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정령사 0 - 프롤로그 (수정)
찰랑- 금빛 머리칼이 멋지게 휘날린다.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갈색의 탁자에 앉아있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푹신한 의자에 주저앉아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주, 아주 작았지만 너무도 조용했기 때문에 아주 잘 들렸다. 그녀의 말을 경청하던 사람들은 그녀의 입에 시선을 두고 귀를 쫑긋 세웠다. 말을 잇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런 분위기를 기다린 듯 하다.
"최근들어 이상한 소문이 돌고 계신다는 거,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사실입-"
"사실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문의 근원지 입니다. 지금부터 아주 재미있는 쇼를 하나 보여드릴 테니,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뒤에 서 있던 비서에게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비서는 사람 얼굴만한 스크린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컴퓨터? 노트북의 모니터만 뚝 떼온 느낌이다. 사람들은 잠시 그것에 집중했다.
"이게 뭐죠?"
"후후, 시작해. 모두 화면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제 스크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뭐길래?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눈을 가림과 동시에 스크린에서 하얀 섬광이 번쩍 튀어나왔다. 파바박! 그대로 사람들은 쓰러지고,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띠고는 일어났다.
"처리해. 난 발표하러 다녀올 테니. 절대로 풀어주지 마. 지하에 감금해."
"예, 사장님."
사장? 앳돼보이는 그녀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린 한국의 '테로스Teros' 기업의 사장이었다. 최근 획기적인 발명으로 한국 첨단산업을 일으킬 방법을 찾아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에 주주와 기업은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단상에 올랐다.
파바박! 파박!
하얀 플래쉬가 터져나온다. 그녀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잠깐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그것에 별 상관 없이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댔다.
"흠! 자,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관계자 분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고..."
그녀가 옆의 사내에게만 보이게 손짓을 잠깐 하자, 사내는 천천히 일어나 단상 옆에 놓여져 있던 유의물을 집어들어 기자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이게 뭡니까?"
"첨단산업의 획기적인 발명? 소문이 사실입니까?"
곧이어 기자들은 너나할것 없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귀를 살짝 막았다. 기자들이 제풀에 지쳐 의자에 앉자, 그녀는 다시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저희 테로스에서 최근에 관심을 가진 분야는 '가상 현실'입니다. 1차적으로 환자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벼운 가상 하이킹을 실험해 안전성 테스트를 마쳤고, 2차적으로는 사람이 많고 어지러운 대도시와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실험하여 가상 현실이 뇌에 미치는 영향까지 모두 테스트 해 보았습니다."
기자들은 재빠르게 적어나가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외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테로스는 지금 한국 첨단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당당히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잠깐 뜸을 들이자 기자들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가상 현실 시스템을 현실에 적용시킨 첫번째는 환자 치료와 정서 안정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단순 쾌락과 즐거움이었고, 이 두 분야의 안전성과 실용성을 확인하여 이번 달 이내에 시스템, 서비스를 상용화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적용시킨 세번째는..."
첫번째와 두번째만 해도 획기적이다. 대체 뭘 준비했단 말이가?
"게임입니다."
아휴- 기자들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게임? 한국에 넘쳐흐르고 흐르는 게 게임 아닌가? 그것이 단지 입체화되고 가상 현실화 되었다고 해도 별 인기를 끌 수는 없을 것이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은 저희 '에록스Eroxe' 게임은 완전한 가상 현실로 오감을 모두 자극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시각, 촉각, 청각은 기본 시스템으로 모두 활용 가능하지만 후각, 미각은 적용시키기가 매우 힘들어 1년 반이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음식에 있는 나노 칩들이 뇌의 신경을 자극하여 '맛있다', '배부르다' 등의 감각을 느끼게 해 주며, 후각도 같은 과정으로 자극됩니다."
경악. 게임 안에 나노 칩을 심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게임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물론,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요. 중독을 막기 위해 유저들의 DNA를 자동으로 추출해 내어 하루에 최대 3 시간까지 사용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부모들이 좋아할 시스템이죠. 안 그렇습니까? 이제 한국의 테로스가 만들어낸 에록스. 가상 현실 게임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흘린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깐동안 미소를 유지하다가 다시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웃는 건 굉장히 불편하단 말이지."
그녀의 얼굴 뒤에 감추어진 진실,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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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올렸습니다 ^^ 즐감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