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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내가 보니, 하늘에서 별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를 받더라.
성경에서 다섯이라는 숫자는 죽음과 마귀를 의미하는데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때 끝없이 깊은 구렁의 문이 열리고 마귀적인 존재들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 사건을 기존 럭크만 주석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전3년 반에서 후3년 반으로 넘어갈 때 암살당하고 부활하는 그 일에 맞춰서 유다 이스카리옷의 영이 구렁에서 올라와 죄의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시켰다. 그러나 내가 앞 강해에서 설정한 나팔 재앙의 시간표에 따르면 그 둘은 시점이 벌어지는 사건이 된다. 다섯째 나팔 재앙은 7년의 중앙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더라(계 13:3).
적그리스도(죄의 사람: 전3년 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을텐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내어 사흘만에 일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영이 들어오는데 그것이 아폴루온(또는 아바돈)이라 불리는 자이다. 그래서 후3년 반 때 적그리스도의 이름은 아폴루온을 따라 멸망의 아들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9장에서 실제 아폴루온이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하고 있지는 않고 그가 어떤 존재라는 소개만 나온다.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 또 땅 위에 사는 자들, 곧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그러나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라(계 17:8).
그 짐승(적그리스도)은 전에 있었다가(유다 이스카리옷) 지금은 없고(자기 거처에 가 있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계 13:3) 멸망으로 복귀할 자라고 했다. 그렇기에 어쨌건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멸망이라는 영이 추가되는 일은 7년의 중간에 발생해야 한다. 9장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과연 구렁이 열리는 이 사건이 곧 7년 중간의 그 사건이냐 하는 것이다. 말했지만 흡사 그렇게 보인다. 구렁의 문이 열리고 그 밑의 존재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그 메뚜기들을 통솔하던 아폴루온도 같이 올라오지 않겠나 하는 추정이다. 일단 그 문제는 놔두고 계속 살펴보겠다.
일단 이 구절의 "별" 또한 문자적인 행성이 아닌 천사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문자적 별이 열쇠를 받아서 끝없이 깊은 구렁을 열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 내가 1차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구절이 적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이것이다. 계 12장과 이 구절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보라.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계 12:9).
용과 함께 그의 수많은 부하들, 곧 타락한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온다.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건 거룩한 천사건 별로 표시할 수 있다. 그래서 12:4에서는 1/3의 별들이 쏟아져 내려온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9:1에서는 1/3의 별들이 아닌 하나의 별이 떨어지고 그 별이 구렁의 문을 연다는 것이다.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물론 9:1에서는 1/3의 별들은 생략하고 구렁을 여는 임무를 받은 그 하나의 별에 대해서만 클로즈업 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는 있다.
구렁을 여는 별이 거룩한 천사인지 타락한 천사인지 이 구절에서 확증은 못한다. 그러나 이 구렁의 열쇠를 가진 원주인이 다름아닌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악한 천사에게 열쇠를 넘겼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7년의 중간이 맞다면 요한은 1/3의 악한 천사들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한 명의 거룩한 천사가 열쇠를 갖고 내려오는 장면을 겹쳐서 봐야 맞는 것이다. 그 엄청난 것이 생략되었다고 보기에는 굉장한 갭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이다.
2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을 여니,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은 연기가 구렁에서 올라오는데 해와 공기가 그 구렁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더라.
끝없이 깊은 구렁은 성경에서 용광로로 비유하는 대목이 있다(마 13:42, 50). 용광로는 금속을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금속을 얻기 위한 장치다. 불은 죄들을 정결케 할 수 없으나 피는 속죄가 가능하다. 피의 속죄를 거부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는데 거기서 그들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대신 불로 자기들의 죄를 지우기 위해 힘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로 태워서는 죄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지옥과 불못으로 간 죄인들은 1억 만년의 1억 갑절만큼 유황불로 태워져도 그들이 없애야 할 죄짐의 0.1%도 제거되지 않으리라는 데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불못에 영원히 살아야 한다.
사람들이 지옥에 대해 까맣게 모르다가 그 무서움을 모르고 실수로 거기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모형과 예시들을 이 지상에 만들어 놓으셨다. 대표적인 것이 화산 폭발인데 화산이 터지면 성경에 묘사된 지옥의 모든 성분과 요소들이 거기서 분출되어 지표로 나온다. 거기에 유황이 있고 태양 표면보다 더 뜨거운 지하 심층부에서 나온 열기가 이글거린다. 하와이 같이 비교적 온순한 화산이 분출되는 곳에서는 관광객들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용암을 관람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때 운명이 그 용암과 같이 땅 밑에 있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 시대를 포함해서 인류 역사 6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자연 현상들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분의 공의, 심판에 대해서 예시하고 경고해 오셨다. 인간들은 그 경고를 줄곧 무시했고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며 우주는 스스로 자가발전(진화)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1천년, 2천년 전의 사람들은 찰스 다윈의 이론을 접하지 않았음에도 대자연과 대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두려운 창조주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양심상 부인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교와 대학원과 박사과정을 밟았다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를 부인하고 성경을 고대의 비과학적 종교 경전이라고 폄하한다.
