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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양이 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 하늘에 약 반 시간쯤 정적이 있더라.
이 반 시간의 정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낸 해석가는 내가 알기로 이제까지 없다. 럭크만 박사도 잘 모르겠다고 이 부분의 해석을 비워 두었다. 피터 럭크만 박사보다 성경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연구한 이력도 미천한 내가 이것을 해석한다고 말하면 주제넘은 일일지 모른다.
기본적으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일곱째 봉인은 "지상 재림"이라는 것이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계시록에서 항상 끝을 의미하고 있다. 일곱째 봉인이 열릴 때 7년 환란의 전개가 한번 끝난 것이다. 그 뒤에 일곱 나팔이 나오지만 그 나팔 재앙들은 분명히 7년 환란의 중간부로 되돌아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그렇다면 왜 하늘에 "정적"이 있으며 그것은 "약 반 시간쯤"인가?
성경에서 "시간"에 대한 참조 구절들을 나열하면서 의미를 캐취해 보기를 원한다.
제자들에게 돌아와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
"반 시간"에 대한 참고 구절이 더 없기에 "한 시간"이 나오는 구절을 찾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물으시는 대목에서 이 한 시간이라는 시간 개념은 어떤 것이냐? 그 제자들은 사실 주님이 잡히시기까지 쭉 깨어 있어야 되는 입장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주께서는 그들이 연약한 줄 아셨기 때문에 "너희가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합리적 기준에서 한 시간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그것조차 지키지 못하고 잠에 곯아떨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시간은 충분치 못하나 최소한의 시간이다, 그런 의미가 되겠다.
한 시간쯤 지난 후 다른 사람이 장담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으니, 이는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임이라.”고 하더라(눅 22:59).
여기서의 한 시간은 베드로가 마귀의 시험에 완전히 녹다운 당하기에 충분한 시험의 시간으로 적용되고 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도록 만드는 사탄의 시험을 받았는데 총 세 번이었다. 앞의 두 번은 단순히 "나는 그 사람 모른다" 정도로 그쳤지만 세 번째 시험에서는 베드로가 "저주하고 맹세하기 시작하며"(마 26:74, 막 14:71) 주를 부인한 것을 보게 된다. 그 한 시간 동안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마음 속에 어떤 폭풍이 지나간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그는 저주하며 주를 부인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한 시간은 마귀가 주의 제자를 공격하고 미혹해서 쓰러뜨리는 시험의 한판승이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볼 수 있겠다.
또 네가 본 그 열 뿔은 열 왕이라. 아직 왕국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들로서의 권세를 받으리라(계 17:12).
내가 갈라디아서 2:5의 "한 시간"을 인용하지 않고 지나친 것은 그 구절의 경우 딱히 특별한 의미가 없이 일상적인 강조 용법으로 쓰인 경우라서 그렇다. 마지막으로 보는 구절이 계 17:12인데 이것은 8:1과 동일하게 독자들에게 "이것이 정녕 문자적 한 시간이냐 아니면 더 긴 기간에 대한 암시냐?"의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구절이다.
즉, 8:1의 "반 시간"이 30분이라는 개념이 맞다면 17:12의 "한 시간" 또한 60분이라는 문자적 한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란 얘기다. 만일 그 반대의 경우라면 두 구절 모두가 더 긴 시간을 암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일단 문자적으로 30분이라는 의미에서 8:1을 한번 보겠다. 문자 그대로 30분 동안 하늘에서 침묵이 이어지는데 이 장면은 흡사 연극, 뮤지컬, 오페라의 막간 휴식시간을 연상케 한다. 막간 시간에는 출연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 장치를 교체하는 등 공연을 이어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예술 작품의 "암전", 혹은 "막간 휴식" 같은 장치를 적용하셔서 요한계시록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인류에게 제시하신 것이다, 그런 해석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예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성경이 참으로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책이다, 그런 감흥을 느끼고 지나가면 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다른 구약의 책들, 특히 솔로몬의 노래라던지 시편 같은 시가서의 책들은 그 자체가 노래로 되어 있는 형태라서 문학성이 상당히 부각이 되고, 그래서 시편 본문을 따온 찬송가들도 많이 작사, 작곡되고 있으나 요한계시록은 전체적인 형태가 "운문"이 아닌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책만큼은 팩트 전달이 우선시되고 있지 그 어떤 문학성이 최선봉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막간 휴식", "암전" 등의 예술 장치로 이것을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런 의미가 일부 있다 할지라도 본원적 의미는 다른 데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본래적 해석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얘기해서 30분은 어떤 기간의 절반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1시간을 전체로 잡는다면 30분은 50%이다. 일곱째 봉인은 대환란이 99%에서 100%로 넘어가는 기점을 뜻했으니까 30분이라는 시간이 등장한 것은 100%를 50%로 다시 롤백한다는 의미 정도가 되겠다. 다시 말해 8:1을 기점으로 우리는 7년의 끝에서 7년의 중간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7:12의 "한 시간"은 또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까지 살펴보면 해당 본문에 가서 해석할 게 남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건 그때 다루기로 하겠다.
2 그때 내가 보니, 일곱 천사가 하나님 앞에 섰고 그들이 일곱 나팔을 받더라.
