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여름날 지금 나 한설화는 열아홉 인생의 최대 고비를 맞고 있었다. 이유인즉, 지방에 있는 본가를 떠나 서울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얻은 자취방이 철거되는 바람에 졸지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아 아 집 없는 서러움이 이렇게 큰 것이더냐.
한참을 한탄하며 뜨겁고 따사로운 여름 햇빛을 맞으며 큰 트렁크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에 나앉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눈앞에 동아줄 같은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의 내용은 대강 '가사도우미 구함.숙박, 숙식 무료 제공.' 같은 내용이었다.
당장 휴대전화를 들고 전단지 아래에 찍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심플한 컬러링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흘러나왔음에도 연결이 되지 않자 오기로 수어 번 더 전화를 걸었을 즘 이였다.
"여보세요."
"... ...."
분명 연결이 된 것을 확인했음에도 상대편에서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그에 다시
"여보세요!!!"
라고 소리치자 상대방 혹은 내 휴대폰이 고장이 난 것은 아닌 듯 생생한 음질로 상대의 히스테릭한 소리가 날라들었다.
"어떤 쌍년이 대낮부터 전화하고 지랄이야!"
난데없이 쌍욕이 들려오자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 버버리고 있다가 겨우 꺼낸다는 말이
"지금 오후 1시인데... 아니 그게 아니라 가사도우미 전단지..."
나의 대답에 상대는 가사도우미?.. 아!라는 물음을 내뱉고는 먼 곳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다.
"이혜율!!! 너 전화 왔어. 안 받으면 휴대폰 부숴 버린다??!"
참 살벌하게 말하는구나. 하하. 그나저나 본인 것도 아니면서 받자마자 욕을 하는 상대를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런 남자가 전단지를 붙인 장본인, 고용주가 아니라 고용주이자 룸메이트가 여자일 수도 있겠다는사실에 안도했다는 것은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이다.
"여보세요? 전단지 봤어요? 일하실 거면 지금 빨리 와서 밥 좀 해줘요. 주소는 서울시 ○○동 32번지! 빨리 와줘요, 배고파 죽을 것 같으니까.-"
휴대폰의 주인이자 고용주이자 룸메이트가 될 사람이 넘겨받았는지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사포로 말을 쏟아 냈다. 인적도 안 물어보고 바로 오라는 휴대폰 주인의 말에 이렇게 쉽게 집을 구한 거야?라고 당황했지만 이내 그나마 정중한 말투에 안심하고 불러준 주소로 향했다.
반전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 그냥 조금 큰 아파트인 줄만 알았 것만 해당 주소의 집은 굉장했다. 정원이 딸린 2층 단독주택 그야말로 으리으리 그 자체였다.
여기서 이제부터 살아간다는 마음에 흘러나오려던 침을 닦고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띵동~」
거참, 으리으리 한집이라 그런지 초인종 소리가 차원이 다르네. 돼지도 않을 생각을 하고 있자 어느새 대문이 열렸고 대문 앞에 붙어있던 인터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원 지나서 현관까지 오세요.」
인터폰의 말에 따라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자 잘 정돈된 정원의 오른 편으로는 수영장이 왼편으로는 꽃밭과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역시 부자동네야~ 정원 감상을 하며 조금 걸어 현관에 도착하자 때마침 문이 벌컥 열렸다.
어?? 당혹스러움은 문을 열고나온 남자가 심각하게 잘생겼다는 데에서였다.
한국인이라면 절대 나올 수 없을 하얀 빛을 뜨는 백금발에 큰 눈, 눈매는 그다지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으며 눈매와 눈틀 안에서 빛나는 회색빛의 눈동자. 그리고 코와 입까지 그냥 귀엽게 생겼다. 그것도 무진장 그냥 끝이다 끝. 상판 하나로 세상 여자 다 홀리고 다닐 그런 얼굴이다.
내가 현관을 열고 나온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자백금 발의 남자는 부담스럽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여자였어요? ...어쩌냐."
말투도 사근사근하고 톤도 적당히 듣기 좋은 게 그냥 이쁘고 귀엽다. 그래 저런 걸 두고 인형이라 하는 거다. 하나 구매하고 싶어지게 시리.
"아 네.... 네 혹시 안 돼요? 저 진짜 밥 잘하는데 그게 지금 자취방 폐쇄돼서 갈 때도 없거든요. 한 번만요, 네?"
내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애원하자 백금 발의 남자는 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야 상관없지만 저랑 둘이 사는 건데.... "
아? 잠시만 이 남자 새끼가 뭐라 지껄이는 거시더냐? 지금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산다고? 부잣집 도련님 나셨구먼 딱 봐도 어려 보이는 게 이누님이 같이 살아줘야겠어.
"당연히 괜찮죠."
보통 같았으면 변태라고 욕을 해주고 돌아섰겠지만 이미 끝장나는 상판 때문에 거절이라는 단어는뇌한구탱이에 처박은지 오래였다.
