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순-객토
추락한 논바닥에서
아침이 왼쪽 어깨로 오고 있다
황토 한 짐 부어놓고
햇살 지고 나오는
늙은 농부의 발에서 시작한 치토(埴土)
추위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산 한 자락 헐어
흙들이기 나간 아배는
땅내 맡고 나온 곰처럼 걷고 있다
연거푸 갈아엎은 꿈결에
어스름 감지 못한
애기동백꽃도 보았고
문수골 땅굴에서 흐느끼고 있는
빨치산의 눈물이
고드름 끝으로 떨어지는 날이면
서걱서걱 얼음 뜬 섬진강
해설피 건너오는 형님아
소리 내 불러보지도 못했다
바람이 떴다
삽날도 부러질 땅이 녹고 있다
황토 한 삽 떠서 재 너머 다랑논에
한 짐 한 짐 놓는다
형님아
옛집 잊어버리지 말고
아무 때든 잘 밟고 찾아오기나 해라
*정홍순-‘시와 사람’ 등단, 시집 “뿔 없는 그림자의 슬픔”, “물소리를 밟다”, “갈대는 바다를 품고 산다”, “바람은 갯벌에 눕지 않는다”, “향단이 생각”
*위 시는 문학세계 2023년 5월호에 실려 있는 것을 올려본 것입니다.
*해설피 : 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진 모양.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에서 쓰이는 말. - 해+설핏(하다) -의 결합. [설핏하다]는 해가 져서 밝은 빛이 약하다.
첫댓글 봄이 오는 소리에 농부의 삶은 바빠지고...
재 너머 다랑논에 한 짐 한 짐 놓을때 마다
강 건너 다가올 그리운 이 기다리네....
ㅎ, 회장님의 댓글이 너무 미려하네요.
행복한 금요일과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