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노가다’로 살았던 2년 반의 추억들,
가끔씩 사람들이 나더러 묻는다.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
다리 안 아프냐고. 연골검사 해 봤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다리가 안 아픈데. 무슨 검사를 받느냐,“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자신은 없다.
검사를 받으면 연골이 다 닳았다고 할까 봐서 못가는 것,
그러나 오래전에 한 이틀 약간 아팠을 뿐
아프지 않은 것은 원래 타고 나기를 강하게 태어나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내가 노력해서 그런 것인가를 분간할 수는 없지만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2년 반 동안 제주도에서
초인적으로 무지막지하게 벽돌과 모래를 져 올리며 단련시킨 것이
대한민국의 강과 산. 그리고 옛길과 바닷가 길을 아프지 않고 걷게 된
원동력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신제주 건설이 한창일 때,
제주도청, 교육청, 제주 KBS, 제주 MBC, 그랜드호텔, 제원아파트,
그리고 여객선터미널과 제주 공항, 그리고 수많은 건물들에
내가 져 올린 수천만 장의 벽돌들과 모래,
그때의 기억들이 몇 편의 글로 남아 있다.
나는 곰방
자네는 누군가?
이름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갓 제대한 사람,
남들은 내 이름을 곰방이라 부르는데,
전라도 촌구석에서 왔지.
곰방은 무엇인가?
나도 잘 몰랐지.
처음엔 그냥 곰방이라 들었고,
나중에야 알았다네.
‘높은 곳으로 물건을 옮기는 사람,’
유식하게 말하면 ‘고운반高運搬’을 줄여서 말하다가 보니
‘곰방’이 된 것이지,
그러면 높은 곳엔 무엇을 옮기는가?
천국에 보내는 천사의 대리인인가?
아닐세.
그러나 천사와 무관하지도 않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살게 될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모래를, 시멘트를,
아니 꿈과 희망을 옮기는 것이 나의 임무지,
동트는 아침부터, 해지는 저녁까지
잠시 쉬면서 옮긴 벽돌이, 모래가 시멘트가
건물이 되고 아파트가 되는 그 경이를 위하여
그러면 자네에게 무엇이 남는가?
말해주겠네.
내가 지게로 져 올린 수천 만장의 벽돌,
내가 져 올린 수백 차의 모래,
내가 구부리고 져 올린 수백 톤 시멘트의 무게가
거대한 빌딩들이 되고, 아파트가 되고, 관공서가 되는 그사이
희망은 자꾸 고통과 절망으로 변해만 가고,
쥐꼬리만큼 남는 돈, 돈, 돈,
그렇다면 자네는 누구인가?
벽돌도, 모래도, 사람도 없는
텅 빈 공사판,
무표정하게 바람결에 날려가는 사 모래를 바라보는
슬픔과 절망의 곰방,
그게 바로 나일세.
사모래 몇 포 메고 나면
사모래 몇 포 메고 나면
금세 배고프다던 그대는
쓰디쓴 소주에 취해
비틀거리며 어둔 길 돌아갔습니다.
그대 돌아간 그 집에
그대 기다린 포근한 마음들 모여
마주 앉은 저녁상,
땀에 절은 노동이 눈부시게 빛나고
그대 거침없는 사랑의 낱말들이
모두의 가슴 속에
훈훈한 모닥불을 피울 것입니다.
힘쓸 때마다 토해내던 그대의 비명이
온 밤 내 살아 춤추는
파도소리로 들려오면
서늘한 새벽 길 휘적휘적 걸어가
끝끝내 불타오르는
아침 햇살로 내려앉겠습니다.“
87, 9, 11
꿈이 아니라고
꿈이 아니라고
눈 부비고 바라보면
그대는 허리 굽혀 벽돌을 쌓고
또한 그대는
무거운 벽돌을 아이처럼 업고
한 계단 두 계단 세지도 않고 계단을 오른다.
꿈을 심으면 허망한 물거품이 되고,
노동을 심으면 누군가 살아갈 집이 되는 여름 한낮에
그대 흘리는 땀방울
그대 답답한 가쁜 숨소리가
길이란 길은 모두 안개 자욱한 소금밭을 만드는
신성한 노동의 천국,
아파트 공사판,
87, 9, 17.
공사장에서
그리운 얼굴들 모여
벽돌을 저 나르고
사 모래를 비비고
벽돌을 쌓고
그리운 얼굴들 모여
검게 그을린 얼굴로
막일에 패인 주름살로
굵은 손마디로
국수를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신세타령을 하고
그리운 얼굴들 모여
한숨의 집을 짓는다.
정성으로 짓는다.
지어도, 지어도
뜬 구름 같은
나사는 집과는 다른,
짓고 나면 그 뿐인
희망의 집을.
그리운 얼굴들 모여
해가 지고 어둠 스며들면
사모래 통 씻어놓고
연장통 소중히 챙겨들고
어둠과 함께 지쳐서
돌아들 간다.
뿔뿔이 흩어져 간다.
1985.7.2
밤이면 밤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계단을 오르던 꿈만 꾸던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렀는데,
가끔씩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먼 길 걸어갈 때가 있다.
아픈 다리 어루만지고 또 만지면서,
2023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