일곱 천사는 일곱 나팔의 심판을 수행하는 집행관들인데 이들이 부는 나팔들은 최초로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퍼부으시는 신적인 재앙의 출발점이 된다. 전3년 반에 내려졌던 각종 재앙들, 곧 우리가 계 6장에서 넷째 봉인까지 보았었던 바 그 재앙들은 완전히 초자연적이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 동안 숱하게 일어났던 크고 작은 전쟁들, 흉작, 전염병, 그것들은 하나님의 간접 심판이었지 직접 내리시는 재앙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규모면에 있어서는 전3년 반의 전쟁과 재앙들도 전무후무하게 크긴 하지만 그래도 그 때 인간들이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더 심할 뿐이야"라고 생각할 소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곱 나팔의 재앙들은 그 정도도 극심할 뿐 아니라 초자연적인 요소가 있어서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것이다.
3 다른 천사가 나와서 금향로를 가지고 제단에 서서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께 그것을 보좌 앞에 있는 금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더라.
심판에 대한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근거, 인류를 이 일곱 나팔 재앙으로 치셔야 하는 하나님의 "공소장"에는 환란 성도들의 기도가 빼곡히 차 있는 모습이다. 그 성도들은 자기들의 원한을 갚아달라는 피맺힌 기도를 드렸고 그것이 셋째 하늘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심판 근거로 작성된 것이다.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 하더라(계 6:10).
그리스도인들은 암흑 시대의 재침례교도들, 종교개혁 시대의 위그노들, 침례교도들, 모슬렘 치하에 있는 콥트 교도들, 북한이나 중국에서 억압받는 기독교인들, 그들이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받을 수록 자기를 박해하는 상대방을 축복할 수 있는 신적인 성품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거듭난 성도라면 그는 자기를 돌로 치려 덤비는 원수에게 저주하지 않고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집사 스테판처럼 기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죄인들이 거듭남이 없고 육신의 성품 안에서만 살았던 구약 시대에 모세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허용했다. 원수를 파멸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구약식 기도이지 신약적인 기도는 아니다. 시편에 보면 원수를 처참하게 멸망시켜 달라는 수많은 기도 제목들이 등장하는데 신약 그리스도인이 그런 구절들을 사사로이 취해서 원수 갚음의 기도로 쓴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환란 성도들은 그런 원수 갚음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그 기도는 합법적인 것이라서 하나님의 소원 수리함에 접수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환란 성도"라는 게 뭐 따로 있는 것이냐, 그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고 그들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행위가 따로 필요하냐, 환란 시대나 교회 시대나 구원론은 매한가지다, 그렇게 가르치고 또 믿는다. 자칭 세대주의 공부했다고 하는 목사들 중에서도 그런 이설을 내놓으면서 자기는 뭘 좀더 깨달은 양 허세를 떠는 자들, 이를테면 흠정역 정동수 같은 자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명백히 보았다시피 구원론이 다르고 그들의 기도도 틀리다. 또 6장에서 보았지만 그 환란 성도들은 죽어서 1차적으로 가는 장소 또한 우리와 다른 땅 밑 음부다. 이렇게나 차이점이 많으면 다르다고 구별을 해야지 왜 다른 것을 합치려고 하는가 말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왜 개신교 언약신학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해 왔는가? 언약신학자들이 합쳐서는 안 되는 구약과 신약의 구원론을 임의로 합치면서 "구약 시대에는 앞으로 오실 예수 바라보고 믿었고 신약 시대에는 이미 오신 예수를 보고 믿는다"고 궤변을 늘어놓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같은 원칙을 신약 시대와 환란 시대에도 적용해서 구원론을 나눠야지 왜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합치려고 하는가 말이다.
4 그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그 천사의 손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더라.
어떤 기도는 하늘로 올라가고 또 어떤 기도는 올라가지 못한 채 땅으로 꺼져 버린다. 차이점이 어디에 있는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리라 생각함이라(마 6:7).
이교도들의 헛된 기도, 그 대표적인 예는 불교의 염불, 카톨릭의 로사리오가 되겠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것을 기도라고 말한다. 그 기도에 마음이 담겼다고 자기 최면을 걸지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의 주문을 외우고 있을 뿐이지 "자기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 물론 불교나 이슬람, 천주교 등에 기도문 외는 형태의 기도 말고 진짜 본연의 개인적 자기 기도 하는 관례도 없지는 않다. 천주교도들도 기도문을 주로 외우지만 자기 개인 기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교도들에게 있어서 기도문이 금과옥조, 즉 음식에 있어서 "메인 디쉬"에 해당하고 개인 기도는 "애피타이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자들이 기도문을 많이 읊는 이유는 기도의 할당량을 채우는 데 그만한 게 없다고 여겨서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 즉 거짓 마리아, 알라, 크리슈나, 미륵 같은 존재들은 인간과 인격적인 교류를 할 수 없는 썩은 우상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죽은 신들에게 대화를 걸기가 참으로 쑥스럽고 민망하고 구차한 줄을 스스로도 느끼는 바 있어서 되도록 기도문에 치중하지 그 신들과 개인적인 정담을 나눈다던지 그런 것은 잘 안 한다. 물론 완전히 광신 상태로 돌아버린 이교도들이라면 그들의 신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로 방언하는 은사주의자나 무당 같이 신들린 경우이다.
진정한 기도는 길고 짧은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신적인 종교인들이 가르치듯이 하루의 대부분 시간, 밥 먹고 잠 자는 시간 빼고 항상 기도를 해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성경적으로 틀린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니, 가라앉기 시작하는지라, 그가 소리질러 말하기를 “주여, 나를 구해 주소서.”라고 하더라(마 14:30).