그리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묶여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로 떨어졌더라(단 3:23).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느부캇넷살 왕의 우상 숭배 명령을 거역했다가 산 채로 지옥불에 준하는 뜨거운 용광로에 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앙 정절을 인정하셔서 불로부터 해를 입지 않게 하시고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 빠져나오도록 하셨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들을 제거함 받고 그 피의 보호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유대인 청년 세 사람처럼 지옥이 해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럴 리 없겠으나) 여러분이 거듭난 사람인데 혹시 하나님께서 업무 실수로 인해 여러분을 지옥으로 보내신다 치면 여러분은 저들처럼 털끝 하나 손상 없이 지옥문을 열고 나올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불멸과 영생의 특권이다.
우리는 실제적 지옥을 본 일이 없지만, 또 나 같은 경우는 지옥의 예표인 화산 분화구를 어디 가까이 가서 관찰한 일도 아직 없었지만 지옥이 확실히 존재함을 알고 믿고 있다. 내가 지옥을 믿는다고 해서 이 믿음이 대단한 것이라고 소개하는 게 아니라 지옥의 존재는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고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믿어야 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헐리우드 웨스턴 무비의 악당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지옥에서 만나자"라고 대사를 친다. 복음 근처에도 가까이 오지 않은 양심 불량한 악당들이 지옥에 대해 뭘 알고 얘기하는 것인가? 물론 나는 어떤 악인일지라도 죽음의 순간 앞에서 지옥에 대해 허세 떠는 말을 할 만큼 간이 큰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영화적 장치들은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어쨌건 여러분은 교훈을 받아야 한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불신자들, 교회 근처에 오지 않고 자기 의만 신뢰하며 사는 사람들도 지옥에 대해서 대부분 알고 있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두려워하면서도 그 공포심을 해소할 방책을 모색하지 않고 생각 속에 묻어두고 짐짓 멀쩡한 척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의 두려움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성경에서 지옥과 관련된 구절들 한 두 개만 인용해서 그들에게 "설명해줄 필요"도 없이 단순히 낭독해 주기만 해도 그 자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여러분에게 삿대질 할 것이다. 여러분이 자기 의견을 1%도 첨가하지 않고 단지 지옥 구절들을 읽기만 해도 그 자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사게 될 것인데 왜 그런지 알려주겠다. 그들은 겉으로 태평하게 자기 의를 의지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 두려워하고 쫄아 있다. 그들은 지옥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그것이 언급되는 곳에 가지 않으려 하고 TV나 라디오, 길거리에서 혹시나 지옥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올까봐 노이로제를 가진 자들이다.
내가 길거리에서 설교하고 전도한지 오래되었지만 항상 경험하는 게 그렇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전도지 뭉치를 쥔 채 서서 저 멀리서 오는 행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한참 멀리서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알아본 것인지 스텝을 갑자기 빨리 하면서 곡선 형태로 나를 피해서 돌아가는 행인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으며 신경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예수 믿으세요, 지옥 가지 마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친 것도 아니다. 단지 전도지를 들고 있는 거리 설교자라는 이미지만 확인되자마자 그들은 회피 모드가 발동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들은 마음 속에 자기가 지옥에 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이글거리고 있고, 그것을 세상 자랑과 욕망의 더미 아래 눌러놓고 버티기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서다. 복음은 그들의 마음 속을 꿰뚫어서 숨겨진 두려움과 비양심을 끄집어내고 그들의 자만심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무기이자 영이 거듭나게 하는 수술 도구이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리 큰 병 걸렸다고 해도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하면 기분이 좋고 휘파람이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주사 맞는 것도 좋아서 맞는 사람은 마약 중독자 빼고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둘째 사망에 이르는 병"인 죄짐을 짊어진 그들은 신속한 치료가 필요함에도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끔하고 찔림 받는 그것이 겁난다고 평생 비겁자로 복음을 피해다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다.
