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는 왕에게 올리는 신하의 간언 잘못된 정책 막아야 제 구실 하는 것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선언처럼 현장의 절실한 요구 제대로 전달해
백성들 생활 좋아지게 만들어주길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양날의 칼이었다.
지난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꺼낸 최저임금 관련 얘기다.
한쪽은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과였다.
노동계를 포함한 지지층을 겨냥한 말이다.
다른 쪽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고려해 어렵게 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토로였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에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경영계나 보수층 등 비판 그룹에 던진 말이었다.
나는 문 대통령의 두 메시지 가운데 속도 조절 선언에 더 눈길이 갔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을 앞두고 편의점가맹점협회 구성원들에게서 나온 구호는
어느 비판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려면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는 외침은 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급소를 찌르는 비수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일선에서 터진 절규에 가까운 반발을 보고도 무시해 버린 채 밀어붙이기만 할 수는 없지 않았겠나.
속도 조절을 내비친 대통령의 토로는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관심은 누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만들었을까에 모아진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상황에 영향을 줬다고 인정한 김동연 경제부총리였나.
새로 선임돼 갓 일을 시작한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었을까.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확인하고 궤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바꾼 기존의 참모일까.
구체적으로 누구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요지부동이던 문 대통령을 과거 왕에게 상소하는
신하의 심정으로 설득한 결과였기를 기대한다.
上疏는 주군에게 아뢰는 글이나 말이다.
신하의 몫이다.
간절한 하소연이다.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비옵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또다시 간청하오니 처분을 내리시어 공사를 다 편하게 해주소서.
상소에 담긴 신하의 읍소는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실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주군을 꾸짖는 것이었다.
신라부터 조선까지 우리의 역사와 진부터 청까지 중국 역사에서 손가락에 꼽힐 상소를 모아 엮은 책
'선비 왕을 꾸짖다'는 의미 있는 여러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저자 신두환 안동대 교수의 설명을 보면 이렇다.
상소에는 지혜와 기교가 필수였다.
왕이 듣고 싶어하거나 듣기 좋아하는 내용도 필요했지만 당연히 듣기 싫어하는 내용이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좋은 일을 고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쁜 일을 고할 때는 왕이 싫어도 듣게 해야 하니 명문이어야 했다.
올린 글로 기분이 상한 왕이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않게 각별히 조심해 심혈을 기울였다.
어떤 경우엔 죽음을 무릎쓰고 간했다.
도끼를 들고 올리는 지부상소(持斧上疏)는 거슬리면 목을 쳐도 좋다는 충정의 표시였다.
주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입을 수도 있는 후환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 담겨 있다.
직설의 정직함도 넘쳐난다.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잘못을 지적한 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장과 문장을 이어가는 논리, 설득을 위한 적합한 비유. 당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 진단이 어우러져야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속도 조절을 선언하기는 했어도 그동안의 밀어붙이기에서 생긴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게 불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는 18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 전망치를 종래 32만명에서 18만명으로 확낮춰 잡았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달라왔는데 아파도 너무 아픈 후퇴다.
더 나쁜 상황으로 곤두박질치는 걸 막으려면 다른 정책에서의 속도 조절 선언이 또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야 한다.
신하의 상소가 제 구실을 하려면 주군의 마음을 움직여 잘못 가고 있는 정책의 방향을 틀게 해야 한다.
각 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몸을 던져 할 일이다.
왕을 꾸짖은 신하의 심정으로 苦言을 토해 내기를 주문한다.
그것이 백성의 생활을 좋아지게 하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말길 바란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