"주여, 나를 구해 주소서"(Lord, save me). 여러분은 이것이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도 기도다. 그것도 목적 의식이 분명한 아주 확실한 기도다. 이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도의 주제가 무엇인가? "나를 살려 주세요"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나를 살려주시면 나중에 내가 주님께 백배사례하겠습니다" "나를 살려주시면 내가 주님의 머슴이 되겠습니다" "나를 살려주기만 하시면 내가 땅 문서, 집 문서, 다 주님께 드리고 무료 봉사하겠습니다" 그런 구질구질한 조건부 요청이 없다. 그냥 살려달라는 간단한 기도다.
베드로의 이 기도는 1차 세계대전 때 참호전 속에 있던 병사들에게서 수백 만 번 울려나온 원초적인 기도다. 태평양 전쟁의 이오지마나 오끼나와에서 지옥의 참극 속을 거닐던 그 미군 병사들에게서도 수없이 흘러나온 진실된 기도다. "나를 구해 주소서". 좋다. 이 기도야말로 여러분이 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기도다.
물론 카톨릭 교도들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서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여, 구해주소서"라고 허공을 치는 기도를 드리곤 하지만 요청의 대상을 정확하게 짚은 베드로의 기도는 유효한 것이었다. 그의 기도는 10초도 되지 않아 즉각 응답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저 환란 성도들은 자기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죽이시는 것이 아니다. 교회 시대의 크리스찬들은 항상 죄를 짓는다. 때로는 개인 차원을 넘어 교회적, 교파적으로 집단 배교에 휩쓸리기도 한다. 지금 현대에 와서는 WCC라는 배교의 잡탕에 휘말려서 집단적 배교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무죄하다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그들의 육신은 여전히 죄의 찌꺼기들과 성별되지 않은 세상 요소들이 묻어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불순한 상태의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녀를 정결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베필로 만드실 예정이시다.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환란 성도들은 "배교"를 이겨낸 사람들로서 14만4천의 첫열매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세상에서 완벽한 성별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들은 심지어 집도 통장도 빼앗긴 채 666표와 짐승의 형상을 거절하고 세상과의 완전한 절연에까지 이른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죽게 하시는 게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심판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들의 순교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이 되신 까닭이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죄 없는 그 분이 제물이 되셨던 이유와 비슷하다. 물론 그 환란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무죄하지는 않고 그들도 죄성과 나름의 문제들을 갖고 있다. 또한 그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교회시대인 지금 복음을 듣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거기로 넘어가 고난받고 있는 것이다.
5 그 천사가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 불을 담아서 땅에 쏟으니 거기에서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과 지진이 일어나더라.
첫째 나팔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징조(sign)가 먼저 있는데 제단 불이 땅에 쏟아지면서 나타나는 징조들이다. "음성들, 천둥들, 번개들, 지진" 우선 "음성들"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한데 누구의 음성인지 나와 있지 않아서 추리하기 어렵다. 앞의 세 가지는 복수인데 "지진"은 단수로 되어 있어서 특정한 한 지진을 가리키는 것을 볼 때 뭔가 세밀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성전 안에 있는 그의 언약궤가 보이더라. 또 거기에는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이 있었고 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지진이 너무도 엄청나서 사람이 땅에 거주한 이래로 그처럼 강력하고 큰 지진은 일찍이 없었더라(계 16:18).
계 11:19은 일곱째 나팔이 불린 후의 장면인데 거기서도 동일한 요소들이 나열되면서 "큰 우박" 한 가지가 추가되고 있다.
계 16:18은 일곱째 호리병이 쏟아진 후의 상황인데 5절과 동일한 것들이 나오지만 "지진"이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 지진은 전무후무하게 크고 엄청난 지진이라고 강조되고 있다.
11:19, 16:18은 분명 지상 재림 때를 말씀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5절은 지상 재림이 아니라 7년의 중간부 시점이니 해석의 난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일단 나는 5절은 나머지 두 구절과 비슷해 보이지만 구별된 것으로 본다. 이 구절들에서 첫째 "음성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 때 큰 군대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사건과 상관이 있다고 단정한다. 7년 환란 중간에 하늘에서 땅으로 큰 군대가 내려오는가? 과연 그렇게 된다. 확인해 보자.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계 12:9).
둘째 하늘(우주 공간)에서 사탄이 거느린 무리는 심히 큰 군대, 정사들과 권세들의 군단이다. 그 군대가 미카엘의 천군에게 패망하여 지구로 추락할 때 심히 시끄러운 무리의 "음성들"이 들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11:19, 16:18에 또한 "음성들"이 반복되어 등장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악한 정사들과 권세들이 내려오는 게 아니라 거룩한 성도들의 군대가 예수님과 함께 내려오기 때문에 그들의 "음성들"이 땅에 들리는 것이겠다.
아담의 칠 대 손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유 1:14).
하나님께 노래하라. 그의 이름을 찬송하라. 그의 이름 야로 인하여 하늘들을 타고 달리시는 그를 칭송하며 그분 앞에서 기뻐하라(시 68:4).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우리 성도들이 주님을 따라 흰 말들을 타고 셋째 하늘에서 우주를 통과하여 지구로 내려올 때 그냥 침묵 모드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깃발을 높이 들고 "찬송"을 부르면서 내려올 것이다. 그리스도인 군대의 선두에서 "하늘들을 타고 달리시는" 주 예수님을 칭송하면서 내려올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여기 두 구절들에 음성들이 나오는 것 아닐까?