해와 공기가 그 구렁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더라 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지옥은 단지 "영적 세계의 한 부분"이다. 아마 특별히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세대적 진리 교리로 지옥을 공부한 적 없는 기존 교인들은 지옥을 피상적으로만 배웠을 것이다. 심지어 지옥은 땅밑에 있지 않고 외계의 혹성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옥은 피상적인 장소가 아닌 실제하는 처소이다. 화산에서 분출되는 유황 가스가 대기권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과 동일하게 그 구렁에서 올라온 연기는 대기권을 가리운다. 만일 그 구렁이 365일 계속 열려있게 된다면 온 지구가 두꺼운 연기 커텐으로 덮여서 생명체와 인류 역사의 종말을 맞게 될텐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구렁은 잠시 열려서 그 안의 존재들이 올라오는 시간만큼 연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연막은 적어도 국지적으로는 세계 어느 지역을 화산이 맹렬하게 분출하는 현장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 구렁의 문이 어디서 열릴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물론 이단 종파의 계시록 해석, 또는 계시록 전체를 영적 해석으로 일관하는 어떤 개신교 목사들의 해석에 익숙하다면 애초에 이 구렁 자체를 영적인 구렁으로 치부해서 지구상 어딘가에서 실제적으로 구렁의 문이 열린다고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설명한 것을 보았으니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 럭크만 박사는 구렁의 문이 바다의 밑바닥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아포칼립스 그림책에 관련된 그림을 넣어 놓았는데 그렇게 묘사한 배경은 버뮤다 삼각 지대가 그 문과 상관이 있지 않나 하는 추정 때문이다. 버뮤다 삼각 지대의 미스테리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최근 들어서는 여러 매체에서 "다 자연적인 재난이었고 초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버뮤다 삼각지대 이야기는 단지 호사가들의 안주거리 같은 말장난이 아니라 장차 구렁의 문이 거기서 열릴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언론이 그것을 말장난식으로 감추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론은 터키 아라랏산에 현존하는 노아의 방주 잔해에 대해서도 거짓말로 항상 일관해 왔다. 방주가 거기 남아 있는 것은 여러 계기와 경로를 통해 계속 보고가 되고 있지만 주류 언론들은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계속 침묵하고 있다. 그런 사례를 참고해 본다면 이 문이 열리기 전에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는 암시를 인류에게 주실 것이라고 본다. 어쨌건 나는 버뮤다 삼각 지대를 주목하기는 하지만 꼭 거기라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그 지점과 동일한 북반구 위도상에 마의 삼각지대도 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초자연적 일들이 생긴다고 하니까 어디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3 또 그 연기에서 메뚜기들이 땅 위로 나왔는데 땅의 전갈들이 지닌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더라.
2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그 때의 사람들은 "화산이 하나 폭발했네"라고 넘길 수 있는 것이다. 지구상 어딘가에서 크고 작은 활화산은 언제나 터지고 있으니까 상당히 큰 화산이 터졌다고 여기고 지나갈 수 있는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화산 폭발이 절대 아닌 것으로 곧 확인된다.
메뚜기들이라는 아주 이상한 존재들이 유황 연기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메뚜기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그 생김새가 풀을 먹는 메뚜기와 비슷해서 붙여진 것 뿐이지 실제로 자연적 메뚜기라는 게 아니다. 생김새는 메뚜기 같이 보이고 크기도 메뚜기보다 더 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건 사람보다는 훨씬 작은 사이즈다. 인터넷에 올라온 믿거나 말거나 식의 해외 사진 같은 데 보면 진돗개만큼 덩치가 큰 메뚜기 품종의 사진도 올라온다. 그런 메뚜기가 실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내 말은 이것들이 메뚜기의 형태와 몸집을 가졌다고 해서 꼭 여러분의 새끼손가락 만한 크기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외모가 흡사 메뚜기 같지만 속성은 메뚜기와 전혀 상관없는 "전갈"과 같다. 메뚜기는 사람을 찌르고 다니는 독충이 아니라 풀과 곡식에만 관심을 갖는다. 전갈들은 채식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의 희생물들을 독침으로 쏘아 마비시키고 먹이로 삼는 포식자 생물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노니 아무것도 너희를 결코 해치지 못할 것이라(눅 10:19).
대환란 때 성도들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대다수 받은 적이 없는 매우 특별한 능력을 받을텐데 그들이 받는 능력들 중 하나가 "뱀과 전갈을 밟는 것"이다. 물론 자연적 독충인 전갈도 될 수 있지만 여기 본문에 나오는 메뚜기 같은 전갈도 될 수 있다.
전갈을 밟는 권세를 받은 직접적 대상은 주님이 이스라엘 곳곳으로 파송하신 70명의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70명 제자들이 14만4천과 계 12장 "사내 아이"의 모형이라고 항상 강조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뱀의 독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고 멜리테 섬에서 실제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사도 바울 또한 환란 성도의 예표요 모형인 인물 중 하나라고 그것도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4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땅의 풀이나 또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치라고 하더라.
자, 이 땅의 전갈들, 또는 메뚜기들은 이런 명령을 받은 적이 없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본성대로 살아가고 있다. 전갈들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해서 쏘지 않는다. 그러나 저것들은 사람을 가려가면서 공격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막이나 밀림에서 볼 수 있는 그 전갈이 아니요, 또 이들은 푸른 풀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풀밭에서 보는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 구절에서 의문을 일으키는 관건은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받지 아니한 사람들"이라는 언급이다. 사람들이 이 부분을 7장과 직결시켜서 14만4천이 아닌 그 외 모든 인류가 이 괴물 전갈 침에 쏘인다,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말하겠는데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계 7:3).
한번 비교하면서 따져 보도록 하자. 모든 거짓 교리는 디테일한 관주 해석으로 몰아낼 수 있다. 이단들은 솜사탕 같은 뭉게뭉게 모호함 속에 묻어들어와서 그들의 거짓 교리 보따리를 풀기 때문에 그 자들을 뻥 차버리기 위해서는 해석의 디테일이 생명이다.
