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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2007년).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 -
서울시립미술관은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2019년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기획전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뮤즈와 주변인을 그린 초상화를 비롯하여 로스앤젤레스 시기의 작품과 호크니의 예술에 있어서 가장 풍요로웠던 60년대 중반의 작업들은 물론, 80년대 이후 좀 더 실험주의자에 가깝게 변모한 호크니의 작품세계 등 호크니 전생애에 걸친 시기별 주요작을 통해 호크니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고전과 현대, 정통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서사가 담긴 작품으로 전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현대 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세계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예술가 중 하나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 출신으로 1960년대에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수영장, 정물 등을 비롯하여 인물 초상화를 다수 제작하며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호크니는 지난 60여 년의 긴 작업 여정 동안 작품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며, 예술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들을 제작해왔다.
미완성으로 남은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1972~1975)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2차원 평면에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가며 작품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회화, 판화,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장르와 더불어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 폭넓은 범주를 다루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전展은 작가의 아시아 지역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1950년대 초부터 2017년까지의 회화, 드로잉, 판화 133점을 선보이며 작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소장한 다수의 컬렉션과 그 밖의 해외 소장품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촉망받는 예술대학 학생 시절에서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현재까지, 호크니가 수많은 매체를 통해 보는 방식과 재현의 문제에 관해 어떻게 의문을 제기해왔는지, 총 일곱 개로 구성된 섹션을 통해 그 놀라운 행보를 추적해간다.
◇ GOLD&WISE july 2019 CULTURE _ FOCUS ◇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책>을 전시한 201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의 호크니.
그 누구도 아닌, 데이비드 호크니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멋모르던 10대부터 거장이 된 현재까지 그가 바라보고, 우리 시대가 사랑해온 호크니의 세상 속으로 빠져본다.
2018년 11월에 열린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972년에 발표한 작품 ‘예술가의 초상’이 경매가 1,019억원에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던 데이비드 호크니. 현재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즐기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보다 사물을 살피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호크니가 버스만 타면 담배 연기를 기꺼이 감수하며 위층으로 올라가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도,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11세에 이미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풍경과 사람, 사물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바라보기로부터 강렬한 즐거움을 얻는다”는 그의 이야기는 화가 호크니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려준다.
금발에 동그란 뿔테 안경, 화가 호크니의 탄생
1937년 영국 요크셔 지방의 소도시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10대 후반 브래드퍼드 미술학교에서 전통적인 그림 훈련을 받는다. 그곳에서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이나 물감의 표면처리와 색 다루는 방식, 드로잉의 중요성 등을 익힌 그는 1959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왕립예술대의 학생 시절, 호크니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을 그릴까였다. 그 당시 미술계는 잭슨 폴록,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한창이었고, 유럽에서 는 프랜시스 베이컨, 장 뒤뷔페, 알베르토 자코메티 같은 화가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미술학도가 이들의 영향을 받았고, 호크니도 마찬가지여서 1학년 때는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몇 점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호크니는 이내 자신이 배운 전통적인 구상미술에도, 당대의 미술 사조인 추상표현주의에도 점차 저항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린 파블로 피카소의 대규모 전시는 같은 전시를 8번이나 다시 볼 만큼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특히 하나의 양식에 대한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횡단하는 피카소의 작업 태도에 깊이 매료되어 이후 성(性)과 사랑을 주제로 다루거나 입체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아 작품에 문자를 넣기도 하고, 같은 제목의 작품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기도 했다. 돈이 없어 회화 작업이 어려울 때는 에칭 판화를 제작하는 등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탄탄히 쌓은 그는 훗날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금발에 동그란 뿔테 안경이라는 화가 호크니의 트레이드마크를 완성한 데 이어 1962년 왕립예술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졸업 후 1년 만인 1963년(26세)에 첫 개인전을 열며 명성을 얻기에 이른다.
‘수영장 화가’ 호크니
짐작하건대, 1964년은 호크니 인생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큼 특별한 해였을 것이다. 그해 1월, 처음 미국 LA를 방문한 호크니는 궂은날이 잦은 영국과 달리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과 자유로운 분위기에 반해 이곳으로 이주를 결정한다. 이후 스스로를 ‘영국 LA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로 오랜 세월 LA에 머물며 다양한 작업을 한다. 특히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수영장 시리즈와 ‘2인 초상화 시리즈’가 이 시기에 그려졌다.
‘더 큰 첨벙’(1967), ‘예술가의 초상’(1972) 등 ‘수영장 시리즈’에서 물의 투명성과 빛에 반사되는 짧은 순간을 포착해 그래픽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배처디’(1968),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1971) 같은 ‘2인 초상화 시리즈’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을 오래도록 세밀하게 관찰해 그렸다. 재료는 이전 세대가 주로 사용하던 유화 물감 대신 고르고 얇게 발리면서도 광택이 풍부한 아크릴 물감을 선택했다.