"천둥들과 번개들"은 해석하기가 더 쉬운 편이다. 희랍 신화에서 주로 그렇지만 이것들은 하늘의 군대들이 결전을 벌일 때 쓰는 전략 무기 같은 것이다. 지구인들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ICBM이나 크루즈 미사일 같은 존재가 희랍 신화의 "포세이돈의 창", "제우스의 번개" 같은 식이다. 실질적으로 계 12장에서 우리가 하늘의 전쟁(곧 스타워즈)을 보고 있지만 여러분은 미카엘과 사탄의 군대가 어떤 무기로 접전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게 답이다.
11:19, 16:18에도 천둥들, 번개들이 나오는데 그때는 주님이 하늘이 아닌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하늘의 무기들로 지상의 적그리스도 군대를 박살내는 장면이다.
그리고 "지진"은 성경적으로 볼때 심판의 의미도 있지만 더 핵심적인 사항이 성도의 부활과 동반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런 예를 우리는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마 27:51-52).
예수님의 부활에 동반된 첫열매들이 나타날 때에 무덤들이 열리게 만든 지진이 있었다.
그런데, 보라, 거기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문에서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더라(마 28:2).
주님이 부활하실 때에도 무덤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영어킹제임스에 보면 약간 큰 지진이 아니라 아주 큰 지진임이 명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a great earthquake라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지진들"이 발생하는 것은 일반적인 심판의 의미라 볼 수 있겠지만 단수 "지진"이 난다는 것은 성도의 부활과 유관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 될 필요가 있다.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계 12:14).
단 7:25, 12:7에도 같은 언급이 나오지만 그것들은 지금 다루지 않겠고 같은 계시록에 나오는 12:14만 설명하려 한다.
이스라엘의 도피자들이 광야로 나가는 때는 분명 전3년 반이 아닌 후3년 반이다. 후3년 반은 세 등분으로 나뉘는데 이것은 내가 임의로 나눈 게 아니라 성경이 이렇게 구분하고 계신 것이다.
후3년 반 기간은 삼등분으로 나뉘어 있다. "한 때"(1년), "두 때"(2년), 그리고 "반 때"(6개월). 내가 이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2년 정도 된것 같은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여기에 관심이 꽂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기존의 어떤 주석가들, 성경 해석가들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해석을 안 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내가 계시록에 관심이 많았기에 기존 목사들의 강해나 설교, 책들도 많이 들여다 봤지만 여기에 대한 설명은 내가 본 기억이 없다. 피터 럭크만 박사님도 계시록의 다른 것들은 자세히 설명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안 하셨다.
그래서 내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계시록 연구에 있어서 선구자적 입장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기에 기존의 해석 틀을 참조하지 않고 순전히 "나의 연구"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그 점 아시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를 낼 가능성도 많이 있는 것이고 독자분들이 나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현재 나는 이 기간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략 정리가 되었다, 이 기간들을 나누는 모종의 사건들이 있는데 그것은 휴거들이다. 14만4천의 그 성도들이 휴거되는 사건이 먼저 있을 것이고 7년의 끝무렵에 가서 나머지 환란 성도들이 휴거될 것이다.
이런 구도가 된다.
한 때와 두 때 사이 - 14만4천의 휴거(계 12장의 사내아이의 휴거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 때와 반 때 사이 - 환란 성도(두 증인 포함)의 휴거(계 11, 14장).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전 15:23).
"첫열매들"은 마 27장에 처음 등장했고 고전 15:23에서 그 사실을 컨펌하고 있다. 첫열매들은 계 14장에 다시 또 등장하는데 거기는 14만4천이라는 숫자로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14만4천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 올 존재들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첫열매들임에도 그들은 위치상으로 교회의 휴거보다 뒤에, 환란 중반을 넘어 휴거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은 14만4천이 아닌 다른 환란성도들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환란전휴거 때 올라갈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왜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라는 언급 속에 환란 성도들의 존재는 이미 함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14만4천이 첫열매들이라면 그 첫열매들에 뒤따라 오는 "이삭줍기" 성도들은 당연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 안해도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환란전휴거: 교회의 휴거(추수). - 7년 환란 이전.
환란중간휴거: 14만4천의 휴거(첫열매). - 후3년 반의 한 때와 두 때 사이.
환란후휴거: 나머지 환란성도의 휴거(이삭줍기). - 후3년 반의 두 때와 반 때 사이.
일반적으로 세대주의적 관점에서는 환란전휴거, 환란후휴거, 이 두 개까지만 언급한다. 때로는 두 증인의 휴거를 별개 사건으로 취급하여 휴거를 3개 이상으로 늘리는 해석도 있으나 압축하면 최대 3개까지만 나올 수 있다. 즉, 교회 시대 끝에 발생할 환란전휴거를 포함해서 주님의 지상 재림 전까지 3개의 휴거는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14만4천의 휴거는 어쨌건 명시되어 나오지는 않는데 나는 계 12장의 "사내 아이"를 14만4천으로 거의 확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의 휴거는 환란후휴거와 일단 별개 취급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
그녀가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모든 민족들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라.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과 그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가더라(계 12:5).
