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썩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강렬한 빛을 선사하고 있는 태양을 올려다보니 땀이 주르륵 흐른다.
왕국의 군사 위성도시 '오드'의 성문을 지키던 병사에게 용병단 사무소의 위치를 묻자 저 멀리 언덕 정상을 가르킨 것이 약 세 시간 전.
아, 용병이란 다른 종족과의 전쟁등으로 일손이 부족한 왕국 병사들을 대신해 마물 처치나 대민 지원, 전쟁 시 보조 역할을 하는 존재들을 말한다.
아무튼 그런 용병이 되기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하루는 용병단 사무소로 가는 언덕의 중턱쯤에 있는 큰 바위 아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루가 살던 요나툰 산맥 부근은 유그리강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과 푸른 나무로 가득했지만, 이 언덕은 위성도시 오드 속에 있다는걸 증명하듯 꽤나 큰 언덕임에도 나무 한그루 없고 짧은 풀들이 무성하다.
강렬한 태양빛을 잠시나마 피하고자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늘 진 곳은 이 곳 뿐이다. 흐르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내자 꼬르륵하는
소리가 배에서 들려온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먹었지 참...."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구자 시야 한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내미는 손이 나타났다.
"응?" 하고 손이 내밀어진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 더운 날씨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이어진 후드를 푹 뒤집어쓴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덥고 배가 고픈 상황 속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지, 무슨 의미인가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니 내밀어진 자그마한 손이 펼쳐졌다.
희고 가녀린 손가락과 작은 손바닥 위에는 육포가 올려져있었다. 소녀인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 육포를 권하는 듯이 손바닥이 살짝 위로 움직이는 후드 소녀. 그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
"나 주는거야?" 라고 묻자 대답 없이 후드가 위아래로 아주 약간 움직였다.
"정말 고마워! 사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먹었거든" 감사를 말하며 육포를 입에 가져가는 하루.
후드 소녀가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주섬주섬거리며 품 속에서 육포 한개를 꺼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어째 하루에게 준 육포보다 크기가 작다.
"혹시 용병단 사무소에 가는 중이야?"
육포가 꽤나 질긴 듯, 인상을 쓰고 열심히 씹으며 묻는 하루. 그러나 후드소녀는 하루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대답이 없다.
대답을 기다리던 하루는 "이 언덕 위에는 용병단 사무소 밖에 없다고 하던데, 가는 길이면 함께 가는게 좋지 않아?" 라고 말한 뒤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낚싯대를 어깨에 메며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후드소녀는 움직임이 없었고, 이를 거절의 의미로 받아드린 하루는 조금 망설이더니 용병단 사무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흐르는 땀과 전쟁을 하며 한 시간 가량을 걷자, 목재로 된 큰 2층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량이 꽤 나갈 듯한 갑옷을 걸치고 거대한 방패를 등에 매고 있는 사람이나 가죽으로 된 가벼운 복장에 활을 들고 있는 사람 등 용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조금 남루한 차림의 하루와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곤 얼굴 한 가득 땀을 흘리고 있다라는 점이다.
이윽고 용병단 사무소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 한쪽 벽면에 늘어서있는 의뢰 게시판과 그 게시판에 붙어있는 종이를 열심히 훑어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잔에는 물방울이 잔뜩 맺혀 한 눈에 봐도 시원해보이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건너편 '접수처'라고 쓰여진 카운터에는 대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아저씨가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다.
북적거리는 홀을 지나 접수처 앞에 서자 대머리 아저씨가 귀찮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의뢰 등록을 하러 온건가?"라고 묻는다.
"아뇨, 용병단 등록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하루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땅이 꺼저라 한숨을 쉰 대머리아저씨는
"뒤에 있는 녀석도 입단 신청인거냐?" 라고 하루의 뒤쪽을 턱짓으로 가르킨다.
"네?" 하고 의아해하며 하루가 뒤를 돌아보자 하루에게 육포를 줬던 후드를 푹 뒤집어 쓴 소녀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 모습이 안보여서 더위에 쓰러진건 아닐지 걱정했었는데 제대로 오고 있었구나.
하루가 안심하듯 '휴' 라고 중얼거리자 후드 소녀가 대머리 아저씨의 질문에 답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입단 희망이라면 이 종이에 인적사항 등을 적어서 제출하도록."
라며 하루와 후드소녀에게 종이 한장씩을 건네는 대머리아저씨.
종이에는 이름과 출신지 신장 직업 등을 적는 란과 용병으로서 활동할 때에 주의해야할 사항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의뢰를 수행하며 죽게 될 경우에는 왕국은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는 것에 동의를 요구하는 부분이었다.
비어있는 칸을 전부 채운 종이를 대머리 아저씨에게 내밀자 대머리 아저씨는 의자에 몸은 맡기더니 받아든 종이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의자에 완전히 파묻혀 종이를 말 없이 읽던 대머리 아저씨가 갑자기 자신의 윤이나는 두피를 찰싹 치더니 눈을 감는다.
보통 머리를 긁적이는게 일반적인 반응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잠시 접고 대머리 아저씨의 말을 기다리고 있자
"이거이거, 완전 햇병아리인 줄을 알았지만 간단한 배경지식도 없는 녀석이었나." 라며 말을 꺼낸다.
"잘 들어라 햇병아리, 여기 있는 직업란에는 전사, 마법사, 궁수 같은 직업을 쓰는거다. 낚시꾼 따위가 아니라 말이지."
자신이 뭔가 창피한 것을 적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하루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 저기, 직업이라는게 뭔가요?"
