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이 주연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던 2016년 개봉작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원작은 2007년 출간한 기욤 뮈소의 소설이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면서 가로등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일제히 켜졌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뒤죽박죽 얽혀있었지만 그는 지난 이틀 동안 벌어진 일을 차례차례 떠올려보았다. 일리나와의 언쟁, 공항에서 만난 남자, 구하지 못한 애너벨……. 왜 항상 인생이 내 통제권 밖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느낌.’
마흔을 넘어선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장년층이 느끼는 복잡한 심정과 일치하는 것 같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남은 것이 없고, 박탈감이 더해지는 이유는 출발선부터가 공정하지 못한 부동산 시장이 한몫한다.
진보는 큰 정부를, 보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이 때문에 보수는 ‘시장에 맡기자’는 말을 자주한다. 그럼에도 사실 역대 보수정부는 부동산 시장에만큼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산 버블을 유도했다. 참여정부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자산 버블에 기여했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누군가는 규제만이 답이라고 말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규제를 풀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부동산은 우리나라 경제사회 체제가 갖는 모든 모순을 품은 암 덩어리가 됐다. 어딜 손대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은 전보다 관심이 줄었다고 해도 아파트 청약통장이 웃돈을 주고 거래되고, 아파트 분양가는 여전히 내려가지를 않는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왜 이렇게 가격이 높아졌을까.
수요와 공급의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땅 넓이에 비해 인구가 많아서 그런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학교에서 우리나라는 산지가 70%고 평지가 30%라고 배운다. 평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 전국 토지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면적은 3% 밖에 안되고 공장부지와 도로로 합치면 6% 정도밖에 안 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많은데 왜 이렇게 집값이 비쌀까. 정부가 주택으로 사용 가능한 땅의 공급을 경직적으로 통제하고 가격 부양정책을 쓰기 때문이다. 토지 사용규제가 너무 경직적이고 대규모 택지개발 지정권을 정부가 독점하다 보니 중앙정부가 지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집이 부족해도 농지를 주택 지역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이 가운데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주택 수요도 빠르게 늘어났다. 이런 환경에서는 설사 정부가 정책적으로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는다 해도 부동산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 전답을 택지로 만들어 길을 내고 집을 짓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항상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셈이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 미국 LA에서 집값이 엄청나게 폭등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국방부 예산을 늘리며 방위산업이 몰려있던 LA의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택지를 개발하고 집을 지어야 하는데 집 짓는 속도가 지역 경기호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집값이 1980년대 후반에 거의 두 배로 뛰었다. 그리고 나서 1990년대 들며 집값이 안정됐다. 국지적인 경기호황이라 자재나 건설인력을 다른 지역에서 동원하기 쉬운 미국에서도 경기가 좋으면 주택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전국적인 경기호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됐던 곳이다. 늘 주택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한 편이었다. 게다가 소득도 꾸준히 증가했으니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장을 보인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경직적인 공급규제와 소득증가에 따른 수요의 폭발적 증가 두 가지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불러왔다. 거기에 세제상 이점이 많다 보니 양극화가 시작됐다. 다른 재산 상품에 비해 소유자가 노출이 잘 안 되다 보니 세금도 거의 안 내고 부동산을 보유할 수있었다 나중에 차익을 보고 팔아도 세금이 적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다들 부동산에 묻어 놓는 게 좋다고들 했다. 전국적으로 30년이 지나도 '당신(부동산 가격), 거기 있어줄래요'라는 부탁 자체가 먹히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 거다.
이 가운데도 진보가 현재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버블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도 결국 수요의 문제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