계 12장의 각 사건들은 선후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다소 모호하게 보이는 면이 있어서 이 사내 아이의 휴거가 정확히 7년 중 어느 시점에 발생하는지 짚어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대략적으로 판단은 가능한데 사내 아이가 휴거되는 것은 7년의 중간 정도가 맞지 후반부는 아니다. 왜냐하니 사내 아이가 들림받고 나서도 그 뒤에 한참 여러 사건들이 전개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때와 두 때 사이가 수상하다는 것이고 그때 14만4천이 휴거되면서(순교하고 나서 몸이 부활하여 휴거되는 것이겠지) 그와 동시 타이밍에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 그런 관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제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그 성도들의 복수 기도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후3년 반의 1년이 경과되었다면 이미 어마어마한 환란 성도들이 목베임 당했기에 충분한 시점이다. 나팔 재앙이 7년의 정확히 중간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그 시점에는 성도들이 거의 순교하지 않았을 것이다.
6 그때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따르더라. 그것들이 땅에 쏟아지니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모든 푸른 풀도 타버리더라.
나팔 재앙의 출발 시점이 후3년 반의 한 때 경과 후라는 점은 이야기했고 그때는 많은 성도들이 목베임당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피를 강물처럼 흘린 그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 심판들을 준비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보는 이 심판들의 특징적인 부분은 "삼분의 일"이라는 요소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피가 섞인 우박"은 실제 피와 섞인 우박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우박이 많은 유기화학물질을 담고 있기에 그 안에 내재된 물질에 따라 색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뉴스 토픽 같은 데 보면 러시아 공업 지대에 이상한 파란 우박, 빨간 우박이 내렸는데 알고 보니까 공업 폐수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피가 섞인 우박인데 이것이 사람의 피인지, 짐승의 피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때 지상의 사람들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 상태에서 후3년 반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악인들은 악한 종교적 의식(카니발리즘, 카톨릭 미사의 궁극적 형태)을 위해 유대인의 피를 흘려서 마시기도 하겠지만 그 당시 물을 구할 수 없다는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서도 흡혈을 할 것이다. 그들이 피를 마시는 것은 양심법(창 9:4)에 대한 위반일 뿐 아니라 모세 율법(레 17장)에도 도전하는 것이고 심지어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 대한 권고 사항 중에도(행 15:29) 피를 마시는 것을 멀리 하라고 되어 있으니 모든 시대를 통틀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그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때의 지구는 모세와 엘리야의 예언으로 인해 가뭄이 와서 전체적으로 바싹 말라 있는 상태이다. 지금도 한국을 포함해서 남아공 같은 나라들이 긴 가뭄을 겪고 있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경우 수년 째 가뭄이 심각하다. 가뭄에 산불이 나게 되면 겉잡을 수 없이 빨리 번지게 되고 피해는 가중된다. 한국도 수년 째 겨울 가뭄을 겪어 왔는데 특히 이번 겨울은 화재가 자주 나고 있어서 가뭄의 심각성을 재삼 느끼게 된다. 어쨌건 나무의 삼분의 일을 태우는 불이 난다면 그 산불은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밀림을 포함해서 록키 산맥, 안데스 산맥,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같은 주요 삼림 지대를 태우는 불일 것이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거대한 산이 불에 타서 바다로 던져지는 것 같더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더라.
나팔들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알 수 없지만 느낌상 긴 기간 동안 이어진다기보다 연속해서 발생하는 분위기이다. "거대한 산"에 대해서 가장 쉽고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해석은 거대 운석이나 소행성 같은 미니 천체가 지구에 충돌하는 상황이라는 것인데 과연 그런 것일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에게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났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옮겨져 바다에 빠지라.’고 말하여도 그렇게 되리라(마 21:21).
실제로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다면 이 산더러 옮겨져 바다에 빠지라고 말할 때 시행된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나타난 세부적 요소들이 본문 8절과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이 두 구절을 연계시켜 주목해야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8절의 현상은 '어떤 성도의 기도 때문에' 발생한다 볼 수 있겠고 막 11:23의 동일한 말씀에서 볼 때 믿음이 있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므로 꼭 그 대상자를 "두 증인"이나 14만4천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이 현상은 다른 나팔 재앙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이 거대한 산 같은 존재는 일반적인 운석이나 소행성은 아닌 듯 한데 왜냐하니 그것이 바다에 던져질 때 물리적인 후폭풍, 쓰나미를 일으킨다는 측면은 여기에 묘사되지 않았고 유독 바다의 삼분의 일을 피로 바꾼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안 나왔지만 9절에 보면 배들이 침몰한다고 되어 있으니 쓰나미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건 이 소행성 같은 존재는 문자 그대로 지표면에 수십 킬로미터의 곰보 자국 크레이터를 남길 정도의 그런 바위 덩어리는 아닌 것 같다. 거대한 산을 소행성이라고 하면 최소 지름 1km는 넘을텐데 그 정도 크기의 별이 와서 부딛치면 지구에 소빙하기가 도래하고 과학자들이 공룡 멸종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그 소행성 충돌 비슷하게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몰살할 수도 있다. 1/3 정도가 아니라 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은 이 거대한 산은 그렇게 거대하게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솜사탕처럼 물에 닿으면 녹는 성질의 혜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혜성은 덩치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길지만 정작 그 알맹이는 아주 작다. 그리고 혜성은 생명체에 유해한 물질들을 담고 있어서 혜성이 지구에 근접하여 지나가면 전염병이 퍼진다던지 하는 역사적으로 안 좋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게 혜성의 독성 물질 때문인데 바다를 피로 물들인다는 그 산도 소행성이라기보다 혜성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직접적으로 충돌의 물리적 파괴력보다는 화생방 무기처럼 오염에 의해서 바다의 1/3을 죽은 바다로 바꾸는 것 같다는 말이다.
