다섯 개의 잎이 나는데 모양이 비녀와 같은바, 바로 신라의 해송자이다. 작은 밤과 같이 생겼으며 삼각으로 모가 났는데, 그 씨는 향기롭고도 맛이 있다.’ 하였다.” 하였다.
○ 오렵송(五鬣松)은 겉껍질에 비늘이 없으며 열매가 맺히는데, 신라에서 많이 심는다. 《유양잡조(酉陽雜俎)》
○ 신라의 송자(松子)는 맛이 달고 성질이 아주 따뜻하다. 껍질을 제거하고 먹으면 매우 향기롭다. 《해약본초(海藥本草)》
○ 해송자는 신라에서 생산된다. 작은 밤과 같이 생겼으며, 삼각형으로 모가 졌다. 그 안에 있는 씨는 향기롭고도 맛이 있어서, 동이(東夷) 사람들이 그것을 과일로 먹는데, 중국에서 나는 송자(松子)와는 다르다. 《대관본초(大觀本草)》
○ 신라의 사신이 올 때마다 매번 송자를 많이 파는데, 송자에는 옥각향(玉角香), 중당조(重堂棗), 어가장(御家長), 용아자(龍牙子) 등 몇 가지 등급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옥각향이 가장 좋아서, 사신으로 온 자 역시 이를 보배로 여긴다. 《청이록(淸異錄)》
○ 신라의 잣나무는 크기가 몇 아름이나 되며, 오립자(五粒子)가 있다. 모양새가 복숭아씨[桃仁]와 같이 생겼는데, 약간 작으며 껍질이 단단하다. 사람들이 그것을 채취하여 먹는데, 맛이 호도(胡桃)와 같으며, 술에 담가서 먹으면 풍(風)을 치료할 수 있다. 《신라국기(新羅國記)》
○ 무릇 잣나무잎은 모두 두 갈래인데, 유독 괄송(栝松)만이 매 이삭당 세 개의 솔잎이 있다. 그런데 고려에서 나는 것은 매 이삭당 다섯 개의 솔잎이 있으며, 열매를 맺는다. 지금 화산송(華山松)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계신잡지(癸辛雜識)》
○ 신라의 송자는 필점국(畢占國)의 핵도인(核桃仁)과 같이 맛이 시다. 《완위여편(宛委餘編)》
○ 해송자는 일명 신라송자(新羅松子)라고도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고려의 송자는 처음 막 달렸을 때는 송방(松房)이라 하는데, 모양이 모과(木瓜)와 같으며, 푸르고 윤기가 나면서 단단하다. 그러다가 서리를 맞으면 이내 갈라지면서 열매가 비로소 여물며, 송방이 자색으로 된다. 그 나라의 풍속에는 이것을 비록 과실과 술안주와 국과 적[胾]에도 쓰기는 하지만, 많이 먹어서는 안 되니,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구토가 나게 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
○ 조선의 잣나무에는 두 종류가 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껍질이 그다지 거칠지 않으며, 솔잎이 위로 치켜 솟아 있다. 그 열매는 반드시 한 해가 지난 다음에야 딸 수가 있다. 경기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소나무가 있다. 《조선부 주》
○ 해송자는, 중국 이외에서 나는 것에는 모두 해(海) 자를 붙이니, 해홍(海紅)과 같은 것이 그와 같은 것이다. 이 송자(松子)는 대부분 조선에서 왔는데, 과일로 먹는다. 씨앗을 뿌리면 자라나는 것이 가끔씩 있는데, 잣나무잎이 길어서 일본의 잣나무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 것은 아주 드물다. 《화한삼재도회》
