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탄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유혹의 방법들 중 하나는 진리처럼 보이는 그럴듯한 반쪽 진리이다.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대나무 낚싯대와 벌레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았다. 우리는 낚싯 바늘이 보이지 않도록 주의 깊게 벌레를 잘 쌌다. 우리는 이렇게 위장한 J자 모양의 벌레를 물 속에 넣으면서 '고기야 이것 봐, 여기 멋지고 맛있고 영양가 많은 벌레가 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사용한 벌레에는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었다(내게 있어 인조 미끼를 사용한 낚시는 다소 부도덕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이 완전한 진리는 아니었다. 그 나머지가 있었다. '그 벌레 안쪽에는 낚싯 바늘이 있어. 내게 기회가 주어지면 난 그 바늘로 네 위쪽 턱을 낚아챌 거야.' 사탄도 이와 같다. 그는 때때로 아주 인상적인 죄의 즐거움과 보상을 말하면서 부분적인 믿음을 제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보면 아주 매력적일 때가 종종 있다. 때때로 그는 이를 지지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리의 나머지, 즉 그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부분은 죄와 슬픔, 고통, 비극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잘 안다면 우리는 완전한 진리를 알 것이다.
당신은 마귀의 교묘한 술수에 당한적은 없으십니까? 늘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고 있는 우리의 탐욕을 성령의 불로 태우십시오 엡 4:26- 27 26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주님을 닮는 생활 본문: 엡 4:30-5:2
아이들은 부모를 모방하면서 자랍니다. 부모의 하는 행동이나 태도를 그 아이에게서 흔히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얼굴 모습을 닮고, 타고난 품성을 닮으며, 자라면서 그 부모의 성격을 닮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가 자라면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닮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훌륭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좋은 점을 잘 가꾸고 다듬어서 인생의 지표로 삼아 목적하는데로 갈 수 있다면 잘 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나쁜 것도 쉽게 닮아가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부모나 존경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잘못된 것들이 있음에도 아무 비판없이 그저 단순히 똑같아지려고 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나 존경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그들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생의 지표가 될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 이외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 속에서 역사하시고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지표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에 순종하여 주님을 닮는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특히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신 말씀을 따를 때 과연 그 말씀을 쉽게 순종 할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과 같다"고 하실만큼 그 비중이 큰데 이러한 일을 과연 우리가 쉽게 닮아갈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론> 1. 그러면 이러한 말씀들은 그저 우리의 귀에 기분좋게 들리라고 주신 말씀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꼭 지키고 그대로 따라야 할 명령 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의 힘만으로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입니다. 왜냐하면,
(1) 인간은 본래 육의 모습이라서 육의 소욕대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18-20 에서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육의 소욕대로 사는 타고난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인간은 어떤 동기에서도 육의 욕심에 따르기 쉽습니다. 절제없는 말이나, 인간으로하여금 타인들에게 해를 가하도록 음모를 꾸미게하는뿌리 깊은 분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해주기 보다 비방하는 말을 더 잘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유익을 주기보다는 내 욕심에 끌려서 나는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는 식의 태도가 나오기 쉽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육의 욕심에 끌려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말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기가 좋을 수는 있으나 본성이 육의 욕심에 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좋지않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내 혼자 힘으로 이를 지킬 수 없다고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거는 무엇이 되겠읍니까?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나올까요?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여기서 용서함이란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잘못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인간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지 아니하고는 참되게 남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하는 심령을 지니게 되며, 그 풍성하신 은혜가 그 사람 마음속에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의 근거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속에 살면서 우리의 모든 이웃을 용서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가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린 사랑. 스스로 그 몸을 바쳐 제물이 되신 주님의 사랑의 행위를 본받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남을 위해 내 놓은 사랑, 그것도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면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 까지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시지 않으시면서 이렇게 죽어야만이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서 이를 받아들이기만하면 영생으로 바꾸어 주신 사랑.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웃을 위해 조그만 사랑을 주지 못한다면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때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3) 성령께서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인치셨으므로 성령을 근심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죄를 범할 때 그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이 근심하시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구속의 완성의 날까지 성령은 신자 안에서 떠나지 않고 역사하시며 구원을 보존 성취시키시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성령이 그 사람 속에서 함께 하시면서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이제 성령은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하시므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때 근심하십니다. 내 힘으로 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거를 성령으로부터 얻어서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타고난 품성과, 자라면서 그 성격을 닮고 자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므로" (요1: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말을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거룩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함 같이 자비해야 하며, 하나님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해야 합니다. (2) 그의 용서를 닮아야 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용서해주신 주님의 용서를 닮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35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주님의 용서를 닮아서 우리도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닮아서 우리도 모든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우리위해 주신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으신 아버지의 사랑과 나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한마디 변명이 없으셨던 주님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없대서야 말이 되겠읍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결론> 주님으로부터 우리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받은 크신 은혜를 통해서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간직한 성도님들의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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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목회와 설교와 희생과 치유와 능력과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샬롬~!!~ㅎㅎㅇㅇ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