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사본의 비밀:전쟁두루마리 [The War of the Sons of Light Against the Sons of Darkness, ― 戰爭]
(히) Megillat Mil?amat B'ne/Beb'ne ?oshekh. 전쟁규칙, 전쟁 두루마리라고도 함.
BC 2세기 전반 유대 사막에 쿰란 공동체를 세운 유대교의 에세네파가 남긴 매우 중요한 문서.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D%95%B4_%EB%AC%B8%EC%84%9C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7468&cid=799&categoryId=3270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동굴
전쟁두루마리(좌)와 찬양집(우)
사해사본중 전쟁두루마리
전쟁두루마리의 대부분은 미공개 되어있슴
내용 탄소 측정법과 문서에 대한 분석, 글씨체에 의해 사해 문서들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대선지자 이사야 문서는 기원전 335년에서 기원후 107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한다. 사해 사본 이외에는, 십계명이 담겨 있는 이집트의 Nash 파피루스 정도가 이에 비견할 만한 오래된 순서였다. 비슷하게 쓰인 문서들이 근처, 특히 마사다 요새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일부 문서는 파피루스에 쓰여 있고, 많은 문서들이 갈색 동물 가죽 위에 쓰여 있다. 탄소 계열의 재료로 만들어진 잉크로 새의 깃털촉으로 쓰였다. "구리 두루마리"라 이름 붙인 문서는 종이처럼 얇은 구리판에 기록되어 있다. 사해 문서 가운데 80% ~ 85%는 각각 고전(또는 성서) 히브리어, 사해 문서 히브리어와 원시 탄나이트(미쉬나) 히브리어로 불리는 3개의 히브리어 방언들로 쓰였다. 일부 문서는 아람어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이기도 했다.
아마겟돈 최후의 전쟁
발견 과정, 각 동굴의 문서들 사해사본 두루마리들은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되었고, 쿰란 주거지에서 적게는 125m (제4동굴)에서부터 1km (제1동굴)까지 떨어져 있다. 사람이 살던 주거지에서 발견된 문서는 없다. 염소와 양을 치는 베두인 모함메드 아흐메드 엘-하메드 (별칭 에드-디브, "늑대")가 1947년초에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양치기가 잃은 동물을 찾기 위하여 돌멩이를 동굴로 던졌는데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나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오래된 항아리에 들어있는, 면에 싸여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존 트레버 박사는 무함메드 에드-디브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 사람과 인터뷰를 했지만 모두 기본적으로는 이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 변형된 이야기들이었다고 한다. 이 두루마리들은 골동품 상인인 이브라힘 이즈하(Ibrahim 'Ijha)가 베들레헴에 가지고 들어왔으며, 시나고그에서 훔쳤다는 의혹 때문에 그들에게 돌려 주었다. 그 후 이 문서들은 칸도라고 불린, 칼릴 에스칸더 샤힌(Khalil Eskander Shahin, "Kando")이라는 도굴꾼이자 골동품 상인에게 넘어갔다. 처음 베두인들이 이 문서를 발견했을 때에는 세 개의 두루마리를 꺼냈는데, 칸도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나중에 동굴에 다시 들어가 더 많은 문서들을 꺼내오게 되었다. 또, 어떤 이들은 칸도가 적어도 네 개의 두루마리를 불법적으로 발굴했다고 하기도 한다. 베두인에게서 건네받은 문서들은 제 삼자에게 흥정을 통해 넘어갔다. 그 중 하나는 시리아 정교회의 일원인 게오르게 이샤야(George Isha'ya)였고, 그는 곧 이 문서의 정체를 문의하기 위해 성 마가 수도원에 접촉했다. 이러한 발굴 소식은 메트로폴리스 주교 아타나시우스 예수에 사무엘(Athanasius Yeshue Samuel)---또는 마르 사무엘(Mar Samuel)이라고 더 잘 알려짐---에게 전해졌다. 