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가 주관하는 PISA라는 시험이 있다. 우리말로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시험이다. 3년 주기로 시행되는 이 시험은 성격이 좀 특수해서 단순한 암기나 주입식 지식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현대사회에 필요한 사고능력과 의사소통 - 그러니까 읽기/독해, 수학, 과학 - 을 측정한다.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핀란드, 한국, 일본, 캐나다 등이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마다 3만 명씩 조기유학 보내는 ‘교육선진국’ 미국은 어떨까? 1인당 교육비 투자 세계 1위이고, 하드웨어 부문도 가장 우수하지만, 애석하게도 전체 OECD 국가 가운데 중간 이하이고, 수학 성적은 특히 심각하다. 그래서 미국의 한 언론인이 미국 교육의 역설을 풀기 위해, 그리고 우수한 교육을 만드는 원인을 찾기 위해 PISA의 우등생인 핀란드, 한국, 폴란드를 찾아 나섰다. 이리하여 저자가 발견한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엄격함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동의에 기초하여, 학교의 성취도를 엄격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교사들은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하고, 수학에서 F 학점을 주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는 미국의 칭찬 문화를 부러워했었다(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는 정반대다. 실제로 미국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실상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미국의 고등학교 교장들은 수학보다 스포츠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교육의 엄격함을 잊어버린 문화라고 비판한다. 두 번째는 우수한 교수를 양성하는 시스템이고, 마지막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열정이다. 미국의 교육현실을 찾는 과정에 한국이 끼어든 것도 흥미롭긴 한데, 그렇지만 우리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 책에는 (우리가 저자보다 분명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국 교육현실의 실상이 아주 적나라하게 들어나 있다. 수업 중에 학생의 1/3이 잠을 자고, 일부는 팔에 베개를 끼고 본격 수면을 취하는 교실현장이나 대치동 학원가의 실태 등이 여간 정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뭘까?
저자는 학생 3 명을 선발해 세 나라 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보내고 이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 책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한국에 대한 분석이 이처럼 정확하다면 다른 나라에 대한 취재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학생의 높은 PISA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비정한 교육현실을 압력밥솥식 교육이라고, 좁은 밀실의 공간에서 티셔츠 대신 지식을 대량생산하는 포스트모던한 노동착취의 현장이라고 가차 없이 까발린다. 이에 비하면, 핀란드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거기에는 교육의 엄격함이 있고, 우수한 교사양성 프로그램이 있고 -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지나치게 많은 교사자격증을 주고 있다 - 교사들에게 다른 나라보다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 핀란드의 제도는 한국이 놓친 균형감과 인간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미묘한 차이를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의 상식을 깨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교육에 대한 재정적 투자와 교육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저자가 국가 간 비교를 통해 도달한 결론은 재정투자 액수보다 그 재원을 구성원들이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예를 또 하나 들면, 그는 미국 교육의 실패를 빈곤과 인종 등 교육외적 조건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 설명이 틀려서가 아니라, 교육문제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교육 내에서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교사의 연봉이 높다고 교육효과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세계에서 교사연봉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페인이지만, 스페인 청소년의 PISA 성적은 오히려 미국보다 낮다. 그 외 부모가 자식의 학업을 올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 책을 읽어주는 것이라든지, 진학과 취업의 결정시기는 늦출수록 좋다는 것, 사회적 성공과 심지어 수명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는 지능이나 성적 또는 출신환경도 아니고 성실성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는 무엇보다 교육은 평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준별로 갈라쳐 교육하는 체제는 효율적이지 못하며, 그렇기에 장애아동도 가능하면 비장애 아동과 같은 교실에서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찬반이 많지만, 이 저작이 설득력 있는 것은 PISA 성적과 연계해서 입증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찰자의 눈을 통해 한국과 핀란드가 민낯으로 비교되는 대목은 여러 모로 시사점을 준다.
▲송승철(한림대 영문학과 교수)
내용 중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간 오클라호마 출신 학생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9/11 때 미 국방부는 쥐의 머리에 전극을 꽂아 행동을 유도하는 실험을 발표했다. 폭발물 탐지용 쥐였다. 그녀는 이게 쥐에게 부당한 일이라 생각해서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동료 학생들의 서명을 받으려 했다. 그때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이었다. 이 학생이 성장과정에서 좌절당하고, 핀란드 교환학생으로 자신을 찾아보려 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하나 추가하자. 미네소타 출신 에릭은 한국 부산의 남산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결과는? 한 학기만에 학교를 그만둔다. 그는 자신이 압력밥솥 안에 있다고 느꼈단다.
첫댓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 초등생 울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