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미국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사와 이발사가 나란히 걷게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주변은 몹시 지저분하고 악취마저 풍기고 있었다. 회의론자인 이발사가 입을 열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이 어찌 저렇게 처참하게 살도록 내 버려 두신단 말입니까?" 그때 히피 청년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본 목사는 이발사에게 물었다. "저 친구를 보십시오. 저 친구는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는 어찌나 긴지 어깨를 완전히 덮어버렸군요. 어찌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젊은이들이 저렇게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두십니까?" 그러자 이발사는 이렇게 변명했다. "그야 저 친구가 이발해달라고 이발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죠. 만약에 그가 들어와서 요청하기만 한다면 아주 미남자로 만들어줄 텐데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님도 당신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이 예화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려는, 다시 말해 하나님 편이 되려는 인간의 의지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준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도록 매일 그 분께 나아가고 계십니까? [눅 19:2- 6]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 목 : 돌을 옮겨 놓으라 성 경 : 요 11:38-44 예루살렘에서 약 5리쯤 되는 곳에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베다니라는 예루살렘에서 낙향한 사람들, 실패와 낭패를 당한 사람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는 나사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무척 사랑하셨고 베다니에 가실 때마다 찾아가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께 요단강 저편에 계실 때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하려 함이라"(요 1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유대로 향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요 11: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나 지나서 예수님 유대에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마리아는 집에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는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원망이 함께 교차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슬픔 가운데 예수님을 반기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 11:21-22) 라고 마르다는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11:23) 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시지 않고 마르다가 반기던 곳에 계셨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 계신 곳으로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께서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통곡하자 예수님께서는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다가 가셨습니다. 그 무덤은 큰 돌로 입구가 닫혀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주위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베다니에서 온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실제적으로 우리 눈 앞에 전개해 보여주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자이시며 친히 원하시는 그것을 뜻대로 이루십니다.우리 인간이 "이렇게 마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지켜보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고 "돌을 옮겨 놓으라"는 명령을 죽은 나사로를 살리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등 인간의 믿음을 강조한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어떤 이들은 '목사의 아들 아니냐''저의 누이 동생들도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느냐'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지역적인 인간으로만 이해 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는 큰 일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편에서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시고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자신의 뜻을 믿음으로 승화시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말씀을 간절히 읽고 묵상할 때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으로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믿음을 실천할 때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2.예수님 말씀에 대한 마르다의 반응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르다는 인간적으로 반응 했습니다. 성경은 "야웨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이사야 55: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갹은 우리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온 우주만물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인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같은 사람의 생각과 길과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길을 알아서 그 길을 좇아가야 우리의 삶에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자신의 생각대로 반응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돌을 옮기는 것이 주님의 뜻인데 마르다는 자기의 뜻대로 돌을 옮겨 놓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이성의 갈등에 부딪쳤습니다. 인간적 이성의 계산법으로 죽은 자가 장사한지 나흘이 되어 살아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상식적인 갈등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마르다가 살아오면서 무덤에 장사지낸 자가 살아 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생경험의 갈등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경험을 통해 사람이 무덤 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르다는 예수님의 명령이 너무 동떨어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또한 군종들의 비웃음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베다니에서 온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마르다를 쳐다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돌을 옮겨 놓으라니..." 유대인들은 무언의 암시를 통해 마르다를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마르다처럼 마음 속은 심한 갈등에 허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갈등에서 하나님을 멀리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성을 따르고 상식과 인생경험,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길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을 좇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갈등하는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맞추어야 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훈계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라며 마르다를 엄히 훈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믿음은 결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무리 크게 나타날 수 있을지라도 인간의 믿음이 없으면 그 영광이 나타날 자리가 마련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르다에 대한 훈계는 바로 믿음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요 또한 믿음을 가지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오직 나사로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은 마르다의 믿음과 연합될 때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멀리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돌보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앞세우고 인간상식이나 경험이 앞선 삶을 살기 때문에 믿음의 열매가 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훈계를 마음에 새기고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항상 우리에게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접목시키는 순수한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음이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웨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말씀을 선택하길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어떻게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까? 다윗은 윤리나 도덕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 부하의 아내와 동침하고, 잉태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 여자의 남편을 전장에서 죽게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의 위대성은 도덕이나 윤리성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즉시 회개하는 마음과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에 있었스비다. 그는 나단 선지자로부터 죄를 지적받고 눈물로 회개했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눈에 보이는것 없었지만 말씀에 의지해 사자와 곰에게 덤벼들어 승리를 이룬 인물이었습니 다. 또한 골리앗 앞에서도 만군의 야웨 이름을 의지해 물맷돌을 들고 승리를 이룬 용사였습니다. 다윗은 이성보다 말씀을, 이성이나 경험보다 말씀을, 그리고 군종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믿음이란 행위의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면 이성적, 경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말씀에 의지해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 안에 기쁨과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없고 손에 잡히는 것없지만 말씀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못합니다.마리다와 마리아에게도 도움을 주는 손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돌을 옮기려고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믿음의 행위를 돕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마르다와 마리아의 순종의 믿음을 보시길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증명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외쳐도 행위의 열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남자만 5천명,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수만명이 있는데 주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직접 기적을 베푸셔서 주실 수도 있지만 인간의 믿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역사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믿음의 증거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져오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수만명의 사람 앞에서 오병이어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안드레의 믿음의 표적이었습니다. 안드레의 믿음의 증거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태산같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빌립은 이성적인 계산으로 믿음의 배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한 안드레의 작은 믿음의 배는 많은 사람들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면에는 믿음있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돌을 옮기려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수주일하는 것,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행위,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4.열린 무덤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제는 믿음과 절망의 경계선에 놓여 있습니다.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돌을 옮겨 놓는 것이었지만 나사로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약속을 받았다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행위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바다위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자기의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지만 모세는 홍해를 향해 믿음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항상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능과 물가능의 경계선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믿으면 기적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 8:13)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과 저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적으면 적은대로 믿음이 크면 큰대로 역사하신다는 약속이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큰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지만 말씀에 의지해 돌을 옮겨 놓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우러러 하늘을 보시며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이 있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살아났지만 수족이 베로 동여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믿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을 얻고서도 죄악의 베에 동여 있는채로 냄새를 풍기며 인생을 살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신앙인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동인 베를 풀어 놓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의 새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나 아직까지 세속에 속해 죄악의 냄새를 풍기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습니다. 살아났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생명을 얻고 사망의 굴에서 나왔지만 병의 베에 동인채로 슬픔과 불안, 낙망 속에서 살 때가 있습니다. 또한 저주의 베에 묶이고 슬픔과 불안, 세상 염려의 베에 쌓여 하나님의 복된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병의 베에서 저주와 슬픔, 세상 염려의 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동인 베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3서 1:2) 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불신앙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믿음을 가지라""너를 묶은 베를 벗어 버리라"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목회와 설교와 희생과 치유와 능력과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감사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주님의 향기를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펑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존재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