함도(含桃)
○ 고려의 과일에는 6월에 나는 함도라는 것이 있는데, 초(酢)와 같이 맛이 시다. 《고려도경》
복숭아[桃]
○ 신라의 복숭아는 먹을 수 있으며, 성질이 뜨겁다. 《농정전서(農政全書)》
○ 동리(同里) 양창서 선생 호(楊滄嶼先生鎬)가 고려(高麗 조선을 가리킴)에 사신으로 가서 -살펴보건대, 양호(楊鎬)는 만력(萬曆) 연간에 경리사(經理使)로 우리나라에 나왔다.- 마노도(瑪瑙桃) 한 개를 얻었는데, 윗부분에는 단사(丹砂)와 같은 붉은 점이 7개 찍혀 있었다. 비단 보자기로 그것을 쌌으며, 보자기 위에는 7자를 수놓았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이 복숭아에는 원래 칠성이 나타나 있다.[此桃原現七星]” 하였다. 《균랑우필(筠廊偶筆)》
개암[榛子]
○ 신라의 개암은 통통하고 흰 것이 가장 좋다. 씨는 허기를 없애 주고, 속을 편안하게 하며, 식욕을 증진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 《제가본초(諸家本草)》
오얏[李], 배[梨], 대추[棗], 능금[來禽], 외[瓜]
○ 발해의 과일에는 환도(丸都)의 오얏과 악유(樂游)의 배가 있다. 《신당서》
○ 고려의 과일에는 능금, 청리(靑李), 과(瓜) -살펴보건대, 과의 속명은, 서과(西瓜)는 수박이고, 첨과(甜瓜)는 참외이다.-, 복숭아[桃], 배, 대추가 있는데, 맛이 별로 없고 형체가 작다. 《고려도경》
귤(橘), 유자[柚], 감(柑)
○ 고려의 무주(武州)에서는 귤과 유자가 생산된다. 《연번로속집(演繁露續集)》
○ 조선의 과일로는 배, 대추, 개암이 가장 많아서 어딜 가나 있다. 감과 귤은 전라도에서 난다. 《조선부 주》
곶감[柿餅], 은행[白果]
○ 강희(康煕) 21년(1682, 숙종8) 3월에 성경(盛京)에 도착하니, 조선에서 곶감, 송자(松子), 은행, 밤을 진상하였다. 《강희어제문집(康煕御製文集)》 ○ 살펴보건대, 시병(柿餅)은 건시(乾柿)이고 백과(白果)는 은행(銀杏)이다.
[주D-001]해송자(海松子) : 잣을 말한다. 송자(松子), 과송(果松), 오립송(五粒松), 오엽송(五葉松) 등의 이칭이 있다.
[주D-002]신라의 …… 파는데 : 이 부분이 원문에 ‘新羅使者每求多鬻松子’로 되어 있는데, 《청이록》 과(果) 옥각향(玉角香) 조에 의거하여 ‘新羅使者每來多鬻松子’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3]용아자(龍牙子) : 능아자(能牙子)로 된 데도 있다. 《사물이명록(事物異名錄)》 과(果) 조에는 “신라의 사신이 송자(松子)를 많이 가지고 와서 공경(公卿)들의 집에 뇌물로 주었는데, 그 이름을 물으니, 옥각자(玉角子), 능아자(能牙子)가 있었다.” 하였다.
[주D-004]핵도인(核桃仁) : 호도를 말한다.
[주D-005]송방(松房) : 솔방, 즉 솔방울의 사음(寫音)이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 “송방은 우리말로는 솔방울[솔방올]이다.” 하였다.
[주D-006]이 복숭아에는 …… 있다 : 이 부분은 모두 6자만 있는바, 원문에 착오가 있는 듯하다.
[주D-007]환도(丸都) : 지금의 통구(通溝)를 가리킨다.
