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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생각해보니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상대했던 일본장수들은...
흫헿흫 추천 0 조회 1,826 11.11.30 14:57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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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1.30 15:04

    첫댓글 근데 일본게임에선 다들 B급으로 전락시킴.. ㅡㅡ

  • 작성자 11.11.30 15:06

    얼핏 들은 얘기로는 그것땜에 장수들 후손들이 코에이에 처들어간적이 있다하던데....

  • 11.11.30 16:20

    구로다 요시타카, 쵸소카베 모토치카, 코바야카와 타케타카, 시마즈 요시히로, 토도 타카도라 등등 A급이상으로 나오는 애들이 많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능력치가 너무 저 평가되어서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요.

  • 11.11.30 16:07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형이 한산도 대첩에서 조선 수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충무공 왈: "고얀 놈!" 이라고 난중일기에 남겼죠.

  • 11.12.05 10:42

    ㅋㅋ 정말 일본입장에서는 미치는게 아무리 날고기고 뛰어난 인물이라도 순신이횽 눈에는 그저 '고얀놈!' ㅋㅋ

  • 11.11.30 16:21

    글쎄요. 거물급이라고 하기에는 좀...... 진정한 거물급들인 쵸소카베 모토치카나 구로다 요시타카, 나가마사, 코바야카와 타케타카 등은 죄다 육전에서 놀고 있었요. 고니시 유키나카와 시마즈 요시히로의 경우는 주로 싸움터가 조선반도였지 바다가 아니였지요. 고니시, 시마즈와 이순신 장군이 싸운 적도 노량해전 한번이고, 그것도 후퇴하는 일본군을 공격한 것입니다. 아키자카는 1만석도 넘지 못하는 소 다이묘였고 토도의 경우도 임진왜란 직전에 7만석, 다른 거물급 장수들보다는 상당히 낮은 다미요였지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1.11.30 16:28

    음 잘못알고 있었군요 언제나 질문올릴때마다 새롭개 느끼고 갑니다

  • 11.11.30 18:00

    저기 그런데 왜구와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해전으로 인한 수군경험이 많았었나요? 보통 왜구가 상륙한 이후 접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요?? 왜구 관련 책이라도 한 번 읽어봐야지 도통 아는 것이 없네요;;

  • 11.11.30 21:21

    그게 조선과 명의 왜구 대처법 차이점 때문입니다. 고려 때는 내륙방어선까지 뚫리다가 겨우 수군으로 막고 그 이후 조선은 소규모의 왜구들이 처들어오지요.-그래도 태조 4년 때 동래를 함락시킬 뻔 하지요- 그 결과 조선에는 왜구들이 약탈하고 돌아가면 그것을 추격하여 바다에서 격파하거나 해상에서 없애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전부 육지에서 격퇴한 것이었고 홍무제 때 한번 오키나와까지 왜구를 추격하여 섬멸한 적은 었었지만, 그것은 후퇴하는 왜구들을 수군으로 따라간 것이었지 조선처럼 아예 해상 자체에서 방어한다는 것은 아니었지요.

  • 11.11.30 21:23

    따라서 조선은 상당히 해군의 경험을 쌓은 편이었고 명은 해군보다는 주로 육지방어에 전념하였지요. 그 결과 지금까지도 중국은 해군이 매우 미약한 상태입니다. 최초의 '해군'이 창설된 때가 무려 이홍장이 북양해군을 창설했을 때이니 그 역사와 전통이 조선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매우 짧지요.

  • 11.11.30 21:30

    전국시대에 지들끼리 치고밖을때 육전이 주였기 때문에 육군이 강했고, 수전도 백병전위주였죠. 반면에, 왜구의 침략을 겪었던 조선은 왜구를 바다에서 격멸하자는 전략으로 함선을 대형화하고 화포를 충실히 갖춘 상태라 기본 전력에서 조선수군이 앞섰죠.
    이순신장군도 이런 조선수군의 장점을 잘활용하는 전술로 게임도 안되게 이길수 있었던거죠.

  • 11.12.01 13:10

    아, 명과 조선의 대처법이 차이가 있었군요. 허허. 답변 고맙습니다, 유문기님 :)
    그리고 jyni님도 고맙습니다 ( _ _)

  • 11.12.04 00:36

    '중국 최초의 해군이 북양해군 창설 때다.'라는 말은 그 이전에는 육군, 수군(해군)의 구분이 없었단 말인가요?

  • 11.12.04 01:38

    육군과 수군의 구분은 있었습니다만, 육군과 해군, 수군의 구분은 없었지요. <<명사>>, <병지>를 보면 해방을 맡는 것은 죄다 육군이고 장강, 황하 같은 강들을 막는 것은 수군이었습니다. 따라서 육군과 수군의 구분은 있었지만 조선과 같이 바다를 방어하는 '해군'은 따라 존재하지 않았지요. 원말기 주원장의 유능한 장수인 탕화가 해군을 이용하여 방국진을 토벌하고 9세기로 가면 극성맞은 남쪽 해적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해군을 조성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과 같이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11.11.30 17:50

    치트를 쓰신 치트공 앞에서는 ....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죠.

  • 11.11.30 18:49

    고저 한번 휘두름 피로 온바다를 물들이신 치트공 ㅠㅠ

  • 11.11.30 19:21

    그건 김억추님 ㅋㅋㅋㅋㅋ

  • 11.11.30 19:41

    아아 철쇄아를 잊었구료 ㅋㅋㅋㅋㅋ

  • 11.11.30 19:07

    (TheGodfather) 제가 아는 일본군의 수전경험은 오다 노부나가가 모리가문을 칠때 모리 무라카미 수군과 구키수군이 세토나이 해역에서 격돌한 건이네요 무라카미 수군이 강해서 구키수군이 밀리다 아다케라는 대형함선을 만들어서 밀어붙여 결국 이긴걸로 압니다. 무라카미 수군이 구루시마 형제이고 구키요시다카가 구키수군인데 임진왜란때는 손잡고 쳐들어 왔죠. 시코쿠의 조소카베를 굴복시키고 규슈의 시마즈를 침공할때 바다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이때에도 무언가 해전이 벌어졌을듯 한데 아무런 저지가 없었는지 들은바가 없네요

  • 11.12.01 13:10

    고맙습니다, 찰목합님 :)

  • 11.11.30 21:29

    오늘 본짤방에서 짤방으로 일본교수 왈 : 신에게는 이지스함 열두척이 남아있사옵니다. 이거 보고빵터지면서 역시 치트공이라했는데 아무리 봐도 치트공......

  • 11.12.02 04:20

    신에겐 아직 니미츠급 열두척이 남아있사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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