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
“음속돌파 위해선 뼛속까지 변해야 된다”
‘마하경영’ 전파하며 기술한계 돌파
단순한 아이디어 넘어선 근본적 혁신 통해 세계 1위 도약
휴대폰·스마트폰·TV·건설·조선 등에서 초일류 면모 갖춰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88 서울올림픽 개막을 1년 앞 둔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만인 앞에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은 단 한 명, 이 회장 자신뿐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등 기업임이 틀림없지만 ‘세계적인 초일류기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휴대폰 사업에서 세계 1등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갈 때, 삼성도 스마트폰 1위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이나 삼성은 세계 1위에 올랐다. 아무도 믿지 않던 다짐이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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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남다른 통찰력으로 휴대폰 신화 창조애니콜 SH-700이 탄생한 1993년 10월 국내 지형에 우수하다는 입소문과 함께 판매량이 늘어났지만 시장점유율은 13%에 불과했다. 당시 대한민국 휴대폰 시장은 모토로라가 80~90%를 점유하고 있었다. 핸드폰 개발을 담당하던 모 부장은 이 회장 앞에서 “신경영 정신으로 우리 휴대폰이 모토로라를 이기도록 하겠다”라고 공언한다. 이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모토로라를 이기겠다고 했는데 자신 있소? 하다 안되면 나에게 찾아오시오. 내가 방법을 알려줄 테니….”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 통화(SEND), 종료(END) 버튼은 가장 아래에 있었다. 당시 시장을 지배했던 모토로라의 제품의 버튼이 아래에 있었고, 다른 회사들도 이를 따라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생각이 달랐다. 한 손으로 버튼을 누르기에는 위에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초로 통화, 종료 버튼을 위로 올렸다. 소비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내로라하는 휴대폰 업체들은 애니콜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결국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4년 만인 1997년 애니콜은 58%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휴대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토로라를 이긴 나라가 됐다. 애니콜 신화 뒤에는 이 회장의 남다른 통찰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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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통화-종료버튼이 상향 배치된 최초의 애니콜 브랜드 휴대폰.
마하경영으로 변화 주도하지만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서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선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노키아가 세계시장의 40%를 장악하며 휴대폰 업계의 맹주로 군림하던 2003년 7월. 이 회장은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을 만난다. 그리고 목재회사에서 출발해 휴대폰 세계 1위에 오른 노키아의 비결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남다른 기업문화와 철학에 기반했음을 깨닫게 된다. 삼성도 세계 1위, 초일류가 되려면 ‘뼛속까지 변화’해야만 했다. 이 회장은 이듬해 구미 휴대폰 공장을 방문해 ‘마하경영’을 지시한다.
“초음속을 돌파할 때는 재료부터 엔진까지 전부 바꿔야 합니다. 2008년까지 엔진 바디의 재료를 바꾸고 파일럿부터 직원 훈련시키는 태도까지 전부 변화시켜야 합니다. 휴대폰 공장이 창조적 초일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개편하세요.”
마하경영이 지시된 지 3년 후인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됐고 이듬해 삼성은 아이폰의 대항마로 옴니아폰을 내놓았다가 참패를 당한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지면서 삼성전자는 4분기에만 94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은 길을 잃고 헤매기만 했다. 2010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 회장은 다시 강도 높은 위기를 경고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삼성도 어찌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하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결국 삼성은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처음 출시된 갤럭시S는 7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면서 삼성전자에게 첫 번째 텐밀리언셀러 스마트폰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2년간 총 2000만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애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떠올랐다. 2011년 발표된 갤럭시S2는 5개월 만에 1000만대 판매고를 올렸고, 전 세계에서 4000만대가 팔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2012년 삼성은 갤럭시S3와 갤럭시 노트2 등을 앞세우며 세계 시장에서 4억대의 판매고를 수립, 당당히 휴대폰 시장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이건희 회장 취임 25년 만에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빛난 초일류의 집념휴대폰과 초일류기업을 향한 견인차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제품이 TV다. 삼성전자는 1998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TV를 양산했다. 이를 통해 아날로그 시대에는 뒤쳐졌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앞서나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TV 사업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했다. 2004년 ‘TV 일류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삼성 반도체, 삼성 기술원, 삼성전자 TV연구원 등 총 350명을 투입했다. 그러나 ‘초일류’는 단순히 기술의 결집 만으로는 올라설 수 없는 자리였다.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넘어설 것을 강조한 이 회장의 지시는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와인 잔에서 모티브를 따온 ‘보르도 TV’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보르도 TV는 세계시장에서 1년 만에 300만대가 팔리는 기록을 수립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디지털 TV 사업 진출 8년 만에 세계 정상에 등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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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6년 두바이의 ‘버즈 두바이’ 건설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휴대폰, TV로부터 시작된 이 회장의 초일류를 향한 집념은 조선,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발한다. 삼성물산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부르즈 칼리파를 건설했고, 삼성중공업은 드릴십 시장 세계 1위에 올랐으며, 최대 규모의 해양설비인 FLNG를 건조했다. FLNG(Floating 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한 뒤 이를 정제하고 LNG로 액화해 저장·하역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 설비다.
삼성은 세계 초일류 기업의 면모를 갖춰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 회장이 취임하던 1987년 10조원을 넘기지 못하던 매출액은 불과 25년이 지난 2012년 300조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3년 삼성은 세계 브랜드 순위 8위에 올랐다. 1987년 이 회장의 초일류기업에 대한 약속이 단순한 성과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다짐에는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1987년 회장 취임식에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 자신과 국가, 그리고 인류사회의 발전을 다짐하는 자리임을 생각할 때 헤아릴 수 없는 책임과 사명감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책임과 사명감을 통감’하며 만인 앞에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한 이건희 회장. 그는 신경영 대장정 동안 350여 시간의 강의를 통해 수많은 삼성 임직원들과 소통하며 이들이 변화와 혁신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