문서를 조사하고 나서 오래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마르 사무엘은 이를 사는 데 관심을 보이게 된다. 4개의 두루마리들을 곧 사게 되며 이들은 현재 유명한 이사야 스크롤 (1QIsa)과, 공동체 규칙, 하박국 페샤르(하박국 주석)과 창세 묵시록이다. 또다른 두루마리들이 고문서 시장에 나돌았으며,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이면서 히브리 대학의 교수인 엘레이저 수케닉(Eleazer Sukenik)교수가 3개의 두루말이를 얻게 되었다. 이들은 전쟁 두루마리, 추수감사 찬송과 이사야 문서의 단편들이었다. 1947년 말까지, 수케닉은 마르 사무엘이 가지고 있는 문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들을 사려고 시도했다. 정말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고, 대신 미국 동방 연구소(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ASOR)의 존 트레버 박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트레버 박사는 이 문서의 구절들을 당시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인 내쉬 파피루스와 비교했고 이 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트레버 박사는 아마추어 사진가로도 열정이 있었다. 그는 마르 사무엘을 1948년 2월 21일에 만나 두루마리의 사진을 찍는다. 나중에 어떤 사진은 사본 자체보다 보관 상태가 더 좋기도 했다. 사본들의 면 커버를 제거하고 나서 사그러졌기 때문이다. 그 해 3월에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 안전을 위해 문서들을 이동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으며, 곧 베이루트로 옮겨졌다. 1948년 9월 초, 마르 사무엘은, ASOR의 새 소장인 오비드 셀러스에게 새롭게 얻은 사본들의 단편을 가지고 간다. 그 해 말, 학자들은 사본이 발견된 동굴의 위치를 알아내게 된다. 당국에서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에,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셀러스는 시리아인들의 도움을 받아 동굴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하지만, 셀러스가 주겠다고 한 돈보다 더 비싼 돈을 요구했다. 제1동굴은 결국 1949년 1월 28년에 국제 연합의 조사관에 의해 발견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WZ831VD95g8
http://www.youtube.com/watch?v=eulsXOBvvWU
에세네파는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선택받은 거룩한 자들, 즉 종말에 이스라엘의 원수인 어둠의 아들들과 처절한 전쟁을 벌이게 될 빛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했다. 1947년 쿰란의 제1동굴에서 발견한 〈전쟁 규칙 War Rule〉은 군사조직 및 전략 지침서로 전투 장비와 신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에세네파의 〈훈련 지침서 Manual of Discipline〉에 언급되어 있는, 진리의 영들과 타락한 영들에 관한 교리를 발전시킨 신학 논문이기도 하다. 그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는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 간의 40년에 걸친 '성전'에는 지상의 군대뿐만 아니라 천상의 군대도 참가한다. 이스라엘의 선택된 사람들은 천사의 군대에 합류하는 반면, 마귀와 악한 천사들은 다른 지상의 나라들과 한편이 되어 싸운다. 빛의 세력이 거두는 승리는 악에 대한 최후의 괴멸을 상징한 것이며, 그후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영원히 정의롭게 통치할 것이다. 학자들 대부분은 이 전쟁 두루마리에 언급된 원수 '키팀'(Kittim)을 BC 63년에 유대를 침략하고 정복한 로마로 본다. 이 가정이 옳다면 그 두루마리의 주요부분(두루마리는 편집된 작품인 듯함)은 쿰란 공동체가 유대인 반란(AD 66~70) 때문에 추방된 이후부터 AD 68년 이전에 기록된 셈이다.→ 사해두루마리
BC 2세기경부터 AD 1세기말까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한 종파 또는 형제단.
