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사내에서 없애자.'
현대제철이 협력사 소속 사내협력업체 근로자 7000명을 자회사를 통해 고용하기까지, 6개월여 간 운영된 관련 TF(태스크포스)팀 내에서는 격론이 이어졌다. TF팀은 이들의 고용형태 변경과 연관된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이를 바탕으로 도출한 결론이 신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고용이다.
직접고용을 선택한 현대자동차나 기아와는 다소 구분된다. 철강 생산현장이 지속적으로 자동화되는 상황 등을 감안하면 자회사 고용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현대제철은 신설 자회사들을 통해 공개채용을 실시하고 협력사 직원들을 우선 채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진행한다. 신체검사 등 기본적인 절차에서 결격사유가 없는 경우 100% 채용한다. 이 과정은 연내 마무리한다.
TF가 운영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는 기존 근로자(노동조합)과의 의견 조율이었다. 자칫 노-노(勞-勞) 간 갈등이 발생한다면 고용형태 혁신의 의미 자체가 퇴색될 수 있었다. 현대제철은 본사의 직접고용이 아닌 신설 자회사 채용을 통해 이 문제를 풀었다. 기존 근로자들과의 갈등 요소를 줄일 수 있도록 완충지대를 둔 셈이다.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주주들의 입장도 TF를 통해 상세히 청취했다. 정규직화가 이뤄질 경우 처우 등이 개선되며 비용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회사 수익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주들로서는 반기기 어려운 조치다. 이 역시 자회사 채용을 통해 다소 차등을 둘 수 있는 형태를 선택해 주주들의 충격을 줄이고 재편의 취지는 살릴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와도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이 역시 TF팀의 몫이었다.
노조, 주주, 정부, 고객사 등 거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한 결론이 철강업계 최초이자 제조업체 최초, 7000명 협력업체 근로자 정규직화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월 현대제철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시정을 권고한지 2년6개월만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고용 모델은 철강업계엔 최초지만 서비스업과 대형 프랜차이즈 업종은 물론 공기업에서 이미 도입돼 테스트되고 있는 형태"라며 "오래 전부터 고민한 내용에 대해 TF를 통해 의견을 청취한 결과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만큼 기존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은 대폭 개선된다. 현대제철은 구체적인 안을 확정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임금은 기존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지급하고, 기타 복지 혜택은 기존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대제철의 결정은 가깝게는 철강업계에, 멀리는 제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포스코와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비슷한 유형의 소송이나 사안이 걸려있는 기업들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해당 기업 노조들이 현대제철의 사례를 근거로 새로운 요구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 안에 비정규직을 없애자는게 핵심이고, 언제고 가야 할 길이라면 우리가 먼저 가 보자는 취지로 결정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한편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