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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때부터 관동군 정보부 헌병, 고등계 형사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 들이는데 혁혁한 공로를 자랑하던 김창룡. 그는 한국전쟁때는 방첩대 대장을 하며 '동해안 반란사건' '국가원수암살 미수사건'등 온갖 간첩 정치사건들을 조작하여 수사권을 독점하고 그 덕으로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자네덕에 내가 발 뻗고 잔다'라는 격려를 받으며 이승만과 직통보고라인까지 갖추며 승승장구한다.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현재든 차기 정권에서든 자신 목숨의 위협인데 전두환시절 차기대통감으로 누가 될 것인가 의견이 분분할 때 몇명이 거론되자 전두환은 그런 거론이 되는 것조차 불쾌해한다. 만년 대통으로 살고싶은 욕심으로. 당시 중정부장인 장세동이 차기로 욕심이 있어 슬슬 당시 거론되고있는 노태우를 견제하자 전통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시절부터 절친인 당시 내무부장관인 정호용이 전통을 찾아와 '자네가 다리뻗고 잘 수 있으려면 노태우를 차기로 점지하게'라고 충고하자 전통 마음이 굳어진다. 안기부장에 있으며 장세동은 각종 금강산땜과 평화의 땜공작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용팔이사건등 온갖 국가간첩사건 등을 조작하여 전두환의 입맛에 딱 맞춰서 환심을 샀던 그는 차기 대통령을 꿈꾸었고 전두환도 은근히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놈의 '다리 뻗고 자는 것'에 더 마음이 쏠려서..
김창룡이 처리한 온갖 용공사건 간첩사건들은 후에 조작이란 진실이 나온다. 한강다리를 끊으며 혼자 도주한 이승만 대통령, 그리하여 피란을 못간 서울시민들은 수복후 김창용에 의해 부역죄로 거의 다 체포된다. 그들은 이승만이 녹음해둔 '우리국군은 이기고 있다, 서울을 떠나지말고 기다리라'는 라디오방송만 믿고 있었던 것인데.
국민들에게 가장 충격을 준 것은 그 동안 김구선생 암살은 김창룡에 의한것이란 소문만 무성했었는데 안두희가 세상을 뜨기 전 1992년 그는 백범김구 암살은 김창룡으로부터 지시받은 것이다'라고 증언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안두희는 생전에 '김구는 주변에 빨갱이가 우글거리는 암적 존재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필시 김창룡의 말일 것이다.
김창룡의 묘비는 우리 고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둥 우리 역사왜곡의 최첨단에 앞장섰던 친일 이병도 문학박사(이완용의 조카)가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아 이런 변이 있을까, 나라의 큰 손실이구나.. 아 김창룡 그는 죽었으나 그 훌린피는 전투에 흘린 그 이상의 고귀한 피였고 그 혼은 기리 호국의 신이 될것이다.." 라며 혼신을 다해 쓴다. 이승만은 김창룡의 죽음을 너무도 애통해하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뤄주고 사후 장군으로 추서해 주는 등 장례식에 세번이나 왕림하신다. 자신의 빽만 믿고 까불다 갔으니 그정도는 해주는 게 당연하긴하다. 김구의 장례식때는 코빼기도 한번 안내비치더니. 그 김창룡 묘비는 지금 그의 둘째 사위 마굿간에 깨진채 숨겨져 있다한다. 사위가 모대학 건축과교수로서 승마를 즐기고 개인 마굿간이 있다는 것을 추론해보면 그 유족들은 그 후 숨겨 둔 재산으로 상당한 부를 즐겼던 듯. 그 김창룡의 묘는 찾을수 없게 숨겨져 있다했는데 그후 현재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어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제자들이 사후 현충원에 안치해 드리겠다 하자 절대 금하시던 이유가 독립운동은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할 의무인데 어디 특별히 모실 것은 없다 그리고 현충원엔 친일매국노들이 상당수 매장돼 있는데 그 공간에 절대 같이 누워있기 싫으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중에서도 오래전 1956년에 총살당한 김창룡이 어디 매장됐는지 비밀로 숨겨져 있다가 언젠가 슬며시 대전 현충원에 매장돼 있다한다. 대전현충원이 건축된 것은 1983년 5월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1989년 부산가까이 양산에 누워계시다가 대전으로 이장되신 것은 2021년, 그러니까 김창룡이 이장된 것은 1983년 이후의 언젠가일 것이다. 떳떳한 사람이었다면 신문에 크게 떠들었을 텐데 어느 날 쥐도새도 모르게 옮겨졌던 것.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모르시겠지만 차라리 제발 지금도 모르시기를. 통일이 되면 그 현충원에서 파내버릴 놈들이 꽤 있을 것으로 본다. 김구선생은 효창공원에 누워계시지만 처음 기념관을 이승만이 공원으로 만들어버려 항의가 많았다.