9 또 바다에 있는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더라.
여러분은 8절에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로 변했기 때문에 9절에서 바다의 생물들 삼분의 일이 죽게 되는 순서를 오해하면 안 된다. 쉽게 하는 착각이 해양의 피조물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피가 바다의 삼분의 일을 피로 물들인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런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바다에 사는 전체 생명체들이 죽어서 피를 쏟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피가 바다 전체를 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정확한 계산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어림 추산하더라도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는다 해도 지구의 5대양에 차는 피의 농도가 최대 10% 훨씬 미만일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완전히 피 자체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생물들이 죽어서 흘린 피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니란 것이다.
알다시피 피는 바닷물보다 점성이 매우 높고 물질을 산화시키는 부식력이 강하다. 철제로 된 군함이나 상선, 유조선이 피로 범벅된 대양 위를 지나갈 수 있을까? 점성이 너무 강해서 추진력을 낼 수가 없고 억지로 뚫고 나가려 해도 스크류에 죽은 생선들과 피 찌꺼기가 걸려서 마치 무풍지대에 고립된 범선처럼 멈추게 될 것이다. 멈춘 다음에는 배를 둘러싼 피가 철을 급속히 부식시켜서 여기저기 구멍을 내고 결국 배는 속수무책으로 서서히 가라앉게 될 것이다. 부식이 덜 되는 목선이라면 형편이 나을지 모르지만 그 경우에도 운항이 안 되어고립되는 것은 매한가지이고 결국 배는 피의 바다로 가라앉아야 한다.
여러분이 이 상황을 겪는 선원이나 선객 당사자라고 하면 굉장히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평선 끝까지 모든 바다가 피로 물들어 있고 뱃전 아래부터 피 썩는 냄새가 올라와서 질식할 정도이다. 피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가 단말마의 경련을 일으키는 고래와 바다사자, 물범, 날치, 갈매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더 끔찍한 일은 배에 탑승하고 있는 그들도 조만간에 그 바다 생물들과 동일한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이다. 가히 공포 영화에나 등장할 소재가 현실에 일어나는데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피를 마시기를 즐겨 한 자들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심판이기에 결코 부당한 재앙이 아니다.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이 떨어졌는데 그것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원천에 떨어지더라.
이번에는 또 다른 천체가 지구에 접근하는데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이라고 직접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친숙한 용어로 말하자면 "혜성"이다. 나는 앞서 "큰 산" 또한 소행성이기보다 혜성이지 않겠느냐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상당히 추정치였고 틀릴 수도 있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이 별은 확실히 혜성이 맞다.
그런데 조금 이해가 힘든 부분이 혜성이 어떻게 한 지점이 아닌 "강들의 삼분의 일"에 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실제로 혜성이 충돌한 케이스에 대해서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과학자들이 항상 염려하는 것은 혜성 충돌이 아니라 자동차에서부터 아파트 크기만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가능성으로 안다. 혜성은 물리적인 타격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염려의 우선 순위에서 뒤에 있는 모양이다. 따라서 혜성 충돌시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 되는지에 대해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내가 대략 아는 부분만 말하자면 혜성은 지표면에 와서 부딛치지 않고 대기권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으로 안다. 결국 지상에 낙하할 때는 수많은 잘고 잔 파편들이 낙하하고 혜성이 품고 있던 수분과 화학 물질들은 분말과 포자 형태로 널리 퍼지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 별은 한 곳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강들의 삼분의 일"이라는 넓은 지역으로 떨어진다 여겨진다.
그렇다면 "물들의 원천"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이 표현이 지질학에서 말하는 <지하 대수층>은 아닌 것 같다. 지하 대수층은 지각 깊숙히 내려가 있기 때문에 혜성이 충돌해서 거기까지 뚫고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큰 강의 상류들에는 물들의 원천들이 있는데 현대에 와서 인류는 그런 상류의 원천들마다 댐을 건설해 놓았으며 그 모아놓은 물들은 각국이 농업과 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라는 것이다. 물들의 원천을 오염시키는 이 쑥 혜성으로 인해 수많은 인류가 독성 물질이 포함된 물을 마시고 죽을 것이다. 그 독성 물질이 방사능이라고 하는 해석도 있는데 그럴 개연성이 상당히 높지만 확정짓기는 어렵다.
11 그 별의 이름은 쑥이라 하고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니 그 물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그 물로 죽더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먹는 쑥은 아니며 별의 이름이 쑥이라는 것이다. 쑥이 독극물은 아니기에 그것이 들어간 물을 마셨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그때 한 사람이 나물을 캐러 들로 나가서 야생 덩굴을 발견하여 거기서 야생박을 그의 옷자락에 가득 담아 와서 국 끓이는 솥에 썰어 넣었으니 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지 못함이었더라. 그리하여 그들이 사람들에게 떠 주어 먹게 하니 그들이 국을 먹다가 소리질러 말하기를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이 있나이다.” 하고 그들이 먹지 못하더라. 그러나 엘리사가 말하기를 “굵은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솥에 던져 넣고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떠 주어 먹게 하라.” 하니 솥에 독이 없어졌더라(왕하 4:39-41).
엘리사가 행한 기적들은 본문의 참고가 되는데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을 받아서 이런 일들을 행했다. 그 능력은 제독 능력이었는데 독이 있는 음식을 먹고도 죽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
그들은 뱀들을 집을 것이요,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고 하시더라(막 16:18).
