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에게 들었다 내일은 예수에게[생활하는 신학 - 한상봉]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해

[쌩떽쥐베리]

오늘은 부처에게 들었다 내일은 예수에게[생활하는 신학 - 한상봉]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해

한상봉 기자 

승인 2013.05.16 

딱 그거였나, ‘불교적 그리스도인’. 그 말조차 무의미하다. 태생 가톨릭 신자였던 나는 불교를 남몰래 흠모했다. 이십년 전 신혼여행을 갈 적에 모든 코스가 절에서 절로 이어졌다. 훌쩍 남도의 송광사로 가서 선암사를 돌고,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사진은 죄 절에서 찍은 것뿐이어서, 현상한 사진을 들고 스스로 의아했다.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다.

어느 종교학자는 한국인들이 무속과 불교와 유교와 도교 등 다양한 종교신심을 켜켜이 새기고 산다고 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불교적 그리스도인이거나, 무속에 푹 빠진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천주교의 초기 신자들이 보유론적 신앙을 가진 유교적 그리스도인이었음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물론 유교적이거나 도교적인 불자도 많다. 자못 종교의 도가니라 말해도 좋다. ‘개점휴업’ 상태인 유럽 가톨릭 · 개신교 · 정교회와 달리 한국 교회는 여전히 ‘문전성시’다. 최근에 들어 조짐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말이다.

▲ 임권택 감독 영화 <만다라>, 1981

내가 불교에 대해 처음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그리고 불교를 이해하는 창문 노릇을 한 것은 공교롭게도 승적을 박탈당한 소설가 김성동을 통해서였다. <만다라>, <피안의 새>,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등에서 그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처지에서 ‘성불’을 갈망하는 운수납자의 고뇌를 여일하게 되뇌고 있다. <만다라>에서 김성동은 젊은 수행자 법운 스님이 지산 스님을 통해 깨달음의 한끝을 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지산이 절집 툇마루에서 깎은 부처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졌으며, 지산의 밝힌 연유는 이렇다. “모든 중생이 고통 받고 있는데 부처인들 온전하겠냐”는 것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하느님 역시 고통 받고 계시다는 몰트만의 ‘십자가의 신학’ 그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슬픔 안에서 더불어 슬퍼하시고, 억울한 죽음 앞에서 목 놓아 우시는 하느님,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기도하시는 ‘목마른’ 하느님이다.

김성동이 발견한 부처에게는 거룩한 땅과 더러운 세속이 따로 없다. <만다라>에서는 “갈비와 갈비가 맞부딪치는” “저 더럽고 냄새나는 저자의 뒷골목”을 여의고서는 부처를 만날 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 가난한 사람들, 제 손으로 일해 밥을 버는 사람들 가운데서, 누추한 움막에서 부처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치를 드러낸다. 하느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천막을 치신 강생 사건을 일깨운다.

김성동은 소설 <먼산>, <황야에서>에서 자신을 “한번도 내 손으로 내 밥을 벌어 보지 못한 자”이며, “이 세상 사람들이 땀 흘려 공양드린 시줏물을 받아먹고, 헛된 욕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할 자격도 없는 중생”이라고 자책한다. “흰 얼굴과 가느다란 뼈”를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삿된 음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단지 슬픔에 젖게 할 뿐”인 ‘목탁 노동자’라고 소개한다. 예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라고 복음서에서 말하지만, 사실 예수 자신이 제 손으로 밥벌이하던 목수였으며, 보잘 것 없는 이 가운데 하나였다.

예수쟁이면서 불교를 강설한 이현주 목사는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샨티, 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믿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 속에 여래님이 계시다는 불교의 가르침도 믿습니다. 제 속에는 예수님과 여래님이 나란히 계시거니와, 이 두 분 사이가 저와 저의 사이보다 더 가까우신 것은 분명합니다. 저와 제가 하나이듯이, 그분도 그렇게 한 분이신데 저는 저하고 자주 갈등을 빚지만 두 분 사이에는 도무지 그런 일이 없으시니까요. 아니 없으신 것 같으니까요.”

ⓒ박홍기

마침 5월 17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시고, 500년 뒤에 예수가 태어났으니, 예수는 부처의 동생뻘이라고 말하면 외람된 표현일까? 형제지간에 한 분은 서방으로, 한 분은 동방으로 당신의 법력(法力, 진리의 힘)을 끼치셨다. 그런데 이 법력인즉, “전에 없던 신통한 묘수가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그렇게 나 있는 길을 일러주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현주 목사는 말한다. “종교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금강경>의 첫 마디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라는 뜻이다. 깨달음이란 “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뜨는 것”이라며, 그러니 아무도 “이렇게 나는 말한다”고 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예수 역시 공생활 중에도 틈을 내어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으셨다. 왜? 듣기 위해서다. 기도는 미주알고주알 하느님께 아뢰고 청탁을 넣는 것이라기보다 먼저 하느님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자는 ‘예언’을 했다. 그분을 따라 살았다. 이게 ‘천명’이고, 기도는 ‘지천명’(知天命)의 과정이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 당도한 하느님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나, 제 안의 불성을 불러일으키는 깨달음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깨닫기 위해 수행하기보다 복을 비는 걸 좋아한다. 미사 봉헌금을 넣은 봉투에는 어김없이 가족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원하는 글발이 선연하다. 사월 초파일 연등마다 가족 친지의 복을 비는 문구가 낭자하다. 복을 비는 가족 사랑이 충만한 곳에서, 복음서는 다른 복을 전하니, 난감하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있으며, 사람들이 미워하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부유하고 배부른 자들이 불행하다고 말하니, 곤혹스러울 뿐이다. 불교에서는 아예 복을 빌 만한 자기조차 없는 ‘무아’(無我)를 논하니 어찌하랴.

‘자신을 비우라’는 종지(宗旨)와 상관없이 제 복을 비는 마음이 종교에 머물면 ‘종교간 경쟁’이 발생한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라”는 명분은 무늬만 남는다. 물론 종교간 대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우아하게 종단 대표들끼리 마주앉아 ‘기분 좋은 선문답’을 나누며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사목헌장>은 좀더 실제적인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다.

“오로지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적절하고 지혜롭게 이루어지는 이러한 대화를 간절히 바라므로, 우리 편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의 드높은 가치를 고양하지만 그 원천인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또는 교회를 반대하고 여러 모로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까지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만물의 시작이시며 마침이시므로 우리는 모두 형제가 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이 동일한 인간적 신적 소명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어떠한 폭력이나 기만도 없이 진정한 평화 속에서 세계 건설에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하여야 한다.” (<사목헌장> 92항)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해 이웃종교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더 투명하고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기를 소망한다. 왈벗 뷜만은 “하느님은 선교사보다 먼저 오신다”고 말했다. 우리 조상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기 전부터 하느님은 조선 땅에서 일하셨고, 우리 방식으로 그분을 섬겼다. 이제 그 신앙을 가톨릭교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때로 그 신앙을 부처의 언어를 통해서도 들었고, 공자의 힘을 빌어 실천하기도 했다. 그 모든 은덕의 원천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믿는 게 신앙이다. 오늘 저녁 조계사의 고목에 무수히 걸린 연등이 깊은 어둠을 어떻게 아름답게 밝혀줄지 궁금하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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