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둑길을 걸어
입동을 사흘 앞둔 십이월 첫째 월요일이다. 토요일은 농업기술센터가 지역민을 위해 개설한 작은 집 짓기 목공 강좌에 나갔다. 앞으로 주말마다 다섯 차례 더 있을 예정인데 나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기회다. 일요일은 고향을 찾아 평생 농사를 지어오는 큰형님 일손을 돕고 왔다. 가을걷이에서 맨 마지막인 대봉감을 따는 일이었다. 귀로에 발갛게 익은 홍시를 한 상자 갖고 왔다.
계절이 바뀌는 이른 아침에는 안개가 끼는 경우가 잦다. 도심보다 근교 농촌이 더 그런데 어제 아침 남해고속도로 함안 근처를 지날 때 안개가 짙어 군북 나들목을 내려 국도를 따라 의령 관문 정암교를 건너 고향 집에 닿아도 안개가 걷히지 않았더랬다. 월요일 아침도 밤낮의 일교차가 커서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지 싶었다. 짙게 낄 안개를 고려해 자연학교는 느긋하게 등교했다.
아침 식후 창원역 앞으로 나가 근교 들녘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으니 안개가 짙은 속에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 센터를 지났다. 다호리를 지날 때 고분군에서는 선사시대 유적을 발굴하느라 지표면에 선을 그어 흙을 파내는 구역이 나왔다. 오래전 시굴에서 대외 교역을 증빙한 오수전과 문자 생활을 누린 붓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월마을에서 내려 안개에 싸인 동판저수지를 바라보니 연잎은 시들고 갯버들도 낙엽이 져 가지가 앙상했다. 근래 커피 선호자가 늘자 가월에는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선다. 주차장을 넓게 확보하고 창은 통유리로 해 바깥 풍광을 바라보기 좋도록 꾸밈이 공통이었다. 동판저수지와 수문으로 이어진 주남저수지 둑길로 드니 물억새가 꽃을 피워 어지러이 헝클어져도 운치가 있었다.
그간 여러 차례 다녀간 주남저수지 둑길인데 안개가 짙게 낀 날은 처음이었다. 어느 해는 초겨울에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된 철새 사체가 발견되어 이듬해 봄이 오기까지 탐방로가 폐쇄된 적도 있었다. 탐방로 들머리는 외지에서 찾는 이들에게 방역을 위한 소독 발디딤 판이 놓여 있었다. 호젓한 둑길을 따라 걸으니 안개 짙게 끼어 가시거리가 짧아도 가을이 이슥해진 느낌이 들었다.
탐조객을 위해 내어둔 가림막 구멍으로 저수지를 살폈다. 수초가 가득 덮인 수면에는 덩치가 작은 논병아리들이 날아와 먹이활동을 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탐조 전망대를 지난 둑 아래 연지로 된 습지에는 쇠기러기들이 모여 노는지 새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시선을 저수지 수면으로 돌려 갈대와 물억새가 엉겨 자라는 수면을 바라봤다. 섬처럼 보이는 등에는 갯버들 가지가 앙상했다.
수초가 적은 수면에는 큰고니 한 쌍이 새끼 고니 네 마리를 데리고 와 줄지어 헤엄쳐 놓았다. 어미와 아비 고니는 깃털이 순백이고, 성체가 되지 않은 새끼 고니는 깃이 잿빛이라 구분이 쉬웠다. 아마 녀석들의 본향인 시베리아 우수리강이나 바이칼호수에서 올여름 새끼를 쳐 먼 비행으로 날아온 선발대지 싶다. 연전 도심 용지호수에서도 이처럼 새끼를 데려온 큰고니를 본 적 있다.
주천강으로 물길을 내보내는 배수문에서 안개가 끼어 전방이 가려져도 둑길을 더 걸었다. 낮게 자란 코스모스는 알록달록한 꽃을 피워 가을다운 운치를 더했다. 낙조대 쉼터에 앉아 한동안 머물러도 쉽게 걷힐 안개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둑을 내려서 들판으로 향했다. 농업용수로 보내는 수로에는 어디선가 차를 몰아온 태공 예닐곱이 낚싯대를 드리워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벼를 수확한 볏짚은 흩어져 있거나 둥글게 뭉쳐져 축산 사료로 삼으려고 대기 중이었다. 신동을 거쳐 장등으로 가는 들녘인데 공중에는 기러기들이 선회 비행하고 있었다. 먼 항로의 나래를 접는 착륙 지점을 찾는 듯했다. 인적이 없는 들녘이 끝나 가술에 이르러 이른 점심을 때우고 삼봉 어린이공원에 머물렀다. 도서관에서 빌린 ‘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를 펼쳐 읽었다. 24.11.04
첫댓글 코스모스 오랜만에 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