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프루스트 (1871-1922)
파리 교외의 오퇴유(현재 파리 16구에 속함)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아실아드리앵 프루스트(프랑스어: Achille Adrien Proust)는 전염병 예방의학의 권위자이며 모친 잔클레망스 베유(프랑스어: Jeanne Clémence Weil)는 유대계의 부유한 집안 딸이었다. 9세의 천식 발작을 시작으로 평생 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 1882년 콩도르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찍부터 문학작품을 가까이하여 학교에서 작문과 논문으로 상을 받기도 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졸업 후에 군대에 지원 입대하여 1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아버지의 권유로 법과대학과 정치학교에 등록하지만 학업보다는 글쓰기에 전념하여 《월간》에 브라방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기고한다. 이후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좌, 살롱 등을 드나들고 러스킨을 번역하고 미술품을 감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1893년 법학사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문학 살롱과 사교계에 자주 드나드는 한편 직업은 갖지 않고 문학에 열중했다.
최초의 저작 《즐거움과 나날(Les plaisirs et les jours , 1896)》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인지나 그 밖에 발표했던 소품과 단편을 모은 것이 다. 1895년부터 1899년에 걸쳐서 3인칭 형식의 자서전적인 장편소설 《장 상퇴유(Jean Santeuil, 1952)》를 시도하였으나 미완으로 그쳤다.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와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였다(1904, 1906). 후에 《모작과 잡록(Pastiches etmélanges, 1919)》과 《시평집(1927)》에 수록될 평론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활동은 모두 '유일하고 참다운 글'을 쓰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1906년 양친을 여읜 정신적 타격을 넘어서 《생트뵈브에 반대한다(Contre Sainte-Beuve, 1954)》을 쓰기 시작하며, 이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집필로까지 이어진다. 이후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몰두하였고,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분량의 작품은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출판된다. 대전 이후 출간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로 1919년 공쿠르상을 받아 일약 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걸작으로 20세기 최대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 널리, 그리고 깊이 영향을 끼쳤다.
1909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기 시작하며 오랜 칩거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여러 출판사를 찾아다니지만 출간을 거절당하고, 결국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책을 낸다. 1919년 갈리마르에서 개정판을 출간하고 1919년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로 공쿠르 상을 수상,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1922년, 기관지염이 악화되어 폐렴에 걸리나 마지막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다듬다 결국 11월 18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 사후 오 년 만에 완간된다.
첫댓글 약 10년쯤 전에 독서모임에서 약 2개월간 숙독한 일이 있어서 --나는 관심이 많은 작품입니다.
소설이지만, 새로운 수필쓰기 기법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그때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할 때 매주 한번씩 모여 실시한 독서회에서 가장 강렬히 거명됐던 작품이었기에 그 감회 진(찐)하기만 합니다. 작품에 대한 느낌까지 붙여 주시니 더욱 새롭습니다. 유명한 작가, 작품에 대한 소개 글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내내 강녕하시기를 축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