라고 묻는 하루의 모습에 자신의 두피를 마구 문지르는 대머리 아저씨.
"과거 언데드의 침공으로부터 그림 대륙을 구해낸 일곱 명의 전설은 네녀석도 알고 있겠지?"
"아! 네 당연히 알고 있어요. 일곱명의 전설이 언데드들의 왕을 물리치고 그림대륙을 구해낸 유명한 동화를 말씀하시는거죠?"
꿍! 하는 소리와 함께 대머리 아저씨의 큰 손이 하루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끄아아 얼빠진 소리를 내며 꿀밤을 맞은 머리를 열심히 문지르는 하루에게
"동화라니, 그건 어디까지나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라고 말하며 대머리 아저씨가 콧바람을 흥! 하고 내뱉는다.
"그 일곱명의 전설이 자신들의 전투법이나 기술 등을 전수하기 위해 만든 것이 직업길드.
이 종이에 쓰는 직업이란 자신이 속한 직업길드를 말하는거지. 낚시꾼 따위가 아니라 말이야."
"아, 하지만 그렇게되면 저 직업이라는게 없는건데요?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해야..."
꿀밤이 매우 고통스러웠던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묻는 하루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 대머리 아저씨는
'오늘은 직업도 없는 녀석들이 왜 이리 많이 오는 건지' 라며 혀를 차더니 한숨을 쉰다.
"노비스라고 적어라. 꼭 용병단에 들어오고 싶다면 말리진 않는다. 어차피 용병의 목숨을 왕국에서 책임지는 것도 아니니까."
이윽고 하루는 직업란에 적혀있는 낚시꾼에 두 줄을 북북 긋더니 노비스라고 고쳐쓴다.
"참, 용병이라는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파티를 이뤄서 다닌다는건 알고 있겠지? 노비스라면 파티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충고해주마. 기초적인 전투지식도 없는 녀석에게 자신의 등을 맡길 녀석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말을 듣고 하루는 눈만 끔뻑이며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대머리 아저씨만 응시하고 있다.
"동쪽 성문으로 가봐라. 각 직업길드의 오드지부가 있으니까. 물론 직업길드가 자원봉사 단체는 아니니 보통 20실버씩은 받는다만."
황급히 자신의 주머니를 뒤집어 털어보았지만 8코퍼와 먼지만 잔뜩 있었다.
"아하하..저 어쩌면 좋죠?" 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하루.
"돈도 없다면 일단 입단하고 파티에 들어가보도록 노력해보던가."
"그럼 그렇게 해야겠네요. 아하하"
라고 대답하는 하루를 무시하더니 "그쪽 후드는?"이라며 대머리 아저씨가 말한다.
대머리 아저씨의 말에 옆에서 열심히 종이를 채워나가던 후드 소녀에게 시선을 옮기자 소녀도 황급히 직업란에 줄을 마구 긋고 노비스라고 적고 있었다. 꿀밤이 두려웠던 걸까, 그 모습을 보니 뭔가 귀엽게 느껴진다. 자신만 배경지식이 없었던건 아닌것 같아 다행이다.
후드 소녀가 제출한 서류를 묵묵히 읽는 대머리 아저씨는 '출신지는 다르네 마을인가.. 그 마을은 초토화된걸로 아는데..' 라는 둥
혼자 중얼거리더니 "뭐, 상관없겠지" 라고 말한다. 그리곤 옆에 있는 서랍 속에서 도장을 꺼내 하루와 후드 소녀가 제출한 서류에 도장을 쾅쾅 찍더니
"나는 말이지, 상부의 방침에 따라 너희같은 햇병아리들을 용병단에 가입시킬 수 밖에 없지만 썩 내키진않는다. 며칠 후에는 악몽에 시달린다구.
의뢰를 수행하다가 뒈져버리는 햇병아리들이 내 꿈에 찾아와서 날 괴롭히다보니 내 머리도 이 모양이 됐지. 이러다간 수염까지 없어지는게 아닐까 매일매일이 걱정이다. 그러니 혹여 뒈지더라도 내 꿈에는 안나타나줬으면 좋겠군."
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그 후에는 도장을 꺼냈던 서랍 아래칸에서 천사 날개를 가진 여인이 일곱개의 별을 품에 안고있는 모습이 새겨진 뱃지를 꺼내며 하루와 후드 소녀에게 하나씩 건냈다.
"그게 용병이라는 징표다. 그 징표를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용병단의 의뢰를 받을 수 있고 처치한 마물에게서 획득한 물품들을 거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지. 또 숙소할인이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혜택도 많으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라고 대머리 아저씨는 짧은 설명을 마치곤 반짝이는 작은 뱃지를 만지작거리던 하루와 물끄러미 왁자지껄한 용병들을 바라보는 후드 소녀를 향해 "따라와라 햇병아리들. 만남의 방으로 안내해주마." 라고 말한 뒤 카운터 옆 복도 끝의 계단으로 나아갔다.
"아, 넷!" 이라고 하루는 짧게 대답하곤 대머리 아저씨의 넓은 등을 쫒아갔고, 후드 소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걸음을 옮겼다.
대머리 아저씨가 계단을 오를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목재 건물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며 계단을 오르자 문이 있었다.
문 앞에 선 대머리 아저씨는 후우 하고 짧게 한숨을 쉬더니
"햇병아리든 뭐든 용병단에 온 걸 환영한다.앞으로 잘 부탁하마."
라고 말하곤 문을 열었다.
그렇게 하루의 용병으로서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