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우산을 받쳐
십일월 첫날이다. 일 년 열두 달을 석 달씩 끊어 계절을 구분 짓는 방식에 따르면 십일월은 늦가을이다. ‘늦을 만(晩)’을 쓰는 ‘만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 지역은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아 낙엽 활엽수들은 청청한 잎을 단 채다. 어제 창원중앙역으로 가면서 창원대 캠퍼스를 관통해 지났더니 정문 일대와 공학관 뜰의 수목은 갈색 단풍이 물들어갔는데 산에서보다 빠른 듯했다.
여름은 그렇다손 쳐도 구시월까지 늦더위가 이어져 가을이 짧아진 생각이 든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강수가 예보되었는데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했던 태풍이 대만을 거치면서 해상의 수증기가 구름을 몰아와 중국에서 건너온 기압골과 합류해 내리는 비였다. 계절의 시계추는 시베리아의 찬 기단이 영향을 미칠 때인데 아직 태풍 영향권에 들었다.
일주일 뒤 입동 절기가 다가오는데 우리나라 주변부의 기압 배치는 여름을 지배하던 북태평양고기압이 물러가지 않은 듯하다. 기상 전문가들의 장기 전망으로는 올해 우리나라 가을은 짧고 곧장 추위가 닥쳐 예년 평균기온보다 밑도는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고 한다. 주간 예보에는 이번 주말을 넘기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데 아마 시베리아에서 차가운 기단이 엄습해 올 모양이다.
금요일은 날이 덜 밝아온 어둠 속에 우산을 받쳐 쓰고 외동반림로를 따라 원이대로로 나갔다. 불모산동에서 첫차로 출발해 온 17번 버스를 타고 명곡 교차로를 지나 소답동에서 굴현고개를 넘었다. 차창 밖은 어둠이 가시지 않았고 빗방울에 습기까지 묻어 창밖은 물체가 구분되지 않았다. 감계 신도시를 둘러 마금산 온천에 닿아도 어둠이 가시지 않고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렸다.
가끔 이용하는 온천 대중탕으로 드니 이른 시각이라 입욕객이 적어 물은 깨끗했다. 온탕에서 열탕으로 건너갔다가 냉탕으로 들면서 느긋하게 보냈다. 어제 한림정에서 술뫼 들녘과 강둑을 거쳐 오면서 유등에서 본 산국이 핀 모습을 시조 가락으로 엮고자 시구를 구상해 봤다. 목욕탕 안이라 메모를 남길 여건이 못 되어 탕 밖으로 나가면 바로 휴대폰을 열어 문자로 남겨둘 참이다.
아까 대중탕으로 들기 전 지기들에 ‘대산 강가에서’ 시조를 강변 풍경 사진을 곁들여 안부를 전했는데 탕 밖으로 나와 ‘유등리 산국’을 남겼다. “주천강 물길 흘러 김해와 경계 짓는 / 유등리 강변 따라 새로운 길을 뚫어 / 쌓아둔 토사 더미에 산국 순이 자란다 // 뙤약볕 시들다가 소낙비 생기 찾아 / 한로에 맺은 망울 상강에 꽃을 피워 / 가을이 이슥하도록 진한 향을 뿜는다”
대중탕을 나오니 날은 새었는데 비는 여전히 내렸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우산을 받쳐 쓴 산책은 가능할 듯했다. 신촌 온천장에서 북면 들녘으로 나갔다. 벼들이 익어 추수가 한창인데 비가 와 가을걷이는 차질이 생겼다. 탈곡에 동원된 콤바인은 철수되고 농부들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벼농사 일색이던 넓은 들판이 단감을 가꾸거나 밭뙈기로 바꾸어 작물이 다양했다.
새벽에 목욕하고 나온 마금산과 천마산으로 안개가 걸쳐졌다. 비는 여전히 내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는 규칙적인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비가 와 먹이활동을 잠정 중단한 새들은 전깃줄에 쪼르르 앉아 조잘댔다. 꽤 넓은 경작지에 심어둔 시금치나 대파는 잘 자라고 있었다. 대규모 젖소 농장으로는 매일 우유 회사에서 차량이 드나들며 신선한 착유를 받아 갈 듯했다.
북면 들녘에서 둑을 넘으니 천주산에서 흘러온 샛강 신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했다. 북면 생태공원이 벼랑을 돌아가는 보도교 따라 본포로 향했다. 폭이 넓어지고 유속이 느려진 강물은 건너편 학포 수변공원과 맞닿았다. 본포교 교각 밑에서 둔치로 드니 인적이 끊겨 적막했다. 비가 그쳐주면 옥정에서 죽동을 거쳐 가술로 갈까도 싶었는데 본포마을 회관에서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2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