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깊어가고 낙엽은 진다는 데...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단풍구경이라도 한 번 시켜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흔한 차도 하나 없는 처지라
멀리는 못가고 시내버스를 타고 팔공산 갓바위로 가기로 했다.
나야 늘 다니던 곳이지만
평소 걷는 걸 싫어하는 아내는 가본 지 십년도 더 된 곳이다.
"낼 갓바위가자!"
"갑자기 갓바위는 와요?"
"요새 단풍 죽인단다.. 가자.. 알았나!"
"하이고.. 겨우 갓바위?"
"이 자슥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니가 대구 살으니까 그렇지.. 부산이나 서울 살아봐라...
팔공산 여기도 경치 쥐긴다꼬... 몇년씩 배라가 온다..자슥아 ..아나?"
"갈데가 엉가이 업는갑따 배라가 하필 여기를 오그러....쳇!"
"시끄럽다 갈끼가? 안 갈끼가?"
"알았어요.. 그라만 도시락은요?"
"절에가믄 그냥 밥 주는데..그냥 물만 가꼬 가자"
"절에 밥 몬 묵누마... 짠김치에 멀건 된장국만 줄낀데..."
"그래도 그거 무먼 좋다고 줄 나리미 스는데..."
"가만 있으소 내가 알아서 하끼요.."
내가 사는 곳은 칠곡이라 갓바위를 갈려면 하양까지 가서 갓바위 뒷길로
가는 하양시내버스로 갈아타고 가야한다.
대충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차만 있으면 갓바위까지 칠곡서는 바로 거기다...
하지만 차가 없는 관계로 빙 둘러 가야하는 것이다.
이럴때가 제일 속상하다.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마누라가 일어나 부산하게 왔다갔다한다..
"아... 이기..억수로 맛있는거 하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8시쯤 일어나 세수를 했다.
9시쯤 출발을 해야 버스를 기다리고 뭐 그러다보면
얼추 12시가 조금 넘어 정상에 도착할 것이다.
근데...
9시가 넘어 10시가 다 되었는데도...
아침도 안주고 주방에서 달그락거린다.
"아직 멀었나?"
"다 되가요"
"아침 안주나?"
"좀 기다리소... 도시락 싸나노코 줄게요?"
"아직 안싼나?"
"하이고...참! 엉가이 보채소?'
"시간이 몇신데...아직 아침도 안주고.."
10시가 넘고 30분이 지났는데도..아직이다.
배도 고프고 승질이 난다.
그래서 꽥 소리를 질렀다.
"씨바.. 오늘내로 가기는 가나?"
"또또..저놈의 승질..."
하여튼 어디든지 둘이 같이 가는건 애초에 가지를 말아야 했다.
기분 좋으라고 단풍구경가는거지
출발부터 심사가 틀어져서야 애써 가본 들...
소리를 지르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나서 겨우 출발했다.
아침도 안 먹고 갓바위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1시가 다 되었다.
배에서 꼬로록 소리까지 난다.
"우리 오뎅이라도 하나 묵고 올라가자?"
그러면서 오뎅을 4개씩이나 먹었다.
국물까지 한 사발 먹고 나니 배가 불끈 일어난다.
이제야 살것 같다.
아무리 못 걷는 마누라지만 30분쯤 올라가니 갓바위다.
이래서 뒷길은 편하다...
수능시험이 며칠 남지 않아서 그런지 기도하는 사람들로 무지 복잡하다.
갓바위를 뒤로하고 사람들이 한적한 골짜기를 찾아 자리를 폈다.
"자..인자 밥묵자!"
베낭속에서 끄집어 낸 보따리에는 유부초밥이 큰통으로 2통이나 있다.
"이거 누구 물라꼬 이렇게 마이 싼노?"
어쩐지 베낭이 무겁더라니...
겨우 두사람 가면서 초밥은 일개분대 먹고도 남을 양이다.
재료 있는대로 다 싸버린 모양이다.
"몬 무먼 딴사람 주믄 되지?'
"야이 자슥아... 여기는 다 절밥 무러 오지...
니 맨치로 도시락 싸가와서 밥 묵는 줄 아나?"
조금 있으려니까 올라 올땐 그렇게 덥더니 바람이 불어선지 춥다.
"야..뜨신물 업나?"
"아이코.. 된장국 보온병에 너 노코 안 가왔뿟다요..."
"이런... 하여튼 정신머리하고는.."
"하도 빨리 안한다꼬 옆에 서가 캐싸이...안 그런교?"
그렇잖아도 추운 날에 찬 유부초밥을 찬물과 먹으려니
온 몸이 덜덜 떨리는 것 같다.
벌써 오뎅을 4개씩이나 먹은 후라 많이 먹은것 같아도 반 통도 못 먹었다.
"인자 그만 묵고 가자'
"덜덜 떨리가 몬 있겠다."
차라리 절에 가서 반찬은 없지만 따뜻한 된장국에 뜨거운 쌀밥을 먹었으면
이렇게 춥지도 않고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하여튼 택도 아인기 씨아가...참!"
배낭을 다시싸서 짊어지니 무게가 그대로다.
"니가 지고 가라"
이러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누라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 소리없이 따라 온다.
나도 기분이 영 지랄같다!
이게 무슨 단풍놀인가?
하루종일 떨다가 온 중풍놀이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두시간 동안 내내 말이 없던 아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당신하고 두번다시 어디 가면 성을 갈아요?"
하며 내가 들어 가기도 전에 문을 탁 닫는다.
나도 한마디했다.
"이하동문이다 자슥아!"
첫댓글 ㅎㅎㅎㅎㅎㅎㅎㅎ 어리숙이님댁은 정말 잼나게 사세요...^^
그럼 같이 한번 살아 보실려우? 하하하.....
