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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어둡던 하늘이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화창하다.
간간히 바람에 습기가 묻어있어 눅눅한 기분도 있었으나
늘 그렇듯 여행이란 괴나리봇짐에 몸을 맡긴 사람은 작은 일쯤은
늘 상 접어두게 마련인게다.
긴긴 여름동안 이모작 중 일모작을 끝내느라 더위에 치쳤는데
알 수 없는 미련한 그리움이 가슴 가득 차고 오르는 느낌이다.
욕심 때문에 서둘러 출발은 했으나 계획은 어긋나야 재미있다 했던가?
하늘의 도움을 받아 구름으로 그늘진 서늘한 여행의 답사를 꿈꾸었는데
아뿔싸, 하늘의 태양이 복중에 똥개 혓바닥 뽑듯 강하게 내리꽂는다.
더위도 식힐 겸 잠시 여유를 부리자 싶어 한적한 찻집에 들렸다.
에어컨 바람에 마음이 풀렸나
얼마 전에 읽었던 글귀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만 하니
눈 감을밖에
-정지용, 「湖水」
천흥사터 5층석탑
홀로 시작하여 여럿이 모이는 여행, 외로움에 몸을 간신히 가누다가
어느 순간 반갑게 나누는 인사에 색다른 흥분을 맛보게 된다.
목적지는 아산이지만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답사여행의 시작점은
흥흥~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잎 흥~
이별과 만남의 교차점 삼거리가 유명한 천안이었다.
천안은 말 그대로 天下大安, 즉 하늘아래 가장 살기가 좋은 곳이라 했으니
이것은 삼거리, 즉 서울서 내려오고 올라가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전라도요, 왼편으로 길을 꺾으면 문경세재를 넘어 경상도로 향하는 길이다.
그러니 이곳은 늘 북적대는 곳이며, 이별과 만남, 떠나가고 떠나보내는
슬픔과 기쁨의 교차점에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니 얼마나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지금도 경부선과 호남선 장항선 열차가 지나는 곳이니 여전히 교통의 요지로서
옛날의 영화를 다만 시대에 맞게 누리고 있을 뿐이다.
천안과 붙어있는 아산은 옛 지명 온양의 이름처럼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아산에는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숨결이 담겨있는 현충사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정집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맹씨행단이 있다.
또한 안동 하회마을과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과
소나무길이 아름다운 봉곡사가 천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천흥사터
천흥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세웠다고 한다.
후삼국을 통일하기 전 이곳을 10만의 군사로 후백제를 도모할 주요기지로 삼았으며
이곳역시 본래가 백제의 땅이었으니 백성 또한 견제와 다독거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채의 집들과 논과 밭을 지나자 강한 태양아래
땀 흘리고 서 있는 석탑하나가 무료하다 반긴다.
높이는 5m이상의 덩치가 큰 5층 석탑이나 지붕돌이 얇고 가늘어 어딘가 모자란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이중기단의 신라양식을 따랐는데 윗 기단부와 아래기단,
1층 몸돌과 2,3,4,5층 몸돌의 급하게 줄어듬과 비례가 맞지 않아
균형미와 조화미 안정감 등등에 길들여진 이놈의 눈에는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다.
그러나 켜켜이 올라가는 지붕돌과 네 모서리 추녀에 약간의 경쾌한 반전이 바라보는
나의 시각점에서 날렵하게 보이는 맛이 있으니 땡볕살에 여기까지 찾아온 수고를 잊는다.
전체에 별다른 조각은 없다. 다만 하부기단에 안상을 7개씩 음각 해 놓았고, 각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우주)을 조각해 놓았을 뿐이다.
기단부와 지붕돌에 세월의 고난을 얘기하듯 깨어지고 깎인 흔적들이 아픈 주름 같다.
탑돌이 하듯 몇 바퀴 돌고 햇살이 얄미워 다음에 찾아오는 발길엔 비와함께 동행하리라
웃기지도 않은 다짐을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당간지주를 향했다.
기단에 새겨진 안상
지도에 숟가락 촉만큼의 거리를 너무 얕보았다.