[주D-008]악유(樂游) : 원문에는 ‘藥游’로 되어 있는데, 《신당서》 권219 북적(北狄) 발해(渤海) 조에 의거하여 ‘樂游’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죽목류(竹木類)
귀각죽(龜脚竹)
○ 귀각죽은 조선의 산속에서 난다. 그 잎은 거북의 다리와 같고, 줄기 위의 무늬 역시 그러하다. 그 색은 검푸른색이며, 실선이 있다. 《진정죽보(陳鼎竹譜)》
소나무[松]
○ 고려의 양주(楊州), 광주(廣州), 영주(永州) 등 세 주에는 큰 소나무가 많이 있는데, 소나무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오직 솔잎이 다섯 개인 것만이 열매를 맺는다. 나주도(羅州道)에도 역시 있으나, 세 주처럼 많이 있지는 않다. 또 그 땅이 소나무가 자라기에 알맞으며, 복령(茯苓)이 난다. 《고려도경》
○ 조선의 소나무는 재질이 가장 단단하고 측백나무[柏]와 같이 황색이며 송진[脂]이 적은데, 어디를 가든지 있다. 《조선부 주》
음양백(陰陽柏)
○ 송나라가 남도(南渡)할 때 고려에서 음양백 2그루를 진상하였는데, 높이가 겨우 2척가량 되었다. 고종(高宗)이 이를 왕도(王綯)에게 하사하자, 왕도가 영회사(永懷寺)의 전정(殿庭) 좌우에다 심었다. 지금은 잣나무의 높이가 전(殿)과 더불어 나란하게 되었는데, 매년 왼쪽 나무에 꽃이 피면 오른쪽 나무는 열매가 달리고, 오른쪽 나무에 꽃이 피면 왼쪽 나무는 열매가 달린다. 《태평청화(太平淸話)》
황칠(黃漆)
○ 백제의 서남쪽 바다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여기에서 황칠의 나무가 난다. 나무는 소종수(小棕樹)와 비슷한데, 더 크다. 6월에 즙을 채취해서 기물에다 칠을 하면, 마치 황금과 같아서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한다. 《통전(通典)》 ○ 삼가 살펴보건대, 황칠은 지금 강진(康津)의 가리포도(加里浦島)에서 생산되는데, 가리포도는 예전에 이른바 완도(莞島)이다. 우리나라의 온 성(城) 가운데 오직 이 섬에서만 황칠이 난다.
○ 고려의 황칠이 섬에서 나는데, 6월에 칼로 찔러서 즙을 채취한다. 색깔이 마치 금과 같으며, 햇볕에 쬐면 마른다. 본디 백제에서 나는 것인데, 지금 절강(浙江) 사람들이 신라칠(新羅漆)이라고 부른다. 《계림지(鷄林志)》
○ 고려의 나주도(羅州道)에서는 황칠이 나는데, 토산물로 진공(進貢)한다. 《고려도경》
무이(蕪荑)
○ 무이는, 지금은 오직 고려에서만 난다. 모양이 느릅나무의 꼬투리[楡莢]와 비슷하며, 기운과 냄새는 신저(籸儲)와 같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이것으로 장(醬)을 만들어서 먹는다. 성질이 해충을 죽이며, 물건 안에다 놓아두면 벌레를 막을 수가 있는데, 그 냄새가 독한 것이 걱정이다. 《명의별록 주》 ○ 살펴보건대, 속명은 느릅나무씨이다.
차(茶)
○ 차는, 《동국통감(東國通鑑)》에 이르기를, “신라국에서 대렴(大廉)을 당나라로 보내어, 일본에서 가지고 온 차 종자를 얻게 하였는데, 왕이 명하여 지리산(智異山)에 심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조선에서 차를 심은 시초이다.” 하였다. 《화한삼재도회》
○ 고려에서 나는 토산의 차는 맛이 쓰고 떫어서 마실 수가 없다. 오직 중국의 납차(臘茶)와 용봉사단(龍鳳賜團)을 귀하게 여긴다. 중국 조정에서 하사해 준 것 이외에 중국 상인들 역시 가져다가 팔기 때문에, 근래에는 차 마시기를 자못 좋아하며, 차를 마시는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 《고려도경》
궁수(弓樹)
○ 궁수는 전라도 남문(南門) 밖에 있는데, 줄기와 가지가 꾸불꾸불하며, 크기가 열 아름은 되고, 높이는 70여 척이 된다. 고을 사람들은 그 나무의 잎이 피는 것이 빠르고 늦음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豐凶)을 점쳤는데, 지금은 말라 죽었다. 《연감류함(淵鑑類函)》
[주D-001]신저(籸儲) : 미상(未詳)으로, 오자(誤字)가 있는 듯하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는, “무이(武夷)는 고려에서 나는데, 모양이 느릅나무의 꼬투리와 같으며, 기운과 냄새는 신()과 같다.” 하였다. 신은 고양이와 비슷하나 조금 작으며 독특한 냄새가 나는 동물이다. 여기에서의 신은 이러한 냄새가 나는 신호(
蒿)로, 제비쑥을 말하는 듯하다.
