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근교 풍경
십일월 초순 목요일은 겨울의 길목임을 알려준 입동이었다. 초목은 상강에 서리를 맞고 조락에 듦이 상례겠으나 우리 지역은 올가을 첫서리가 아직 내리지 않은 듯하다. 근교 들녘으로 나가보니 텃밭에 고춧잎이나 캐지 않은 고구마도 넝쿨은 푸름을 간직했다. 단감과수원 감나무 잎사귀는 여전히 엽록소를 띄었다. 서리는 무서리와 된서리로 나뉘는데 무서리도 내리지 않은 모양이다.
서리가 내리지 않아도 도심 거리 가로수들은 단풍이 엷게 물드는 기색은 보이기 시작한다. 일 주 전 들렀던 창원대학 캠퍼스 수목에서도 단풍빛이 비쳤다. 도청에서 시청에 이르는 중앙대로 가로수들도 도심 거리 단풍 명소인데 머지않아 홍엽이 드러낼성 싶다. 단풍은 멀리 나갈 일 없이 내가 사는 생활권은 불모산이 활엽수가 우거져 만산홍엽을 보여줄 날이 언젠가는 다가올 테다.
목요일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라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창원역 앞으로 나갔다. 일터로 가는 이들과 같이 1번 마을버스를 타고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었다. 며칠 전 아침 안개가 짙게 낀 날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 안개는 끼지 않아 시야가 멀리까지 트였다. 동읍과 대산면 일대는 주남저수지와 낙동강 물줄기로 대기 중 습도가 높아 계절이 바뀔 때면 안개가 잦은 편이다.
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남삼거리를 거쳐 들녘을 지나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지나면서 승객들은 모두 내렸다. 가술 국도에서 내가 마지막 승객이 되어 제1 수산교에 이르렀다. 다리목에서 내려 강 건너편 수산을 바라보니 높이 솟은 아파트가 드러났다. 수산은 관습으로 부르는 지명이고 행정명은 하남읍이다. 그 곁으로 상남면이 위치하는데 예전 밀양부에서 남쪽이라 그렇게 불리었다.
수산을 바라보면서 강변 아침 풍경을 폰 카메라에 담아두고 강둑을 따라 잠시 본포 방향으로 걸었다. 신성마을에서 강둑 너머 넓은 둔치는 창원 시민들의 상수원이 되는 강변 여과수를 퍼 올리는 취수정이 곳곳에 있다. 4대강 사업 때 굴삭기가 모래흙을 퍼내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 생태계가 온전해 정글을 연상하게 했다. 뽕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에다 갈대와 물억새들이다.
강 건너편 초동면 곡강마을이 바라보인 일동 둔치는 물억새에서 이삭이 나와 은빛 물결로 일렁여 장관이었다. 물억새도 억새처럼 꽃이 피면 한동안 은빛을 보여주다가 오래도록 바람이 스치면 점차 옅어져 줄기는 야위어졌다. 억새를 보러 굳이 재약산 사자평 평원이나 신불산으로까지 일부러 가지 않아도 대체재로 충분했다. 차량으로 산마루까지 오른다는 황매산 억새 못지않았다.
둑길 따라 걷다가 북면에서 한림으로 뚫은 신설도로 굴다리를 지나 당리마을로 나갔다. 마을 앞으로 펼쳐진 농지는 비닐하우스에서 사계절 특용작물을 가꾸었다. 겨울에도 청양고추를 비롯해 토마토나 가지를 따내어 농한기가 없는 마을이었다. 농장주가 작물을 길러두면 현지 임시 숙소에 머무는 베트남인들 손에 수확했다. 때로는 시내에서 나가는 고령층 부녀들의 일손도 따랐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논은 벼를 심은 뒷그루로 서둘러 트랙터로 땅을 갈아 철골을 세워 비닐을 씌운 하우스가 들어설 테다. 아주 넓은 농지는 주로 당근 씨앗을 뿌려 싹이 터 파릇하게 자랐다. 겨울을 넘긴 당근은 이듬해 봄이면 뿌리가 토실해져 수집 업자가 인부들을 데려와 캐서 어디론가 싣고 갔다. 전에는 수박 농사를 짓던 농가들이 당근으로 작목을 바꾸었는데 계약 재배였다.
당리마을에서 구산마을에 이르기까지 비닐하우스단지가 이어졌고 벼를 거둔 일부 논은 땅을 갈아둔 곳이 나왔다. 들녘 한복판 대규모 비닐하우스단지는 다다기 오이 농장인데 보온을 위해 문을 닫아두어 내부를 엿볼 수 없어 주인장이나 일손을 돕는 외국인을 만나지 못했다. 죽동천 천변을 걸으니 노부부가 검정콩을 거두느라 수고했다. 둑길 가장자리를 밭으로 일구어 지은 농사였다. 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