일단 7:3의 인장과 본문 4절의 인장이 동일한 인장인 것은 인정할 수 있다. 7:3에서 저 14만4천이 하나님의 인장을 이마에 받고 있고 그 인장은 4절의 인장과 같은 성격의 인장이라는 얘기다. 즉, 이 인장 표시의 의미는 그것을 받는 자들이 7년 환란의 여러 재앙들로부터 보호받고, 또 보호받으면서 하나님의 사역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의 부어짐까지 같이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성경을 보는 자들이 걸려넘어지는 이유는 14만4천"만이" 이 인장을 받고 7년 환란 내내 다른 어떤 누구도 이것을 받는 사람은 더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14만4천만 환란 성도가 아니라 그들로 인해 믿게 될 더 수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그 수많은 성도들은 인장이 필요 없는가? 14만4천이 휴거된 이후 후3년 반이 진행될 때에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계속 있을텐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지 않으실 것 같은가?
내가 말로만 하니까 이런 것이 단순한 추정처럼 보일 것 같아서 참조 구절을 들어서 이야기하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그가 계셨던 그룹에서 올라가 성전의 문지방에 이르니 주께서 가는 베옷을 입고, 옆구리에 서기관의 잉크통을 찬 사람을 부르시더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성읍 중간을 통과하라. 예루살렘 중간을 통과하여 그 가운데서 행해지는 모든 가증한 짓들로 인하여 탄식하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 하시고 또 내가 듣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를 쫓아가 성읍을 통과하여 치되 너희 눈에 아끼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늙은이나 젊은이나, 처녀나 어린아이나 여자를 전부 죽이되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접근하지 말며 또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니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사람부터 시작하더라(겔 9:3-6).
여기서 대환란 때 영적으로 소돔이 된 예루살렘 때문에 탄식하고 울부짖는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의 이마에 표를 하신다고 하는데 그 표를 받은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된다. 이 표는 남녀노소가 다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계 7, 14장에서 보는 바 14만4천은 전부 "남자 동정들"이기 때문에 받는 대상의 차이가 현격하다.
여기서 벌써 14만4천만 이마에 하나님의 표가 있다는 논제가 붕괴되는 것을 본다. 대부분 피상적으로 성경 해석하는 계시록 해석가들은 겔 9장을 계시록으로 가져와 연계시킬 기초적 상상력도 없는 맹탕들이다. 연결만 시켜 봤더라면 금방 알 만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14만4천만이 아닌 여타 환란 성도들"이 하나님의 표를 받아서 환란을 통과하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내리시는 인 재앙, 나팔 재앙, 호리병 재앙을 통해서 상하거나 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환란 성도들은 단지 하나님의 허용하심 하에 적그리스도에게 잡혀서 목베임당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환란 성도들은 순교하는 경우가 아니라 독을 마시거나 사고 당하거나 뱀에 물리거나 해서 비명횡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그들을 죽게 만드는 유일한 도구는 적그리스도가 그들의 목을 치도록 하는 칼이다.
5 또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그 사람들을 죽이지는 말고 오직 다섯 달 동안 고통만 주라고 하는데, 그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
다섯 달 동안의 고통, 그러면서도 그 쏘인 자들은 절대 죽지 않는 이상한 기현상인데 계속해서 쏘임을 당하는 것인지 한 번 쏘이면 그 사람이 다섯 달 동안 비몽사몽에 빠져서 쓰러져 있게 된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른 생물체의 독이 아니라 유독 전갈이기 때문에 전갈 독의 특성을 적용하자면 그 침에 찔린 자들은 마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한다. 전갈독은 사람을 고열에 빠뜨리고 환각을 보게 하고 또 근육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마약에 중독되어 늘어져 있는 사람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악몽과 환각에 빠져 있듯이 이 독이 퍼진 사람들 또한 실제적인 전갈 독이 퍼진 사람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다섯 달 동안 계속 맹독성 전갈침에 찔리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그건 생존율이 제로에 이를 것이다. 이 전갈이 초자연적인 지옥 전갈이라 할지라도 다섯달 동안 사흘에 한 번씩 맞는다 치더라도 그렇게 계속 맞으면 살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이 존재들은 초자연적인 것들이기에 그들은 한번의 주사량으로도 그 사람을 다섯 달 동안 녹다운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다섯 달 동안 "최초의 찔린 고통이 전혀 감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생한 작렬감,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아픈 부위를 긁거나 얼음찜질 할 수도 없게 손발이 굳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다섯 달 동안 생생한 지옥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치를 취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까지 인류에게 결코 개방해 보여주신 적이 없는 지하 세계의 실체를 공개하시고 그 안의 악령과 악마적 존재들을 땅으로 끄집어 올리셔서 그들에게 이 일을 시키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이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자비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멸망시킬 목적이라면 다섯 달 끌 필요 없이 즉시 죽여버리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생지옥을 경험함으로써 지옥의 무서움이 어떤 것인지 늦게라도 깨달아서 자기들의 악한 길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 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그 악인들이 이제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고 그 심판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믿었던 데 대한 하나님의 복수인 것이다. 흔히 죄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미래를 볼 영적 안목이 없는 불신자들은 죽음의 결과인 이생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면서 편안하게 죽는 방법, 즉 죽음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에 대해서만 머리를 굴린다. 그래서 이 방법이 더 편할까 저것이 더 편할까 생각하다가 번개탄을 피운다던지 목을 멘다던지 각자 더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한다. 대환란 때는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도피 수단을 자기들이 도망갈 비상구로 여기는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끔찍한 재앙들과 전쟁들, 전염병이 만연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는 광경을 보면서 생존한 악인들은 굳게 결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고통스럽게 죽이려 하신다면 내가 선수를 칠 것이다. 청산가리 캡슐 하나쯤 준비해 뒀다가 여차하면 깨물어 버려야지. 길게 고통받지 않고 즉시 죽을 수 있도록 말이지. 그 때의 인간들은 그런 준비쯤 다들 해 놓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모르실리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다섯 달 동안의 생지옥을 선물하시는 것이다.
