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 영국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귀화하여 미국인이 되었다. 쿠바로 건너 갔다가 스페인 관원에게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형을 언도 받았다. 영국과 미국의 영사가 이 사실을 알고 구명 운동을 하였지만 결국 형장으로 끌려가 총살형이 집행되게 되었다. 나무 기둥 에 묶여진 사람에게 영국영사는 영국 국기를 감아주었다. 또한 미국 영사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감아놓고 "자, 저 국기에 대고 총을 쏘아보시오"했다. 어느 누구도 영국이나 미국 국기에 총을 쏠 사람이 없었다. 그 국기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두 개의 나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국기는 어떤 총도 뚫을 수 없는 방탄 조끼였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나라도 뚫을 수 없는 방탄 조끼가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조끼를 입고 아시아, 유럽을 두루 다니므로 안전했다. 대 로마 제국도 그를 어쩔 수 없었다. 강대국만이 아니라 자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라호 태풍이나 허리케인보다 더 지독한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바다를 온통 뒤집었지만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로 방탄조끼 삼은 사도 바울을 건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행 27장). 땅의 그 무엇도 예수로 방탄조끼 삼은 그를 건드릴 수 없었기에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외칠 수 있었다(갈 6:17).
당신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예수 방탄쪼끼를 입고 있으십니까?
갈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절망을 통한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경 : 왕하 5:1-1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가 되고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씀은 깊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완전히 실망하거나 절망할 때까지 은혜나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하기를 기다리시며, 우리를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기도 하십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본 사람들입니다. 질병으로 사경을 헤매었든지, 가정 생활에 실망을 느꼈든지, 어떤 사람을 통하여 실망했든지, 어떤 상황 속에서 절망에 처해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만남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케 되곤 합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하고 절망할 때가 바로 하늘 문이 열리는 기회가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때에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속히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 중에 처했을 때에도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절망의 상황 속에서 구원과 축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수리아의 국무총리와 같은 수석장관이었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요, 큰 사람, 존귀한 자였습니다. 아람 나라를 구원한 위대한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한 나라는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존귀한 사람이고 구국의 공로가 혁혁한 사람이라고 했더라도 자기는 문둥병자이니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다 큰 부귀와 권세를 가졌다 해도 죄악의 문둥병에 걸린 절망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나아만은 작은 소녀의 말을 귀답아 듣게 되어 치료를 받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2. 절망적인 듯한 방법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구원하시고 축복하실 때가 많습니다.
고전 1:18,19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세상적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고침받기 위해 자신의 부귀와 권세를 다 써봤으나 소용이 없었고, 아람 왕의 권세도 소용 없었고, 이스라엘 왕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사 55:8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구원과 축복이 무슨 굉장한 방법, 고상한 방법으로만 되는 줄로 아는데 사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아만이 구원받은 것은 포로로 잡혀 온 식모 계집아이를 통해서 놀라운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볼품없는 야인 엘리사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하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하는 지극히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사람은 절망적인 듯한 방법에 대해서도 어린 아이처럼 단순한 믿음 가져야 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됩니다.
죄악의 문둥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에 믿음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고침을 받습니다.
육신의 병도 단순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할 때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순종하는 자가 축복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의 기량과 역량을 발휘하여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안될 것 같았지만 그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나아만 장군도 처음에는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말이 참으로 황당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히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진리는 단순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12).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18).
여기서 나아만 장군의 훌륭한 점은 첫째로, 잡혀 온 소녀 식모의 말을 단순하게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법입니다. 절망에 처한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단순한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둘째로, 변장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선지자를 찾아 갔습니다. 위선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빈 손으로 가지 않고 정성어린 예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엘리사가 결국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간절하고 정성어린 마음이 그 예물에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요단강에서 옷을 벗고 일곱번 목욕했습니다. 장군의 계급장 붙은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문둥병 환부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 절망적인 듯한 방법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온전히 순종할 때 진정한 승리와 축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세상에 대해 절망을 느낀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적으로나 세상적으로 절망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이는 큰 환난과 시련을 통하여, 또 어떤 이는 질병이라는 가시로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이는 남편이나, 아내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은혜와 축복의 길이 됩니다. 어떤 분은 자식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근심과 고민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 절망이 구원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인 실패로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구하고 받는 길이 됩니다.
인간의 절망을 통하여 헛된 소망을 버리고서야 참된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을 붙잡게 됩니다. 세상에서 절망할 때 하늘의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실패와 고통으로 많이 깨어지고 다듬어진 사람을 하나님은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완전히 자아가 깨어진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즐겨 사용하십니다. 고로 실패와 고통은 하나님의 또 다른 형태의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 1:9에서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형 선고 받은 줄로 알 만큼 극심한 핍박을 받았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 구원과 축복을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절망을 통해 영원히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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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목회와 설교와 희생과 치유와 능력과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고 노회사역과 세미나와 부흥회 도구로 쓰임받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감사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주님의 향기를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