마을 한가운데 흐르는 개울을 지나 한참을 돌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석탑이 서 있는 위치나 지금 찾아가는 당간지주의 거리로 보아
그 옛날 천흥사의 규모가 얼마만 했었던가를 짐작하게 해 주지만 지금은 다만
논과 밭이 들어서고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차 화려했던 추측만 하고 가라한다.
비탈길 마을 구석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당간지주가
이방인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우뚝 솟아있다.
순간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비탈길 아래에서 바라보는 눈높이에서 오는 훤칠한 큰 키 때문만은 아니었다.
똑 같은 간격을 두고 하늘로 쭉 뻗은 네모난 두 기둥과
바깥쪽 가운데 한 줄씩 굵게 붙어있는 기둥이 직선을 잡아주며
상승감과 함께 멋스럽게 볼륨감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나 올라가다 심심하다 싶은 부분에 가서야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며 폭이 좁아지는 발상이 신난다.
바깥으로 난 굵은 선 또한 그 넓이를 따라 굽어지니
우리나라 석공들의 돌 다루는 솜씨가 과히 떡 주무르듯 한다는
고인이 되신 혜곡 최순우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비단 솜씨뿐이 아니라 특유의 미적 감각 또한 우리 민족만의 대물림의 역사일 것이며,
무엇이든 아름답게 보려고 하는 눈, 아름답게 만들려는 수려한 마음과 더불어
지친 일상에도 순간순간 해학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지난 과거를 보았다.
이 당간지주 또한 이중 기단으로 상층기단에 안상을 새겨 조금씩 멋을 부렸다.
안상의 모양도 단순한 음각으로 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음각된 안상을
버섯을 갈라놓은 단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구름형상으로 보이기도 하게끔
안으로 뱅글 감아 돌려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다만 왼쪽 기둥 윗부분이 깨어져있어 아쉽지만 그나마 지탱해 준 것이 다행이다.
이 또한 가까이 있는 5층 석탑과 마찬가지로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인
천흥사 동종(국보280호)에 새겨진 1010년 무렵에 세운 것으로 여겨진단다.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등 뒤로는 모산(母山)인 설화산을 두고
앞으로는 개천을 끼고돌며 멀리 안산(案山)이 편안하고,
양 옆으로 낮은 구릉과 함께
높은 산세를 함께 두었으니 이것이 바로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북현무의 기운을 몽땅 받은
배산임수(背山臨水),즉 천혜의 지형이 아니던가.
여기가 400년 내력을 자랑하는 예안이씨 세거지 아산 송악 외암리 마을이다.
대궐 같은 기와집조차도 정겹고,
적당한 넓이의 기와와 간혹 섞여있는 초가채가 추억을 추억해 내기는 하나
어렵던 시절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 지랄같다.
계급의 높낮이에 따라 살기를 구별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가문이 번화(繁華)되어야 하고, 조상을 잘 만나야 하니
발복(發福) 신앙이 번성하고, 21세기 우주의 비밀을 밝힌다는
지금에도 풍수과학이란 명명으로
대학에 개설되어 전문가 양성에 열성들이다.
이참판댁 입구
그래도 똥꽁 찢어지게, 가난을 벗 삼아 살던 시절 하늘을 원망 하였으니
이미 그것이 잘못된 시작이었음을 왜 몰랐더냐.
천기(天氣)가 지기(地氣)만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만은
그래, 아무리 지기가 뛰어나다 해도 인화(人和)만 할 소냐!
사람에게 배풀길 잘 해야 하고.
사람에게 못된 짓 말아야 하니
삐치지 말고, 비꼬지 말고, 비웃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가소롭다 말고,
가슴을 열고 따스한 기운으로 맞으면
그 운이 저절로 따르는 것을 지천명에 와서야 알겠다.
그래서 정겹게 나누는 인사가 반갑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미소가 즐겁다.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공자 촛대뼈 까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것다!
각설하고,
60여 가구가 들어선 이곳의 나지막한 돌담길을 돌고 돌다 보면
그 어릴 적 추억에 잠겨 어느새
가슴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버리고 아련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숨바꼭질하던 순이의 웃음소리와 담장 넘어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 소리가
들릴 법도 하건만 횡 하게 비어있는 길엔 홀로 서 있는 이방인뿐이다.
