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버블의 해답은 일자리와 복지
시간을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을 더 없이 무력한 존재로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은 캄보디아에서 만난 신비의 노인으로부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열 개의 알약을 얻고, 그는 30년 전으로 돌아갈 기회를 부여잡는다. 그는 가장 고치고 싶은 과거의 사건인‘연인의 죽음’을 우여곡절 끝에 막아낸다. 하지만 그의 과거사에서 한 가지 사실이 뒤바뀌게 되면서 나비효과처럼 그의 삶 전체를 뒤죽박죽이 된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가장 바로 잡고 싶었던 실수를 수정한 결과 다시 연쇄적으로 또 다른 문제가 무더기로 양산된 것이다.
영화처럼 경제에도 ‘나비효과’란 것이 있다. 뭔가 하나를 건드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것들이 망가진다. 우리나라는 경직적인 공급 규제와 소득 증가에 따른 수요의 폭발적 증가, 두 가지가 부동산 가격 폭등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진보쪽 경제학자들은 10년 전부터 부동산 버블을 예고했다. 시장은 이들의 전망이 틀렸다며 비웃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에서 신용확대를 해 가격이 내려가지 못하게 막으며 가격이 인위적으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때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인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지 않도록 온갖 정책을 써오며 부동산 시세의 우상향 곡선 유지 현상이 지속된 거다.
다들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 버블의 신호는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진보의 부동산관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주택 부문 대출은 전세금으로 융통한 개인간 대출이 대부분이었고 일반 은행을 통한 대출은 없었다. 2000년 가계대출이 270조원일 때도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겨우 50조원이었다. 이것은 정부가 은행 돈이 기업으로만 가도록 통제한 결과다. 이후 15년에 걸쳐 금융기관을 통한 주택대출이 증가하는 현상은 시장경제 원리상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가계대출이 1300조원대, 이 중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약 540조원대다. 가계대출에서 부동산 담보대출 비중이 큰 것은 당연하다. 다른 나라에서도 가계대출은 대부분은 집을 사기 위한 대출이다.
문제는 상환능력이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가 원금을 갚는 기업대출이 별로 없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가계대출에서도 원금을 갚는 가계대출이 없다는 게 문제다. 다른 나라는 처음부터 원금을 조금씩 나눠서 갚도록 한다. 이 때문에 OECD 선진국들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우리나라 것과 단순 비교하면 안된다.
우리나라는 자기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높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원금은 안 갚고 있다가 집값이 올랐을 때 집을 팔아서 갚겠다는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 불건전 대출, ‘서브 프라임’ 대출로 친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80% 정도가 ‘서브 프라임’ 대출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지 않으면 언제라도 무너지게 되어있는 구조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도통 올라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가 침체되면서 내수 경기가 죽고 있다. 돈은 빌렸는데 부동산 가격은 기대만큼 많이 안 오를 것 같으니 불안한 거다. 여기에 중산층 포함 서민들은 소득 대비 빌린 액수가 커 원리금은 차치하더라도 매달 이자 내기가 빠듯하니 사람들이 소비를 못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중산층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1987년 이후 대기업 임금 상승으로 형성된 거다. 잘 생각해보면 불평등 문제도 여기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 수있다. 대기업과 공기업에 속해 있느냐, 부동산을 갖고 있느냐로 사회 계층이 형성된 거다. 원청과 하청 부문 간 임금소득의 불평등, 주택 취득에 대한 접근권의 불평등 두 가지를 정경유착 세력이 쥐고 있어 다수의 서민이 고생하는데도 이걸 바꾸자고 하면 힘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바꾸지도 못하는 역사가 반복됐다. 지난 40년간 한국 중산층 형성의 양대 메커니즘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더욱 부동산에 연연한다.
이 불안정한 시장에 대한 진보 쪽의 해답은 임금상승이다. 경제민주화는 일자리와 복지다. 부동산이 아니다. 집값 상승폭이 떨어져도 안정적인 노후소득과 내 자식의 일자리가 담보되어야 시장의 버블은 사라질 수 있다는 진보의 부동산관은 결국 중규모 이상 부동산 소유자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