6 그 날들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구하여도 찾지 못할 것이요 또 죽으려고 애를 써도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라
일단 나는 그 침에 맞은 자들이 '마비독'에 의해 손발을 못 쓰는 상황이 아닌가 추정을 했는데 다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그 독침에 맞은 사람들의 신체 기능이 이상 항진되어 일시적으로 재생 능력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손목을 칼로 그었는데 피가 멈추고 금방 아물어 버린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자살 시도를 할지라도 죽는 게 불가능해진다. 현대 의학에서는 치유 가능성이 없는 고통받는 중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큰 이슈 중 하나이다. 고통받는 환자들의 슬픔을 빨리 끝내주는 것이 맞다는 주장자들은 안락사에 찬성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한없이 고귀하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생명을 끊는 안락사도 결국 살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한다.
여러분이 의사나, 보건쪽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혹시 구원받지 못해 대환란에 들어가서 이런 사건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되는 입장이라면 그때 가서야 과거 여러분이 말장난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 살았음을 체감할 것이 분명하다. "삶의 질"과 "생명 자체"를 놓고 어느 것이 더 가치가 높은가 비교한다면 그 무게추는 절대적으로 "생명 자체"로 기울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자기 혼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마 16:26).
혼과 바꿀 수 있는 가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호흡이 끊어지고 육신 안에 있던 자신의 혼이 정해진 영원한 처소로 가야 한다면 그 운명은 뒤바꿀 수 없는 결정적인 운명이다. 지옥에서 하늘나라로, 하늘나라에서 지옥으로 더 이상 뒤집힐 여지가 그때는 남아있지 않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우리 속담에도 있지만 성경에도 같은 취지의 말씀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참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나니, 이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전 9:4).
사람들은 본문에 나오는 무서운 전갈침의 고통을 다섯 달 동안이나 겪느니 차라리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시시한 이유들 때문에 자살을 택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초자연적인 고통은 그야말로 생지옥의 고통이고 평소에 자살 충동이 없었던 사람일지라도 자살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서슴없이 붙잡을 만큼 극악한 고통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살을 원천 봉쇄하시고 불가능하게 만드신다. 일견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로 보이지만 넓게 보면 그들에 대한 제2의 갱생의 기회, 자비의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다섯 달을 버티고 회복된다면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셨지만 여전히 회개의 기회를 남겨두고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적그리스도를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짐승을 따라서 마귀의 자녀로서 살 것인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생각이 다른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다섯 달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악을 행할 것이다.
지난 시간에 강조했던 것과 같이 또 한번 이야기하는데 천국 지옥 체험을 사람들 앞에 털어놓으면서 그것을 통해서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별 가치가 없는 헛짓거리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 일을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 누구의 경험담을 들은 것도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음부에서 올라온 악마적 생명체에 의해 다섯 달 동안 생지옥을 경험한 것이다. 다섯 달 동안 생생한 지옥 체험을 하고도 그들 중 대다수는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또 다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을 추종할 것이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지금 즉시 해야 할 일은 누가 천국 지옥에 다녀왔고 미래를 보았다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청취하고 거기서 믿어야 할 근거를 확인하려 할 게 아니라 쉽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서 그대로 믿는 것이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자, 이 사람들이 전체 인류의 몇 퍼센트인지 나는 모르겠다. 환란 성도가 아닌 전체 인류가 이 고통을 당하는 것인지 일부는 피해서 숨을 수 있는지 그것은 알지 못한다. 최소한 환란 성도와 셀라-페트라 피난처에 있는 유대인 피란민들은 이 메뚜기 전갈 재앙에서 면제될 것이지만 또 다른 예외가 있는지는 모른다.
군대가 그의 편에 서서 견고한 성소를 더럽히고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며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리라(단 11:31).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그는 자기 군대를 사용해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거기에 자신의 형상을 세울 것이다. 그 사건은 7년의 정중앙에 발생한다. 적그리스도가 암실 시도 후 멸망의 아들로 알맹이가 바뀐 이후의 사건이다. 아까 말했다시피 다섯째 나팔의 재앙은 단 11:31과 같은 시점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지옥 전갈의 침에 맞아서 집단으로 가사 상태가 되어 기어다니며 허우적대고 있다면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몰고 진격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하루 이틀 지체되는 것이 아니라 물경 다섯 달 동안 그 지경이 된다면 적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점령은 최소 다섯 달 미뤄져야 된다는 얘긴데 성경과 완전히 어긋난다.