〈신약성서〉에는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고, 요세푸스·알렉산드리아의 필로, 플리니가 전하는 기록들도 때로는 중요한 내용에서 일치하지 않는데, 이것은 에세네파 내에도 여러 분파가 존재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에세네파는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이는 여자를 배제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재산을 공유했고,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리자에게 통제를 받았다. 에세네파의 구성원은 그 수효가 결코 많지 않았다. 플리니는 그당시 에세네파의 수를 약 4,000명으로 잡는다. 바리사이파와 마찬가지로 모세 율법, 안식일, 정결의식을 철저히 지켰고 불멸과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믿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와는 달리 육체의 부활을 부정했고, 공공생활에 뒤섞여 살기를 거부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전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은거지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지내는 금욕생활에 만족했다. 안식일은 하루 종일 기도하고 토라(〈구약성서〉의 처음 5권)를 묵상하는 방식으로 지켰다. 맹세는 삼갔고, 한번 맹세를 하면 철회할 수 없었다. 개종자들은 1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친 뒤 에세네파 구성원의 표식을 받았으나, 그뒤 2년간 공동식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구성원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경건히 살 것, 사람들에게 정의로울 것,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에세네파의 모든 교리를 충실히 지킬 것을 서약했다. 이렇게 하여 새 구성원이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점심과 저녁 식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40년대말과 1950년대에 키르바트쿰란 근처에서 사해두루마리가 발견된 이래 대부분의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유대 광야의 사막 동굴과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필사본.
가죽과 파피루스에 손으로 쓴 이 필사본의 발굴은 근대 고고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힌다. 이 사본을 복원한 결과, 학자들은 히브리어 성서가 확립된 시기를 AD 70년 이전으로 앞당길 수 있었고, BC 4세기부터 AD 135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와 유대인의 종교 전통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지 명확히 밝힐 수 있었다. 이 문서들은 유대 광야에 흩어져 있는 5개의 주요유적인 키르바트쿰란·와디알무라바·나할헤베르(와디카브라)와 나할제엘림(와디세이얄)·와디달리예·마사다에서 발굴되었다. 1947년 양치기 소년들이 사해의 북서쪽 기슭에 있는 키르바트쿰란의 동굴에서 우연히 발견한 첫번째 필사본은 곧 '사해두루마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후 특히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사해 근처에서 잇따라 발견된 필사본들도 역시 사해두루마리라고 불렸다. 쿰란 근처에 있는 11개의 동굴에서는 수많은 문서가 나왔는데, 이것들은 모두 BC 2세기 중엽부터 AD 68년까지 쿰란에서 번성했던 유대교 종파인 에세네파의 문서들 가운데 일부였다(→ 색인 : 쿰란 종파). 이 문서들은 BC 3세기 중엽부터 AD 68년까지 만들어졌지만, BC 1세기와 AD 1세기에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 성서의 일부이다. 쿰란의 제1동굴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문서들로는 〈이사야〉 두루마리, 〈공동체 규율 Rule of the Community〉(에세네파의 가르침과 규율에 대한 교범)·〈어둠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의 전쟁 The War of the Sons of Light Against the Sons of Darkness〉(전쟁 두루마리), 감사시편 두루마리, 〈하바꾹〉 주석, 보존 상태가 좋은 7개의 두루마리 등이 있다. 제2동굴에서 발굴된 것은 두루마리들의 단편들이었다. 제3동굴에서는 구리 두루마리가 나왔는데, 이것은 성전 보물과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적은 목록으로서 그 진위는 의심스럽다. 제4동굴은 에세네파 문헌의 주요보관소였는데, 여기서 발굴된 약 400권의 필사본은 대체로 보존 상태가 나빴고, 대부분 에세네파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약 100권의 필사본은 성서를 옮겨 쓴 것인데, 〈에스델〉서만 빼고 히브리어 구약성서 전체를 필사한 것이다. 