굽어진 고삿길에 간혹 지나는 차들을 위해 세워놓은 반사경 속에 비친
이놈의 모습은 이미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닮아있고,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새끼가 남의 애를 끊어 놓는다.
능소화, 꽈리, 맨드라미, 봉숭아, 구절초들이 담장아래 노을을 받아먹고
동신목(洞神木) 아래 조는 듯 고개 숙인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발견하곤
반갑다 웃는다. 누가 이놈, 먹도둑 같이 생겨먹은 놈을 반길까?
역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신 분이다. 그럼 그렇지.......
이런저런 생각에 발길을 옮기면 어느새 길이 끝난다.
막걸리 생각이 간절해진다.
민박, 이참판댁이 아니라 바로 옆집에서 하루를 지냈다.
밤새 누가 울리는 방울 소리에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주인장,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단다.
좋아라, 나는 특수한 귀를 가졌나 보다.
봉곡사
저녁처럼 거하게 아침을 얻어먹고
봉곡사로 향했다. 참 고맙다.
이른 아침의 봉곡사는 맑다.
공기가 맑고, 하늘이 맑고,
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맑다.
인적 없는 산사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서서
올려다 본 대웅전은 용마루의 곡선이 뒷산을 거슬리지 않고
내림마루의 곡선은 살짝 구부려 아쉬운 듯 마감한 모습이
상상으로 끝없이 이어지게 만든다.
단청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기며 합장하고 선방인 요사채로 향한다.
그곳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은 몬드리안을 보았다.
칸딘스키가 뜨거운 추상이라면
몬드리안은 차가운 추상이다.
황금분할 철저한 정리주의자,
차가운 추상화가인 몬드리안이 어느 날 문득
깨달은 바 있어 석가래 기둥을 살짝 구부려 멋을 부렸다.
얼마나 큰 용기였으며 변화였을까?
기둥하나 구부렸을 뿐인데.......
그렇다. 변화를 두려워 말라, 보수는 가난을 부른다.
진정한 보수는 변화에 철저하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회색분자인 주제에 또 씨잘데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사진/ 레오님꺼
만공선사,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
라는 화두(話頭)를 가지고 참선에 열중하였다. 1895년 아산 봉곡사(鳳谷寺)에서
새벽에 범종을 치면서 "법계의 본성을 관찰하여야 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게송(偈頌)을 읊다가 홀연 깨달았다.
-네이버 검색 중-
만공선사 승묘탑 앞에 서서 안내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1895년
맞다! 민황후가 일본의 칼잡이들에게 시해를 당하던 그해이다.
바로 을미사변이 일어나던 해다.
참 씰데 없는 생각으로 답사를 엮는다.
만공선사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오죽했으면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고 하며
깨달음이라 했을까?
내 멋에 내가 살고,
내팔 내가 흔드니 시비는 사절이다.
어제 밤에 내게만,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내 왼쪽 귀에만 들리던 종소리가
바로 깨달음의 종소리는 아니었을까.
ㅋㅋㅋ~~~
하여튼 우리나라 불교를 일제화 하려는 것을 막아섰으니
깨달음 보다 더 큰 업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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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게 시간을 기다렸다.
새소리와 놀고, 개미와 놀고, 왕벌하고 놀았다.
전화벨 소리,
벌초차량들에 막혀 서울서 오는 버스가 늦어지는 모양이다.
나보고 외암리 민속마을에 가서 놀고 있으란다.
흑~
아침에 그기서 왔는데.......
이후,
반가운 목소리들, 드디어 서울서 오신다는 님들이 도착했다.
홀로 시작하여 여럿이 모이는 여행, 외로움에 몸을 간신히 가누다가
어느 순간 반갑게 나누는 인사에 색다른 흥분을 맛보게 된다.(중복)
?
맹씨행단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곳.
참 편리하게 이름 붙였다.
맹씨행단은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고불(古弗) 맹사성이 살던 집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원래는 최영장군의 집이였으나
이웃하고 살던 어린 맹사성이 최영장군의 눈에 띄어
최영은 손녀사위로 삼고 이 집까지 물려주게 된 내력을 간직한 집이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모신 맹사성에 대해선
유구무언이다.