이 이유 때문에라도 다섯째 나팔 재앙은 후3년 반 시작할 때가 아닌 거기서 최소 1~2년 더 경과한 후에 발생할 것이다.
7 또 그 메뚜기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들의 얼굴과 같고.
그 메뚜기들에 대한 더 자세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그들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괴이한 생물체들이다. 성령께서 이처럼 자세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디테일하게 묘사를 안 하면 계시록을 읽는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 메뚜기들은 상징이다, 비유다, 알레고리다, 그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열심히 찾을 게 분명하니까 어디 도망가지 말라고 쾅쾅 못을 박아서 분명히 이것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생물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욥기를 참고해서 그 분위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네가 말에게 힘을 주었느냐? 네가 그 목을 천둥 같은 소리로 옷입혔느냐? 너는 그를 황충처럼 두려워하게 할 수 있느냐? 그의 콧구멍의 영광은 무섭도다...나팔 소리가 나면 ‘하, 하.’ 하며 웃고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대장들의 호령과 외침을 듣느니라(욥 39:19~25).
전쟁에 내보내는 전투용 말들에 대한 세부적 묘사가 욥 39:19-25에 나오는데 욥기가 대환란을 묘사하는 매우 매우 예언적인 책이므로 이 말들에 대한 묘사 또한 일반적인 말이라기보다 마귀가 사용하는 초자연적인 말들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실제 럭크만 박사도 이 말들을 본문 계 9장의 이 억의 기병대와 비교하고 있다.
내가 욥기 본문을 7절 설명에 가져온 이유는 이 메뚜기 군단이 "전마들"과 비슷하다고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설명할 때 그것들의 사이즈는 일반적 메뚜기 크기이거나 혹은 커봤자 강아지만하지 않겠냐, 그렇게 말했지만 9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 불길한 기마대와 상관지어 본다면 뭔가 찜찜한 부분이 남는다는 것이다. 혹시 이 메뚜기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나중에 2억의 악마 기병대로 변신하는 것 아니냐 하는 뭐 그런 짐작 말이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9장 뒷부분을 다루면서 자세히 말할 것이고 본문으로 돌아와서 금 면류관에 대해 보자.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썼으며" 이것들은 사람이 아님에도 사람 생김새와 행색을 닮았으니 이 존재들의 원천이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하게 금 면류관이 있다고 하지 않고 그 비슷하게 생긴 것을 썼다고 했다. 만일 이런 존재들이 지금 돌아다니고 있다면 황금 사냥꾼들의 사냥감이 될 것이다. 저것들의 금 면류관을 벗겨서 금괴로 만들자, 그렇게 해서 생명보다 금을 더 아끼는 외인부대가 결성되어 메뚜기 사냥을 다닐지도 모르겠다. 자연계의 어디를 보더라도, 또 역사 문헌의 어디를 보더라도 이런 류의 생물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까지 없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인간들은 역사에 의존해서 미래를 판단하기 때문에 항상 실수를 반복한다.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전 1:9).
전 1:9의 진리 그대로 인간은 이미 있었던 것 외에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과 창조물들은 인간들의 지식 범주를 훨씬 초월해서 많고 다양하게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고 배운 자연계에 대한 상식들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 가운데 극히 미미한 일부일 뿐이다. 현대의 자만심 가득한 지식인들은 자기들이 상대성 원리나 만유인력의 법칙, 질량 보존의 법칙 따위를 배워서 알기 때문에 2-3천 년 전 사람들보다 대단히 똑똑하다고 착각하는데 과거의 사람들이나 현재의 지식인들이나 지식의 절대량 면에서는 발전이 있었지만 창조주의 기준에서 보면 그들은 도찐개찐이다.
그러나, 오 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닫고 그 책을 봉하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더라(단 12:4).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버드 대학을 가득 채운 장서들, 대한민국 국회 도서관을 채운 지식들, 세상의 모든 고문서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의 지식들을 조합할지라도 거기에는 요한계시록 9장 본문의 사건들과 거기 등장하는 괴생물체들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한 개의 근거도 없다. 이 한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게임 오버 아니겠는가? 여러분이 성경을 더 많이 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겠다, 여러분이 바다 건너 신학박사와 석학들에게 가서 성경에 관해 무슨 기발한 해석을 배우겠다는 발상은 참 어리석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모든 해답을 쥐고 계신다. 단지 여러분이 진실과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것 뿐이다.
자, 그래서 이들이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썼다는 의미는 이것들이 과거에 "왕권"을 가졌던 자들이라는 암시를 준다. 우리는 "정사들과 권세들"(엡 3:10, 6:12; 골 2:15)이 공중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실은 끝없이 깊은 구렁 속에도 그들 중 일부가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바 오는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에 맡기지 아니하셨으니(히 2:15).
