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허는 데 있어서는
혼침이 오고 또 망상이 일어나고, ‘이 혼침과 망상 때문에 공부를 잘 못헌다. 그놈만 없으며는 공부가 참 잘될 것
같고 마음껏 하겠는데 번뇌망상이 퍼 일어나고
화두가 잘 잡히지 아니해서 공부를 못허고,
또 조끔 조용헐 만하면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안 된다
그러는데,
이 번뇌망상이 일어난 것은 그 번뇌망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공부를 못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번뇌망상이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곳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번뇌망상이 일어남으로서 오히려 자기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내가 이 부처거든
중생이 참선을 해갖고 부처가 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가 부처였던 것이여.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찾을 필요가 없어.
자꾸 부처를 찾으며는
물로 물을 씻을라고 허는 거와 같고,
머리 위에다가 머리 두고 두상 하나를 더 얹어놓은 거와 같다.
물, 물기를 닦을랴면 마른 수건으로, 마른 걸레로 닦어야 물기가 닦어지지 물로는 아무리 물을 닦아도 그 습기는 없어지지 아니한 거여.
그와 같이 본래 내가 부처인데
다시 또 거기서 부처를 찾으며는 있는 부처도 달아나버리게 된 거다 그 말이여.
그래서 우리가, ‘내가, 본래부터 내가 부처다’고 허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어야 돼. 그러기 때문에 그 ‘본래 내가 부처’라고 헌 것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부처를 찾는 법이 없어.
그러면 번뇌는 어떠냐?
번뇌가 바로 이 보리(菩提)거든.
번뇌가 바로 이 보리기 때문에 그 번뇌를 버릴려고
헐 것이 없어.
번뇌가 바로 우리의 깨달음인데
그 번뇌를 버릴려고 허며는 깨달음이 달아나버리는 거여.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 곡식이 나오는데
곡식이 바로 돈이여.
곡식을 팔면 바로 그것이 돈이고,
곡식을 살랴면 돈 주고 사야하고, 돈을 맨들랴며는
곡식이 있어야 돈을 만질 수가 있는 것인데
‘나는 돈이 필요허제 곡식은 소용없다’고 곡식을
버리며는 돈이 어디서 나올 것이냐 그 말이여.
곡석(곡식)을 잘 애끼고 잘 보관을 해야 언제라도 그것이 바로 돈이거든.
우리의 번뇌망상 그놈을 버릴랴고 애를 쓰고 그놈이
일어나며는 신경질을 내고 ‘이 번뇌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헌다’고 사람사람이 모다 그렇게 생각허는데
번뇌를 버릴랴고 허며는 안 되는 것이여.
버릴랴고 헐, 허며는 그 버릴랴고 허는 그 생각이 바로
새로운 번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도 찾을랴고 허지 말고 번뇌도 버릴랴고
허지 말아라.」 그럴 줄 아는 사람은 공부를 비로소 헐,
허게 되는 것입니다.
다 우리가 참선하고 허는, 도를 닦는 것은
부처를 찾기 위해서 허는데 ‘부처를 찾지 말아라.’
번뇌 때문에 우리는 육도윤회를 허고 온갖 죄를 짓게
되는데 ‘번뇌도 버리지 말어라
그러면 부처도 찾지 말고 번뇌도 버리지 아니허면
그러면 어떻게 헐 것이여.
암 것도 않고 우두거니 목석처럼
그냥 마구잽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허고 싶은 대로 하고 그냥 자고 싶은 대로 자고 그러란 말인가?
그게 아니여
다못 부처도 찾지 말고, 부처도 구헐려고 허지 말고
번뇌도 버릴랴고 허지 말고서 오직 화두만을 들어라’
그거거든.
‘이 뭣고?’ ‘이 뭣고?’ 번뇌는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놔두고 화두만을 떠억. 속이 상하더라도
그 속상하는 생각을 억지로 참을라고 헐 필요가 없어.
‘이 뭣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슬픔을 억지로 참을라고 허지
말고 ‘이 뭣고?’ 근심 걱정이 있어도 그 근심걱정을 띠어 내버릴랴고 허지 말고 당장 바로 ‘이 뭣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나가야 번뇌도 다스려지고 참 부처도,
자기가 참 부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