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혈사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아침에는 원효유치원에 가서
한달여동안 보지 못했던 아가들을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또 견공들이 진드기 등살에 몸살을 하기에
몸에 뿌리는 약과 수의사가 추천하는
목에다가 감아주면 4개월은 효과가 있다는
목걸이를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아가들이 피를 빨리며 얼마나 아픈지
끙끙 앓는 소리가 애처로워 못 듣겠습니다.
점심 시간에는 강복순 경찰서장님과
공주경찰서 경승들의 공양 약속이 있었습니다.
마침 다른 경승 스님들은 일정이 있어서
참여를 못하고 나는 서장님과 경무과장 계장님과
집에서 직접 만든 두부 요리 식당으로 갔습니다.
한달여도 더 된 시간에 연미산에
공무차 올랐다가 팔목을 다치신 서장님은
이제는 손이 거의 다 나았다고 보여줍니다.
점심 공양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녁 무렵 시내에 계신 불자님으로부터
어제와 오늘 이틀간 공주경찰서장님에 대한
시민들의 칭찬을 많이 들었다는 전화가 옵니다.
그 칭찬이란 대부분
무언가 시민의 입장에서 소소한 민원이 제기하면
평소 같으면 거의 반영되지 않던 것들이
다른 분들과 다르게 성심으로 민원을 접수하고
가급적이면 시민의 입장에서
건의와 불편사항을 섬세하게 처리하려는
그 노력과 성과들이 하나 둘 보이고 쌓이면서
시민들로부터 훌륭한 서장님이라는 인식과 함께
이구동성으로 오래 계셔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서로 말하게 되었다 하는 것이
가장 큰 서장님의 장점입니다.
공주 경찰서 사상 첫 여성 경찰서장님이 와서
여성으로서의 친화력과 자상함을 최대한 살린
훌륭한 경찰서장님이셨다고 꼭 전해 달라 합니다.
그런 말이라면 일부러 경찰서를 방문하여서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나는 부채에다가 임제록에 나오는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글자를 쓰고
덧붙여 즉시현금 입처개진이라는 말까지
대불련 시절에 송광사 여름 수련회에서
법정스님으로부터 들은 말을 오래 귀담아 두고
평생을 써먹고 있는 글귀라며 소개하고
우리 서장님은 어디를 가시든
가시는 곳마다 주인의 역할을 하고
서 있는 자리나 머무는 자리마다
참다운 진리가 구현되게 하시라
부연설명하고 전달하였습니다.
공직의 책임자로 있다가 떠나려 하는 때에
시민들로부터 아쉽다 고맙다 훌륭하시다
소리를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공주경찰서에 와서 대과없이 마치고 떠나시는
강복순서장님을 향한 공주시민의 사랑의 마음은
오래 남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공주에는
어진 사람들이 많이 부임해 와서 선정을 베풀고
그들이 떠나간 뒤에는 공주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선정비나 불망비등을 세워 놓은 것이 참 많습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호서극장 다리 근처에 주차한
차를 향해 가는데 마침 윤여헌교수님이
대통사지쪽으로부터 걸어 내려 오십니다.
교수님 어찌 이리 어려운 걸음을 하셨느냐 여쭈니
점심을 드시고 운동 삼아서 시내 제민천 주변을
걸어 보시려 내려 오셨다 합니다.
댁에 차로 모셔다 드리랴 말씀드리니
운동을 하고 나서 네시경에 집에 있을텐데
그 때에 한번 집에 다녀가 달라 하셔서 가 뵈니
내가 예전에 복사하여 한 부를 드린
충청관찰사 유근이 지은 문집인 서경집을
'공산 남 남혈사'에서 개판하였다는 문구가
어디에 나오는지 찾아 달라 하십니다.
찾아서 획인시켜 드리고 내가 가지고 간
적성 이계철선생님 시집을 뵈드리니
교수님 소장품 가운데
일제 강점기에 만든 공산지와
50년대 이계철선생이 편찬위원장이 되어 만든
공주군지를 보여주시는데
그 책에서 동혈사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라 하십니다.
눈에 우선 들어 오는 내용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모호하게 말로만 하는 4대혈사 가운데
북혈사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본사는 州북 40리 화장리에 유하니
금속 연기군 전의면이며
사명은 미암彌庵으로 개칭되었고
암방(암자 근처)에 유혈(굴이 있고)하고
대웅전만은 전하여 오느니라" 라고 나옵니다.
공주군지에는 주미사지와 수원사지의 언급은 없고
중심사지라고 하는 곳이 나오는데
계룡산에 있었다 하고 소개하며
현재의 상신리에 있는 당간지주가 있는 사지로
추정된다 하였으니
구룡사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문한 탓으로 북혈사라는 말은
말만 있고 실체가 어디에 있다 알 수 없더니
연기군 전의면에 있다는 단서만이라도 찾았으니
언제 한번 탐사를 나서야 할 듯 합니다.
윤교수님께 말씀드리고
두권의 공산지와 공주군지를 빌려
복사를 하여 자료로 삼고자 복사소에 가니
잘 못하면 책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하여
공산지만 복사를 부탁하고 공주군지는
필요한 부분만 사진으로 찍어 남기려 합니다.
윤교수님 건강이 허락하시는 동안
공주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듣고 배워야 하는데 하는
그런 조급한 마음이 드는 저녁입니다.
-공주 상왕산 원효사 심우실에서-
(글:해월스님 2017년 06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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