다만 친숙한 「강호사시가」가 기억나고,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다녔다는 것과
공문공답으로 유명하다는 것.
성품이 곧고 청렴하다는 것에 대해 고개를 숙인다.
연일 보고 싶지 않은 인물들을 보아야 하는 작금의 세태에서.......
또 있다. 세종이 선친인 태종 이방원에 대한 사관들의 기록을 궁금해 하자
보여 들릴 수는 있으나 보았다는 기록까지 남겨야 한다고 답하였으며,
또한 그러면 앞으로 사관이 두려워서 그 직무를 수행키 어렵다는 말로
세종을 설득시킨 그의 지혜가 부러울 뿐이다.
아니다, 그 말에 설득당한 세종이 훨씬 멋있다고 해야 하나?
누구는 자신의 임기동안의 기록들을 들고 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나라 가정집으로 가장 오래된 집이라
그러나 터만 그럴 뿐, 몇 번의 수리 보수를 거치다 보니
기형을 만들어 놓았다.
H字 모양의 집이 잘린 느낌이고,
양 옆으로 분명 있어야 할 사랑채가 사라지고 없다.
뿐만 아니라 부엌도 없어졌으니 어찌 사람이 살까.
다만 옆에 난 바라지창이 정겹다 말을 건다.
그것은 안은 밖이 궁금하고,
밖은 안이 궁금하니 궁금증의 숨통을 트여주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달새꺼^^*..
아산 꽃 식물원
난생처음으로 꽃잎을 넣은, 이름 하여 꽃 비빔밥을 먹었다.
사실 내 입이 어색해 한다.
각종 양념에 버무리니 꽃향기는 말짱 거짓말이다!
그래도 무지 맛있었다.
반주와 함께 먹으니 금상이요,
식욕이 반찬이니 첨화이나
진짜로 화려한 꽃을 따다 올려놓았으니
진실로 첨화(添花)가 아닐 런지.
식물원 속의 꽃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자연의 오묘함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꽃에는 향기만 있는 줄 아는 바보가 여기 있다.
독성도 있고, 반격도 하고, 죽은 척도 하며, 심지어 감성도 있다.
짜증난다. 식물은 식물다워야 식물이 아닌가?
그러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이야기,
바람둥이 제우스를 피해 몰래 꽃으로 변해 숨어있는 님프를
오호라 애제라, 고만 지나가던 인간이 예쁘다 꺾고 말았으니
아, 물론 그 꽃을 꺾은 인간은 처절한 응징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들판이나 야외에 있는 풀이나 꽃들을 함부로 꺾으면 안 된다는 교훈인가 보다.
예쁜 꽃을 꺾는 행위는 이기적인 행위이다.
혼자만 독차지 하려는 .......
공세리 성당
나는 불교를 믿는다. 어머니가 불자였으니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렀다.
집 가까이 절집이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다녔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나는 성당을 무지 좋아했다.
굳이 따지자면 절간에 다니는 사람보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을 난 더 좋아한다.
참 기이한 편견이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이기적인 사람들을 너무 가까이서 보아온 탓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성당이 주는 이국적이 건물형태가 혹하게 하기도 했고,
어릴 적 검정 옷에 흰 카라를 한 신부님의 온화한 미소가 참 좋았다.
물론 말썽장이 나만 보면 짜증내던 수녀님은 싫었지만
내 고향 성당이 간혹 중. 고등학교 때 놀이터가 되기도 했으니
약간의 추억은 있다.
커서는 힘들 때 성모당을 가끔 찾곤 했다.
성모 마리아를 올려다보면서 마음을 비우곤 했던 아픈 기억들이 있다.
공세리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성당이다.
보고 싶었던 성당을 이렇게 마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보다
순교자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름다운 모습을 한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성당을 본다.
이 또한 무슨 조화인가.
마리아상 앞에서니 부끄럽고 죄스럽다.
?
역사적 사실은 차지하고라도,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으니
아픈 역사의 나라 구석을 담기는 싫다.
다만 개화되어야할, 개화 시켜야 할 제국주의의 전진기지
더 이상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이미 선교사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자생적 천주인이 우리나라에선 생겨났다.
참으로 연한 민족이며,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민족이다.
