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늦은 가을 들녘에서
십이월 둘째 금요일이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교 교통편을 열차로 이용하려고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집에서부터 걸어 외동반림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창원천 냇바닥에는 고마리가 꽃을 피웠고 흰뺨검둥오리들이 물웅덩이에서 놀았다. 창이대로 가로수 은행나무는 단풍이 엷게 물드는 기색인데 창원대학 입구 느티나무 잎은 갈색으로 물들어감이 완연했다.
대학 정문 일대 수목은 단풍빛이 더 물들어 계절의 시계추는 가을이 이슥해짐을 알 수 있었다. 창원대학 캠퍼스로 들어 사림관에서 공학관으로 가니 조경수로 자라는 나무들에서 다른 곳보다 일찍 침투한 가을빛을 느낄 수 있었다. 올가을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에 곧바로 드나 싶었는데 한 계절을 생략하고 다음 계절이 다가올 수는 없음은 당연한 이치였다.
층계를 밟아 창원중앙역으로 올라서니 정병산과 날개봉으로는 활엽수들이 단풍이 물들고 있음이 확인할 수 있었다. 진주를 출발해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한림정까지 나갈 생각이다. 정한 시각 도착한 열차에는 진주에서 통근용으로 타고 온 승객이 내리고 밀양을 걸쳐 대구로 가려는 이들이 탔다. 비음산터널을 통과한 진례역 대피선에서 수서행 SRT를 앞세워 보냈다.
잠시 쉬었던 열차는 다시 움직여 진영역에서 승객을 태워 화포천을 지니자 습지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한림정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가니 아침 안개는 일시 활성화되어 가시거리가 짧아졌다. 역전에서 따뜻한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받아 들고 신봉마을에 지나 북녘에 펼쳐진 들판으로 나갔다. 김해 생림으로 새로 뚫어 근래 개통된 60번 국도 굴다리를 지난 들녘을 계속 걸었다.
한림 들판 벼농사 대신 딸기를 재배하는 농장에서는 주인이 동남아에서 온 일꾼들과 비닐을 덮느라 수고했다. 안주인은 농막으로 쓰는 컨테이너 문에 비닐로 문풍지를 붙여 월동 준비에 드는 듯했다. 주인 아낙에게 일꾼들이 베트남 청년들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들녘 농사는 베트남에서 온 인력의 지원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으로 부녀들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시산마을이 가까워지는 농로에는 목줄을 풀어 키운 개들이 네 마리나 출현해 꼬리를 흔들어댔는데 나를 반겨줌이 아니라 녀석들끼리 짝짓기 상대를 고르는 듯했다. 묵정밭 고사목에 붙은 느타리버섯이 토실해 한삼덩굴을 치우고 채집했다. 올가을은 강수량이 많은 편이라 삭은 나무둥치에는 버섯이 생육하기 좋은 여건이라 들녘 묵혀둔 과수원에서 자연산 느타리버섯을 만날 수 있었다.
시산마을을 앞두고 강둑으로 오르자 안개는 걷혀가는 즈음이었다. 강물은 삼랑진 뒷기미로 향해 흘러가고 명례 천주교 성지와 전주 이씨 낙주재가 보였다. 둑길을 따라 시산 언덕 지인 농막을 찾으니 아침상을 차려 식사를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내실로 들어가 나는 삶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지인과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지인은 농막 전원생활을 영상으로 제작해 바깥세상과 소통했다.
지인과 헤어지면서 아까 채집한 느타리버섯을 조금 나누고 텃밭에 키운 상추를 한 줌 뜯어 채웠다. 농막에서 산언덕을 돌아가자 파크골프장에는 동호인들이 작은 공을 몰아 잔디밭을 누볐다. 최근 개통된 60번 도로는 가동까지 완공되었고 거기부터 대산 북부리는 미개통 구간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유등이 가까워지는 곳에서 둑을 내려가 토사 더미에 꽃을 피운 산국을 살펴봤다.
만개한 산국은 이제 저무는 끝물이라도 진한 향에 벌들이 찾아와 꽃가루를 모으느라 분주했다. 언덕에 넝쿨로 자란 호박잎은 생기를 잃어 보였는데 아침에 내란 첫서리를 맞은 듯했다. 농로를 빠져나오자 승마클럽에서 말을 키우는 조련사는 안장에 올라타 강둑을 넘어 산책을 나섰다. 주천강이 흘러온 하류 배수장에서 유등으로 가서 진영에서 온 3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술로 갔다. 2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