조선시대의 궁궐인 창경궁이 1909년 일제에 의해 창경원이란 이름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궁궐을 동물원 식물원으로 격하시켜 백성들의 놀이터로 전락시키자 민족의 얼을 짓밟으려는 일제의 획책중 하나로 평가되어 말이 많았다. 이곳에 있던 동식물원은 1983년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으로 개장되었지만. 이승만은 김구선생이 누워계신 곳을 그런 같은 식으로 폄하하려 했음이 틀림없다.
대전현충원엔 김구의 어머니와 큰아들이 묻혀계시어 그나마 아버지가 아시면 위로가 되실 것 같다. 그 현충원에 안장될 사람도 김창룡대신 허태영(許泰榮)과 그 동지들이 되었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보라, 김창룡의 산소나 유가족들은 쉬쉬하며 숨어 살고 있고, 젊어서부터 풍찬노숙으로 고생하던 김구선생은 사후 점점 더 겨레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지 않은가.
지하에서 누가 더 발을 뻗고 자는가? 이승만도 김창룡에 의해 임시는 경무대에서 발은 뻗고 잤으나, 그를 위해 김창룡은 25,000 명의 무고한 양민들을 죽였고, 이승만은 죽을때도 발은 커녕 이국에서 눈물속에 온 몸이 오그라져 숨을 거뒀을 것이다. 기독교인이던 이승만은 아마도 지옥쯤 가있지 않을까. 내가 하느님이라도 해외 교포들이 굶어가며 힘들게 모아 건네준 피같은 독립자금을 떼 먹으며 동포들의 딸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놀러다닐 때부터 뭐 천당 갈 이쁜 짓을 한게 있어야지.
그 25,000명중엔 박정희가 넘겨준 명단의 부하들도 수백명 포함돼 있을것이고 무고한 시민들도 많았을 텐데 김창룡 그 자신으로 봐서는 백주에 용산의 노상에서 허태영 대령외 3명의 부하군인들로 부터 총격을 당했다고는 하나 그렇게 깨끗하게 가는것이 불과 5년 후 5.16 후까지 살아 남는것보단 나았을 것이다. 1956년 1월 김창룡이 아침 출근길에 용산의 노상 찦차속에서 총살되었다는 건 지금 용산의 국방부 앞 인듯 하다. 고급 주택가인 신당동에서 매일 아침 용산까지 운전병들에 의해 군 찦차로 출근했는데 그땐 출퇴근 차막힘이 없었을 테니 가까운 거리였겠다. 그곳 용산에서 경무대까지도 지척이었을 테고.
김창룡에게 전직 남노당 간부로서 직접 엄청나게 얻어 맞고나서 박정희는 군에 남아있던 남로당 계보를 김창룡에게 알려주어 군내 남로당 핵심조직원 73명을 모두 검거하게 하고 그 댓가로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어쨋든 그 맞은 앙심이 대단하여 틀림없이 후에 김창룡에게 보복을 가했을 것이니. 박은 관상으로 보나 그동안 지나온 행적을 보나 그 표독한 관상에 잘 나타나 있듯이 절대 관용이 있는 자가 아니다. 그는 한번 앙심을 품으면 절대 용서하는 자가 아니므로.
그 김창룡이나 박정희나 참으로 비슷한 행로를 걸었다. 수많은 간첩 정치사건들을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리하여 그들의 충정 부하들에게 총격당해 비명에 갔다는 공통점. 김재규가 그 후에 박정희가 수없이 조작했을 사건들을 결과적으로 미연에 방지했던것 처럼 허태영대령도 그 후에 김창룡에 의해 죽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낸것 아닌가. 김재규가 죽기전 후대사람들이 '자신이 박을 죽인 것에 대해 언젠가 감사할 것'이라 했다는데 허태영에게도 후에 사람들이 감사해야 했을 것 같다..
