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6-17) 조성만 열사 25주기 추모 미사가 15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봉헌됐다. 이날 미사는 가톨릭평화공동체(준)가 주관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 천주교인권위원회 · 전가대협 동우회 · 서울대이공회 · 서울대 자하연 · 김상진 열사 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했다.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가 주례를 맡았고 류달현 · 성지호 · 은성제 신부가 공동 집전했다. 조성만 열사의 부친 조찬배 씨도 미사에 참석했다. 류달현 신부는 “우리 모두가 조성만 열사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말로 강론을 시작했다. 조성만 열사의 투신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류 신부는 그의 유서가 자신의 “삶의 회심을 이루는 중요한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예수님과 가난한 이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조성만 열사가 꿈꿨던 새로운 세상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사가 꿈꿨던 세상을 저 역시 꿈꿨고, 사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꿈을 안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분이 저의 인생의 방향을 정해주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류 신부는 “25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그분의 바람과 너무 다르게 가고 있고, 저 역시 그분의 외침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나 류 신부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예수님이 계시고, 당신이 걷고자 한 길로 우리를 초대하는 열사가 계시니 절망과 좌절을 딛고 생명과 승리를 향해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조성만 열사는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한반도 통일 · 미군 철수 · 군사정권 반대 ·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외치며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대 화학과 학생이던 조성만은 명동성당 가톨릭 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고, 그해 12월 대선에는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구로구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만 열사는 현재 광주 망월동 구 묘역에 묻혀있다. 가톨릭평화공동체(준)는 5월 17일에 광주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