현관문을 활짝 열며 맞아주는 집 주인이라는 놈이 그러면서 나에게 하는 말이란
"밥은요? "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데 집주인 자슥이 안고 있는하얀 강아지랑 겹쳐 보였다. 머리색도 비슷한 개 두 마리....
"라면 있어?"
라면 있냐 물으니까 왜 눈이 커지는 거니?
"라면? 밥 안 줘요?"
당연한 걸 묻는구나 이 귀여운 강아지가.
"밥이라면 이 지 "
"어떻게?"
"잘"
"....."
찾아오는 침묵, 나는 그 침묵을 이기기 위해 주방으로 걸어들어 갔다. 주방도 어찌나 크고 정리가 잘 되었는지 한참을 헤매다 가야 귀하신 라면의 봉지 자락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라면이 없을리 없지.
아무 냄비나 주워서 물을 끊이는데 집주인 저 자식은 그 자리 그대로 굳어있었다. 하... 저 어린 양을내가 정녕 구해줘야 한단 말인가.
"야, 멍멍이 이리 와봐."
내 말은 들리긴 한 건지 내 쪽을 한 번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온다. 뭐, 말은 잘 듣네
거참 키가 크니 빨리도 오는구만 그런데 집주인아?인상 쓰면 주름 생긴다? 네 얼굴이 지금 아무리 이쁘더라도 주저리주저리 연설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왜 멍멍이야? 자기가 더 멍멍이 같은 게."
엉? 지금 내 귀가 이상한 거 아니지? 저 자식 반말인 거야??? 그런데 인상 쓰니까 포스 좀 봐.
아까 그 꽃이 날아다니던 배경이 아닌 검은 오라가 어쩔 수없는 변명을 하게 만들었다.
"찔리냐 너 부른 거 아닌데? 그런데 너 몇 살이냐딱 봐도 내가 누난데 말을 반 토막 내고!"
상황을 돌리기 위해 하는 말에 넘어간 건지 순순히 대답한다.
"열여덟, 너는."
물음표 좀 붙이고 말이 자꾸 반 토막 난다 멍멍아.
"나는 열아홉이다! 으하하하 누나라 불러. 멍멍아 이 누나가 이뻐해 줄게."
언제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는지 이미 앉아 있었다. 책상에 턱을 괴고 있는 게 어찌 귀엽든지 어리고 잘생긴 것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처음 봤을 때부터만져보고 싶던 하얀 머리 털을 쓰다듬었다.
아, 그런데 트리트먼트 하니 집주인아? 머리털이 무슨 실크여 실크.
"푸흐. 내 이름은 이혜율. 누난?"
누나라고 잘도 말하네 이 귀여운 것.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피식 웃으며 자기를 소개한다.
"난 한설화."
내 이름이 그렇게 이상하니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내 얼굴이 신기해?
"누나..."
그래 말해봐.
"엉?"
"언제까지 내 머리 만질 거예요? 회색 되겠네."
반말과 존대가 섞였지만 뭐 넘어가 주지 누나라 불렀으니.
"아... 야! 그런데 나 손 그렇게 안 더럽거든! 응? 내가 만져도 회색 될 것 갖지도 않고만 거 되게 생색이야 생색은!"
"물 끓는데."
후.... 내 아가 멍멍이라 부른 것도 있으니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 주지.
그렇게 라면이 익을 때까지 3분 이 혜율이라는 집주인은 식탁에 강아지를 올려놓고 놀고? 괴롭히고 있었고 나는 아주 어여쁘게 라면을 만들었다.
"야야야 앙! 강아지 치워"
라면을 들고 다가가니 곱게 강아지를 바닥과 만나게 해주는 혜율이라는 놈.
"누나, 누나. 학교 어디 다녀요?"
꿀 맛 같은 라면 시식 중 라면에 입도 안 대던 혜율이가 나에게 고등학교를 물었다.
"나? 화현 공고 "
내 말에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내먹는 모습을관찰한다.
혜율아? 내가 아무리 귀여워도 그렇게 쳐다보면 안 돼 실례야, 실례.
"그럼 너는?"
"한진고"
혜율의 한마디에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혜율을보며 소리쳤다.
"야... 야 너 당장 전학 가! 거기 질 안 좋아! 비록 공부는 잘하는 학교지만 전교생이 날라리 하던데!! 너같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말 잘 듣는 귀여운 멍멍이가 가면 무조건 학교폭력 당한다고!!!!"
내가 봐도 혜율은 당황스러웠을거다. 만난 지 며칠몇 시간도 안된 여자가 갑자기 하는 말이 자기 학교흉이라니.
"... 말 잘 듣는...? 멍멍이...? ...누나 진짜 나 누군지 모르는구나-."
내 말은 들리지도 않다는 듯 혜율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나른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니. 네가 유명한지는 모르겠다만야 네가 라면 안 먹으면 내가 다 먹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