제5~10동굴에서 발굴된 사본들은 제2·3동굴과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제11동굴에서는 정경과 외경의 시편들과 알려지지 않은 시편들이 실린 커다란 두루마리를 비롯하여 보존 상태가 좋은 몇몇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는 고대 히브리어로 쓴 〈레위기〉 사본도 있다. 1967년 베두인족에게 사들인 성전 두루마리는 10년쯤 전에 제11동굴에서 옮겨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이 두루마리의 66개의 난에는 이상적인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다. 쿰란에서 남쪽으로 18㎞ 떨어진 2번째 유적인 와디 알무라바에서는 바르 코크바(132~135년 유대 민족이 로마에 대항하여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앞장선 인물)의 군대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남긴 문헌들이 발표되었다. 고고학자들은 바르 코크바가 쓴 2통의 편지, 히브리어·아람어·그리스어로 쓴 율법서, 1, 2세기에 쓴 성서의 단편들, 놀랄 만큼 잘 보존되어 있는 12소예언서 두루마리 등을 발굴했는데, 이 두루마리는 사실상 전통적인 성서의 원문과 똑같다. 1952년 양치기들은 엔게디 남쪽에서 3번째 유적을 발견했는데, 거기서는 소예언서의 그리스어 번역본(1세기 작품), 바르 코크바의 편지 1통, 성서의 단편들, 바르 코크바 시대에 아람어·그리스어·나바태아어로 씌어진 율법서들이 발견되었다. 나할 제엘림의 '두루마리 동굴'을 발굴한 결과 이 문서들이 바르 코크바 시대의 것이라는 뚜렷한 증거가 드러났고, '편지 동굴'에서는 15권에 달하는 바르 코크바의 파피루스 사본들과 시편의 단편이 발견되었다. 그후의 발굴 작업에서는 바르 코크바의 편지들이 추가로 나왔고, 나바태아어·아람어·그리스어로 씌어진 문헌들이 대량으로 쏟아져나왔다. 나할 헤베르의 '공포의 동굴'(이 동굴에는 해골의 잔해가 남아 있었음)에서는 소예언서의 그리스어 개정판 일부가 발굴되었다. 고대 예리코(여리고)에서 북쪽으로 13.6㎞ 떨어진 4번째 유적에서는 심하게 손상된 40여 권의 문헌들이 나왔다. 이 문헌들은 BC 331년 바로 그곳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병사들에게 학살당한 사마리아인들이 동굴 속에 보관해둔 것이었다. 이 율법서는 모두 아람어로 씌어져 있지만, 봉인만은 고대 히브리어로 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포괄적인 파피루스 사본들(BC 375~335), 이 문서들은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5번째 유적인 마사다에서는 히브리어로 씌어진 집회서(BC 75경)·〈시편〉·〈레위기〉·〈창세기〉의 단편들이 발굴되었다. 또한 에세네파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안식일 제물의 노래 두루마리 Scroll of the Songs of the Sabbath Sacrifice〉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쿰란의 제4동굴에서 발견된 필사본과 비슷한 것이다. '사해두루마리'의 대부분은 아직 책으로 출판되지 않고 있다.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 [The War of the Sons of Light Against the Sons of Darkness, ― 戰爭]유대교 문서 브리태니커
(히) Megillat Mil?amat B'ne/Beb'ne ?oshekh. 전쟁규칙, 전쟁 두루마리라고도 함.
BC 2세기 전반 유대 사막에 쿰란 공동체를 세운 유대교의 에세네파가 남긴 매우 중요한 문서. 에세네파는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선택받은 거룩한 자들, 즉 종말에 이스라엘의 원수인 어둠의 아들들과 처절한 전쟁을 벌이게 될 빛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했다. 1947년 쿰란의 제1동굴에서 발견한 〈전쟁 규칙 War Rule〉은 군사조직 및 전략 지침서로 전투 장비와 신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에세네파의 〈훈련 지침서 Manual of Discipline〉에 언급되어 있는, 진리의 영들과 타락한 영들에 관한 교리를 발전시킨 신학 논문이기도 하다. 그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는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 간의 40년에 걸친 '성전'에는 지상의 군대뿐만 아니라 천상의 군대도 참가한다. 이스라엘의 선택된 사람들은 천사의 군대에 합류하는 반면, 마귀와 악한 천사들은 다른 지상의 나라들과 한편이 되어 싸운다. 빛의 세력이 거두는 승리는 악에 대한 최후의 괴멸을 상징한 것이며, 그후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영원히 정의롭게 통치할 것이다. 학자들 대부분은 이 전쟁 두루마리에 언급된 원수 '키팀'(Kittim)을 BC 63년에 유대를 침략하고 정복한 로마로 본다. 이 가정이 옳다면 그 두루마리의 주요부분(두루마리는 편집된 작품인 듯함)은 쿰란 공동체가 유대인 반란(AD 66~70) 때문에 추방된 이후부터 AD 68년 이전에 기록된 셈이다
<아마겟돈 최후의 전쟁 1,2부>
깃딤(B)(Kittim) 은 어디인가?
