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을 엘리사벳(성김대건 성당)
엄마는 내게 말하곤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이뻐지지?
아마도 너희들 때문인 것 같아
나이 들어가도 자꾸만 예뻐진다며
엄마는 귓속말로 자주 내게 말했지요
잘룩한 허리와 팽팽한 얼굴, 손 마디마디 곱던 그 시절 보다
뿔룩한 아랫배와 펑퍼짐한 엉덩이, 목주름이 늘어나도
우리들이 있기에 예뻐진다는 말
그냥 웃어 보려고 그런 줄 알았어요
마당 한 켠에 엄마가 심어 놓은 향나무 한 그루
속도도 내지 않고, 휘어지는 등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천천히, 미더운 사랑의 향기 뿜어 내었어요
무심코 향나무 곁으로 다가가 그 향을 맡으면
엄마의 품과 등에서 스미어 오던 엄마의 냄새 같은
그래서 한참을 향나무 그림자 밟으며 서성거렸어요
엄마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를 키우며 예뻐졌다고 말해 주던 그 마음을
때늦은 나이에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어요
두 딸을 다 키우고 나서 그제서야 엄마처럼
나도 예뻐진 것을 알았으니까요
향나무 묵주로 기도할 때면
엄마 향기 가슴으로 더욱 스미어 옵니다
엄마의 그 마지막 날에
향나무 묵주 두 개를 샀더랬어요
하나는 엄마 손에 꼭 쥐어 보내 주었지요
천국의 강 건너갈 때
향나무 묵주는 놓치지 않으셨지요?
남은 묵주 하나 엄마를 위하여
지금도 한알, 한알 돌리며
우리 엄마는 참으로 예뻤다고 말해 주어요
봄을 그리는 차(茶)
박고을 엘리사벳
성 김대건 성당
가을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녹차 한 잔 우려내고 있다
다관 안에서
찻잎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봄처럼
저 가을 산 너머 너머에서
벌써 봄이 스멀스멀 기어 오는 것만 같다
빈 잔에 우려진 연록의 차 부어 놓고
수색에 반하고 향기에 취하며 맛에 녹는다
찻잔에서 잠들던 봄이 깨어 나오나 보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맑은 차 맛
녹차를 마시며 늘 봄을 불러들이곤 했다
봄볕에 자란 작설 따서 덖고 비벼낸 때문일까
녹차를 마시는 동안
봄날의 차밭 연록이
내 마음에 들어와 숨 펴고 있다