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당 3억원 넘는 벤틀리는 작년 국내에서 775대가 팔렸다. 한 해 최다 판매 기록이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전체에서 일본을 앞지른 1위였다. 평균 6억원 안팎인 롤스로이스는 작년 한국에서 최다인 234대가 팔렸다.
불황이라지만 초고가(1억5000만원 초과) 수입차는 판매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법인(회사)이 초고가 수입차를 대부분 사들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016년 법인이 고가 수입차를 사서 오너가 사적(私的)으로 쓰는 걸 막기 위해 법인세법까지 개정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이 수퍼카 시장을 법인이 주도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활용한 탈세 의심 사례가 많다”며 “소득세·취득세 등으로 연간 수백억원 규모의 세수(稅收)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이르면 7월 연두색 법인 전용 차량 번호판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초고가 차량을 구매하려는 수요도 초고가 수입차 판매 증가 이유로 꼽는다.
불황 속 초고가 차는 판매 더 늘어
13일 수입차 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1억5000만원 넘는 수입차 판매량은 6242대로 작년 1분기보다 약 12% 증가했다. 1분기 전체 수입차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초고가 수입차 시장은 활황인 것이다. 1분기 초고가 수입차의 77%(4803대)가 법인 이름으로 등록됐다. 대표적인 수퍼카로 꼽히는 람보르기니는 작년 403대가 팔렸는데 343대(85%)를 법인이 구매했다. 올해 1분기 역시 54대 중 45대(83%)가 법인 몫이었다. 3억원 안팎이 최소 가격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급 브랜드 ‘마이바흐’ 역시 1분기에 팔린 466대 중 396대(85%)가 법인 명의였다. 작년 한 해로 봐도 초고가 수입차 판매는 1만9049대로 2년 전보다 25% 증가했다. 한 해 최소 3조원어치가 팔린 셈이다. 1분기 팔린 벤틀리의 77%, 롤스로이스의 93%도 법인이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법인이 수입차를 구매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법인이 직접 수입차를 구매, 등록해 사용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리스 회사 명의로 된 수입차를 기업 고객이 이용료를 내고 사용하는 것이다.
7년 전 만든 탈루 막는 법인차 비용 처리 규정은 허술했다
2016년 이후 법인차 관련 법인세법이 개정되면서 현재 법인차 구매비나 리스비는 연간 800만원까지만 비용 처리가 된다. 회사 일로 차를 썼다는 운행 일지를 쓰면 연료비·자동차세·보험료 수리비도 제한 없이 비용으로 처리해 준다. 운행 일지를 쓰지 않으면 구매비나 리스비를 포함해 연 1500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차 구입 비용 800만원 한도가 기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한 세무법인 관계자는 “1억원짜리 차를 사서 10년간 연 800만원씩 비용을 나눠 처리하면, 사실상 구입비 전액이 비용 처리 되는 셈”이라며 “법인 명의로 하면 여전히 세금 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법인차 1~2대만 이용하는 중소기업 대주주가 운행 일지를 허위로 작성해 혜택을 보는 경우도 많다. 법인세를 낼 때 운행 일지 제출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매년 법인차가 신규로 10만대 안팎 쏟아지는 상황에서 국세청이 일일이 운행 일지 실태를 살펴볼 인력도 권한도 없다”고 했다.
법인 ‘연두색 번호판’ 시행 앞두고 마케팅 불붙어
최근 법인 명의 초고가 차량 판매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배경으로 곧 시행되는 법인 전용 연두색 번호판이 일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