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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깨닫게 하소서 (레2-11)
2024년 9월20일 (금요일)
찬양 : 주는 완전합니다
본문 : 레4:13-21절
☞ https://youtu.be/OSTmholYxJQ?si=tbE7Y222OkcQ__1K
어제 목회사관학교 3주차 수업을 마쳤다. 한 분 목사님께서 교회 주변 산에서 주은 밤을 쪄서 모두의 간식으로 푸짐하게 가져와 얼마나 맛나게 먹었는지 모른다. 열정으로 목양을 감당하면서도 이런저런 섬김으로 서로를 섬기는 사관생도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주님 축복하소서.
오늘은 금요세미나가 변화와 성장이란 주제로 계속되고 이어서 오후에는 조재진 목사님의 전도하는 제자학교가 시작된다. 진실로 작은교회가 변화와 성장을 위해 전도하는 제자들로 세워져 가기를 기도한다.
나는 오늘 암투병하시는 목사님을 심방한다. 항암 2차를 받고 계시는데 감사하게도 현재까지 경과가 매우 좋다고 기뻐하시는 사모님의 밝은 목소리를 어제 들었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사 급속한 치료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주님, 오늘도 앞서 행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온 회중이 죄를 깨달을 때 드리는 속죄제를 말씀하고 있다. 13-15절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을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이 말씀의 핵심은 <온 회중> 즉 이스라엘 공동체가 부지중에 범한 죄악을 <깨달을 때> 드리는 속죄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회중은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는데 백성의 장로들이 제물에 안수하고 그것을 잡아서 드린다.
그 나머지는 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의 순서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20절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
이 구절의 핵심은 제사장의 속죄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며, 이스라엘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범했을 때, 제사장이 그들을 위해 송아지를 제물로 삼아 속죄 제사를 행함으로써, 그들의 죄가 용서받고 정결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속죄의 절차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할렐루야 ~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울림을 주는 단어는 <깨달으면>이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יוּדַע"(유다)로 <알게되다, 인식하다, 깨닫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잘 알고 있는 히브리어 동사 "יָדַע"(야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지식적 앎이 아닌 경험적으로 안다는 말이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어떤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삶이란 자리에서 공동체의 건강성은 죄를 자각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공동체가 죄를 자각하고 속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공동체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되지만,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 공동체는 죄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갈 것이다.
분명 범죄했지만, 자신이 자각하고 속죄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속죄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다. 공동체의 속죄에서 중요한 사실은 <깨달으면>이란 사실과 회중의 장로들이 속죄 제물을 가지고 와서 속죄제를 드리는 일이다.
오늘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부지 중에 범한 죄가 분명히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지내고 있는 죄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돌아본다. 성경적 관점에서 죄는 과녁을 벗어나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חַטָּאת"(chata)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기준에서 벗어난 모든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한 도덕적 잘못을 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과 기준이 아닌 자기 기준과 뜻을 가지고 판별하는 무서움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기준으로 자신을 죄가 없다고 생각하며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는 말이다.
오늘 나에게도 내 기준에 의해 무엇을 분별하려는 무서운 자아가 있음을 자백한다. 하나님의 뜻과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기준 삼을 때,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고 기준이라고 착각할 때 그 자리가 진정 무서운 타락의 순간이 됨을 깊이 묵상하게 되는 아침이다.
묵상의 최고의 은혜는 자기 안에 갇혀 살며 세상을 등지고 나만을 위해 살려는 이기심이 발동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기를 넘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인식하고 자기 기준이 죄악임을 자백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늘 내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점검하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라마나욧선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작은교회를 향한 세계관으로 기준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내가 편한 것이 아니라, 작은교회와 사역자들이 진정 주님의 뜻 앞에 설 수 있도록,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나아갈 있도록 길이 되어주는 선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표되시는 주님이 원하신 그 자리에 서는 것이 회복이고 성장이다. 그분의 생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 속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 회복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다시 점검하며 속죄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아멘.
삶을 살아가면서 나를 부인하는 일, 내 기준을 내려놓는 일이 참 버겁다. 그러나 주님의 길이 진정 살리는 길이며, 생명의 길이며, 승리의 길임을 믿기에 나로는 버겁고 힘들지만, 오늘도 하나님의 기준과 달라진 내 기준을 내려놓고 주님을 붙잡고 주님의 길에 서리라.
이 찬양이 생각난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주님, 내 안에 세워진 기준들 가운데 하나님의 기준과 다른 것들이 있다면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준을 붙잡고 가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진정 주의 길이 생명의 길이며, 영광의 길임을 믿습니다. 저로 주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진실로 주님의 기준에 의해 다시금 돌아서는 날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나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알고 오직 주님의 기준안에서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을 통해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충주 라마나욧이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
첫댓글 목회자를 옥회하시는 대표님~
큰은혜 능력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