김창룡집은 신당동 고급 주택가에 있는 대저택이었는데 돌담이 적어도 50미터까진 이어져 보였고 담너머로는 고급 수목들이 담 밖으로 드리워져 있어 일제 때 부유한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인것 같았다.(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가보았던 부산 동대신동의 김지태재벌의 집과 같은 종류였으니 일제때 일본재벌들 집은 다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 후에 한번 가보니 모두 아파트 촌으로 변해있었지만. 그 부인은 국내 큰 사업체들을 방문하며 세금(삥땅)을 뜯고 자신의 사업체들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김창룡의 사모님이시라면 그 누구도 무시못하고 적극 돕고 있어 손대는 곳마다 승승장구 발전하고 있었다. 만약 경시하거나 돕지 않는다면 그누구든 당장에 밉보여 하루아침에 쥐도새도 모르게 가로갔을 것이니. 방첩대장이며 대통령의 오른 팔이던 사람의 마누라에게 한번 잘 못보이면 뼈도 못추린다는 두려움에. 실세의 가족에게 달라붙어 청탁을 하고 그걸 즐기는 실세의 가족이 있는 풍습은 예부터 지금까지 한 낱도 변한게 없을지니 참으로 안봐도 비디오이다.
당시 대단히 큰 신흥 기독교 단체가 새로 생겨나 흥행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도 그 사모님은 깊숙히 관여하여 큰 수입을 챙기고 있었다. 그녀뒤엔 그 남편과 이승만이 항상 버티고있어 하나님빽과 함께 그 종교든 그 누구든 그녀에게 대항했다간 무사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것을 너무도 잘알아 한껒 이용하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나서도 이승만은 대신 그녀를 각별하게 아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라하며 실지로도 적극 도와주고있어 남편이 죽었어도 각하의 보호아래 그녀의 사업은 여전히 똑같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리한 그녀는 느낌이 이상했던지 여전히 수입은 똑같이 대단했으나 그 때부터 이미 미국으로 재산을 빼 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이승만의 세력도 하야이후 그녀의 사업도 급속히 사양길로 접어들어 큰회사들은 갑자기 그녀가 방문해도 싸늘하기만 했고 그녀는 회사들을 방문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히스케리컬하게 변해가도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그후 신당동집도 팔아버리고 소리없이 미국을 오가며 살아 두딸들은 국내에서 시집도 가고 잘 살고 있었다.
그녀는 김창룡이 생전에 기록해둔 대공수사기록물 노트를 고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의 두딸들이 어머니사후 아빠의 그 위대한 기록들을 발견하여 읽고 아버지의 이런 훌륭한 행적은 세상에 발표해야 한다며 2022년에 국군의 그 대공수사 반공역사를 '숙명의 하이라루'란 제목으로 발간하였다. ('하이라루'란 김창룡이 공산주의와 첫 싸움을 시작한 중국 동북부 지역의 국경도시임)우리의 항일저항군들이 일본군을 쳐부수고 있을 때 그는 그 항일군들을 빨갱이라며 잡아 족치고 있었다. 그책의 원본인 원고지는 의외로 꽤 달필로 쓰여 있는데 김이 구술하는 것을 부대내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한 특무대원을 불러 받아적게 한 것이라 한다.
그의 처 도상원은 1920년생인 김창룡과 1,2살 아래인 것으로 아는데 작년 2022 년에 살았다해도 120세를 넘었으니 이미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이승만이 하야하기 전에는 남편이 죽었다해도 여전히 설치고 다녔는데 그때 나는 그녀를 어느 큰회사의 행사장에서 잠깐 보니 대단히 수완좋은 육감적인 미녀로 튀어나 보였다. 세련되고 유창한 서울말씨로 휘젓고 다니는 폼도 대단하였고. 세속여인이 튀어나려면 재력 남편복 미모가 뛰어나야 하는데 그녀는 그 점들 모두 월등했고 그것을 한껏 이용하고 있었다. 이승만이 하와이로 간 이후는 끈 떨어진 뭣이 되 버렸지만.
