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1874~1949년) 선생은 강원도의 이름난 서화가다.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과 강릉에서 태어나고 살았다. 그는 아호를 차강 외에도 강재(江齋), 강옹(江翁)이라고도 했듯이 `강원도민'이며, 아호를 통해서 `강원사랑'을 강조했다고 생각된다. 이제 4년 후면 강원도에서 세계인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강원도가 주인됨을, 강원도 중심론을 세계만방에 외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강원인이 힘을 모아 세계 최고의 축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차강 선생이 그랬듯이 모두가 강원사랑의 한마음으로 `강'자를 가슴에 단단하게 새기고 합심해야 한다.
차강 선생은 신동으로 알려질 정도로 총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명필가 차강은 혹독한 자기 수련을 통해서 일가를 이루었다. 어려서부터 하루 500자를 쓰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엄격한 천부성과 인백기천(人百己千)의 노력이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강은 고조부의 유물로 말채찍을 간직했다고 한다. 자신의 나태함을 채찍질하기 위함이었다. 철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이재 권돈인이 차강의 고조부 박형호에게 학문과 서예를 배웠다고 하니 오늘의 `차강정신'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가늠하게 된다. 1893년 그의 나이 18세 때 양양 낙산사에서 열린 전국한시백일장 휘호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였는데, 얼마나 열심히 연마했던지 그의 방에서 몽당붓이 무려 한 됫박이나 나왔다고 전한다. 차강은 21세 때 구한말 팔도창의대장을 맡아 활약한 춘천 출신 유인석 장군의 휘하에서 왜군과 싸웠다. 그는 영월·평창·정선 지역에서 활약했으며 대화, 봉평 등지에서 의병을 모으고 군자금을 충당할 때도 앞장섰다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선교장의 안주인이었던 고(故) 성기희 교수님은 내게 차강 글씨 두 폭을 주었다. 그 뜻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다시 생각하니 할 일이 많음을 거듭 인지하게 된다. 차강과 선교장 주인 경농(鏡農) 이근우(李根宇·1877~1938년) 선생의 인연은 `완산세고(完山世稿)'에 담겼다. 1908년 선교장에 신식교육을 위한 사설학교인 동진학교를 세우고 우리나라 석판인쇄의 시작을 알린 경농 선생, 차강은 선교장에 오래 머물면서 활래정에 올라 시조창을 부르고 휘호를 남겼다. 필자는 선교장 집안의 `완산세고' 표지를 보고 차강의 글씨임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자 안에는 낙관으로 `차강'이라는 아호가 찍혀 있었다. 완산세고는 바로 300년 전통의 선교장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청신근고(淸新近古)'라는 화두를 찾아냈다. 즉 `맑고 새로움은 옛것에 가까운 데서 출발한다'는 말뜻이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과 다름이 아니다.
차강의 강원도 사랑을 다시 말하려는 뜻도 여기에 있다. 유용태 선생이 쓴 `강원의 미'에 차강의 작품이 잘 소개돼 있다. 차강 선생의 강원도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는 서화들은 그의 정신세계와 함께 날이 갈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몇 년 전 차강이 그린 경포팔경도가 발견돼, 그의 시문을 번역하면서 찬찬히 경포절경을 음미했다. 차제에 문화올림픽을 지향하는 강원자랑과 강원사랑으로 차강의 서화를 모아서 전시하며 그 고결한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기념관을 만들고, 도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도 모색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