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흔들리는 대나무 숲이 다시 그리운 아침,
대나무 숲 하면 담양이나 울산 태화강 변의 십 리 대숲 길을 떠올리다가
미륵산 자락 익산시 금마면 구룡마을의 대숲에 들어가
시간을 잊은 채 노닐다가 돌아왔다.
이 대숲에서 영화 <추노>를 촬영했다는데,
숲도 넓고, 대나무숲도 울창해서 딴 세상에 초대받은 듯 했다.
누가 심었는지, 어느 때 심었는지 모르는 구룡마을의 대나무 숲,
“왕자유王子猷가 언젠가 남의 빈집에서 잠시 묵은 적이 있는데,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심도록 했다. 누가 의이해 하며, “잠시 머물 뿐인데 왜 그리 번거로운 일을 하십니까?” 라고 묻자, 왕자유가 그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대(竹)를 보고 한 참 소리 내어 읊은 후에 그 대를 가리키며, “ 어찌 하루라도 이 군자가 없을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세설신어>에 실린 글이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이 네 가지를 사군자라고 칭하는데, 그중에서도 사람들은 대나무를 옛 사대부들은 몹시도 좋아했다.
“잘도 어울려 자라 가득 찬 이 울안
수만 그루 묶어 선 듯 그 기개 하늘 위로 솟을 것 같구나.
이 세상 인간들 급은 짓들 오죽했을까.
곧고 곧은 그것을 이제 이 대(竹)에서 보겠구나.‘
조선 초기의 문장기인 서거정의 <영죽詠竹>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바람이 불면 파도소리처럼 쏴하고 밀려갔다가 다시 쏴하고 밀려오는 대나무소리, 그래서 옛 사람들은 댓잎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한 해가 다하려 하고 비바람이 구슬프게 불며 대나무집의 종이를 바른 창에 등불이 푸르게 빛나니, 이때야말로 참으로 자그마한 흥취가 있는 것이다.”
허균이 편찬한 <성소부부고> 중<소문공충집>에 실린 글이다.
어스름한 달밤에 대나무 숲으로 가서 가슴속까지 후비고 지나가는
댓잎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죽순이 돋는 모습을 보고 싶은 아침이다.
2023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