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속의 휘파람새 외 1편
김광기
거무스레함이 희끄무레하게 풀어지고 있는 새벽,
다른 새들은 음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데
휘파람새는 한결같은 가락으로 지저귀고 있다.
그 소리를 새기며 대화를 엿들으려 하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저들의 이야기
그래,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겠지 하고 한참을
귀 기울여 보아도 끝내 알 수 없는 그들의 소리는
언제나 이른 아침부터 끊임없이 들려오곤 한다.
새들의 무리 속에는 휘파람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새들의 무리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날마다 저들이 새벽부터 저러는 이유도 궁금하지만
휘파람새의 휘~ 휘리릭, 퓌~ 써르륵 소리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마침내는 쭈그리고 앉아 뭔가 있겠지 하는 마음,
그들의 새벽과 나의 새벽이 무언가는 다른
그 삶의 모양이 우리에게는 있을 것만 같다.
가깝게 사는 이웃이지만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옅은 안개처럼 풀어지고 있는 이 아침의 기운들.
천년의 연(緣)
태백산 꼭대기쯤에서 주목(朱木)은 자란다.
살아서 천년을 살고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나무,
높고 깊은 산 속에서 오로지 하늘만 보고 살며
나날이 붉은 노을을 몸속에 재어놓은 주목의
그 붉은 뿌리를 낯선 집 거실에서 만난다.
아직도 살아있는 듯 나무는 매끄럽고 단단하여
집안의 탁자, 의자로 쓰이고 있는데도 범상치 않다.
나무를 깔고 앉아 천년의 가치를 얘기하는
주인장의 넉살은 백년의 꿈조차 채 꾸지 못하는
범부의 삶을 더욱 초라하게 하고 있다.
괜한 삶이 미안하다. 주목을 어루만지기만 한다.
여름도 겨울 같았을 태백산 깊은 숲에서
나무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바람소리 잔잔히 들리고
웅성거림이 잠시 감지되는 듯도 하였지만
그뿐이지, 어찌 그 기운을 알 수 있을까.
천년의 역사 살피며 삶의 연(緣)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도 같지만 천년의 앞은
마음만으로도 도저히 가닿지 못할 꿈같은 길이다.
주목에게 묻지만, 살아서는 하늘만 보던 나무가
생각을 단단하게 굳힌 채 바닥만 보고 있다.
김광기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아주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풍경 등과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외
수원예술대상(1998), 한국시학상(2011), 수원시인상(2019)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