[주D-002]신라국에서 …… 시초이다 :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다가 지리산에 심은 것은 흥덕왕(興德王) 3년(828)으로, 이때에 차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성행하게 된 것이다. 신라에는 이미 7세기 전반인 선덕여왕(善德女王) 때부터 이미 차가 있었으며, 가야(伽倻) 시대에 이미 인도로부터 차가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주D-003]납차(臘茶) : 납차(蠟茶)의 오기(誤記)이다. 납차(蠟茶)는 중국 건주(建州)에서 생산되는 차로, 납면차(蠟面茶)라고도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으니, 하나는 차 잎을 떡같이 굳혀서 그 표면에 밀(蜜)을 발랐으므로 납차라고 한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차를 끓는 물에 넣으면 젖같은 기름이 뜨는데 그것이 녹인 밀 같다고 해서 납차라고 한다는 설이다.
[주D-004]용봉사단(龍鳳賜團) : 송나라 황제가 하사한 용봉차(龍鳳茶)로, 차 잎을 둥그런 떡덩어리같이 만들어, 용과 봉황새의 무늬를 새긴 틀에 넣어 무늬를 찍어낸 것이다. 송 인종 때부터 좋은 차의 질을 확보하기 위하여 궁중의 북원(北苑)에서 제조하였는데, 당시에는 최상품의 차로 꼽혔다.《국역고려도경 181쪽 주》
제26권 물산지(物産志)
봉(鳳)
○ 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 《설문(說文)》
맹조(孟鳥)
○ 맹조는 맥국(貊國)의 동북쪽에서 나는 새의 이름으로, 그 새의 무늬는 적색, 황색, 청색이다. 《산해경(山海經)》
닭[鷄]
○ 마한에는 장미계(長尾鷄)가 있는데, 꼬리의 길이가 5척(尺)이다. 《후한서》 ○ 살펴보건대, 《삼국지》에는 세미계(細尾鷄)로 되어 있다.
○ 장미계는 꼬리가 가늘면서도 길어 길이가 3척이나 되며, 조선국에서 난다. 《교광지(交廣志)》
○ 조선에는 장미계 한 종이 있는데, 꼬리의 길이가 3, 4척 되며, 맛이 살지고 좋아 다른 닭보다 훨씬 좋다. 《본초강목》
○ 백제에는 닭이 있다. 《수서》
○ 닭 가운데 백두(白蠹)란 닭이 있는데, 살지고 기름졌는데, 조선의 평택(平澤)에서 난다. 《본초경(本草經)》 ○ 《명의별록(名醫別錄)》 주(注)에, “조선은 현도(玄菟)와 낙랑(樂浪) 지역에 있어서 닭이 나는 곳이 아니다. 《본초경》에서 말한 백두는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이는 아마도 별도의 한 종류인 듯하다.” 하였다.
○ 닭은, 약(藥)에 넣을 때에는 대개 조선에서 나는 것을 쓰는 것이 좋다. 《개보본초(開寶本草)》
매[鷹]
○ 매는 요동(遼東)에서 나는데, 바다를 건너서 등주(登州)와 내주(萊州)까지 날아온다.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매는 바다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물체를 보고서 물을 쳐올려서 먹이를 잡는다. 그러므로 중국의 매는 고려에서 나는 매만 못하다. 《오잡조(五雜俎)》
○ 신왕(申王)에게 고려에서 나는 붉은 매[赤鷹]가 있었는데, 상이 몹시 좋아하였다. 매번 사냥할 때마다 반드시 수레 앞에다 그 매를 놓아두었는데, 황제가 그 매를 쾌운아(快雲兒)라고 이름붙였다. 《개천유사(開天遺事)》 ○ 《구당서》에, “덕종(德宗)이 즉위하고서는 조서를 내려, 신라와 발해에서 해마다 매[鷹]와 새매[鷂]를 진상하는 것을 정지하게 하였다.” 하였다.
○ 해동청(海東靑)은 오국성(五國城)의 동쪽 고려와의 경계 지역에서 난다. 작으면서도 굳세어서 고니[天鵝]를 잘 잡는데, 발톱이 흰 것이 더욱 특이하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 등주(登州)의 해안에는 송골매[鶻]와 같은 것이 있는데,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 날아왔으므로 이름을 해동청(海東靑)이라고 한다. 물건을 움켜잡는 힘이 아주 굳세어서 고니를 잘 잡는다. 날아오를 때에는 바람을 일 으키면서 곧장 구름에 닿도록 날아오른다. 《이명기(異名記)》 ○ 가구사(柯九思)의 원궁사(元宮詞)에, “원융(元戎)이 명을 받아 교외에서 사냥할 제, 칙명 내려 신라의 흰 해동청을 하사했네. 새 잡아서 오는 모습 개선장군 모습같아, 고니를 바치려고 궁중 뜰로 들어가네.[元戎承命獵郊坰 勅賜新羅白海靑 得雋歸來如奏凱 天鵝馳進入宮庭]” 하였다.
