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에서 들녘을 걸어
십일월 초순 화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다녀온 동선 따라 생활 속의 글을 쓰면서 ‘고니 선발대’도 남겨 지기들에게 아침 시조로 전했다. “입동을 사흘 앞둬 일교차 커진 날씨 / 발품 판 아침 들녘 안개가 짙게 끼어 / 눈 앞에 펼쳐진 전경 흑백 필름 같아라 // 물억새 일렁이는 주남지 둑길 걸어 / 수면을 바라보니 선발대 고니 한 쌍 / 네 마리 새끼 데려와 보금자리 틀었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교는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을 먼저 찾을 셈이다. 보름 전 거기서 빌려다 읽은 책이 대출 기한이 되어 반납해야 한다. 배낭 속에 대출 도서 3권을 챙겨 현관을 나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반송 소하천 냇바닥에는 텃새로 눌러사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헤엄치며 놀았다. 외양이 같아 암수 식별이 어려운 녀석은 금실이 좋아 번식기가 아니라도 늘 붙어 다녔다.
원이대로를 건너 창원 레포츠파크 동문을 지나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지났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전문계 공업고등학교 교정을 지나기까지 등교하는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과 인접한 기숙사 곁을 지나니 학생들은 아침 식사를 하러 줄을 지어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장차 우리나라 산업 현장 기술 분야에서 소질을 발휘할 젊은이들로 앞날이 기대되었다.
도서관은 9시부터 개관이 되고 업무를 시작하여 대출 도서는 현관 바깥 무인 반납기에 투입하고 창원대로로 나갔다. 안민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108번 시내버스를 타니 창원대로를 질주해 창원역으로 향했다. 아까 올림픽공원 활엽수에서 단풍이 물드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창원대로 가로수 벚나무와 중앙 분리대 조경수 느티나무는 서리와 무관하게 단풍빛이 물들어 갔다.
유등 강가로 가려고 창원역을 기점으로 삼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 기사는 일반 시내버스 기사보다 고령이거나 드물게 여성도 있는데 이번 기사가 여성이었다. 1번 마을버스와 일부 노선이 겹쳐 아침 출근 시간대라도 이용 승객은 적어 혼잡하지 않았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지난 상포에서 가술 국도로 접어들자 부동산 중개소로 출근하는 아낙이 내리니 혼자 남았다.
가술 거리를 지난 모산에서 북부리를 거쳐 유청마을에서 내렸다. 창고와 작은 공장이 들어선 마을 앞에서 들판으로 나가자 토마토와 딸기를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벼를 거두었거나 남겨둔 논은 콤바인이 굴러가면서 서둘러 수확을 마치지 싶다. 대산면 넓은 들판 벼를 가꾼 논에는 여름 농사보다 추수 이후 비닐하우스에 키우는 당근을 더 신경 써서 가꾸고 소득이 높을 듯했다.
주천강 물길이 유등 배수장으로 흘러가는 길고 긴 둑에는 밭작물을 심었다. 작물을 가꾸는 이들은 주로 고령의 여성들이었는데 힘든 농사일을 척척 해냈다. 참깨와 들깨를 가꾸고 콩이나 고구마나 고추까지 심었다. 여름에 땀 흘러 가꾼 작물은 대부분 수확을 마쳐 마늘이나 양파를 심어 돋아난 싹이 파릇했다. 텃밭처럼 가꾼 가을채소도 싱그럽게 자랐는데 무는 종아리가 굵어져 갔다.
우암리에 본동을 지난 덕현마을 들머리에서 농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걸었다. 벼를 거두지 못한 논도 보였다. 어제는 주남저수지 일대가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짧았는데 오늘 아침은 사위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들판이 끝난 전방으로 가술의 아파트단지와 제동리 주택들이 보였다. 왼쪽으로는 금병산이 에워싼 산기슭 아래로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숲을 이루다시피 빼곡했다.
농로를 따라 걸어 국도가 가까워지는데 이르니 중년의 농부 내외가 논바닥에서 무슨 작업을 했다. 콤바인이 굴러간 자국이 뚜렷한 곳에 고인 물을 작은 양수기로 물을 퍼내는 일이었다. 지난번 가을비치고 상당했던 강수량으로 논바닥에 괸 물로 트랙터가 진입 못해 뒷그루로 서둘러 심는 당근 씨앗 파종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농사는 하늘이 돕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