그녀는 언젠가는 남편의 이름이 살아나 추앙받을 날이 있을 거라며 그 기록물을 증거물로 깊이 간직했겠지만 돌아가는 낌새가 여의치않아 세상에 알리지는 않았는데 물정을 모르는 두 딸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간직하고있던 아빠의 빨갱이 족쳐 죽이는 기록을 적은 수기공책을 발견해내고는 아빠의 훌륭한 애국활동을 숨겨두지말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며 책을 낸다. 그 딸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유하고 세력있는 집안에서 호강만 하며 살았고 아버지가 죽은 후도 어머니덕에 평생 호의호식만 했으니 물정을 모를만도 했다. 그리하여 아버지 쪽이라 싶은 분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그 아버지편 사상인 사람들을 찾기란 이제나 그 때나 어렵지 않았을 것이니.
그 딸들은 여늬 친일파 후손들처럼 부모덕에 대단한 富를 누리며 호사스럽게 평생을 살아왔고. 어머니 당부때문에 비록 아버지 이름을 내놓고 떳떳하게 떠들며 살아오진 못했겠지만. 그들은 지금 60대 정도가 되어있고 그 후손들(김창룡의 손주들)은 3,40대가 되어있을 것이니 그정도면 그 증손자들도 태어나 있을 것이다.
김창룡은 6.25전에 북에서 이미 결혼을 하여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후 김창룡의 아들이라고 처형을 당했는지 아직도 살아있는지 혹은 공들여 재교육을 시켜 인민에게 지극한 복무를 하게 됐는지 우리로선 알 수가 없다. 김창룡이 서너살쯤 된 그의 아들을 자랑스레 안고있는 빛바랜 흑백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한국전쟁후 김일성주석은 '우리가 남한을 통일시키지 못한 것은 이승만, 맥아더, 김창룡 세사람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는 걸 보면 북에서도 김창룡의 행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훗날 그 딸들은 그 수기를 책으로 세상에 발간한 것을 크게 후회하게될 터 이지만 이미 그 증거물은 만천하에 명명백백 들어나 있어 숨길 수도 없게 되어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과 죄는 쌓은 대로 가는게 하늘의 이치입니다.
https://youtu.be/RkAyV3N_b30
【무서운이야기 실화】 친일파 후손이지만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성질을 죽이고 살았던 섬뜩한 이유!
PLAY
아우님 안부가 궁굼했는데 반갑습니다
혹여 또 게시글을 못올리게 다음에서 처리 했나보다 했는데
이렇게 깜짝 놀라게 해서 다행입니다
자주 뵙게 되길 바랍니다...ㅎ
@신정주(본명 신경희)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보니 ㅎㅎ 죄송합니다 ^^
주위에 친일파 후손들이 잘살고
항일인생을 사신 분들은 대대로
고생하시는 것 보고 하느님을 원망
했었는데.. 하느님은 상벌이 공평하시군요.
더구나 하늘의 천손을 해한 인간들
은 두고두고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잔인한 얘기지만 비디오를 보니 왠지
내 마음이 놓이는군요.
김창룡 백선엽 박정희 이승만 등 몇은 일제 때문에 산 종자들 그 종자들이 조선이 망하지 않아다면 그 종자들은 무슨수로 살아가요
언니의 글을 읽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어 고맙습니다
역사가 살아 있으니 후세에 백성들이 깨우치고
이런 글을 통해서 모르던 사실까지 알게되니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지으면 안돼겠다 싶습니다
정의는 항상 이기게 되어 있고 누군가는 진실을 전하는 법이니
죄를지으면 안돼겠어요
잘읽었습니다 .......
행주산성 누리길 사진 입니다
이제 김창룡이란 이름도 모르는
세대들이 많은게 안타까워 이런 글
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우리 천손민족을 말살 죽이려는 미일
그리고 그 추종파들.. 천벌을 받을거야.
이제 우리의 바다도 점점 더 오염되니
멸치니 김도 미리 좀 사두자. 박화백을
위해 추석제사용 조기 몇마리도 사서
얼려 두고.
넹~ㅎㅎ
민족을 팔 먹은 사람과 그 후손이 주류가 될 수 잇나?
잘 읽었습니다~♡
역사의식이 있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동감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