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볼 일이 있었는데 한시간 일찍 나가서 대한극장 8층에 있는 로즈가든에 들렀습니다.
꽃봉오리들만 맺혀있고 꽃이 핀 것은 열송이도 채 되지 않아서 찍을게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자꾸 들여다보니
제법 장미를 많이 만난 것처럼 상쾌해졌습니다. 아마 다음주 쯤에는 제법 활짝 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시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
장미
손 남 주
선이 또렷한 입술은
가시냐,
향기냐?
잘 어울리는 콧날만큼이나
거절과 수용이 단호하다.
그는 시들지 않는다
다만 깨끗이
꽃잎을 떨어뜨릴 뿐이다.
나는 그를
꽃병에 꽂지 못 한다.
-시하늘자작시게시판에서
꽃의 독백
배찬희
그래!
그래, 꽃으로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장미처럼 꽃답게 살아봐?
바람 없이도 사뭇 나풀거리는 푸른 잎처럼
바스락- 소리에도 쫑긋 귀가 커지고
와락, 가슴이 무너지는데......
그리움이 깊어지면 병이 되지만
내 기다림은 때론 보석이 된단다.
천금(千金)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너
억금(億金)을 받아도 팔 수 없는 나
장미나무 아래 누워
-윤주영
장미나무 아래 누워 오수를 즐긴다
햇볕이 나무아래 까지 흘린다
껌뻑껌뻑하는 눈으로 눈을 헤집는 동안
낡은 노모는 일하러 나가신다
잠시 장자의 나비의 꿈을 꾸는 동안
노모는 늙은 몸을 추스리고 일나가신다
장미나무 아래 누워 오수를 즐기는 나는
장미아래인가 장자의 아래 인가
곤이 천리를 나는 동안
장미나무아래 오수를 즐긴다
늙은 어머니는 언제 오시려는가
단팥빵과 샌드위치를 사오시려 나가셨는데
노모는 오지않고
다만 다 떨어진 장미나무아래
장자의 꿈만 꾼다
나비는 노모의 장바구니에 얹혀 어디를 따라간 것일까
-시하늘 자작시게시판
첫댓글 빨간 장미 꽃망울이 고혹적이네요.
꽃이든 사람이든 활짝 핀 것보다는 필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매혹적이고 고혹적이 되는가봐요.
한때 장미는 너무 화려해서 싫어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편협된 굴절이지요. 꽃은 그냥 꽃으로만 보면 되는 것을...
저는 어렸을 때에 장미밭에서 그 꽃그늘 아래에서 소꼽놀이를 하면서 장미꽃잎을 반찬으로 먹곤 했습니다. 장미꽃마다 맛이 각각 달랐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담장을 넘어가는 덩굴장미를 봐도 꽃봉오리 막 피어날 때 미칠 것 같이 이쁩니다. 세상의 꽃은 다 이쁜 것 같아요.나이들면서 더 증상이 심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장미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요?
꾸준히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내니, 이름 외우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즐기렵니다.
저 곳에도 장미 이름 팻말이 꽂혀 있는데 정말 어렵더군요.
가까이에서 장미꽃을 선명하게 잘 찍으셨네요.
손남주선생님과 고 윤주영님의 시...도 반갑게 다시 읽습니다...*.*
요즘에는 디카로 아웃포커싱 흉내를 내보려고 가깝게 들여다보는 짓을 하고 있어요. 급하지 않게 천천히 들여다보면 제대로는 아니지만 아웃포커싱이 살짝 될 듯 말 듯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