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선제 공격 루트를 표시할 때 조선상고사에 나온 것들이 반영되었습니다. (조선 상고사에서는 고구려가 거란병 수천으로 산동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환단고기에서는 산동공격 주장主將을 연태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농서지방 공격은 어떤 사료에 근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온달의 남방원정도 있었고, 명치호태왕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무왕-의자왕 대의 백제도 신라의 영토를 많이 빼앗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진흥태왕 이후의 영토 상황을 고정적으로 그려놓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무엇보다 고구려의 도성인 장안성하고 신라 동북방 한계선이 지나치게 가까운데 고구려가 과연 저걸 그냥 두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본 역사부도에 따로 표시되 있는 것도 있죠.. 진흥왕 이후 상실된 영토가 따로 표기되어 신라가 강원도 일대까지 밀려난 표시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같은 경우는 -_- 위덕왕 ~ 법왕 대의 위축된 시기의 영토니 나름 맞긴 맞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이후 시기 백제 영토를 저 때랑 똑같이 해 놨다는 거 -_- 무왕 대에 영토를 나름대로 꾸준히 회복하고, 642년이 되면, 40여 성 함락의 전공으로 인해 낙동강 일대 부근까지는 백제 땅이 될 시기인데 말이죠.. 그 이후 야금야금 + 655년 회복한 영토까지 합하면.. ;
첫댓글 신라의 북방 한계선이 지나치게 북상된 듯한 느낌 드는 군요. 강이식 장군의 건은 좀 성급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부도(보진재. 2002)보다는 낳네요. 제것은 고수-고당 전쟁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헐 심하군요. 같은 2002년인데... 참고로 제 것은 교학사 것입니다.
흥미롭네요. 흐음...
티얼님 말에 공감..
현 국정 역사 부도에서 신라의 영토는 진흥태왕 이후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 할 때 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무왕과 의자왕이 대대적으로 신라에게서 획득한 영토, 특히 의자왕이 빼앗은 신라 북계 33성과 옛 가야쪽의 대야성을 위시한 40여 성들은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온달의 남방원정도 있었고, 명치호태왕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무왕-의자왕 대의 백제도 신라의 영토를 많이 빼앗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진흥태왕 이후의 영토 상황을 고정적으로 그려놓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무엇보다 고구려의 도성인 장안성하고 신라 동북방 한계선이 지나치게 가까운데 고구려가 과연 저걸 그냥 두었을지 의문입니다.
제 생각은 티얼님과 같은데, 제가 오해의 소지가 있게 글을 썼네요.^^;; 수정했습니다.
신라 영토가 지나치게 확장되어 있네요...백제는 너무 축소된 느낌이고...
제가 본 역사부도에 따로 표시되 있는 것도 있죠.. 진흥왕 이후 상실된 영토가 따로 표기되어 신라가 강원도 일대까지 밀려난 표시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같은 경우는 -_- 위덕왕 ~ 법왕 대의 위축된 시기의 영토니 나름 맞긴 맞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이후 시기 백제 영토를 저 때랑 똑같이 해 놨다는 거 -_- 무왕 대에 영토를 나름대로 꾸준히 회복하고, 642년이 되면, 40여 성 함락의 전공으로 인해 낙동강 일대 부근까지는 백제 땅이 될 시기인데 말이죠.. 그 이후 야금야금 + 655년 회복한 영토까지 합하면.. ;
그냥 화살표만 그려놓았던 제 때에 비해서는 그래도 많이 나아졌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