자연주의 회화라 일컫는 이 시기의 작품은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절정으로 이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정에는 언제나 위기가 찾아오는 법. 실제 호크니는 1972년 또 하나의 2인 대형 초상화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에 착수하지만, 10년 가까이 몰입해온 자연주의가 어느 순간 역으로 덫이 되고 있다고 느껴 결국 1975년 이 작품을 미완성 상태로 남긴다.
호크니, 피카소와 마주 앉다
자연주의의 덫이라는 위기에서 호크니를 구한 것은 또다시 피카소였다. 1973년 피카소의 사망은 호크니에게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하는 태도를 다시금 일깨웠다. 그는 피카소와 자신을 그린 ‘화가와 모델’(1973~1974)에서 스스로를 벌거벗은 모델 역할로 표현함으로써 피카소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드러낸다. 그뿐만 아니라 피카소의 일련의 작업처럼 하나의 그림에 다양한 방식의 드로잉과 여러 종류의 판화 기법을 녹여내 자연주의의 제약이 가져온 위기에서 벗어난다.
양식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를 되찾은 호크니는 이후 거침없는 행보에 나선다. 그가 ‘움직이는 초점’ 시리즈라고 부르는 ‘호텔우물의 경관 Ⅲ’(1984~1985) 같은 작품을 통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어떻게 재현할지 몰두하는가 하면, ‘콜라주 자체가 드로잉의 한 형식’이라 여기고 1980년대 그의 대표 작업 중 하나인 ‘포토콜라주’에 매진해 ‘스티븐 스펜더’(1985), ‘피어블로섬 하이웨이’(1986) 같은 작품을 제작하는 등 초상화부터 정물화, 실내 풍경까지 내용과 양식의 제한 없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채롭게 소화한다. 또 1960년대부터 일찍이 드로잉 작업에 사진을 활용한 그는 판화를 컬러복사기로 만들거나 비엔날레에 출품할 자신의 작품을 팩스기로 보내거나 컴퓨터 드로잉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작업에 응용하고자 했으며, 공연 분야에도 뛰어들어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의 무대 미술과 의상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한다.
다재다능한 끼를 다방면에 걸쳐 마음껏 펼쳐 보이는 호크니의 모습을 좇다 보면, “호크니의 강점 중 하나는 실패할 위험이 있더라도 기꺼이 새로운 매체나 문맥으로 확장시키려고 노력한다”는 호크니의 예술 세계와 삶을 다룬 책 <데이비드 호크니>를 쓴 저자 마르코 리빙스턴의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가 호크니는 아직 멈추지 않는다
6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림에 매진해온 호크니는 그사이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나는 향수에 잠기는 타입이 아니다. 그저 현재를 살 뿐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늘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다.
언제나 화가로서 자유로운 태도를 추구한 호크니는 캔버스의 크기도 한계로 여기지 않았다. 20~30대에도 캔버스 여러 개를 자르고 이어 붙여 새로운 형태로 만들거나(‘두 번째 결혼’(1963)), 캔버스 테두리에 여백을 남겨 액자처럼 보이게 하거나 (‘더 큰 첨벙’(1967)), 반대로 액자 테두리까지 캔버스로 삼아 그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이런 방식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의 멀티 캔버스 작업으로도 이어져 캔버스 60개에 그랜드캐니언의 광활한 풍경을(‘더 큰 그랜드캐니언’(1998)), 전체 크기가 세로 457.2㎝, 가로 1,220㎝에 이르는 초대형 멀티캔버스에 고향 요크셔주의 모습을 담았다(‘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회화’(2007)). 그리고 2009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던 중에 호크니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바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것.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린 작품을 매일같이 지인에게 전송하는 것을 넘어 작품을 모아 전시까지 개최해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에도 사진 3,000장을 디지털 기술로 이어 붙인 새로운 작품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2017)를 선보일 만큼 화가 호크니는 여전히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올해 나이 83세, 어느덧 노장 화가가 된 그의 다음 작품이 여전히 궁금한 것은 버스의 가장 앞좌석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던 어린 호크니의 눈이 아직도 세상을 향하고 있노라 믿기 때문이 아닐지. 호크니가 보여줄, 호크니가 본 다음 세상이 새삼 기대된다. 에디터 조정화 참고 도서 <데이비드 호크니>(마르코 리빙스턴 지음, 시공아트 펴냄), <다시, 그림이다>(마틴 게이퍼드 지음, 디자인하우스 펴냄)
◇ GOLD&WISE july 2019 CULTURE _ GALLERY ◇
눈부시게 청량한 호크니의 세계
지난 3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연일 화제다. 오픈 석 달 만에 관람객 22만여 명이 찾았다. 아직도 주말마다 표를 구매하고, 전시를 관람하려는 이들이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는지, 호크니의 대표작을 살펴본다.