또 한 번 우려먹자면
믿음은 화합을 가져오지만
종교는 분열을 획책한다.
작금의 정부와 불교 사태를 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간에 쫒겨 현충사를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쉬우나
볼태기 야들했던 박박머리 학창시절에 다녀왔던 곳이니
아쉬움을 달랜다.
웃으라고 주문을 하시는데.......
이런 바보같이 흘리고 만다.
*
긴글, 죄송합니다!
첫댓글 맨아래 초시님 사진보고 남편이 웃을때 찍엇는데 표정이 자연스럽다고 자화자찬하는 사진인데..저렇게 난도질(?)해서 조금맣게 만들어 놓으면 우짭니까?..ㅎㅎ 내려오는 기차안에서 무뚝뚝한 갱상도남자 둘이서 말한마디 안하고 올줄 알았는데.. 대구올때까지 무슨 얘기를 그리 하셨능교?...피곤도 안하던갑다.ㅎㅎ오랜만에 답사에 오시니 좋더이다..자주 오이소~~
아~~이런 후기를 읽는것만해도 행복하다~~초시님, 나도 그 방울소리의 정체가 아직도 궁금... 때때로 생각 납니다요...여러모습으로 그려낸 후기 너무 좋아요~~난 초시님 왕팬임을 자청 하오...ㅎㅎㅎ음악도 좋고...
유 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몽환적인 영상을 덧칠하고 알싸한 가락에 젖어 촉촉한 마음으로 진국에 밥을 말아 나누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배 부릅니다....... 자주 참석하셔서 고픈 배를 채워주시길 바랍니다.
초시님의 글을 보면 자꾸만 어린시절 아련한 기억들이 살아날까요? 글발좋고~ 사진발 좋고~음악도 좋고~다 좋아요!!
추억창고가 꿈틀거리게 하는 이 글귀는 혼자서 조용할때 찬찬히 ....음악과 함께.다시 볼거예염......
고추 따던 손길 놓고 들어와서니 그대의 글이 그대의 음악 선곡이 또 나를 쥐어 짜게 하는 군 멋진 놈..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특유의 절제된 문맥을 따라 깊이있게 써 내려가신 기행 한 편, 기분좋게 읽어 내려왔습니다. /초시 님도 김두수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이런 후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2) 저도 초시님의 왕팬이랍니다.^^* 음악은 가슴 속 깊이 박혀 들어옵니다....
궁금증에 대한 숨통을 트여주는 연결고리...., 어디서 드려올것 같은 어머님의 정겨운 목소리(ㅠ.ㅠ), 초시님의 정갈한 후기를 읽고 있으니 공연히 맑은 하늘 처다보며 눈가에 이슬이..... 고맙습니다~~
김두수의 보헤미안을 들으며 생각을 따라가 봅니다.홀로 그러나 함께.
편안하게 한 자 한 자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고 내려왔습니다. 좋은글~ 좋은음악 ~감사합니다.
ㅎㅎ 겉모습을 봐서는 임꺽정? 같이 우락 부락 하신분 이시더니 안으로 이렇듯 섬세한 감성을 숨기고 계셧네요... 담에 뵈면 더욱 반가울거 같아요 ~~~^^*
음악과 글에 취해.....한참을 머물다가..........마지막 초시님 사진에 웃고 갑니다~~~...
노래와 함께 님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추석 보내시길...
오랫만에 초시님의 글을 읽으며 깊은 여행을 머릿속으로 해 봅니다. 안가도 간듯, 못봐도 본듯, 그러나 내가 갔음 보지 못했을 부분까지 다 봅니다.
가슴을 열고 따스한 기운으로 맞으면 그 운이 저절로 따르는 것을 지천명에 와서야 알겠다. 많은 걸 생각케합니다.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이 . . . . . . . 즐겁고 풍성한 추석명절 보내세요.
인기가 많아서 모놀에서 댓글 달기는 기 죽습니다.
정말 작가 같은 초시님 역시 저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셨네요 그날 함께 있어서 반가웠고 감사 했습니다 답사의 기억을 다시 만끽 하며 즐감하고 갑니다
이 후기를 쓸려고 그렇게 소쩍새는 울었나보네.... 멋져! 화들짝 웃는 벗님의 얼굴을 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