(1) 야벳의 아들 야완의 자손이 점령하고 있던 구브로 섬(창 10:4, 대상 1:7).
깃딤 1 (!-yYITiki , Kittim) 「괴롭게 하다」
노아의 증손, 야벳의 손자이며 야완의 세째 아들인데, 그로부터 한 민족이 생겼다(창 10:4, 대상 1:7). 인종학적으로 볼 때 야완(이오니아인)과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그것은 이 이름이 구브로 섬의 동남단에 있던 식민지,오늘날 라르나카(Larnaka)라고 불리우는 개항장인 키티온(Kition, 키티움 Citium)에게서 연유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으로 지중해의 섬들과 연해안 제국들도 이런 이름으로 불리우는 곳이 있다(민 24:24, 사 23:1, 12, 렘 2:10, 겔 27:6, 단 11:30).
깃딤 2 (!yTiKi , Kittim) 구브로(키프로스) 섬을 지칭한다(사 23:1, 12, 렘 2:10, 겔 27:6). →구브로. `깃딤'은 구브로 섬의 동남 해안의 성읍 기디온(Kivtion)에서 연유한다. 기디온(현재`라르나가' Larnaca)은 BC 9-8세기 이래 베니게의 중요한 식민지였는데, 베니게의 비문에는 ytk(Kty)라고 기록되어 있다. 발람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깃딤은 앗수르와 에벨을괴롭힌다고 하였다(민 24:24).
여기서 깃딤이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는 이 말씀의 연대 나름이다. 만일 이 말씀이 매우 오래된 것이라면(BC 13세기) 깃딤은 `바다의 민족' (Sea-people)을 가리킬 것이다. 만일 8 내지 7세기의 것이라고 하면 구브로 도민일 것이다. 만일 훨씬 후기의 것이라고 하면 알렉산더 대왕의 병력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다. 라틴어역(Vulgata Editio)은 `이탈리아에서'(de Italia)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경우는"깃딤(로마)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리아 사람)를 학대하며 에벨(히브리인)을 괴롭게 하리라…"(민 24:24)의 의미로 된다. 이사야서에서는 두로에 관한말씀(23장) 중에서 두로, 시돈, 다시스 등과 같이 깃딤에도 언급되어 있다(1, 12절). 이 경우는 BC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두로와 다른 베니게의 제성읍을 공격하여 시돈 왕 룰리(Luli)가 구브로 섬으로 도망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에스겔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두로에 관한 애가(哀歌, 27장)에서 깃딤에도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는 두로 배의 갑판에 사용할 재료의 산지로 되어 있다(6절). 예레미야서에서는 동쪽의 게달에 대하여 서쪽의 대표로서 깃딤을 들고 있다(2:10). 이것은 구브로 섬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것일것이다. 다니엘서에서는 깃딤 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11:30). 이것은 안디오코스 Ⅳ세 에비바네스(Antiochus Ⅳ Epiphanes, BC 175-164)가 두번째의 애굽 원정 때 애굽의 호소에 답하여 로마가 집정관(執政官) 라에나스를 파송하여 안디오코스를 애굽에서 철수시킨 것에 관련하고 있다. 70인역은 깃딤Rwmaivoi(로마인들)로 번역하고 있다. 동시에 여기서는 발람의 하나님의 말씀(상술한) 성취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카비 1서에서는 깃딤은 마게도니아를 지칭하고 있는 듯하다(1:1, 8:5). 사해 사본에서 깃딤이 언급될 경우 로마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이설도 있다). 하박국서 주해에서 갈대아 사람이 깃딤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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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원문보기 글쓴이: 빛과 소금
첫댓글 사해사본이 구약의 성경부분이 부합되어져 있습니다.