막 16장 지상 명령은 교리적으로 말해서 왕국 복음을 전파하는 환란 시대의 사역자들이 이 능력들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설명한다. 물론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도 부분적이지만 이런 능력을 행사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던가? 최대 A.D. 60년대 후반까지였으며 그 후에는 사도들이나 그들의 후계자들이나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느 날 지구상의 모든 식수원 중 1/3이 독극물로 오염되어 수돗물도, 개울이나 호수물도 마실 수 없게 된다면 그때 일반인들은 차치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환란기 사역자들은 어떻게 그 악조건을 극복하고 복음 전파를 계속하겠는가? 바로 엘리사가 했던 것처럼, 또는 막 16:18에서 사역자들에게 약속한 그 능력을 주셔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시대의 선교사나 목회자에게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라 7년 환란 때 주의 종들이 받게 될 능력이다.
그리고 그 물이 쓰게 되었다는 점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독성은 겉으로 표시가 나는 냄새나 맛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방사능은 무색무취무미이기 때문에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마신다 해도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쑥이라는 독을 방사능으로 연결짓는 해석에 대해 나는 반신반의한다는 것이다.
물의 삼분의 일이 쓰게 되어 그 물을 마신 사람들이 1/3이 죽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으로 봐서는 수억 명이 죽는 것은 맞지만 그 희생자가 전체 인류의 1/3보다는 훨씬 적다. 즉, 많은 사람들이 쓴 물을 마시고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시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생존자들은 독극물로 오염된 지역에서 탈출하던지 아니면 동물이나 사람의 피를 마시던지간에 대안을 찾을 것이다. 해독의 능력을 가진 환란 성도들을 제외하고 누구나 이 물을 마시면 죽을 것이다.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강타를 당하여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이 그 삼분의 일 동안 비치지 못하고 또 밤도 마찬가지더라.
이번 넷째 나팔의 재앙이 가져오는 결과는 지구 행성 범위를 초월한 우주적 규모의 사변인데 이 부분에서 해석을 어떻게 할지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선, 삼분의 일이 어두워진다, 삼분의 일 동안 비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8시간 동안은 전혀 빛이 없는 암흑의 상태가 초래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가능한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단순한 일식이나 월식일리는 없다. 이번 재앙은 별들까지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또 그 용이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삼키려고 출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더라(계 12:4).
여기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은 문자적 별이 아니라 별로 상징된 천사들을 말한다. 그 천사들은 사탄을 따르는 악한 천사들로서 12:7에서는 그들이 미카엘의 군대와 싸운다고 나온다. 7년 환란의 중간에 그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탄의 군대는 패하여 땅으로 내려올 것이다.
별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는 현상이 계 12:4과 관련이 있지 않나 추정은 되는데 다만 시기적으로는 일치하지 않아서 적용하기가 애매하다. 이제까지 서술한 설명의 논조로 이어나가자면 일곱 나팔 재앙은 후3년 반이 1년 지나서 시작된다고 이미 설명했으니 말이다.
낮 삼분의 일, 밤 삼분의 일씩 어두워지는 현상은 자연적으로 발생할 방법이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은 등화관제 하듯이 별들이 하루의 1/3시간씩 소등하면 가능하다. 햇빛이나 달빛, 별빛의 "조도"가 1/3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비취는 시간"이 1/3씩 감소한다고 했기 때문에 별들이 실질적으로 꺼져야 한다. 우주적인 소등이 이루어진다면 그 광경은 땅에서 관찰자 입장으로 보더라도 두려울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아주 맑은 날이 아니면 별들을 관찰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도시 거주민들은 별빛의 중요성을 거의 인식 못하고 지내는데 농촌은 다르다. 자연광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별빛과 달빛이 얼마나 필요한지 안다. 그것들이 갑작스레 다 사라진다고 하면, 게다가 그때는 지금같이 전기 사정이 좋아서 도처에 가로등이 있고 네온사인이 즐비한 때도 아니라 대환란이라는 아주 극악한 환경인데 그나마 별과 달과 태양까지 1/3씩 죽어 버린다면 사람들은 꼼짝없이 그 시간만큼은 가만히 앉아서 빛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전지구를 내리덮은 그 우주적인 흑암은 손전등이나 토치 따위로 극복할 성질이 아니니까 말이다.
극지방에 가까운 위도로 올라가면 백야 현상이 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기간이 있는데 반대 개념인 흑야도 있다고 한다. 흑야는 해가 일찍 떨어져서 하루의 대부분이 밤인 것을 말한다. 위도가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백야와 흑야에 맞춘 삶의 패턴을 갖고 있는데 동물들도 거기 적응해서 살고 있다. 인간은 겨울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동물들보다는 적응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평생 극지방의 독특한 현상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사는 중위도권 이하의 사람들, 한국도 포함해서,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극한대 지방에서나 가끔 경험하는 일을 겪게 되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게다가 8시간 동안 일체의 빛이 소등된다면 기온이 급강하하거나 기타 여러 기상 이변이 속출할 것이다. 인간도 문제지만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서 작물들이 냉해를 입어 무더기로 죽어 나가고 생체 리듬이 깨진 가축들은 미치거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13 내가 보고 들으니,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이는 세 천사가 이제 불려고 하는 다른 나팔 소리들 때문이라.”고 하더라.
