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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고려시대)
삼국사기의저자이자 묘청의난을 진압한 문신
무신의난 원인을 제공한 인물중한명 무신의난 이후 부관참시 당한다.
↑김옥균(조선시대)
삼일천하, 갑신정변으로 유명한 김옥균.
출생: 1851년 2월 23일, 충청남도/
암살 날짜/장소: 1894년 3월 28일, 중국 상하이/
묘지: 일본 도쿄도 도쿄 아오야마 영원/
부모: 김병태, 김병기
자녀: 김영진
사망 원인: 암살/
형제자매: 김각균, 김균이
사망 나이: 43세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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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4월 28일자 일본 ‘시사신보에 양화진에서 고균의 시신을 참시하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김옥균은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된 후, 그의 시신은 조선으로 송환되어, 서울 양화진에서 부관참시(剖棺斬屍)와 능지처사(凌遲處死)형을 당했다.
이는 그가 갑신정변의 주역으로서 '대역부도' 죄인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암살:
김옥균은 1894년 3월 28일, 청나라 상하이에서 조선 정부의 자객인 홍종우에게 권총으로 암살되었다.
시신 송환: 암살 후 시신은 청나라와 일본 간의 논쟁 끝에 결국 조선으로 송환되었다.
부관참시 및 능지처사: 조선 고종의 명에 따라, 김옥균의 시신은 지금의 서울 마포구 양화진 나루터에서 대역죄인에게 가해지는 가장 잔혹한 형벌인 부관참시 및 능지처사형에 처해졌다.
"부관참시"는 관을 부수고 시체를 꺼내는 형벌이며, 능지처사는 시체의 목을 베고 온몸에 칼집을 내거나 사지를 절단하는 형벌이다.
효수:
훼손된 시신은 전국 팔도에 돌려져 효수(梟首, 목을 매달아 전시하는 것)되었다.
연좌제:
이 사건으로 인해 김옥균의 친아버지 김병태 또한 연좌제로 인해 처형당했다.
이러한 잔혹한 시신 처리는 조선 왕조의 마지막 능지처사형으로 기록되었으며, 당시 법적으로 금지된 형벌을 소급 적용한 것이었다.
목을 베고, 온몸에 칼집을 내고 사지를 절단하는 형벌이다.
능지처사형은 원래 산 사람에게 가하는 잔혹 형벌이지만 김옥균은 "부관참시"를 겸한 능지처사형을 당했다.
‘김의 시신을 관에서 끄집어내 땅위에 놓고 절단하기 쉽게 목과 손, 발밑에 나무판자를 깔았다. 목을 자르고 난 다음에 오른쪽 손목
그다음 왼쪽 팔을 잘랐다.
이어 양 발목을 자르고 몸통의 등 쪽에서 칼을 넣어 깊이 한 치 길이 여섯 치 씩 열 세 곳을 잘라 형벌을 마쳤다.’
시신을 조각조각 떼어서 팔도에 보내어 저자거리에 내다 걸게 하고, 목은 대역부도 옥균(大逆不道玉均)이라고 커다랗게 쓴 현수막과 함께 양화진 형장에 효수해 놓았다.
↑김헌창(신라시대)
반란을 일으켜 장안국을세워 신라영토의 40%를 차지한 인물
반란이 진압될 무렵 자살을했고 그를따르던 부하들이 목과 몸을 나누어 숨겼지만
신라군이 다시 찾아내서 목을 또 잘랐다.
↑이두황
조선~일제시대떄 동학농민운동진압.
을미사변주범.
남한대토벌(의병진압), 매국트리플을 달성한 희대의 매국노 (민비 시해 때 고위 협력자 였다.)
1951년 차일혁이 이두황을 부관참시하고자 그의 묘를 파헤쳤으나, 일본식으로 화장해 뼛가루가 든 항아리만 있었기에 뼛가루를 내던져버리고 항아리는 깨부쉈다고 한다.
↑한명회.
제일 유명한 인물이지 않을까?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윤비(尹妃) 사사(賜死) 사건에 관련되었다 하여, 연산군에 의해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는 토막내어졌으며 목을 잘라 한양 네거리에 걸렸다.
(옮긴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