*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 캔버스에 아크릴릭, 242.5×243.9cm 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1967, Acrylic on canvas, 242.5×243.9cm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물을 연구하다 ‘더 큰 첨벙’(1967)
1937년 영국 요크셔주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1964년 처음으로 미국 LA를 방문한다. 잿빛 하늘에 우중충한 날씨가 대부분인 나라에서 살던 호크니는, 매일 부드러운 햇살이 내리쬐고 모든 집마다 아름다운 수영장이 딸린 도시에 매료됐다. 이후 LA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호크니는 이 도시의 자유로운 요소 중 ‘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표현법을 연구한다. ‘수영장으로 쏟아지는 물, 샌타모니카’ (1964), ‘샤워하는 남자, 베벌리힐스’(1964), ‘잔디밭의 스프링클러’(1967) 등이 그 예다. 물의 연속성과 추상성에 집중해 여러종류의 푸른색으로 민무늬, 꽈배기 형태, 불규칙한 점선, 어지럽게 교차되는 곡선으로 물을 형상화했다.
숱한 연구와 실험 속에서 탄생한, 널리 알려진 호크니의 작품 중 하나가 ‘더 큰 첨벙’(1967)이다. 파란 하늘, 파란 수영장 뒤로 선홍색 건물과 의자가 보인다. 네모반듯한 건물의 창문에는 반대편 건물이 비치고, 야자수도 건물처럼 곧게 뻗어 있다. 뜨거운 햇볕에 말라버린 듯 정적으로 느껴지는 그림에서 방금 물속으로 누군가 들어가 첨벙거린 역동적 물살에 먼저 눈길이 간다. 누가, 언제, 어떻게 물속으로 들어간 걸까? 다양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정적인 요소를 통해 동적인 순간을 필연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 바로 호크니가 의도한 포인트다.
실제로 호크니는 뒤쪽 건물보다 물보라를 그리는 데 더 집중했다. 수영장 표면, 건물 등은 롤러로 작업해 불투명하게 덧대었지만, 물은 작은 붓으로 섬세하게 하나하나 그려 넣었다. 물방울마다 서로 다른 각도와 투명도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분을 완성하는 데만 2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1972년에 그린 ‘예술가의 초상’은 호크니가 줄곧 연구해온 수영장과 두 인물의 초상을 모두 담은 작품으로 지난해 11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1,019억원에 팔리며 그의 인기를 입증했다.
*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304.8cm David Hockney, Mr. and Mrs. Clark and Percy, 1970–1, Acrylic on canvas, 213.4×304.8cm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애정이 깃든 초상화에 뽑혔다.
1968년부터 호크니는 자신의 주변 사람을 그림에 등장시킨다. ‘클라크 부부와 퍼시’의 모델 오시 클라크와 셀리아 버트웰 부부는 호크니가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섰을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부부는 런던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로 비틀스, 롤링스톤스 등 당대 유명 팝 가수들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호크니는 결혼식 이후 사진을 찍고, 드로잉을 하면서 이 작품을 구상한다.
그림은 실물과 가까울 정도로 크게 제작됐지만, 관람객을 압도하는 위엄은 없다. 그림 속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색감도 전체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이다. 인물 외에 고양이, 액자, 테이블 위의 백합에도 온화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한낮의 런던 신혼집이 배경이다. 부부가 포즈를 취하고, 중앙에 열린 큰 창문으로 길가의 가로수가 보인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고, 임신한 것으로 알려진 여자는 고급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남자는 앉고, 여자는 서 있는 일반적이지 않은 구도를 통해 호크니는 이들의 순탄하지 않은 관계를 암시한다. 실제로 클라크 부부는 결혼한 지 4년 만에 헤어졌다.
또 다른 2인 초상화 ‘나의 부모님’(1977)의 모델은 호크니의 실제 부모님이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그린 그림에도 호크니의 의도는 숨어 있다. 어머니는 꼿꼿한 자세로 다정하게 정면을 응시하지만, 참을성 없는 아버지는 구부정하게 앉아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다소 냉랭해 보여도 호크니는 결혼한 지 45년이나 된 오랜 부부는 말없이 표정과 행동만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미국 사회는 추상표현주의가 절정을 이뤘지만, 유행과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자연주의’ 스타일로 나이 든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았다.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과도 비슷한 이 그림은 2014년 영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1위에 뽑혔다.
