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받아 들고
입동을 하루 앞둔 십일월 첫째 수요일이다. 가을에 들어서도 지속되던 늦더위에 시달렸는데 이제 계절의 시계추가 정상으로 작동되는 듯하다. 올가을 들어 수은주가 처음으로 10도 아래로 내려간 아침이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102번 시내버스로 자연학교로 등굣길에 올라 소답동으로 나가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김해 외동 터미널로 오가는 140번 버스로 갈아탔다.
근교의 일터나 김해 시내까지 가는 이들과 같이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지구대를 지나니 창원 경계를 벗어난 진영 좌곤리였고 연이어 아파트단지가 속속 나왔다. 부곡마을에서 내려 경전선 폐선 철길에 꾸며진 공원을 거닐다가 지난봄 봐둔 분재원의 수형이 특이한 모과나무를 살펴봤다. 주인장이 가지를 잘라 둥치만 남겨 키워 눈길을 끌었는데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노랗게 익어갔다.
아파트단지에서 진영공설운동장과 청소년수련관을 둘러 주천강 강변 조성된 주호공원을 지났다. 주호공원은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아침 산책에 알맞은 코스였다. 내가 몇 차례 들린 밀포마을로 가는 다리도 보였는데 건너지 않고 국도 옛길에 놓인 주천교를 건넜다. 주남저수지에서 흘러온 물길이 남포에서 갈래가 나뉘어 샛강이 되어 천변에 상포와 중포를 거쳐온 배수장이 나왔다.
대산 들판 빗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면 강으로 퍼 넘기는 장구산배수장 맞은편 진영의 아파트단지 인근은 규모가 더 큰 배수장이 보였다. 봉하마을 앞으로 우회하도록 새로운 찻길이 뚫린 굴다리를 지나자 대산 우암리 들녘이 펼쳐졌다. 멀리 바라보인 야트막한 월림산을 등지고 촌락이 형성되어 바깥으로는 주천강과 4번 국도가 에워싼 들판이라 외부와는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샛강이 흘러오는 제방 가장자리는 텃밭이 조성되어 작물을 가꾸었다. 지난여름 어느 날 아침 그곳을 지나다가 한 노인이 들깨가 무성해 웃자란 순을 잘라주어 싱그런 잎을 거두어 찬으로 삼은 기억이 났다. 그 밭뙈기 들깨는 여물어 수확을 마쳤고 이웃한 깨밭에 일찍 심어둔 마늘은 싹이 돋아 파릇했다. 김장용으로 삼을 배추는 결구가 되고 청청한 잎을 단 무는 종아리가 굵어졌다.
고추를 심어 수확을 마친 밭뙈기는 고춧대를 뽑아 눕혀 시들어 말라갔다. 천변은 오래전부터 어디선가 실려 왔을 모래흙이 켜켜이 쌓인 충적토로 기름진 땅이었다. 고추를 가꾸느라 보태진 두엄이나 비료의 유기질이 남은 상태에 방가지똥이 싹 터 자랐다. 방가지똥은 두해살이로 가을에 싹을 틔워 겨울을 넘겨 이듬해 봄에 폭풍 성장을 해서 여름에 꽃을 피워 일생을 마침에 상례다.
민들레처럼 로제트형으로 자란 방가지똥 순은 야생에서 구하는 찬으로도 좋아 상추나 쑥갓을 대체하는 쌈 채소로 삼아 먹어도 된다. 지난봄 근교 산야에 자란 방가지똥 순을 잘라 두어 차례 식탁에 올렸다. 배낭의 칼을 꺼내 시든 고춧대 사이에 자라는 방가지똥 순을 잘라 모았다. 방가지똥 순을 가을에 캐 보기는 처음이었다. 양이 제법 되어 귀로에 꽃대감 친구와 나누어도 될 듯했다.
중포마을이 가까워진 비닐하우스에는 꽃을 가꾸었다. 비닐에 물방울이 서려 무슨 꽃인지 궁금했는데 마침 농막에 자른 꽃송이를 포장하는 중년 주인장 부부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안주인은 지난번 다른 구역 안개꽃 농장에서 뵌 기억을 떠올렸다. 가시 없는 장미처럼 보인 꽃은 리시안셔스였다. 용담과로 도라지꽃과도 비슷했는데 장식 절화용으로 인기리에 재배되는 꽃이었다.
꽃을 피사체로 삼은 사이 주인 아낙이 생화를 한 다발 안겨주어 황송했다. 앞서 채집한 방가지똥 순과 같이 양손에 들었다. “진산로 국도 따라 주천강 갈래 천변 / 사계절 비닐 씌운 하우스 화훼 농원 / 주인장 손길이 키운 꽃봉오리 펼쳤다 // 지난번 산책길에 그 농장 지나다가 / 가볍게 건넨 인사 기억을 되살려서 / 다발로 꽃을 안겨줘 황송하게 받았다” ‘우암리 화훼농장’ 전문. 2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