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 4월15 ~ 음 7월 15 )
‘번뇌를 끊어버리고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
모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만,
실지로 실다웁게 공부허는 바로 그 자리 그 마당에 있어서는 번뇌를 끊은 것이나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모두가 다 번뇌여 그것이.
그래서 빨간 것을, 빨간 꽃을 보아도 나는 ‘이 뭣고?
뿐이고, 파란 이파리를 보아도 나는 ‘이 뭣고?’ 뿐이여.
조실스님 녹음법문을 들을 때에도 나는 이 들으면서도 ‘이 뭣고?’ 뿐이여.
비행기소리를 들어도 나는 ‘이 뭣고?’ 뿐이고,
비행기소리를 들으나 자동차소리를 들으나
저 새 우는 소리를 들으나 개 짖는 소리를 들으나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리건 간에 자기의 본참공안 알 수
없는 의단만이 독로헌 것뿐이다 그 말이여.
그래야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고,
비행기 소리나 닭소리나 개소리나 새소리나
일체가 바로 최상승법문이여.
누가 나에게 분(粉)을 발라주고 향수를 뿌려주나,
누가 나에게 욕을 허고 험담을 허고 억울한 소리를 허나, 참으로 발심을 해서 수행해나가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것이다 그 말이여.
분발라주고 향수를 뿌려준다고 해서 좋아하고
나를 험담하고 욕허고 비방헌다고해서 진심을 낸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발심헌 사람이 아니요 참으로 불법을 믿는 사람이 아니여.
이와 같이,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가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나가야 거기에서 소분
쪼끔 그 사람은 정진을 헐 줄 안다고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이렇게 결제를 해서 석 달 간을 또 정진을
허게 되았는데 석 달이 길다고 허면 길고 짧다고 허면
짧은데 이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정진을 다구쳐 나가야
이 한 철이, 한 철에 정말 득력을 헐 수 있는
출가해서 일생을 도를 닦아가는데
정말 참 한 철‘이 한 철에 내가 참 힘을 얻었다.
이 한철이야말로 내가 금생에 와서 출가해가지고 정말
뜻 깊은 한철이었다.’ 고 추억에 남을만한,
정말 일대사를 아주 요달하는 그러헌 한 철이 되도록
애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대사문제는 자기가 애를 쓰는 데에서,
정말 부셔대는 데에서 되는 것이지
그럭저럭 먹는 데에 신경을 쓰고 입는 데에 신경을 쓰고, ‘니가 옳고, 내가 옳고’ 그런 시시비비에 신경을 쓰고
그러다보면, 한 철을 지내도 아무 얻은 바가 없을 것입니다. 두 철 세 철을 지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벌써 시비에 놀아나고 시비에 말려든 사람은
발심을 헌 사람이 아니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여기에 방부를 들이고
지내가지고 시비에 말려들고 남이 시비를 하고 남의
시비에 내가 말려든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세속을 다 버리고
출가한 입장에서는 그 몇 백배 몇 천배를 참 용맹정진을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야 그 시주들에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 몸띵이는 무상한 것이고,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인
것입니다.
정말 한 생각 한 생각 일초 일초 무상한 것을 뼛속깊이
느끼고 한 철을 잘 정진을 해주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더 큰 눈으로 보면 중생의 은혜
이 우주법계에 수없는 중생들이 있는데
그 중생의 은혜를, 은혜야말로 국왕의 은혜나 국가
민족의 은혜나 부모의 은혜나 신도단월의 은혜나
스승은혜, 그 다 ‘오종대은(五種大恩)’이라 그러지만
그 오종대은 보다도, 우리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아니하고 그렇게 나타나지도 아니허지만 한량없는 중생의 은혜가 정말 참 한량이 없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크고 큰 것이 허공인데 허공만큼
그 은혜가 큰 것이 바로 중생의 은혜라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그 한량없는 중생 속에 우리도
한 사람이지만 그 한량없는 중생으로 더불어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선망부모도 그 중생이요
부처님도 과거는 중생이었었고
모든 불보살과 우리의 선지식들도 전부가 한때는 우리와 같은 중생이었었고, 앞으로 무량겁을 두고 우리는 중생을 여의고 살 수가 없습니다.
중생을 위해서 있고,
중생과 더불어 있고,
중생 때문에 불법이 필요하고,
중생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불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출현을 허는
것이고 불법도 바로 중생을 위해서 필요헌 것입니다.
우리가 도를 닦는 것도
결국은 중생, 중생을 위해서 도를 닦는 것입니다.
불법, 불법승 삼보가 결국은 중생 때문에 나왔고
중생 때문에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상구보리,
우리 자신을 위해서 지혜를 닦는 것은 상구보리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바로 하화중생(下化衆生)인데
그것이 바로 중생을 위하는 것입니다.
위에로 지혜를 구하는 것도 중생을 위함이요
법을 설해서 자비를 베푸는 것도 또한 이것이 중생을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중생이면서 중생 전... 위하는, 우리의 이
목숨이 필요헌 것은 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 한 방울, 쌀 한 톨이 바로 그것이 그 속에
중생이 들어있고, 이 입고 있는 옷 ‧ 살고 있는 이 집이
바로중생을... 중생이고, 걸음걸음이 밟고 댕인 것이
전부가 중생을 밟고 댕인 것입니다.
한 방울 물속에 구억충(九億蟲)이 들었으니 구억의 중생을 우리는 마시고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은
그 발바닥 밑에는 수 없는 중생이 그 발바닥 밑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쌀 한 톨을 농사를 짓는데
그 수없는 중생이 거기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의 목숨을 먹고 살고
중생의 목숨을 입고 살고
중생의 수없는 목숨을 우리는 밟고 살고 있었어.
그러니 우리가 중생을, 중생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불 , 대승불법 이라 하는 것은
바로 중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고맙습니다._()()()_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