공작(孔雀)
○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에 신라에서 공작을 바쳤는데, 춤을 출 줄 알았다. 변난(邊鸞)에게 조서를 내려서 현무문(玄武門)에서 그 모습을 그리게 하였다. 《유서찬요(類書纂要)》 ○ 《화한삼재도회》에, “추고(推古) 6년(598, 진평왕20)에 신라에서 공작 1후(候)를 진상하였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에는 공작이 없으니, 바닷배를 따라서 온 것이다.
꿩[雉]
○ 고려치(高麗雉)는 조선으로부터 왔는데, 모양이 꿩과 비슷하나 광채가 있어서 매우 아름다우며, 목 부분에 흰 고리 모양의 무늬가 있다. 조선에서도 역시 진귀한 것으로 여긴다. 《화한삼재도회》
할미새[鴒]
○ 조선령(朝鮮鴒)은 보통의 할미새보다 작다. 머리와 등 부분은 회흑색(灰黑色)이고, 배 부분은 회백색(灰白色)이며, 매와 같은 무늬가 있다. 《상동》
까치[鵲]
○ 헌종(憲宗) 성화(成化) 3년(1467, 세조13)에 조선에서 흰 까치[白鵲]를 바쳤다. 《명사》 ○ 《화한삼재도회》에, “추고 6년에 신라국에서 까치 2후(候)를 진상하였다.” 하였다.
[주D-001]곤륜산(崑崙山) : 중국의 서쪽에 있다는 상상 속의 산으로, 서왕모(西王母)가 그곳에 살며, 산 위에는 예천(醴泉)과 요지(瑤池)가 있다고 한다. 곤륜산(昆侖山)이라고도 한다.
[주D-002]지주(砥柱) : 황하(黃河)의 가운데에 있다는 산 이름이다.
[주D-003]약수(弱水) : 선경(仙境)에 있다고 하는 물 이름으로, 기러기 털조차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주D-004]풍혈(風穴) : 바람이 나오는 구멍으로, 북방에 있어서 그곳에서 찬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주D-005]가구사(柯九思) : 원나라 선거(仙居) 사람으로, 자는 경중(敬仲)이고, 호는 단구생(丹丘生)이다.
산수화를 잘 그렸고, 시문에 뛰어났으며, 금석학(金石學)을 특히 잘하였다.
[주D-006]변난(邊鸞) : 당나라 경조(京兆) 사람으로, 화조(花鳥)를 잘 그렸다.
*《해동역사》(海東繹史)는 조선 말기에 실학자 한치윤과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기전체로 서술한 사서이다.
단군조선에서 고려시대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한치윤이 원편 70편을,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속편 15권을 편술한
것으로, 한반도 서적 이외에 중국·일본 등 외국의 서목 550여 종에서 자료를 뽑은 것이 특징이다.
그밖에 안정복의 <동사강목>과는 달리 단군조선을 인정하여 단군에서부터 편년체로 기술한 점, 역사를 분야별로 나누
어 세기(世紀)·성력(星歷)·예(禮)·악(樂)·병(兵)·형(刑)·식화(食貨)·물산(物産)·풍속(風俗)·궁실(宮室)·관씨(官氏)·석 (釋)·
교빙(交聘)·예문(藝文)·인물·지리 등을 집중적으로 서술한 점, 흔히 안 다루던 숙신씨(肅愼氏)를 별개로 다룬 점 등이
모두 높이 평가된다.
이 책은 종래의 관찬사서(官撰史書)들이 취한 관료적인 편찬방법을 탈피하고, 역사와 지리의 합일을 꾀하였던 것이다.
한치윤은 원편 70권, 한진서는 속편(續編) 15권을 저술하여 85권이다. 속편은 지리고(地理考)로 한치윤이 10여 년 작업
에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여, 조카 한진서가 뒤이어 1823년(순조 23년) 편찬을 마쳤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