개정개역
개역한글
새찬송가
구찬송가
킹제임스
엔아이뷔
전부 탁상에서 공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기네들 간에 서로 논의해서 글짜의 모양만 살짝 살짝 바꾸어 놓았으며
신학적 박사님들이 명예를 잡아 교황처럼 한자리 할려고
이것 저것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메세지를 보는데 개정개역 성경이 하등의 지장 없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편지 중심에는
사랑 입니다.
정작 노래 가사 고쳐 놓고 찬송을 매인으로 하는 교회
1000곳의 교회 중 1곳이 힘듦니다.
예전과 달리 상당수의 신학 교수님들
조차 성경을 1독 전체를 한것이아니라.
쪽집게 처럼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골라서 편식을 주도하며 또한 가르키고 있으며
그냥 과시용으로 부분 구절만 외우고 있습니다.
성경도 찬송도 이제는 아애 안부르고. 성경 자체을 않보죠.
성경 대신에 인트넷이나 다른 신학자의 책을 보며.
찬송 대신에 빠른 곡의 가스펠 송으로
아는 분에게 찬송을 부르자 했더니
"새노래 주님을 높이는데" 하면서 짜증을 내더라고요.
그럼 찬송은 헌 노래인가요?
찬송과 성경이 얼마나 힘을 가진 영적인 무기를
창고에 먼지가 뿌옇게 보관만 하는 안타까움
여러분 얼마나 땅을 칠 일인가
윗 내용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시겠지만
전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옛 선진들과 조선 땅에서 순교하신 분들이
기도와 애환과 주님의 그리움이 집약되어져
(모든 선지자와 순교자의 축척된 기도가 성경과 찬송가다)
우리의 모든 무기를(성경과 찬송) 창고에 넣고 맨 몸으로
영적 전쟁에 나오는 분들 보면
입이 딱 다물어집니다.
66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선지자들의 죽음과
개인들의 묵시적 예언들이 다수 이므로
70인의 신실한 학자님들이 알맞게 배재 하였습니다.
카톨릭 73권과 달리
개인적인 죽음이나 신비적인 예언의 것들을 빼고
기독교 66권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왜냐? 개인의 신비적인 체험이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중심 메세지를 초월 할 수 없기에
오지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과
열악한 목회지에서 눈물 흘리는 분들에게는
저의 발언들을 머리 숙여 사죄의 뜻을 밝힙니다.
성경과 찬송을 많이 할 수록 성령님의 힘이 모든 사회와 성도에게 배가의 힘이 되며
성경과 찬송을 않부르는 교인과 교회에게는 스스로가 사단의 힘을 배가 시키고 있습니다.
은혜스런 댓글에 감사드리며 답글이 늦어졌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앵해바랍니다.
위의 게시글에 나오는 사해사본중 전쟁두루마리에는 전쟁의 규칙등과 더불어 전쟁기간과 전재의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전쟁기간은 20년이고 전쟁 결과는 빛의 아들들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1947~1967년까지의 전쟁의 결과도 이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현 시대도 마지막 전쟁 기간 이라고 생각됩니다...
네이빗님의 겸손함이 댓글을 더욱 은혜롭게 느껴집니다...
주님의 은혜가 네이빗님과 항상 함꼐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더욱 강건하시기를 ~
살롬~
사해사본의 발견은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수천년전의 사본의 내용과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 동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존 하시는 일 또한 하나님의 통제아래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전쟁두루마리의 발건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동시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이라는 말씀도 역시 이스라엘과 더불어 빛의 아들들인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인 우리에게 현재 진행중인 영적이고 현실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사해사본중 전쟁두루마리
종말에 20년간 치르게 될 전쟁과 전술을 다룬다. 이때 빛의 아들들은 미카엘과
선한 신령들의 지원을 받고, 어둠의 아들들은 벨리알과 악한 신령들의 지원을 받는다.
전쟁은 물론 전자의 승리로 끝난다.
개인적으로 이 전쟁은 현재 진행중인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