지상의 인간들에게 화가 있다는 천사의 직접 공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대환란 때가 되면 꼭 영적으로 올바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세상 사람들도 하늘에 천사가 지나다니는 모습이나 천사들이 외치는 것을 보고 듣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 시대에는 천사들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사례 자체가 드물고 그 드문 사례들조차 상당수가 마귀의 조작인데 그런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마호메트가 만난 가짜 가브리엘, 조셉 스미스가 만난 모로나이라는 자칭 천사, 그 외에도 천사를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사주의 아니면 이단 교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사례를 마귀의 천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닌데 대부분은 가짜란 얘기다.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히 1:14).
천사들은 누구를 섬기도록 파송된 존재라고 하는가? 크리스찬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는가? 천만에.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구원의 상속자"가 아니다. 천만에 만만에, 우리는 구원을 "상속"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을 선물로 거저 받는 사람들이지 어떤 상속 개념으로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여기 구절 어디에도 구원을 "상속"이라고 언급한 데는 없다. 신약 그리스도인의 교리를 담은 신약 서신서들의 어떤 구절에서도 구원을 상속에 연결짓지 않는다. 구원을 상속받는 사람들은 조상들의 약속 때문에 그렇게 되는 사람들로서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실제 자손들이거나 그들에게 붙어서 개종하여 구원의 동참자가 되는 환란 때의 이방인 성도들이다.
어쨌건 환란 성도들은 구원을 결코 선물로 받지 않으며 "상속"이라는 인간 편에서의 행위 요소가 붙어서 받는다. 천사들은 대환란 때 이 땅에 빈번하게 오고갈 것이며 선지자들을 도와주고 섬겼던 것처럼, 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다음 천사들이 와서 주를 섬겼던 것처럼 환란 성도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것이다.
천사들과 조우하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하늘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받는다는 발상은 현대 은사주의적 크리스찬들에게 끊을 수 없게 구미가 당기는 매혹이다. 천사 구경도 못한 불신자나 보통 크리스찬들은 어떤 영적 체험자가 "나는 천사를 만났어요"라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 마구 몰려들어서 돈을 내고 그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한다. 그게 사실 무척 웃기고 허무한 짓거리인 것이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신앙이 좋고 성경을 많이 안다 할지라도 평생 천사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성경에 대해 일자무식이고 오히려 방언이라던지 신유 같은 은사주의에 푹 빠진 사람들이 천사는 잘도 만나는 것을 본다. 그 자들이 만나는 천사가 대부분 제대로 된 천사겠냐마는, 마호메트가 만난 짝퉁 가브리엘과 다르지 않다 보지만, 어쨌건 하나님께서 신실한 이 시대 크리스찬들을 역차별하시는 것인가?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천사를 만난다고 해서 더 급수가 높은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환란 때는 성도들만이 아니라 악한 불신자들조차도 자기들 머리 위에 돌아다니는 천사를 본다고 하지 않았나, 저 구절을 잘 새겨 보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후 4:18).
천사들도 "영적인 피조물"로서 "영적 몸"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천사와 영 자체는 다르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볼 수 없는 본질을 지니셨다.
오직 그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 6:16).
천사들을 만나건, 천국 지옥에 왔다 갔다 하는 화려한 영적 경험이건 그건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과 보상과 관련하여 아무 점수도 되지 않는 일들이다. 여러분이 천사와 만난다고 해서 그 천사가 여러분의 믿음을 더 좋게 세워줄 수 없다. 여러분이 이제 막 구원받은 영적으로 어린 성도라 할지라도 가장 지위가 높은 천사들보다 훨씬 믿음이 좋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자기 앞에 선명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만 구원받은 크리스찬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 말을 이해했는가? 여러분이 구원받은 크리스찬이 맞다면 천사들보다 믿음이 좋다.
여기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이라는 표현은 셋째 하늘, 둘째 하늘이 아닌 첫째 하늘, 곧 창공 위를 날아가는이라는 뜻이다. 즉 새가 날아다니는 그 고도에 천사들이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육성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카톨릭의 성화에 감명받아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은 천사들이 진짜 황새 같은 날개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날개 달린 천사라는 게 워낙 고정관념이 되다 보니까 잭 칙의 전도 만화를 보더라도 천사들은 날개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이해를 쉽고 빠르게 하려는 전도의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교리적으로는 천사들에게 날개가 없다. 날개를 가진 영적 존재는 스랍, 그룹인데 이걸 또 개신교에서는 스랍 천사, 그룹 천사라는 이상한 조어를 해 놓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성경에는 "스랍 천사", "그룹 천사" 따위의 단어 조합은 없다는 것이다. "스랍, 그룹, 천사" 이것들은 각자 다른 존재들이다.
천사는 날개들이 없음에도 하늘을 잘 날아다닌다. 여러분이 슈퍼맨 시리즈를 보면 슈퍼맨은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난다. 슈퍼맨 영화에서 그는 거의 반신반인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래서 그는 날개 없이도 나는 것 같다. 천사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이 있기에 초보적인 새의 날개 같은 게 없어도 우주공간과 첫째 하늘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다. 사실, 날개는 대기권 안의 새나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 비행하기 위한 도구로서 진공 상태인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날개짓은 비행하기 위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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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타임라인에 오류가 있군요^^
후삼년반이 시작되는 사인은 5번째나팔입니다.
후삼년반은 짐승의 42달의 권세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성도가 순교당하기 시작합니다.
나팔재앙이 후삼년반이후에 나오는것이 아닙니다^^
잘못 보셨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