* 데이비드 호크니, 호텔 우물의 경관 Ⅲ, 1984–5, 석판화 Richard Schmidt David Hockney, Views of Hotel Well III, 1984–5, Lithograph, Edition of 80, 123.2×97.8cm ©David Hockney/Tyler Graphics Ltd.,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성실한 도전 ‘호텔 우물의 경관 Ⅲ’(1984~5)
호크니는 현재 80세가 넘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디지털 매체와 기법을 탐구하고 작품에 활용한다. 요즘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 카메라가 보급되던 시기부터 스케치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 구도를 익혔고, 판화와 포토 콜라주 작업에 집중한 시기도 있다. 호크니의 작업 과정 영상이나 다량의 드로잉을 보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연습하고, 연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2인 초상화 작업 이후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피카소의 영향으로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나라 병풍 같은 중국 두루마리 회화도 그의 ‘움직이는 초점’ 시기에 영향을 줬다. 눈으로 보이는 3차원의 공간을 어떻게 2차원의 평면, 캔버스에 옮길지가 새로운 관심사였다.
1982년 2월, 호크니는 멕시코에서 열리는 개인전 방문을 위해 이동하던 중 차가 고장 나 아카틀란의 한 호텔에 머물게 된다. 그는 강렬한 색감의 호텔 풍경에 사로잡혀 일을 마치고 돌아와 5일을 더 이곳에 머문다. 여기에서 ‘원근’, ‘기억’, ‘공간’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복합적이고 컬러풀한 실내 풍경을 그린다. 그림 가운데 우물이 자리하고, 그 주위를 노란색 기둥이 둘러싸고 있다. 볼록거울에 비춘 것처럼 기둥이 앞으로 튀어나왔고, 좁고 긴 구도는 실제 우리 시야에 잡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원근법을 역으로 이용해 관객의 시선이 작품을 따라 이동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 변화한다.” 호크니는 오랜 관행처럼 여겨온 원근법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다시점과 공간 묘사에 몰두했다.
*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 2007, 50개의 캔버스에 유채, 457.2×1,220cm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
거대한 캔버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2’ 007)
가로 12m, 세로 4.6m로 캔버스 50개를 붙인 이 그림은 호크니의 작품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고향인 요크셔주에 머물면서 그가 사랑했던 고흐처럼 매일 밖에 나와 나무와 길, 나뭇가지를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다. 거대한 크기지만 완성하는 데 6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림은 멀찍이 뒷걸음질해야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크다. 가까이 다가가니 마치 나무 옆을 걷는 듯하다. 한참 큰 나무와 앙상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우는 것 같다.
1990년대 초 호크니는 사람들이 멋진 풍경을 평면인 사진으로만 보고, 공간의 아름다움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진 촬영과 컴퓨터 기술을 작품 활동에 적극 도입한다. 야외에서 작은 노트에 스케치하고, 그것을 스캔해서 포토샵으로 이어 붙인다. 그림을 인쇄해 색칠하고 다른 부분도 같은 과정을 반복해 붙이면 하나의 큰 사이즈 그림이 완성된다. 그는 이 작품을 여러 번 그렸다. 처음에는 캔버스 2개 사이즈로, 다음에는 6개짜리, 마침내 50개의 캔버스를 붙여 완성했다. 일상의 웅장함을 2차원의 화폭에 옮긴 작업이었다.
이보다 전에 그린 대규모 작품으로 캔버스 60개를 모은 ‘더 큰 그랜드캐니언’(1998)이 있다. 호크니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경쾌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사진 3,000장으로 파노라마를 만들어 자신의 스튜디오 풍경을 보여주는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2017)는 아직 테이트 미술관에서도 선보이지 않은 것으로, 호크니에게 기증받자마자 한국으로 가져왔다. 그는 큰 그림을 통해 하나의 시점에만 국한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각각 다른 시선, 기존의 원근법을 무시한 그림이 모이자 눈앞에 요크셔의 나무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그랜드캐니언이 펼쳐졌다.
동시대 예술가 중 가장 영향력 있고 사랑받는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국내 첫 개인전은 8월 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계속된다. 과감한 실험을 성실하게 도전해온, 늙지 않는 노장 예술가의 폭넓은 예술 세계를 만나보자.〈에디터 이지윤〉
관람료: 유료(1만5천원〜8천원), 전시 예매: 1899-0042, 멜론티켓: ticket.melon.com, 전시 문의: ARS 1833-8085, 단체 도슨트 신청 문의: 02-323-4501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정보) [이영일/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