앞으로 올 세상, 즉 천년왕국과 그 이후의 영원 시대는 천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고 인간인 그리스도인들이 지배 세력이 되는 인간의 왕국이다. 히 2:15이 역으로 암시하는 것은 과거의 세상은 인간이 아닌 천사들이 주관하는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창 1:1과 1:2 사이의 시간 동안 천사들이 세상을 주관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천사들은 그 당시 왕권을 받아서 통치했을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이 쫓겨나서 이 우주공간에 들어와 위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옛 뱀이 아담에게서 왕권을 빼앗아 옴으로써 다시 이 세상의 막후 통치자들로 등극할 수 있었다. 깊은 구렁에 있는 그 악령들(몸을 잃어버린 천사들)은 그래서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흔적 기관'(진화론에서 말하는 자기들 이론의 증거) 같은 것인데 과거에 그들이 누렸던 영화를 슬프게 회상시켜주는 물건이다.
"그 얼굴은 사람들의 얼굴과 같고". 역사적으로 사람의 얼굴 비슷하게 생긴 곤충이나 새나 물고기(인면어)가 발견되면 학자들은 "이것이 혹시 계 9장의 그것들 아닌가?" 추측하곤 했었다. 드물지만 자연계에는 인면어 같은 사례가 등장하곤 하는데 조작하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사람 비슷한 것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인면어 같은 것들이 결국 계 9장이 사실임을 확증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 중 하나라고 보는 편이다. 사람들은 그런 이상한 생물들을 보면 신기해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분나빠 한다. 계시록의 심판이 시행될 날이 멀지 않은 요즘은 자연 계시만이 아니라 인간의 미술 작품을 통해서도 심심찮게 사람 얼굴을 한 괴물들이 튀어나온다. 이를테면 며칠 안 되었는데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하여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불길한 느낌을 준 그 "인면조"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이 우주에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며 이 말을 한다. "혼과 몸과 영"이라는 삼분법 상으로 지어진 퍼펙트한 하나님의 형상, 곧 삼위일체를 본딴 그러한 형상은 세상에 아담 밖에는 없다. 물론 그의 후손들은 영이 죽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오리지널 형상에서 벗어나 있지만 우리가 거듭나면 이지러진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사람은 외모 면에서는 천사와 유사하고 내부적으로는 혼과 영이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 외에도 모든 호흡하는 생명체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크거나 작거나간에 비슷하게 닮아 있다. 여러분이 원숭이나 여우나 사향쥐, 너구리, 비버, 기타 유대류의 동물들을 보게 되면 그들이 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양이 너무나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가 비록 말은 못하고 이성은 없을지언정 사람의 행태와 너무 유사한 면이 많음을 알고 놀랄 것이다. 이를테면 개가 사람과 똑같이 코를 곤다던지. 포유류는 대부분 발이 넷이고 머리가 하나다. 사람이 사지육신이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머리가 두개 달렸다면 그것은 유전자가 변형된 돌연변이이지 정상적인 생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며 짐승들은 아담의 형상과 닮게 지어진 것이란 얘기다. 결국 모든 짐승들도 다소간에 하나님의 형상과 비슷하게 지어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하다못해 지옥에서 올라오는 저 괴물딴지들도 사람 얼굴 같은 걸 가졌지만 그것에 대해 단순 불쾌감을 느끼고 지나칠 것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유비 추리를 해 보기 바라는 것이다.
8 그들의 머리카락은 여인들의 머리카락 같았으며, 그 이빨은 사자들의 이빨 같더라.
더 이상한 점은 그들이 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것이다. 7절의 '사람의 얼굴' 같은 경우야 "흠, 인면어 같은 건가?" 생각하고 넘겼을지라도 8절에 오면 이게 뭔가 해서 경악할 수 밖에 없다. 뭐 물론 이들이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해서 꼭 이 메뚜기들의 성별이 XX 염색체라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돌연변이에 의하지 않은 정상적 상태에서 천상의 피조물들, 곧 천사, 스랍, 그룹들의 성별은 다 남성이다. 타락한 천사들도 성별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 계속 기존대로 유지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여자 마귀"에 대한 독특한 언급이 등장하는 본문이 하나 있다.
보라, 납 한 달란트가 들어올려졌으며, 이것이 에바 가운데 앉은 한 여인이라.”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이것은 악한 것이라.” 하고 그가 그것을 에바 가운데다 던지고 납 덩어리를 그 입 위에 던지더라. 그때 내가 내 눈을 들어 보니, 보라, 두 여인이 나오고 그들의 날개들에는 바람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황새의 날개 같은 날개들을 가졌음이라. 또 그들이 땅과 하늘 사이로 에바를 들어올리더라(슼 5:6-9).
슼 5장에 등장하는 여자 마귀들은 황새 같은 날개를 가졌고 그들은 에바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UFO처럼 불리는 원반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여자처럼 머리카락이 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여인이라 되어 있고 게다가 로마 카톨릭의 중성적, 여성적 날개 달린 천사들처럼 날개가 있다. 사실 카톨릭 성화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여성스러운 남자 천사들(내가 보기에는 게이처럼 보이는데)은 거룩한 천사가 아니라 슼 5장에 나오는 저 여자 마귀들에게서 따온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런 결론이 내려진다. "거룩한 영적 존재들" 가운데는 XX가 없다. "거룩하지 않은 사탄의 영적 존재들" 중에는 XY가 아닌 XX도 간혹 나온다.