이하동문이다 자슥아는 이럴때 쓰는말인군요..ㅋㅋㅋ 암튼 재밌게 사십니다
글"""이 잼납니다. 하연겨울*님 올~만이네요. 케이텍스 기차타고 부산을가면 님! 만날 수 있을라나... 반~갑습니다. 사~랑해요~
고속버스타고 가믄 안 만나 줄랑가? 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재밌게 사시네요. 사랑을 엿보면서 한참을 웃고갑니다.
재미있게 뵈는 모양이지....츠암!
쫑알쫑알... 봐써~ 봐냐궁. 흐흐 핵(학)교 운동장에서 뜀띠기나 허시지 않구선~ 믿는건 자신이야~ 고로 룰~~~루랄라~
매려긴 암것두 모름... ㅋㅋ
이젠 학교 운동장 안가..... 씨이..
올 가을 나도 단둘이 못 가봤구마요... 정말 잘 하셨네요... 내가 갔으면 내 좋아하는 유부초밥 진탕 먹어주는건데...베낭도 가벼워 질테고..중풍놀이를 할갑세 그래도 잘 놀다 오셨구만요.. 축하합니데이..
아직 안 늦었을 건 데... 지금이라도 같이 가시죠? 나랑 말고...ㅎㅎㅎ
저도 신랑이랑 어델 가면 항상 다투는데......^_^ 저도 친정이 밀양인데. 경상도 남자들 참 무뚝뚝해요. 지금은 전라도로 시집와서 전라도 사람 다 되었지만...... 나이 먹을수록 아내한테 가슴에 있는말 해 드리세요. 목에 하고픈말은 꿀꺽 삼키고, 이뿌다 사랑 한다, 첨에는 껄꺼러워도, 하다 보면 정말 그렇게 되거던요.....^_^
안 껄끄러워도 나는 몬 하겠소! ㅎㅎㅎ
참 재미있게 사시네요 사람사는 재미가 듬뿍 담긴 얘기 너무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재밌어 뷔는교? 그라만 다행이네....ㅎㅎㅎ
편안한 안방극장을 보는것 같습니다.....두분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모습이 부럽기까지 합니다....입가에 웃음이 번져나는 해학 프로 아주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건강하시고 다음 글 기대할께요....^^*
난 님의 닉이 그렇게 이쁠수가 없어요....ㅎㅎㅎ
여자들은 ..힘들어도 집에서 준비를 해가려고 하나봅니다..간단하게 그냥 한끼 때우는의미가 아니고...아무튼 사람사는 맛이 나는 글이네요.
준비할 게 따로 있지 다른 사람들은 일부러 절밥 무러 가는데...쳇!
그렇게라도 댕겨오심매 좋심더.
좋기도 하겠다...둘다 주둥이 툭 튀어 나와 가지고 왔는데...ㅎㅎㅎ
ㅎㅎㅎ~~~ 넘넘 잼있게 읽어습니다.^^ 그런데 옆지기님한테 잘해주세요. 여자들은 아무것도 아닌것에 감동받고 그레요.^^ 잘해주세요.^^
예에~~~ 잘해 줄께요. ㅎㅎㅎ
남은 유부초밥 쪽지로 부내 주세요~~^^아직도 깨소금 볶는 냄새가 나는 두분..행복 하소서~~^^
유부초밥 벌써 다 먹었는지 모르쥐.... ㅎㅎㅎ
푸하하하~~~~~~~~정말 잼 있게 적어 주셨네요 . 나이들면 남성이 여성화 되어 간다고 하던데..그케 큰 소리 치시면 곤란하지 않을까여?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니면 어쩌시려구여? ㅎㅎㅎ
여성화 되어 간다며요? 그럼 지금이라도 큰소리 쳐야지요...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 어리숙이님 늦다 하지만 말고 주방가서 같이 도와드리지 않쿠여 .. 그랬으면 따듯한 된장국도 잊지 않았을 텐데여 .. 즐겁게 웃고갑니다 ....
주방 간 지는 벌써 오래 됫심다... ㅎㅎㅎ
ㅎㅎㅎㅎ 우리집이나 남의집이나.. 그래서 저는 혼자 다닙니다..
맞아요 혼자 다니는게 최고지....
이하동문 맞습니다 ㅎㅎㅎㅎ...
맞기는 또 뭐가 맞아요...ㅎㅎㅎ
속상하셨겠어요 서로 맘상하고 자주가시면 그런일 없을텐데 .... 그레도 단풍놀이도가고 잼나요 .......
속만 상했겠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리 집 하고 똑갓내 웃고 갑니다 ..
그집도 앞날이...참!
ㅋㅋㅋ "이하동문이다 자슥아!"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
항상...배움의 자세가... ㅎㅎㅎ
내도 갱상도사람이지만 갱상도 남자들은 와그리 다들 무뚝뚝한지 원~ 올만에 안식구 델꼬감서 쪼매만 참고 재밌게 놀다오지 와그랬능교? ^^ 하기사 우리도 그라고 삽니다 ㅋㅋㅋ 글 진짜 재밌네요
증말,대단한 글입니다, 생활이 묻어나는 글에, 있는 그대로의 글, 두분의 주고 받는 대화가 너무 정겹습니다. 며칠 전 등업을 해서 이방 저방 다니면서 올린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니까 그동안 제가 가끔 인터넷에 올리던 글들이 너무 보잘 것 없네요
증말,대단한 글입니다, 생활이 묻어나는 글에, 있는 그대로의 글, 두분의 주고 받는 대화가 너무 정겹습니다. 며칠 전 등업을 해서 이방 저방 다니면서 올린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니까 그동안 제가 가끔 인터넷에 올리던 글들이 너무 보잘 것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