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1755년 11월, 프랑스 리스본에서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그 때가 바로 모든 성인에게 제사를 지내는 만성절이었다.
교회는 신도들로 붐볐고, 죽은 이만 3만 명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볼테르의 표현대로
“죽음은 적이 밀집해 있는 것을 알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갔다.”
지진 소식을 들은 프랑스의 성직자들이
“이 재난은 리스본 주민들의 죄에 대한 벌‘이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격분한 볼테르는
다음과 같은 긴 시를 지었다.
“나는 거대한 전체의 하찮은 부분.
그렇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역시 엄격한 법칙에 따라 태어난 모든 유정有情한 것들은
나처럼 고생하다가 나처럼 죽는다.
매는 가련한 먹이를 덮쳐서
피에 굶주린 부리로 벌벌 떠는 사지를 찢는다.
매에게는 만사가 순조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시 후에
독수리가 매를 찢어발긴다.
한편 인간의 화살이 독수리를 꿰뚫는다.
싸움터의 먼지 속에 쓰러져 있는 인간은
자기 피를 죽어가는 동료의 피와 섞으며,
이윽고 굶주린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와 같이 세계는 구석구석 신음소리가 가득차고
모든 것은 고통을 위해, 서로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
이 무시무시한 혼란을 보고 그대들은 말하리라.
각각의 재난은 전체의 선善이 된다고,!
이것은 무슨 축복인가! 떨리는 목소리로
죽어야 할 가련한 그대들이 ‘만사형통萬事亨通’ 이라고 외칠 때,
우주는 그대들을 기만하고 그대들의 마음은
수없이 그대들의 정신의 자부심을 힐난한다......
신의 판결은 무엇인가?
말이 없구나. 운명의 책은 우리들에게는 닫혀 있다.
인간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죽음에 먹히고 운명의 조롱을 받는,
진흙 속에서 몸부림치는 원자일 뿐,
그러나 생각하는 원자이고, 아득한 곳을 꿰뚫어보는 눈은
사상의 인도를 받아 아득히 먼별의 궤도를 측정한다.
우리의 존재는 무한자와 융합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이 세계, 이 자만과 부정의 무대에는
행복을 말하는 병든 바보들이 들끓고 있다.
일찍이 나는 노래했다.
즐거움 넘치는 밝은 삶을
세월이 바뀌고 늘어나는
나도 덧없는 인간임을 깨닫고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며
오직 괴로워할 뿐, 탄식하지 않는다.
볼테르 이전에도 사람들은 아래의 질문(?)을 가지고 괴로워했다.
“신은 재난을 방지할 수 있는데도 방지하려고 하지 않는가?
또는 재난을 방지하고 싶지만 방지할 능력이 없는가?”
그리고 장자끄 루소가 볼테르의 글에 답했다.
“이 재난에 대해서는 인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인간이 도시에 살지 않고 야외에 살았다면
이렇게 대규모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며,
만일 인간이 옥내에서 살지 않고 옥외에서 살았다면,
집이 인간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루소의 말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그 자신의 이름이 먼지 속에 파묻히는 것을 보고
사흘 만에 완성한 책이 <깡디드>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도 인간은 재난에 속수무책이고,
신은 인간들의 고통에 무표정하다.
아니 신이 있는지, 있는지 모르는데도
신을 맹목적으로 믿다가 신을 빙자한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분노는 나의 힘>이고 <슬픔도 나의 힘>일 때가 있다.
봄이라고 꽃은 피는데, 세상은 시종여일하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2023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