저 메뚜기들이 실제로 XX가 아니라 머리카락만 긴 XY라고 하면 그것들은 이 지구상에서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히피, 구루들, 남자 동성연애자들과 영적으로 통하는 자들인 것이 맞다.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고 게이, 호모, 트랜스젠더처럼 여자 구실을 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지옥의 악마들의 외모를 흉내내는 추한 짓이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이런 말이 단지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내 험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 구절을 보여주겠다.
그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끓는 솥이나 가마솥에서 나는 것 같도다. 그의 숨결로 숯불을 피우며 화염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도다(욥 41:20-21).
나는 개인적으로 담배갑에 경고 그림, 경고 문구를 넣을 때 욥 41:20-21을 집어넣으면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럭크만 박사도 이 구절을 흡연과의 유사성에 맞춰 적용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이런 구절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로부터 담배가 전인류에게 소개, 보급되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콧구멍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폐암에 걸려 죽었는가?
내가 분명히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데 담배는 기호식품이 아니다. 흡연은 <지옥의 유황불 연기로 여러분의 폐를 그슬리는 미친 짓>이다. 죄인들은 자기들의 영적 아비 마귀가 욥기에 묘사된 대로 불을 뿜는 용으로서 연기와 유황불을 호흡하듯이 똑같이 아비를 따라서 연기를 피우고 다니는 것이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아비인 마귀가 유황불을 코로 호흡하듯이 자식인 인간들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란 얘기다. 마귀에게 "너 이제 악취나는 유황 연기 내뿜지 말고 가글 좀 하고 다녀"라고 한다 해서 마귀에게서 역겨운 유황내가 안 나겠는가? 마귀는 항의할 것이다. "야, 내 본질과 속성이 유황 연기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끊어?" 개는 똥을 끊을 수 없듯이 마귀는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본성을 통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존재다. 마귀의 자식들도 아무리 욕을 듣고 지저분하다는 지적을 받아도, 담뱃갑에 그려진 폐가 썩어가는 끔찍한 그림을 봐도 "개가 어떻게 똥을..."과 같은 원리로 담배를 입에 물 수 밖에 없다. 마귀를 따라서 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스펄젼 같은 기라성 같은 목회자도 담배를 못 끊었음을 알고 현대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거듭난 이후에 육신의 정욕에 매여서 여전히 담배와 술을 가까이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술, 담배에 관해 경각심을 못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또한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온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대화한 많은 교인들이 "술, 담배 아예 하지 말라고 성경에 어디 나와 있나요?"라고 내게 묻곤 했다. 그들의 생각은 음주는 만취하지 않고 기분 좋게 적당히 하면 된다는 착각 하에 그들의 술취함을 성경적으로 합리화시키고 흡연은 아예 성경에 나오지도 않으니 적당히 해도 되는 기호식품이라고 여기는 식이었다.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들을 나는 물론 동정한다. 그러나 나의 이 글을 본 독자들만큼은 속지 말고 각성하기 바라며, 여러분 주위의 연약한 크리스찬들에게 "그것은 성경적으로 이렇게 나쁜 것이야"라고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
"그 이빨은 사자들의 이빨 같더라" 이 존재는 최소 네 가지 종이 결부된 형태로서 메뚜기, 전갈, 여자 사람, 사자가 합쳐진 괴물이다. 실제로 이 이빨이 포식자의 무기로서 사용되는 모습은 없는데 그렇다면 이들의 존재 자체가 진화론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반진화론의 산 증거일 수 있겠다. 진화론자들은 알다시피 "흔적기관"을 주장하고 용불용설을 진화 작용의 기작 중 하나로 신봉하고 있다. 사자가 지상의 맹수들 가운데 제왕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사자가 최고의 순발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표범은 사자보다 훨씬 빨리 달린다. 앞발의 펀치력이 제일 세기 때문도 아니다. 북극 곰의 앞발 휘두르는 위력은 마이크 타이슨의 주먹을 어린애 손가락만도 못한 격으로 만들 정도의 핵주먹이다. 사자의 특장점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이빨과 턱힘이다. 만일 괴물 메뚜기들이 사자의 이빨을 사용하는 포식자라 치면 그들이 왜 이빨을 써서 사람들을 물어뜯지 않고 꼬리만 사용하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멍청한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지만 조금이라도 이성과 양심과 상식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의심을 품고 결국 진화론에서 탈출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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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5나팔때 무저갱에서 올라온 아볼루온(아바돈)이 짐승입니다^^
이 짐승이 누구인가는 모습에서 알수있지요...
용은 일곱머리,열뿔에 면류관이 일곱머리에 있습니다.
똑같이 생긴 짐승은 일곱머리,열뿔에 면류관이 열뿔에 있지요...
이 차이점으로 짐승이 누구인지 알수있는겁니다..
유다 이스카르옷?? ㅎㅎ
무저갱은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타락한, 범죄한 천사들이 들어가는 감옥임을 모르면 풀수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