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실 대봉감
십일월 첫째 일요일이다. 자연학교 발걸음은 하루 유예하고 고향을 지키고 계신 큰형님 문안 다녀오는 길을 나섰다. 큰형님은 잇몸에 불편을 느껴 진주 경상대학 병원에 열흘 간 입원해 수술과 안정을 취한 후 댁으로 돌아와 통원 진료를 받는 중이다. 치과에서 받던 임플란트 시술과 무관한 잇몸 질환으로 진화된 현대 의술의 덕으로 향후 시일이 지나면 불편을 들게 될 듯하다.
전날 부산 자갈치로 나가 마련한 생선 꾸러미를 챙겨 이른 아침 마산 합성동 터미널로 나가 의령으로 가는 차표를 구해 정한 시각 출발하는 첫차를 탔다. 각자 용무가 있어 하루를 시작할 승객들과 남해고속도로를 달리자 창밖은 안개가 짙게 끼어 지형지물이 분간되지 않았다. 군북 나들목에서 국도로 내려서 정암교에서 의령 관문을 들어설 때 남강의 솥바위도 안개에 가려졌다.
읍에 닿아 택시로 고향 마을 동구에 이르니 안개는 서서히 걷히는 즈음이었다. 고향 집에 들어서자 대봉감을 따서 선별 포장해 출하를 앞둔 상자가 바깥마당에 쌓여 있었다. 사랑채로 들어 형님 내외분 얼굴을 뵈었다. 대학병원 치과에까지 가서 받는 치료여서 시일이 걸려 아물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올 듯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안개가 걷히면 대봉감을 따는 일을 나서려고 했다.
방안에서 한동안 머물며 환담을 나누다 바깥으로 나와 경운기 적재함에 실어둔 감 상자를 마을 회관 앞으로 이동시켰다. 전날까지 딴 대봉감은 포장을 마쳐 농협 공판장에서 차량이 나와 수집해 간다고 했다. 동구 앞들 벼를 거둔 논에 심어둔 마늘은 싹이 잘 돋아 몇 차례 내린 비에 싱그럽게 자랐다. 진주에 사는 큰조카가 부모님 일손을 돕고자 왔는데 일철이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고향을 지키는 큰형님은 젊은 날 잎담배 농사도 오래도록 지으셨다. 일손이 무척 가는 고된 농사가 잎담배 경작이었다. 이후 마늘과 양파를 심었는데 양파는 힘에 부쳐 마늘만 남겼는데 조카의 성화에 못 이겨 경작 면적을 줄였다. 여름에 고추나 콩이나 참깨와 같은 밭농사도 제법 짓는다. 지난주 주중에는 올가을 캔 고구마와 단감을 따서 아우에게도 한가득 보내와 잘 먹고 있다.
큰형님의 가을은 대봉감 수확이 마지막 차례로 기다렸다. 작년은 대봉감 농사가 새순이 나와 꽃이 피던 봄날 냉해를 입어 흉작이었다. 올해 대봉감은 작년 부실했던 농사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뜨거웠던 여름을 이겨낸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볼이 발개져 갔다. 주중에 손위 두 분 작은형님이 다녀갔을 때 덜 익어 따지 못했는데 엊그제부터 수확이 시작되어 보름 정도는 걸리지 싶다.
형님 내외와 조카와 힘을 합쳐 논둑과 밭둑에 심어둔 대봉감을 따 모았다. 개중에 선홍색으로 익은 홍시도 나왔는데 별도로 모아두었다. 표피에 검게 된 부분이 있거나 모양이 특이하면 선별에서 제외되는 하품으로 상품성이 떨어졌다. 단감도 그렇듯 대봉감도 나무를 높이 키우지 않고 전정을 낮게 해 놓아 감 따기 작업이 수월했다. 사다리가 필요 없이 손을 뻗쳐 감꼭지를 잘라 땄다.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형수님이 차려낸 밥상으로 점심을 들었다. 오전에 따다 남겨둔 밭둑 대봉감을 마저 따고 조카는 경운기 적재함에 실어서 옮겼다. 바깥마당에서 무게 따라 분류되는 선별기를 거쳐 파지는 제외하고 상자에 채워 중량을 확인하고 개수를 기록했다. 이번 수확량은 아침에 농협에서 싣고 가도록 내보낸 양만큼 되었다. 앞으로 순차적으로 따야 할 감은 더 많았다.
짧아진 해가 기울지 않았을 때 작업이 마쳐져 귀가를 서둘렀다. 스티로폼 상자에 홍시를 채워 창원으로 돌아오면서 ‘덕실 대봉감 홍시’를 남겼다. “한평생 흙 더불어 농사에 진력하는 / 팔순을 바라보는 칠 남매 맏이 형님 / 대봉감 수확 철 맞아 문안 안부 들렀다 // 시장 본 생선 도막 밥상에 자반 될까 / 일손은 힘 부쳐서 보탬이 미미한데 / 감 홍시 서너 개 먹고 귀로에도 챙겼다” 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